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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비작가 윤도경의 찻집

신도림역 7번출구

무료웹소설 > 자유연재 > 추리, 드라마

윤도경
작품등록일 :
2023.05.10 10:25
최근연재일 :
2023.06.18 20:00
연재수 :
80 회
조회수 :
980
추천수 :
21
글자수 :
373,950

작성
23.05.28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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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도림의 바다-사진, 왜곡하신 이유가 뭐예요?

DUMMY

정인은 머뭇거렸다. 원래는 신문에 실린 사진, 태휘에게 보낸 사진에 대해 묻고자 했던 것인데,


지후 사는 형편을 보니 그런 얘기를 하기가 민망해진 까닭이었다.



<정인> “저······.”


<지후> “말해. 짐작은 했어. IMF가 왔다고 갑자기 나 사는 형편이 궁금해질 리도 없고. 괜찮아.”


<정인> “그럼 말을 할게요. 작년 12월 3일 Q 신문 기사 봤어요. IMF 구제금융 받던 날 그 신문에 실린 서울역 앞 노인 사진.”


<지후> “봤어?”


<정인> “그 사진 선배가 찍었다고 돼 있던데, 맞아요?”


<지후> “그렇지. 내가 찍었어.”


<정인> “그 사진, 그런 거 아니란 거 아시면서 그렇게 내보내셨어요? 게다가 12월 3일 사진도 아니잖아요.”


<지후> “그 얘기 하려고 온 거야?”


<정인> “궁금했어요. 같이 사진 배우고 더구나 기자까지 하시는 분이 왜 그런 왜곡을, ······


아, 죄송해요. 아무튼 그런 걸 하셨을까.”



<지후> “방금 왜곡이라고 했니? 뭐가 왜곡인데?


IMF 구제금융으로 나라가 절망에 빠졌고 그 절망을 가장 적절히 표현한 그림인데.


뭐가 문제라는 건지 모르겠다.


조심해라. 너 말 허투루 하면 큰일 난다.”



<정인> “그러면, 정말 그래도 되는 거면 화재로 전소한 자기 집 앞에서 울고 있는


어디 소말리아 사람을 찍으시지 그러셨어요?


그 절망이 그 할아버지의 절망보다 더하면 더했지 못하지는 않을 텐데요?”



<지후> “소말리아랑 IMF가 무슨 상관이야?


IMF를 당한 한국 사람이 소말리아 사람한테 관심이나 있겠어?”



<정인> “그래서 소말리아 사람은 안 되는 거라면


마찬가지로 그래서 IMF 구제금융 소식 이전 사진을 그 기사에 실으면 안 되는 거잖아요?


12월 3일 이전 사진은 더욱이나 안 되는 거잖아요?


그리고 그 사진 속 할아버지의 절망은 연출된 거라구요.


프로젝트 수행을 위해서. 그걸 아시면서.”



<지후> “그만 따져라. 너랑 얼굴 붉히고 싶지 않다.


그 노인은 나한테는 쌔고 쌘 서울역 노숙자들 중 한 명일 뿐이야.


그 노인이 아니라도 그 옆에서 구걸하던 거지를 찍을 수도 있었어.


12월 3일에도 그런 거지들은 많았을 테고.


그 노인 사진 내보냈다고 달라질 건 하나도 없는 거야.


그리고 기자의 자질이나 양심 같은 걸 따지려거든 어디 언론학회 같은 데 가서 얘기해.


난 기자이기 이전에 생활인이야.


밥을 먹어야 살고 그 밥은 사진으로 찍어내야 해.


내가 캐비넷에 넣어 둔 사진이 있는데, 그 사진이 밥 지으라고 쌀을 주겠다는데


그걸 썩힐 수는 없는 노릇 아니니?


농사꾼이 창고에 넣어둔 볍씨로 5월에 모내기를 하는 거랑 같은 이치라고 생각해 둬.”



<정인> “차라리 옆에서 구걸하는 거지를 찍으시지 그러셨어요.


차라리 그 많았을 12월 3일 거지들을 찍으시지 그러셨냐구요. 그러면 최소한······.


그리고 케비넷 말씀하셨는데 그러면 X 매트에 보낸 사진도 캐비넷에서 꺼낸 건가요?


지금 모내기하시는 거냐구요.”



<지후> “그 사진을 네가 어떻게 알지?”


<정인> “도 사장님은 제가 개인적으로 아는 분이에요.”



지후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정인> “궁금했어요. 그 사진으로 선배가 원하시는 것이 뭔지.


그렇잖아요. 그 노인 사진처럼 그냥 신문사에 기사 내면 됐을 일이에요.


그런데 굳이 X 매트 도 사장님한테 사진을 보내셨단 말이죠.”



<지후> “도 사장이 아무 말씀도 안 하셨어?


갑자기 기사를 내버리면 X 매트에 너무 타격이 클 테니까 미리 언질이라도 해 드린 거라고?”



<정인> “그건 말이 안 돼요.


갑자기 나가나 아는 상태에서 나가나 마찬가지잖아요.


그렇다고 사진에 대한 해명을 들으려고 하신 것도 아닐 거고 들으신 것도 아닐 테구요.


해명을 들었다고 그걸 실어 줄 것도 아니면서요.


어차피 그 기사, 그 사진은 X 매트 도 사장님을 염두에 두고 내는 게 아니잖아요?


독자들이 받을 충격은 이러나저러나 똑같을 뿐인데요.


그러니 제 생각으로는 뭔가 거래를 하자, 이런 뜻으로밖에 안 읽히는 거예요.


그래서 사진 나가기 전에 도 사장님께서 아셔야 했던 거구요.


아니라면 정말 죄송하지만.


더군다나 그 사진을 공개해서 얻는 공익이 전혀 없잖아요?


X 매트가 도둑질을 했나요? 뇌물을 받았나요? 그도 아니면 IMF를 불러왔나요?


사람들 분노만 들끓게 한다는 것,


그리고 X 매트를 파산 지경에 이르게 할 수 있다는 것,


X 매트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


이건 좀 미안한 말씀이지만 선배와 같이 될 수도 있다는 것 말고는?”



<지후> “정인아. 너 말이 너무 심한 거 아니야?”


<정인> “누구에게나 어두운 욕망은 있을 수 있다고 봐요.


IMF로 돈 버는 사람들은 IMF를 반길 수도 있죠.


지금 선배는 그 욕망의 색깔이 어둡다고 사회적 린치를 가하시겠다는 거잖아요?”



<지후> “아니야! 그 사진, 당장 내일 기사로 내면 아니라는 것을 보일 수 있겠구나? 최소한 너한테는?”


<정인> “그러지 마세요. 이렇게 부탁드려요.


그거 내서 무슨, ······ 아, 기자한테는 특종, 단독이 참 중요하다고 들었는데,


지금은 Q 신문 소속이 아니신데 그게 중요할까 싶기는 하네요.”



<지후> “너도 정치질 하는구나? 기자한테 청탁하는 스킬이 제법인데?”


<정인> “그렇게 보고 싶으시면 그렇게 보세요. 하지만 제가 선배한테 드릴 건 없네요.”


<지후> “좋다. 널 봐서 이번은 캐비넷 안에 넣어두기로 하자.


하지만 영원히 캐비넷 안에서 잠자고 있을 거란 생각은 하지 마라.”



<정인> “고마워요 선배.”



정인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비록 지후가 캐비닛 안에 넣어 두겠다고는 했지만,


그녀는 IMF도 지나가고 사진이 시의성이 떨어지면 캐비닛 안에서 깨어나기 힘들 거라고 생각했다.






- 6 -



이튿날 저녁, 정인은 태휘와 만나서 저녁을 같이했다.



사진이 캐비닛 속에서 잠자게 됐다는 얘기를 하루속히 전해 주고 싶었지만,


그런 얘기를 전화로 하면 뭔가 맥이 빠지는 소식이 되고 말 거란 생각이었다.


마치 김빠진 콜라에서 톡 쏘는 맛을 찾는 것처럼.


그래서 굳이 전화로 해도 될 것을 굳이 또 아무 말도 하지 않고 하루를 묵혀 두었다.


더군다나 이 정도 소식이면 못해도 태휘에게 저녁 한 끼는 근사하게 얻어먹어도 되지 않겠나 싶은 것이었다.



<정인> “어제 지후 선배가 ‘신문사 캐비넷’에 대해 얘길 하더라구.


사진을 찍어뒀다가 필요할 때 하나씩, 하나씩 꺼내서 쓰나 봐.”



<태휘> “그게 사실이야?


그러면 그걸 일보(註1)(日報)라고 할 수 있나?


써야 할 때를 간 보다가 내보내는 ‘간보’지. 자식, 생긴 것부터 간사하게 생겼더라니.”



<정인> “너무 그러지 마. 그 선배도 IMF로 타격이 커.


오빠도 알겠지만 밥줄 앞에서 사람이 염치가 없어지는 거야. 비겁해지기도 하고.


그냥 그랬던 사람이라고 생각해 줘.”



<태휘> “밥줄 앞에 염치없어질 놈이 무슨 염치로 기자를 해?


그리고 하고 많은 사람 중에 왜 내 앞에서 염치가 없어지는 건데?


그래, 나한테 보낸 사진은 뭐래?”



<정인> “그냥 내보내면 X 매트에 충격이 너무 클 것 같아서 미리 언질을 준 거라고 하더라고.”


<태휘> “그건 나한테 와서 직접 했던 말이고.


그거 말고 그렇게 해서 허지후가 바랐던 게 있을 거잖아. 그 얘긴 안 해?”



<정인> “뚜렷한 얘긴 안 하던데.”


<태휘> “그럴 줄 알았어. 말 못 하는 게지.


딴은 양심을 속일 수는 없을 테니까.


이걸 양심이 살아 있다고 좋아해야 하는 건지 원.”



<정인> “대신 신문에 내지는 않는댔어.”


<태휘> “그래놓고 내면 안 되지. 아무튼, 결국은 네가 해주었구나?”


<정인> “그렇게 말하면 내가 무슨 대단한 거나 한 것 같잖아. 그런 건 아니고 그저······.”


<태휘> “캐비넷 속으로 들어가겠지. 그래도 그게 어디야.


네 덕에 X 매트가 산다.


이 고마움을 어떻게 보답해야 할지.”



<정인> “됐네요. 그런 거 할래 말고, X 매트나 잘 키워.”


<태휘> “그것도 네 덕이지.”



태휘는 윤정과의 추암해변 여행을 떠올렸다.


그때 보석을 해 달라던 윤정, 그는 그 보석을 정인에게 해 주고픈 마음이 생겼다.



<태휘> “이번주 일요일날 시간 비워줄 수 있어? 오빠랑 어딜 좀 가자.


너한테 해주고 싶은 게 있어.”



<정인> “뭔데?”


<태휘> “받기도 전에 김 빼지는 말자.”



정인은 처음엔 별 기대는 하지 않았었다.


그저 지후를 만난 일로 사례를 한다면 오늘 이 저녁 자리만으로 충분할 거라 생각했다.


그리고 그 이상을 바라는 것도 도리가 아니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태휘가 개인적 고마움에 대한 선물을 해 준다 하니,


또 시간까지 비워 놓으라 하니 괜히 설렜다.


얼굴이 발개지고 마음이 부끄러워지기까지 했다.






태휘와 헤어진 뒤 정인은 아빠가 입원해 계신 R 병원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채동섭’이라고 이름이 적힌 병실 문을 빠끔 열고 들어가자


동섭은 딸이 들어오는 소리인 줄을 알고 고개를 문 쪽으로 돌렸다.



<동섭> “오늘은 어디서 오냐? 태휘 만나고 오냐?”



동섭이 물었다.



<정인> “응. 어제 지후 선배랑 있었던 얘기 들려주니까 한결 마음 놓여 하더라고.”



정인이 대답했다.



<동섭> “또?”


<정인> “저녁 같이 먹었어. 일단 X 매트가 살아날 기미가 보이니까 얼굴이 펴지던데.”


<동섭> “회사(L 식품)는?”


<정인> “회사 생각은 당분간 하지 마. 아빠 건강이나 챙겨. 건강해져서 회사도 다시 살리고.”



그는 딸의 대답에서 어려운 회사를 살릴 기미가 보이지 않는 줄 짐작하고 고개를 떨구었다.





=== 주석


註1. ‘한성순보’는 열흘 순(旬) 자를 써서 열흘마다 발행하는 신문이었고, 월보(月報)는 월마다, 주보(週報)는 일주일마다 발행한다. ‘일보’는 날마다 발행하는 신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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