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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비작가 윤도경의 찻집

신도림역 7번출구

웹소설 > 자유연재 > 추리, 드라마

윤도경
작품등록일 :
2023.05.10 10:25
최근연재일 :
2023.06.18 20:00
연재수 :
80 회
조회수 :
868
추천수 :
21
글자수 :
373,950

작성
23.06.01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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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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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쪽

도림의 바다-진정 운명이란 것이 있단 말인가?

DUMMY

윤정의 때와 마찬가지로 이번에도 정인은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윤정의 때에는 따귀를 맞을까 하여 그랬다면,


이번에는 ‘일’을 잃을까 싶어 그랬다는 것이 다르다면 다른 점이었다.


전날 도림이 입술을 이죽이며 그녀를 돌려보내려던 때처럼.



한 번이면 모르겠지만 같은 일이 연이틀 반복되다 보니


정인은 마음속 우려가 사실이라고 확신하기에 이르렀다.



<정인> “그럼······.”



도림은 고개를 끄덕였다.



<도림> “집에 가도 좋아.”



정인은 도림에게 매달렸다.


어렵사리 잡은 일만은 절대로 빼앗겨서는 안 된다는 절박한 심정이었다.



원하는 대로 분풀이를 해도 좋으니, 집에 가게만 하지 말아 달라고 자존심마저 내려놓고 싹싹 빌었다.


그러면서 따귀를 치겠다면 가만히 서서 뺨을 내밀 것이고


매를 때리겠다고 해도 순순히 맞을 거라고 말했다.



도림은 전날 하드디스크를 바꿔 놓을 때부터


이번 일만은 윤정의 때와 다른 방향으로 끌고 가고자 했었다.


그런데 또다시 이런 모습을 보고 나니 진정 정해진 운명이 있는 것인지 다시금 궁금해지지 않을 수 없었다.


이미 한번 가 본 길인데도 궁금함을 견디지 못하는 것이, 그녀는,


운명의 존부(存否)는 차치하고라도, ‘업’에 대한 강박관념이 어지간히 큰가보다 생각했다.



그래서 또다시 시험을 해 봤다.



<도림> “그럼 여기서 벗을 수 있어?”



정인은 멈칫했다.



<정인> “벗다니요?”


<도림> “말 그대로. 여기서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고 완전 나신으로 벗을 수 있느냐고?”


<정인> “그건 좀······.”


<도림> “거봐. 그러니까 이제 돌아가. 돌아가도 괜찮아.”


<정인> “벗겠습니다. 벗을게요. 벗으면 되잖아요.”



그러면서 정인은 옷을 훌렁훌렁 벗어젖히려 하였다.


여자끼리 목욕탕도 가는데 무슨 대수냐는 생각이었다.


그걸 도림이 간신히 말렸다.



<도림> “이러지 마. 해 본 말인데, 죽자고 덤비면 어떡해?”


<정인> “그럼, 이제 어떻게 할까요?”



도림은 슬슬 화가 치밀어 올랐다.


그러면서 생각했다.


그녀가 해주에게 당한 것도 운명일까 하고.



<도림> “괜찮아. 그냥 가. 내일 다시 와. 컴퓨터는 고치면 돼.”



도림은 겨우겨우 정인을 돌려보냈다.


그리고 침대에 누워 이 일을 생각했다.



<도림> “운명? 그런 게 어디 있어?


그러면 내가 ‘업’을 해결하려고 여기 온 것도 운명이란 얘긴데,


박해주한테 당해서 여기 회귀한 것도 운명이란 얘긴데,


억지도 어지간해야 그럴듯한 거야.”



그러면서도 그녀는 운명을 믿는 쪽으로 마음이 계속 기울었다.


다만 부인하고 싶었을 뿐.



도림이 누운 침실에서 큰 웃음소리가 거실로 새어 나왔다.






- 13 -




그 주 일요일, 정인은 태휘에게 같이 저녁이나 먹자고 제의했다.


그녀가 태휘에게 식사를 제의하기는 흔치 않은 일이었다.


정인으로서는 이번에 그가 어떻게 나오는지 보고자 했다.


이미 결혼을 했으면서도 그 사실을 속여가면서까지 자신을 만나는 이유는 무엇이며,


언제까지 속일 것인지, 그리고 그가 정녕 자신이 이 사실을 모른다고 믿는 것인지,


이 모든 것들을 확인해 보고 싶었다.



태휘는 정인의 제의에 흔쾌히 응했다.


응할 뿐만 아니라 저녁을 먹기 전에 만나 영화라도 보지 않겠느냐는 둥 철저히 연인의 모습으로 행세를 했다.


물론 정인이 이를 거절하기는 하였지만,


그의 뻔뻔한 모습에 몸이 부들부들 떨리고


지금까지의 호감이 모두 사라지고 모든 행동거지 하나하나가 괘씸하기까지 했다.



영화를 못 본 것이 아쉬웠는지, 그는 제법 근사한 곳으로 저녁 식사 자리를 마련했다.



<정인> “오빠는 언제 결혼할 거야?”



정인은 아무것도 모르는 척 시치미를 떼고 물었다.



<태휘> “뜬금없기는.”



태휘는 속으로 뜨끔했다.


하여 정인의 물음을 의미 없는 것으로 취급하고 대답을 하지 않았다.


그냥 넘어가 주기를 바라면서.



<정인> “왜? 말해 봐. 얼른. 응?”


<태휘> “오빤 결혼 안 해. 구속되는 게 싫거든.”



그는 그의 결혼에 대해서는 정인이 모른다고 생각하면서도,


그녀가 이 대화를 그만 멈춰 주었으면 했다.


웬만한 강심장이 아니면 계속 추궁하는 같은 질문에 같은 거짓말로 대답하기가 쉽지 않은 줄을 잘 알고 있었다.



<정인> ‘결혼한 지 8개월이나 지났는데 뭐? 결혼을 안 해? 요것 봐라. 아직도 내가 물로 보이지?’



정인은 태휘가 준 루비 목걸이와 에메랄드 귀걸이를 생각했다.


도대체 왜 해준 것일까.


사정이 이렇게 된 이상 그 보석들에서도 기분 나쁜 냄새가 나는 것 같았다.



<정인> ‘이 남자 정말 음흉하네.’



그녀는 그 보석들에도 태휘의 뭔가 알 수 없는 목적이 개입돼 있지 않을까 의심하였다.



<정인> “난 빨리 결혼하고 싶은데.


마침 날 따라다니는 남자가 있어.


나는 모르는 척 하고 있지만 이제 곧 반지로 프로포즈할 것 같아서 부담도 되고.”



정인은 태휘를 떠봤다.



<태휘> “넌 결혼하면 바깥 생활은 안 할 거야?”


<정인> “글쎄. 그걸 지금 어떻게 말해. 가 봐야 아는 거지.”


<태휘> “그 사람이 누군데?”



태휘로서는 지금 당장은 정인과 떨어질 수 없었다.



지후가 그의 ‘목’을 노리고 있는 이상 정인이 ‘보호대’ 노릇을 해주어야 했다.


그러니 결혼을 하겠다는 그 사람의 정체에 신경이 쓰이지 않을 수 없었다.



<정인> “있어.”


<태휘> “말해 봐. 오빠가 봐줄게. 우리 정인이를 행복하게 해줄 놈인지 맨날 눈물 빼게 할 놈인지.”


<정인> “어떤 식으로 봐 줄 건데?”


<태휘> “그런 게 어디 있어. 허를 찔려야 본모습이 나오는 거지.”



정인은 “왜 결혼했으면서도 안 한 척 하느냐”고 묻고 싶었다.


그의 말대로 허를 찔러 그의 본모습을 보고 싶은 욕망이 순간 강하게 인 것이었다.



<정인> ‘참자. 이 자리는 <좋은> 자리니까.’



그녀는 ‘곤란한’ 자리를 만들지 않기 위해 욕망을 꾹 내리눌렀다.



<정인> “내 허를 찔러 봐. 내가 그 사람이다 생각하고.”


<태휘> “그런 게 어딨어? 널 쫓아다닌다는 그 사람도 전혀 모르는데, 널 보고 그 사람이 연상이나 되겠어?”


<정인> “오히려 잘 됐지. 오빠가 그 사람을 알았다면 어떻게 허를 찌르겠어? 그러니까 한번 해 봐.”



태휘는 조용히 고개를 들어 정인을 응시했다.



<정인> ‘오빠는 그 사람 잘 알고 있어. 그러니까 그런 걱정일랑은 붙들어 매 둬.’



정인도 조용히 그를 응시했다.



<태휘> “우리 정인이랑 결혼하실 겁니까?”


<정인> “네.”


<태휘> “정인이를 사랑하시나요?”


<정인> “네.”


<태휘> “정인이는 언제부터, 어떻게 알게 됐나요?”


<정인> “몇 년 됐습니다. 사업차 몇 번 만났는데, 알 수 없는 매력이 있어서 점점 빠져들게 되더군요.”


<태휘> “사업이라면······. 그러면 L 식품을 말하는 건가요?”


<정인> “네. 그때부터 전 정인이를 좋아했습니다.”


<태휘> “그러시군요. 근데 그땐 뭘 하시다가 이제야 정인이에게 접근을, 아, 죄송합니다. 프로포즈를 하시겠다는 거죠?”


<정인> “그때는 제게 다른 여자가 있었습니다. 결혼을 약속했던 여자였죠.”


<태휘> “근데 이제 와서 우리 정인이에게 프로포즈를 하시겠다는 이유는 뭔가요?”


<정인> “그 여자, 아니 사랑했던 여자가 딴 남자랑 결혼했거든요. 그래서 정인이를 사랑하기로 했습니다.”


<태휘> “사랑하겠다가 아니라 사랑하기로 했다······. 그럼 마음은 그 여자에게 있겠군요? 말하자면 꿩 대신 닭? 우리 정인이는 당신의 몸만 가지는 거고?”


<정인> “세상엔 닭도 못 되는 비둘기들도 쌔고 쌨습니다. 닭이라도 내 몸을 가진다면 감지덕지죠.”


<태휘> “무슨 말이 그런가요? 사랑하는 여자로 결혼까지 생각한다면 꿩이 아니라 공작으로 받들어야 하는 것 아닌가요?”


<정인> “물론입니다. 하지만 닭이 어딥니까? 저는 참새도 못 되는데요?”


<태휘> “그건 또 무슨 소리죠?”


<정인> “전, ······ 제가 사랑했던 여자의 몸과 마음을 다 뺏겼습니다. 그러니 참새, 아니 참새도 못 되는 신세라는 거예요.”


<태휘> “지금 당신 사정이 중요한 게 아니잖아. 당신이 몸과 마음을 다 뺏겼다고 우리 정인이까지 그래야 한다는 법이라도 있나요?”


<정인> “물론, ······ 없죠. 하지만 갚고 싶네요. 보란 듯이.”


<태휘> “당신 복수심에 우리 정인이가 놀아나야 할 이유라도 있나요?”


<정인> “그만해 오빠.”


<태휘> “정인아, 그놈 이렇게 이상한 놈이야?”


<정인> “내가 너무 이상한 쪽으로 끌고 갔나 봐. 이상한 사람은 아니야. 너무 걱정하지는 마.”


<태휘> “들어보니까 사랑보다는 복수심으로 똘똘 뭉친 사람 같은데. 그런 사람이 너랑 결혼하겠다는데, 그리고 너는 곧 넘어갈 것 같은데 어떻게 걱정을 안 해?”



정인은 태휘를 가증스럽다는 눈으로 슬쩍 쳐다보고는 곧바로 고개를 돌려 시선을 피했다.



<정인> ‘오빠가 그런 사람이구나? 사랑은 허울뿐이고. 날 속이기 위해서라면 루비나 에메랄드쯤은 눈 하나 깜빡하지 않고 선심 쓰듯 사줄 수 있는.’



그녀는 그럴 것이다 넘겨짚고는 있었지만, 갑자기 마음을 베인 것처럼 쓰라림이 밀려왔다.


그것을 견디기 어려워 그만 고개를 바닥으로 떨구고 말았다.



<정인> “넘어간다 말하지 마. 나도 내 생각으로 사랑하고 내 의지로 결혼할 수 있는 사람이야.”



쓰린 가슴이 진정될 즈음 그녀는 간신히 말했다.



<태휘> “그래, 정인아. 미안하다.”


<정인> “오빠. 오빠는 내가 결혼하자 하면 어떡할 거야?”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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