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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비작가 윤도경의 찻집

신도림역 7번출구

웹소설 > 자유연재 > 추리, 드라마

윤도경
작품등록일 :
2023.05.10 10:25
최근연재일 :
2023.06.18 20:00
연재수 :
80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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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5.25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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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만남-손주를 노리는 할머니

DUMMY

그녀는 아직도 상복을 벗지 않았다는 부분에 주목했다.



<윤정> “아주 저주를 퍼붓는구만! 누가 궁금하댔어?


그 상복은 날 위한 건가? 아니면 내 아기?


산 사람 장례 치르겠다고 으르는 되먹지 못한 여자 같으니라구!”



이해가 되지 않았다.


정인을 만나지 못한 지 벌써 1년이 넘었지만, 그녀가 이래야만 할 뚜렷한 이유란 딱히 떠오르는 것이 없었다.



<윤정> “하지만 있을지도 모르지. 그저 내가 모르고 있을 뿐일지도.


근데 내 목숨 노리는 사람 많네. 채정인, 그년까지.


그래서라도 오기로 살아남아야 되겠는걸.”



그녀는 점점 불러오는 배에 오른손을 갖다 대고 살살 문지르며 어루만졌다.



<윤정> “아가, 엄마가 너만은 꼭 지켜 줄게.”






한편 정인의 편지가 고마운 것도 하나 있었다.


병록과 해월이 그녀를 이리 차갑게 대하는 이유를 짐작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곧 상속 문제였다.


혼인신고가 되어있지 않은 사람에게 아들의 재산이 모두 상속되는 꼴을 도저히 볼 수가 없었으리라, 윤정은 짐작했다.(註1)



돌아가는 상황을 보니 말은 안 했어도 아기가 있는 줄을 아는 것이 분명했다.



<윤정> “누가 말했을까? 누가 알려줬을까? 저 사람(태휘)이?”



그녀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윤정> “그랬을 리가 없지. 그랬으면 저번처럼 그 즉시로 먹을 것을 바리바리 싸 짊어지고 와서,


‘윤정아(註2), 이것 좀 먹어 보지 않으련?’ ‘윤정아, 저것도 좀 먹어 보지 않을래?’ 하면서 날 괴롭혔겠지.


하긴, 누가 알려줬든 그게 중요한 문제는 아니지.


내 뱃속에 아기가 있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는데.”



문제는 정인이 그녀의 임신 사실을 어떻게 알고 있는가였다.



<윤정> “그 인간(태휘)이 말하지 않았다면 채정인이가 어떻게 알아!”



그녀는 태휘에게 화살을 돌렸다.



<윤정> “살아서는 맘으로 날 괴롭히더니 죽어서는 입으로 날 괴롭히는구나.


어쩌면 그렇게 좆동아리와 조동아리가 무거운지.”



어쨌거나 상속 문제로 목숨이 위태로운 상황이 오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하였는데,


닥치고 보니 참으로 얄궂었다.






- 2000년 10월(김윤정의 생)




10월이 되었다.


그달 초, 병록과 해월은 윤정에게 미국에 놀러 가지 않겠느냐고 제의해 왔다.


미국 서부 패키지여행 팸플릿을 들고 와서는,


누가 어딜 다녀왔더니 바위산들이 어마어마한 높이로 솟아오른 사이로 아찔한 계곡이 있어서


웅장하고 거대한 조각을 보고 온 것 같았더라는 둥 너스레를 떨었다.



윤정은 어디 여행사에서 들은 말을 조각조각 모아 읊어대는 거라고 생각했다.



그와는 별개로 여행이든 뭐든 나이 든 노인들이 이역만리 타국땅에,


그것도 아들이 없는 며느리와 같이 가자는 것은 전혀 뜻밖이었다.


정인의 편지를 받은 이후로 그녀는 웬만해서는 집 밖으로 나가지 않았으며 그들도 윤정을 찾지 않았었다.



<윤정> “그런데 갑자기 미국에 놀러 가자니 무슨 일이지?”



윤정은 의혹이 일었다. 가만히 배를 어루만졌다.



<윤정> “그렇군요. 미국 어느 캐년에 갔다 온 얘길 하는 모양인데,


우리 사이에 그랜드캐년 같은 거대하고 깊은 골이 파인 것을 모르는 줄로 아시는 모양이죠?


50년쯤 전(1956년)인가 케냐 어디 협곡에서 고인류 화석이 나왔다더군요.


후생 인류를 위해 내 뼈를 묻을 생각이 아니라면 그쯤 해 두시지요.


뱃속에 있을 때는 엄마를 죽이는 것이 아기를 없애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라는 것쯤은


미련한 도태휘 마누라도 압니다.”



그녀는 쓴웃음을 지었다.


발붙일 곳 하나 없는 외국의 하늘 아래서라면


그 죽음을 파헤쳐 줄 사람은 하나도 없으리라는 것쯤은 그녀도 잘 알고 있었다.



<윤정> “재산이나 아기는 차치하더라도, 그걸 속아달라는 것이 너무 날로 먹으려 하는 것 아닌가요?


명색이 당신 아드님과 결혼한 며느리인데, 너무 띄엄띄엄 보시는 것 아니냐 말이에요!”



설령 이 모든 생각이 단지 그녀의 피해망상일 뿐이라고 해도


그 긴 여행길에 오르기는 몸이 받쳐주지를 않았다.


어디서 무슨 일이 생길지 알 수 없는 몸이기 때문에도 더 그랬다.


하여 그녀는 다시 생각해 보라는 요구에도 거절의 뜻을 굽히지 않았다.






며칠 뒤 해월이 윤정에게 찾아왔다.


손에 뭔가를 싸 들고 왔는데, 예전과 달리 마음에 쌓인 벽의 높이가 높았기에,


‘척’으로라도 반가운 모습이 나오지 않았다.



<윤정> ‘하기는, 생각이 있는 노인네들 같으면 재산을 가로채려는 술수가 이토록 노골적일 수는 없겠지.’



미국으로 여행을 가자고 제안했을 때의 일정으로 보자면 지금쯤 미국에 있어야 할 사람이었다.


그런 사람이 아직도 한국에 남아서 집에 찾아오니 의아하기도 하였지만,


이로 보아 여행은 단지 꼼수에 지나지 않을 뿐이라는 저간의 추측이 맞다고 그녀는 확신했다.



<해월> “윤정아, 너는 말을 안 했어도 워쨔?


니 뱃속에 죽은 그 녀석 애기가 있는 거 맞쟈?


살아온 세월이 있는디, 내 눈은 못 속여야.


아무튼지간에, 태휘도 없는 마당에 갸는 잘 키워야 될 거 아니여?


마지막 남은 핏줄잉께.


그래서 내가 니 몸 보하라고 전복죽을 좀 해 왔응께, 같이 먹자.”



<윤정> “이러실 것까지는 없는데요.


그나저나 오늘은 원래 미국에 계셔야 하는 거 아닌가요?


저번에 보니까 여행사랑 계약까지 하신 것 같던데.


설마 저한테 전복죽 해주시려고 그걸 포기하신 것 같진 않고······.”



<해월> “맞다. 니땜에 포기한 거다.


니 임신도 한 것 같고 해서 바람 좀 쐬어 줄라고 했던 건디,


니가 안 간다는디 어떻게 우리만 가겄냐?


대신 이번에 너 줄라고 해 온 죽은 거절 안 했으면 좋겄다.”



<윤정> “죄송하네요. 하지만 몸이 이래서 갈 여건이 안 됐다는 건 이해해 주세요.


해주신 건 맛있게 먹을게요.”



윤정은 보따리를 들고 주방으로 가려고 했다.


그러자 해월이 이를 제지했다.



<해월> “내가 떠다 줄라니께. 애기 엄마는 가만히 앉아 있으라.”



그러면서 그녀는 보따리를 들고 주방으로 가더니,


이윽고 전복죽 두 그릇을 소반에 얹어 내왔다.


그런데 윤정은 한 숟가락을 뜨고는 그만 그 자리에서 모두 뱉어 버리고 말았다.


그러고는 얼른 화장실로 뛰었고, 해월이 따라 들어가 윤정의 등을 두드려 주었다.



<윤정> “어머니, 죽에 뭘 넣으셨나요?”



윤정이 소리쳤다.


죽에 무엇을 넣었다는 증거가 없으니 조심스러울 법도 하였지만, 그녀는 그러지 않았다.



<해월> “뭘 넣다니. 니 몸이 허해서 죽이 안 맞았던 모양인디,


그렇다고 혀서 내가 죽에 무슨 못 먹을 거라도 넣었다는 것처럼 말하냐?


어떻게 그렇게 사람 성의를 무시할 수 있는 거냐?


입에 안 맞을지도 모른다고는 생각혔다.


허지만 토악질을 할 줄은 몰랐다. 전복 말고 넣은 건 없다.”



<윤정> “못 먹을 걸 넣었다는 말씀은 안 했는데요?


그리고 아무것도 안 넣었는데 입에 넣자마자 구역질이 나오나요?”



<해월> “니 말이 그렇지가 않냐?


난 너 생각해서 해 온 건디. 니가 임신을 혀서 몸이 너무 허한 거 같다.


그러니 이리 예민허지. 좀 더 몸을 보해야 할 것 같다.”



<윤정> “힘드네요. 혼자 있고 싶습니다. 죽은 고맙게, 그리고 맛있게 먹은 셈 칠게요.”



윤정은 해월에게 돌아가 달라고 부탁했다.


그래도 돌아갈 기색이 없자, 윤정은 해월의 등을 떼밀어 그녀를 돌려보냈다.



<윤정> ‘한 가지만 하세요. 며느리를 걱정하든지 재산을 사랑하든지.


전복죽 먹고 죽기 전에 구역질 나서 죽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내 아기 손댈 생각일랑은 꿈도 꾸지 마세요.’



윤정은 해월이 돌아간 뒤로 입이 개운치 않아 몇 번이고 입안을 헹구어냈다.


그래도 전복죽의 텁텁한 끝 맛은 쉬 사라지지 않았다.



<윤정> “버티기 힘들구나. 대 놓고 독살을 하려 들다니. 저질들 같으니라구!”



그녀는 의심했다. 죽을 먹었으면 최소한 아기는 죽었을 거라고.


그리고 생각했다.


만약 병록과 해월의 뜻대로 됐다면 그들로서는 미국에 가지 않고 코 풀게 되므로,


그녀는 가진 모든 것을 잃게 됐으리라고.



<윤정> “심지어는 내 가장 소중한 것까지 버렸을지도 모르겠네.”






- 8 -




- 2001년 1월(김윤정의 생)



해가 바뀌었다. 그 사이에도 윤정을 해하려는 그들의 시도는 끊이지 않고 계속되었다.



한번은 복요리를 해주겠다며 복어 두 마리를 사 들고 온 적이 있었다.


그러면서 말하기를, 양식 복어가 아니고 자연산 복어로 실한 놈으로 준비했다고 했다.


그녀는 자연산이라는 데서 한번 놀랐지만,


복어를 집에서 손질해서 요리를 하겠다는 말에 오금이 저리고 끔찍하여 소름이 돋기만 했다.(註3)



<윤정> “가세요. 복은, 받은 셈 칠게요. 정말 고맙네요. 그러니 다신 오지 마세요. 제발.”






한편 겨울이 되면서 윤정의 배는 계속 불러왔고, 그녀는 1월 말 출산을 예정에 두고 있었다.


첫 출산이다 보니 괜히 겁도


났지만, 그것보다 두려웠던 것은 그녀를 두고 시시때때로 옥죄어 오는 죽음의 그림자였다.


일전 전복죽이나 복어 사건 이후에도 어딜 나가면 누가 괜히 미행하는 듯한 느낌에 괜히 기분이 싸하기도 했었다.


그리고 이와 유사한 일을 겪은 것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 주석


註1. 사람이 사망하면 자식(직계비속)이 없는 경우 배우자가 재산을 상속한다. 그런데 부모가 있으면 배우자와 부모는 1.5:1:1의 비율로 상속한다. 혼인신고가 되어있는 경우에는 그러하다. 그러나 혼인신고가 되어있지 않으면 배우자는 다른 고려(기여분 등)가 없으면 상속분이 없다. 한편 자식이 있을 경우는 부모는 상속받지 못한다. 혼인신고가 안 돼 있으면 좀 복잡한 과정을 거쳐야 하긴 하겠으나, 결국엔 아기(직계비속)가 모두 상속한다. 상속에 관하여 태아는 이미 출생한 것으로 본다. 그러니 소설에서는 태휘의 부모는 상속지분이 없다. 아울러 아기의 상속재산은 그 법정대리인, 즉 윤정이 관리하게 된다. 아기가 죽어서 나오지 않는 이상은 그러하다.


註2. 이 역시 ‘새아기’, ‘새아가’라는 지칭과 호칭이 맞는 것으로 되어있지만, 드라마나 영화가 아니면 아무도 이런 호칭, 지칭을 쓰지 않는 것 같다.


註3. 복어는 알과 난소, 간 등 내장에 테트로도톡신(복어 독)이 있는데, 그 독성은 청산가리의 수백 배에 달한다. 한편 테트로도톡신은 복어가 섭취하는 특정 세균에 의해 만들어지기 때문에 양식 복어에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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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 도림의 바다-이 사진, IMF랑 상관 없어! 23.05.28 11 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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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 도림의 바다-IMF 경축 플래카드 23.05.27 9 0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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