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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비작가 윤도경의 찻집

신도림역 7번출구

웹소설 > 자유연재 > 추리, 드라마

윤도경
작품등록일 :
2023.05.10 10:25
최근연재일 :
2023.06.18 20:00
연재수 :
80 회
조회수 :
802
추천수 :
21
글자수 :
373,950

작성
23.05.10 12:00
조회
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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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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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쪽

동백꽃-첫 만남

DUMMY

1. 동백꽃





- 1 -




무대, 곧 축제를 펼치기로 되어있는 강당은 닭의 분장을 하고 쓰러진 학생과 바위 그림,


그리고 한창 흐드러지게 핀 동백꽃(생강나무 꽃)들로 장치가 되어있었다.


그 위에서 소설 ‘동백꽃’을 각색하여 발표하기로 정한 유정과 도림의 무대연습이 한창이었다.










······


(‘나’, 수탉을 때려 엎는다. 죽은 닭을 보며 멍하니 서 있는다.


점순, 눈을 홉뜨고 닥친다. ‘나’, 뒤로 나자빠진다.)


*점순: 이놈아! 너 왜 남의 닭을 때려죽이니?


*나 : 그럼 어때?(일어서려고 땅을 짚는다.)


*점순: 뭐 이 자식아! 누 집 닭인데?


(‘나’의 복장을 떠민다. ‘나’, 다시 넘어진다.)


*나: (독백) 이 일을 어째.


분하고 무안스러운 건 둘째치고, 일을 저질렀으니 땅이 떨어지고 집도 내쫓기면


이젠 어떻게 살아야 하나.


(비슬비슬 일어나며 소맷자락으로 눈을 가린다.) 어엉······.


*점순: (‘나’에게 다가가) 그럼 너 이담부텀 안 그럴 테냐?


*나: (독백) 이젠 살았다. (눈물을 씻는다. 점순에게) 그래.


*점순: 요담부터 또 그래 봐라, 내 자꾸 못살게 굴 테니.


*나: 그래, 그래. 이젠 안 그럴 테야!


*점순: 닭 죽은 건 염려 마라, 내 안 이를 테니.


(‘나’의 어깨를 짚은 채 그대로 쓰러진다.)


*나: (점순이와 몸뚱이가 겹쳐서 쓰러지며, 동백꽃 속에 파묻힌다. 독백)


알싸하다. 그리고 향긋하다. 정신이 온통 아찔하다.


*점순: 너 말 마라!


*나: 그래!


······









유정과 도림, 그리고 도림의 친구인 두 팀원은 ‘동백꽃’ 공연의 마지막 부분 연습을 마쳤다.


지금까지는 부분 부분 떼어서 연습을 진행해 왔는데,


이날 비로소 처음부터 끝까지 맞춰 본 것이라,


비록 연습이라도 공연을 마친 감회는 남달랐다.



<유정> “자, 오늘 처음으로 끝까지 진행해 봤는데, 아직은 좀 미숙하고 실수도 있었지만


조금만 더 연습하면 괜찮은 공연이 될 것 같아.”



공연에서 ‘나’의 역을 맡은 유정이 말했다.



<도림> “이렇게 처음부터 끝까지 맞춰보니까


확실히 우리 넷이 하기는 사이즈가 큰 것 같기도 해요.


닭 분장 하고 한창 닭싸움하다가 숨 돌릴 새도 없이


엄마 - ‘동백꽃’에서 마지막에 점순이 어디 갔느냐고 찾는 - 가 되려니, 자칫 잘못하다간


미숙한 티가 관객들한테 고스란히 노출되지 않을까 걱정도 되고요.”



점순의 역을 맡은 도림의 말이었다.



<유정> “엄마는 그럼 목소리로만 할까?”


<팀원> “다른 애들 보면 무대에서 조명 그럴듯하게 켜 놓고 춤추잖아요.


하는 사람도 신나겠지만, 무엇보다도 보는 사람이 들썩들썩하니······.”



‘닭’과 ‘엄마’의 역을 맡은 도림의 친구가 아쉬운 듯 내뱉었다.


상(賞)이 아쉬운 듯한 말투였다.



<유정> “그렇겠지. 모르는 건 아니야.


하지만 우리는 겨우 넷이잖아.


넷이서 그 큰 무대를 춤으로 채우기는 힘들 것 같은데? 그렇지 않을까?


그리고 기왕 여기까지 왔는데 이제 와 그만둘 수도 없잖아.


그런 생각 하지 말고 조금만 더 열심히 연습해 보자.


그러면 조금은 더 매끄러운 공연이 될 거야.”



<도림> “당연히 그래야죠. 그냥 힘든 푸념 정도로 이해해 주세요.


선배 아니면 누구한테 말이나 하겠어요?”



도림의 말이었다.






* * *






유정과 도림은 E 고등학교 선후배로, 각각 2학년과 1학년에 재학 중이었다.



당연히 학년이 다르니 만날 일이 많을 까닭이 없었으나,


쉬는 시간이나 점심시간같이 수업이 없는 시간마다


등나무 벤치에서 홀로 시크하게 앉아 있는 유정의 모습을 보고 도림은 관심을 가졌었다.



그녀가 그리한 것은 키가 훤칠해서도 아니요, 얼굴이 잘생겨서도 아니며,


앉은 뒤태가 멋스러워서도 아니었다.


무슨 사연이 있는지는 알 수 없었으나,


그 자리를 혼자 차지하고 앉아 있다는 이유로 마음이 이끌렸었다.



한번은 도림은 발소리를 죽여가며 유정의 곁에 다가가 그를 불렀다.



<도림> “선배님.”



유정은 적이 놀라 뒤돌아보았다.



<유정> “멈춰. 다가오지 마.”



그러고는 일어서서 빠른 걸음으로 그 자리를 벗어나려 하였다.



<도림> “잠깐만요. 제가 무슨 일로 선배님을 부르는 줄 알고 그렇게 말씀하시는 거예요?”


<유정> “‘선배’라 불렀으니 날 꽤 오랜 시간 관찰했던 모양이지? 왜지? 난 널 처음 보는데?”


<도림> “절 처음 보신다구요? 그런데 왜 반말이시죠?


선배님 말씀하신 대로 선배님에 대한 주위의 뜬소문만큼은 알아요.


그런데 그게 그대로 진실은 아닐 거라 생각했어요.


이런 말, ······ 어떻게 들으실지 모르겠지만, 안쓰럽기도 했고요.”



도림은 경계심을 풀라고 말하고 있었다.



<유정> “그랬다면 웬만큼은 알겠네. 네가 알고 있는 것 그대로 다 사실이고 진실이야.


그러니 나한테 다가오지 마. 다쳐.”






그것이 두 사람의 첫 만남이었다.


그때 도림은 유정의 마음문에 채워진 빗장이 생각보다 깊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쓸데없이 넘겨짚어서 터무니없이 ‘오해’만 깊어진 것은 아닌가도 생각했다.


그러다 그녀는 이렇게 적은 쪽지를 그에게 건넸다.






- 젓가락 한 짝으로 무엇을 할 수 있나요? ‘하나’여서 걸린 빗장이라면 ‘둘’이 되어 풀 수도 있는 거잖아요?






이를 계기로 유정의 경계심은 도림에게 서서히 풀리기 시작했다.


여전히 ‘둘’이라 하기엔 서먹서먹하였지만,


적어도 등나무 벤치에 ‘함께’ 앉아 있을 정도는 된 것이었다.





이번 2018 E 고등학교 가을축제에서 두 사람은, 도림의 친구 두 명을 합하여 팀을 이루어


김유정 작가의 소설 ‘동백꽃’을 각색한 공연을 선보이기로 했다.


보통의 먹고 마시자 축제와는 달리 이번 축제는 초등학교의 학예회와 같이


학생들이 모두 참여하여 장기를 뽐내는 형식으로 진행하기로 되어있었다.



기실 처음 축제 행사를 같이 하기로 정했을 때에는 노래, 춤 등


여러 가지 퍼포먼스를 염두에 두고 컨텐츠를 고민했는데,


넷이서 하기에 마땅한 것이 딱히 없었다.






<도림> “선배, 그럼 연극 공연은 어때요?”


<유정> “연극?”


<도림> “네. 굳이 희곡이 아니라 우리나라 단편소설 정도 사이즈면 넷이서 공연하기에도 적당할 거예요.”


<유정> “생각해 둔 작품이라도 있어?”


<도림> “‘동백꽃’ 어때요?”


<유정> “김유정 작가님의 ‘동백꽃’ 말이야?”


<도림> “선배도 아시겠지만, ‘동백꽃’은 등장인물도 ‘나’랑 점순이 둘밖에 없고······.


아차, 동네 어르신하고 점순이 엄마도 있죠.


그 왜, 점순이한테 시집 언제 갈 거냐고 묻는 할아버지 말이에요.


그건 우리 팀이 네 명이니까 오히려 잘 된 거라고 봐야죠.


더군다나 ‘동백꽃’은 10분이면 다 읽는 분량이라구요.”






이렇게 해서 ‘동백꽃’을 공연하기로 결정한 것이었다.



하지만 도림의 속내는 따로 있었다.


‘동백꽃’을 공연한다면 ‘나’는 당연히 남자인 유정이 맡을 것이고,


그 상대역인 점순의 역을 도림 자신이 맡아, ‘동백꽃’의 언어로 말하자면


한창 피어 퍼드러진 노란 동백꽃 속으로 폭 파묻혀 보고 싶은 수작이었다.



그렇게 해서라도 ‘동백꽃’ 속 ‘나’처럼 무딘 그의 감성을 깨워보고 싶었다.



그러나 실상은 그에게 마음이 갔던 것은 어떤 동병상련 같은 것을 느꼈기 때문이라고 해야 옳았다.


비록 그녀가 인지하지는 못했을지라도.






- 2 -




그날 공연 연습을 마치고 도림은 교문에 기대어 서서 하교하는 선배, 친구들을 지켜보고 있었다.



서넛씩 모여서 뭔가를 ‘작당’하려는 듯한 이들도 있었고 ‘해방’이 즐거워 보이는 이들도 있었다.


대개는 목적지가 동일한, 아니 비슷한 친구들이


손을 주머니에 푹 찔러넣고 고개를 푹 숙이고 교문을 빠져나가는 것 같이 보였다.



겨울이었다면 입에서부터 늘어진 길고 긴 한숨이


운동장 한가운데에서부터 따라붙는 모습이 적잖이 우스웠을 듯 싶었다.



도림은 웃었다.


그 한숨의 소리가 들리는 듯 했기 때문이었다.


“주인님, 나 좀 데리고 가소!”



거꾸로 교문을 빠져나가는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시커먼 철문을 붙들고 밖으로 나가지도 않고 그렇다고 완전히 안에 있는 것도 아니면서


교실 게를 할끔할끔 쳐다보는 모습을 의아하게 여겼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도림> ‘하긴, 쟤들도 내가 우스울 수 있겠네. 우습다기보단 이상하다고 생각하려나?’



과거에야 지각생, 복장불량, 개구멍 통과하다 걸린 학생들이 엎드려뻗쳐나 토끼뜀뛰기,


오리걸음 따위로 벌을 받거나 - 이걸 ‘기합’이라고 했다 -


‘야구빠따’ - 이건 ‘야구빠따’라고 해야 맞다. ‘몽둥이’나 ‘야구배트’라고 하면 어감이 살지 않는다 - 로 엉덩이를 찜질하던 친구들의 집결소,


또는 화장 짙게 한 친구들 ‘핀셋’으로 골라내던 장소로서 교문은 그런 애환이 서린 장소라 하겠지만,


지금은 그냥 지나치는 장소, 굳이 의미를 찾자면 학교 외부와 내부를 가르는,


그래서 청하지 않은 손님들이 들어올 수 없도록 하는 가림막(철창)의 의미가 있을 뿐이었다.



도림은 그녀에게 쏟아지는, 대답을 구하는지 아닌지 알 수 없는 눈길들에 대고


오른손 중지와 엄지를 동그랗게 말아 원을 그렸던 손가락을 튕기며 머쓱하게 웃어 보였다.



그러는 사이 저 멀리서 시커먼 실루엣이 눈에 들어왔다.


영락없는 유정의 모습이었다.



<도림> “오빠!”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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