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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비작가 윤도경의 찻집

신도림역 7번출구

웹소설 > 자유연재 > 추리, 드라마

윤도경
작품등록일 :
2023.05.10 10:25
최근연재일 :
2023.06.18 20:00
연재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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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글자수 :
373,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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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5.26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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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도림의 바다-허지후, 여행을 서울로 되돌리다...

DUMMY

결국은 정인에 대한 갑질이 없다면, 그로 인한 태휘의 죽음이 없다면,


그래서 그가 다른 이유로 사망하는 것이라면 내생에서의 고통도 없어진다는 말이라고 도림은 받아들였다.


별 의미는 없겠지만, 굳이 찾자면 내생, 곧 신도림의 삶을 편안히 사는 방편은 되는 셈이었다.



<도림> “태휘씨, 우리 집에 가자.”



도림이 말했다.



<태휘> “왜 그래? 너답지 않게.”



태휘는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으며 도림을 바라봤다.



<도림> “나다운 게 뭔데?”


<태휘> “여태 오빠라고 불렀잖아. 그런데 갑자기 이름을 부르니까 확 거리감이 느껴지잖아.”



‘오빠’라고 불러야 한다니, 도림은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도림> “그래, 오빠. 어쨌든 지금은 너무 추워.”


<태휘> “그래도 여기까지 왔으면 새해는 보고 가야 되지 않을까?


이제 이틀 남았는데?


네가 보고 싶어 했잖아.”



<도림> “내가, ······ 그랬어?”



‘윤정’에게는 모르지만 ‘도림’으로서는 ‘처음 보는’ 남자였다.


그렇기 때문에 도림의 마음으로 그를 받아들이기가 아직은 버거운 것도 사실이었다.



<도림> “미안해. 실은 사람이 이렇게 많을 줄 몰랐어. 나, 사람 많은 거 안 좋아하잖아.”



사람 많은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도 사람에게 데여 상처를 입은 도림의 마음이었다.


윤정은 그러지 않았다는 것을 그녀는 잘 알고 있었다.


뱉어놓고 나니 좀 다른 핑계를 댈 걸 하는 후회가 일었지만, 이미 뱉은 말, 어쩔 수 없었다.



원래대로라면 망상해변 다음으로 강릉을 여행했겠지만, 도림은 끝내 우겨서 숙소로 돌아갔다.






그리고 하루가 지난 지금은 서울로 돌아가는 차 안에서 동해에서의 일들을 생각하고 있었다.



그녀는 회귀하고 정신이 심란한 상태였지만,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는 생각은 보석에 관한 것들이었다.


전생에서야 굳이 우겨서 루비와 에메랄드와 사파이어를 해 달라고 했지만,


이번에는 그런 보석들에는 별로 관심이 없었다.


근데 하필이면 어제 숙소에서 루비 목걸이와 에메랄드 귀걸이와


사파이어 반지를 한 여인의 대형 브로마이드를 보고는 탄성을 질렀었다.


물론 20년 전 소위 ‘잘 나갔던’ - 연예인쯤 되는 여인이라고 해서


그녀가 당장에 알아보거나 기억할 리는 없었다.



그 모습을 보고 태휘는 굳이 그 보석들을 해주겠다고 말을 했었다.


도림이 괜찮다고 극구 사양을 하는데도 그는 고집을 부렸다.


여행이 새해까지 예정돼 있었는데,


망상 바닷가에서 숙소로 돌아와 서울로 가자는 말을 들었기 때문에,


그녀가 혹시 실망한 것은 아닌가 싶어 어떻게든 만회를 하고자 하는 그의,


말하자면 ‘고육책’인 셈이었다.



그 일이 있고 그녀는 왜 하필 그 브로마이드가 그 시각, 그 자리에 붙어 있었느냐며 자책 아닌 자책을 했다.



<도림> ‘그러니까 그때 왜 그랬는지.


그 보석들은 전생에서 채정인이가 저 사람(태휘)을 죽였다는 증거쯤 되는 물건이었는데.


하지만 예쁜 것을 좋아하고 그런 것을 보고 감탄을 하는 것이야 여자의 특권 아니냐구.’



사정이 이러하니, 도림은 ‘운명의 장난’을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운명의 도전장’을 받은 이상,


그녀는 루비와 에메랄드와 사파이어를 반드시 받아내야 했다.



<도림> ‘내가 먼저 받아서 저 사람(태휘) 안 죽게 할 수 있는지,


아니면 이번에도 채정인이 받아서 전생처럼 똑같이 흘러갈지.’






- 2 -




태휘와 윤정은 서울로 돌아왔다.


아쉬움은 남겠지만, 새해맞이라는 특별함에 걸맞게 서울 남산에 있는 호텔을 숙소로 잡았다.


원래 일정과는 비교할 수도 없겠지만 그럭저럭 만족은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더욱이 윤정이 아니라 도림의 마음인 다음에야, 동해건 서울이건 의미는 없었다.



여행을 중도에 그만두고 서울로 돌아온 것은 전적으로 도림의 마음이었지만,


실은 태휘에게도 서울에서 늘 보는 일출을 바다에서 재탕 삼탕 바라보고 있을 여유는 별로 없었다.


도림이 말을 꺼내지 않았더라면 그가 다리 아픈 내색을 해서라도 서울로 돌아오자고 할 생각이었다.


여행을 가기 전에 신문사 사진기자 허지후로부터 연락이 왔기 때문이었다.



IMF로 인하여 가정이 해체되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가난해짐으로 말미암아


난방비를 감당하기 어려운 사람들이 추운 겨울을 이겨내기 위해


연탄이나 전기장판으로 눈을 돌리는 조짐은 꾸준히 있어왔다.



그런 연유로 전기매트를 파는 X 매트의 매출도 수직상승을 하던 차였다.


그러니 IMF는 어찌 보면 그에게는 기회나 마찬가지였다.


겉으로야 내색은 안 할지라도 속으로 그런 마음이 드는 것까지 막을 수 없었다.



문제는 다른 데 있었다.



당시 많은 사람들이 직장에서 해고되고,(註1)


그나마 기존 일자리를 유지할 수 있었던 사람들은


어서 빨리 이 끝이 보이지 않는 터널에서 벗어날 수 있기를 바랐다.



그러나 태휘의 X 매트 직원들은 달랐다.



매출이 신장함에 따라 일자리를 걱정하기는커녕


오히려 다른 사람들은 엄두도 내지 못하는 상여금까지 두둑이 챙길 수 있었다.



태휘는 그래서 직원들이 다른 사람들과는 달리 IMF가 반가웠을 수도 있겠단 생각은 했어도 특별히 신경을 쓰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런 ‘음험한’ 생각은 마음속에만 머물러 주었으면 좋았겠지만,


무슨 심산이었는지 몰라도 X 매트의 생산공장에서 ‘경축, IMF 구제금융’이라는 플래카드를 걸어놓은 것이 사진기자 허지후에게 걸린 것이었다.



그리고 태휘에게 배달된 소포에는 ‘X 매트’의 로고와 사명이 뚜렷이 드러나고


플래카드 메시지가 시원하게 드러난 생산공장의 사진이 들어있었다.



유출돼서는 안 될 일이었다.



플래카드를 내건 의도와 뜻이 어떻든,


그것이 세상에 공개되는 순간 회사가 입게 될 타격은 불 보듯 뻔했다.



지후에게서 이런 연락을 받아놓고도 그가 굳이 여행을 떠난 것은


올해 안에는 반드시 같이 여행을 떠나겠다는 약속을 윤정과 했기 때문이고,


동해에서 쉬면서 사태에 대한 해결책을 궁리하고자 하는 목적도 있었다.



그는 생전 신경 쓰지 않던 신문사 사진기자를 그의 집무실로 불렀다.


순식간에 ‘갑’이 ‘을’ 아니라 ‘병’보다 못한 지위로 전락하는 순간이었다.






기실 태휘와 지후의 만남이 이번이 처음은 아니었다.



X 매트는 Q 신문에 간간이 광고를 넣었고, 때로는 기사형 광고를 넣으면서


두 사람은 안면을 트기 시작했다.


그것이 1997년 1월, 그 추운 겨울이었다.


그때도 H 그룹이 부도로 쓰러지는 등 경제 사정은 안 좋았으며 IMF의 조짐은 꾸준히 있어왔다.



하물며 X 매트는 그때만 해도 변변치 않은 회사였기 때문에 방송 광고는 생각도 할 수 없었고


그렇다고 광고를 안 할 수도 없었기에, 텍스트 기자는 물론이고


회사의 전기매트를 ‘예쁘게’ 찍어 줄 사진기자 허지후에게 잘 보일 필요가 있었다.


그런 까닭으로 지후는 태휘로부터 간간이 용돈(註2)(촌지(註3))도 얻어쓰곤 했었다.



그러던 것이 IMF가 터지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그 파고는 신문사라고 해도 쉽게 넘을 수 있는 것이 아니었기에, 신문사들은 기자들을 감원하기에 이르렀고,(註4)


특히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사진기자들을 대거 해고하고 나섰다.(註5)


그것은 Q 신문이라고 다르지 않았다.



그때 나름 ‘광고주’인 태휘에게 지후는 도움을 청했었다.



그러나 문제는 태휘 역시도 처음 당하는 미증유의 재난 앞에서 대책도 없이 어쩔 줄을 몰라 헤매고 있었다는 것이고,


제 코가 석 자나 빠진 상황에서 남의 형편까지 살필 만한 여유가 없었다는 것이었다.


더욱이 겨울이면 몰라도 지후가 해고된 1997년 여름은


싼 맛에 전기장판을 마련하려던 사람도 그 돈 지출이 어렵던 때였다.



그때 태휘는 지후의 간곡한 요청을 단칼은 못 돼도 ‘녹슨 면도칼’ 정도로 완곡하게 거절했었다.





=== 주석


註1. 당시 실업률은 8.4퍼센트에 달했다고 한다. 이는 코로나 시대인 2020년 4월 실업률의 2배에 육박한다고 한다.


註2. 강준만 저, “한국 언론사” 155쪽. “기자들은 가난했다. ······ 1969년도 기자협회의 조사에 따르면 중앙종합일간지 본사 기자의 12.1퍼센트(313명), 지방주재기자의 51퍼센트(743명)가 면세점 이하의 급료를 받는 것으로 나타났다.”

같은 책 219쪽. “전국언론노동조합연맹이 1991년 3월에 발표한 ‘자정운동의 횃불을 올리자’는 성명은 <음식물에 독극물을 넣는 행위가 용납될 수 없듯이 국민 모두가 정확하게 알아야 할 정보가 돈거래의 대상이 될 수 없다>고 선언했다.”

안수찬 저, “기자, 그 매력적인 이름을 갖다” 130쪽, “민주화 이후 자정노력에 의해 촌지가 많이 사라졌다. ······ 그러나 어차피 거액도 아니고 기껏해야 술값 정도인데 굳이 내칠 이유가 없다는 식의 기자도 있다. ······ 영세언론사의 구조가 기자들을 ‘촌지수금’으로 몰아넣는다. ······ 좋은 신문과 방송을 적절한 대가를 치르고 읽고 보는 게 ‘뜻 있는 기자’를 돕는 길이라는 (견해도 있다).”


註3. 촌지가 향응으로 번져 문제가 된 사례도 많았다.


註4. 강준만 저, 앞의 책 242쪽, “(1998년) 신문들은 그런 서바이벌 게임을 위해 대량해고와 감봉을 실시했는데, 1998년 5월까지 실직언론인이 4000명을 넘어섰다.”


註5. 강운구 저, 열화당 출판, “강운구 사진론” 32-33쪽. “아이엠에프IMF 이후 우리나라의 신문사와 잡지사들은 살아남기 위해서 제 살을 떼어내었다. 아웃소싱outsourcing이란 이름으로 사진부들이 밖으로 내몰렸다. 계약한 (신문사나 잡지사와) 사진부들은 이익을 남겨서 사진기자들에게 월급을 챙겨주려면 적은 인원으로 많은 일들을 해내야 되게끔 되었다. 따라서 사진 하는 이들의 일자리가(프리랜서들이 일할 지면도) 줄고 월급이 줄어들었다. 말하자면 양이 질을 쫓아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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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 도림의 바다-우리, 결혼 좀 미루면 안 될까? 23.05.29 10 0 10쪽
39 도림의 바다-루비 목걸이 23.05.29 8 0 10쪽
38 도림의 바다-사진, 왜곡하신 이유가 뭐예요? 23.05.28 9 0 11쪽
37 도림의 바다-이 사진, IMF랑 상관 없어! 23.05.28 12 0 11쪽
36 도림의 바다-IMF 플래카드로 인한 스트레스 23.05.27 9 0 10쪽
35 도림의 바다-IMF 경축 플래카드 23.05.27 11 0 10쪽
» 도림의 바다-허지후, 여행을 서울로 되돌리다... 23.05.26 11 0 11쪽
33 도림의 바다-그 바다, 받아들이기 힘든 전생의 설정 23.05.26 8 0 10쪽
32 만남-득남을 축하합니다!! 23.05.25 9 0 11쪽
31 만남-손주를 노리는 할머니 23.05.25 8 0 11쪽
30 만남-꼭 살아남으세요... 23.05.24 6 0 10쪽
29 만남-태휘의 사망 23.05.24 6 0 10쪽
28 만남-이제 그만 경영에서 물러나시는 게... 23.05.23 7 0 11쪽
27 만남-윤정, 유산하다... 23.05.23 7 0 10쪽
26 만남-그 여자 누구야? 23.05.22 7 0 11쪽
25 만남-오빠, 언제 결혼했어? 23.05.22 8 0 11쪽
24 만남-왜 저를 뽑으셨습니까? +2 23.05.21 13 1 11쪽
23 만남-벗어! 23.05.21 9 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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