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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키드 님의 서재입니다.

각성자 수난시대

웹소설 > 작가연재 > 현대판타지, 퓨전

완결

라이키드
작품등록일 :
2020.10.14 17:41
최근연재일 :
2021.01.09 06:00
연재수 :
92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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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491
추천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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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491,358

작성
20.12.08 0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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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059. 이별

DUMMY

가면의 남자가 아무런 망설임 없이 찔러넣은 칼이 케롤라인의 가슴을 그대로 꿰뚫었다. 크나큰 충격이 엄습함과 동시에 겨우 잠에서 깨어난 케롤라인은 일그러진 표정을 지으며 눈을 크게 떴으나 몸이 구속되어 있는 탓에 버둥거릴 수도 없었고, 큰 고통 탓에 소리를 지를수도 없었다.


“움직이시면 안됩니다. 그럴수록 상처가 더 깊어질 뿐이죠.”


“이런 개자식이!”


내 몸이 나에게 움직이지 말라고 하는 고통이라는 신호를 무시한 채 난 가면의 남자에게 다시 달려들었다.


“어이쿠. 위험하군요.”


남자는 나를 멈춰세우거나 알 수 없는 힘으로 붙잡아세우지 않았다. 그저 뒷걸음질 치면서 내가 휘두른 철퇴를 피했을 뿐이었다.


“그러면 전 잠시 자리를 피해드리죠.”


내 공격을 아주 여유롭게 피한 기괴한 가면의 남자는 자신의 몸을 공중으로 띄워, 광장 밖으로 벗어났다. 쫓을까도 생각해봤지만 지금은 그럴 시간이 없었다.


“케롤라인. 괜찮아요?”


케롤라인이 묶여있는 판자에서 급하게 그녀의 손발을 묶은 줄을 푼 뒤에 양손으로 등과 머리를 받치면서 땅에 눕혔다. 가슴 부근에서는 계속 피가 흘러나왔고 입가에서도 피가 줄줄 흐르고 있었다.


당황하면서 상처부위의 칼을 뽑아들려고 했지만 난 곧바로 스스로의 손을 쳐냈다. 이미 칼에 찔린 상태에서 아무런 조취도 취하지 않고 칼을 빼내봤자 피가 훨씬 많이 흘러나오고 상처부위가 더욱 벌어질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던 기억이 났기 때문이었다.


“전...괜찮아요.”


“안 괜찮아보이는데 무슨 말이에요. 병원에 갈때까지 버틸 수 있겠어요?”


내 입으로 말하고 있지만 말도 안되는 이야기라는 것은 잘 알았다. 당장이라도 죽을 것 같은 안색의 환자를 들처업고서 무리하게 데려가봤자 흔들리는 충격속에서 괴로워하지나 않은 다행이리라. 괜히 그녀를 더 힘들게 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러게 왜 그랬어요. 같이 행동하지 않았으면 좋았다고 했을 때 진작 거리를 뒀으면 최소한 이렇게 될 일은 없었잖아요.”


하고 싶은 말은 이런게 아니었는데 막상 상황이 이렇게 되고 보니 괜히 엄한 말들만 튀어나왔다. 나 때문에 이렇게 된 것에 대해 미친놈 마냥 끊임없이 사과를 해도 모자랄 기분인데 막상 입 밖으로 내려고 보면 그 말들이 문장이 되어서 나오지를 못했다.


“그러게요..상부 명령까지 어겨가면서 이 사람들을 따라다니면 분명 도움이 될거라고 호언장담을 했었는데..이렇게 될 줄은 몰랐네요.”


“그만말해요. 입에서 계속 피 나오잖아요.”


가만히 있어도 힘들어보이는 와중에 내 말에 대답을 하기 위해 계속 안간힘을 쓰는 모습이 너무 안쓰러워보였다, 이제는 말을 하지 않고 편하게 쉬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근데요 재현씨..제가 왜 계속 재현씨를 따라다닌 것 같아요?”


“나도 모르죠. 그렇게 능력 좋은 러시아 정보국 요원이란 사람이 딱 봐도 힘들어보이는거 뻔히 아는 우리 같은 사람들을 따라와서 이게 뭐예요.”


지금에 와서도 왜 케롤라인이 우리를 따라오는 것을 고집한건지는 모르겠다. 상부에서 내린 지시도 오히려 어겼다고 하고, 우리를 따라다녀서 그녀가 얻을 수 있는 것이 과연 뭐였을까?


“재현씨에게서 구해지고 난 뒤에...인연이 닿아서 재현씨랑 아이들이 있는 숙소에 갔었잖아요. 전 그때 너무 따스함을 느꼈어요.”


“따스함이요?”


이건 도대체 무슨 소리일까. 조금 더 자세히 이야기를 듣지 않고서는 그녀가 말하려는 의도를 파악할 수 없을 듯 했다.


“정보국 같은 국가기관에서 일하면...어떨거 같으세요?”


“음...”


엄밀히 따지면 각성자 전담 처리본부도 국가기관이긴 한데...나같은 경우랑 비교하는 것은 이상할 것이다.


나는 오로지 각성자라는 이유로 스카우트를 당한 것과 비교하여. 케롤라인은 분명 저 자리에 오르기까지 끊임없는 노력들을 해왔을 것이다. 실력적인 면은 두말할 필요도 없고 대통령 직속으로 일을 하기 위해선 문무를 겸비하느라 갖은 고생을 해왔을 것이다. 군대를 제대하고 목표하나 제대로 찾지 못한 채 알바나 하고 있던 나하고 비교하기엔 나 자신이 너무나도 초라해졌다.


“너무 복잡하게 생각하지 말고 그냥 직장생활에 대해서만...간단하게 생각해보세요.”


“알겠으니까 그만 좀 말해요. 진짜 위험하다구요.”


어떻게 응급처치를 할 수 있을만한 수단이 있으면 좋으련만, 주변에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고 내가 알고 있는 지식같은 것도 전무했다.


아무것도 못하고 무기력하다는 것이 이런 기분이라는 걸 아주 오래간만에 체감하고 있는 느낌이었다.


‘그래. 맹화, 맹연이라면 뭔가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 두 사람에게로 가야겠다 생각을 하며 내가 몸을 일으키려는 순간이었다.


케롤라인이 내 손목을 잡으며 고개를 내저었다.


“가지 말고 그냥 내 이야기를 들어줘요. 그게...내 마지막 부탁이에요.”


마지막 부탁이라는 말이 나에게는 너무나도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아직 마음속으로는 케롤라인을 무조건 살릴 수 있다고 스스로를 속이고 있었는데, 그런 자기 암시가 한번에 무너져 내린 것 같았다.


“알았어요. 이야기 해봐요.”


지금이라도 케롤라인이 아무렇지 않다는 듯 천연덕스러운 표정으로 나에게 장난을 칠 것만 같지만, 나에게 머리가 받쳐져있는 케롤라인은 언제 눈을 감아도 이상하지 않을 상태였다. 그 정도로 위급한 상태의 그녀가 약간이나마 살 희망을 완전히 버리고서 나에게 할 이야기가 무엇인지 도무지 예상이 가지 않았다.


“재현씨에게 처음 구해졌을 때는...조금 여러 가지 기분이 들었어요. 정보국 요원이 저런 범죄조직에 붙잡혔다는 것에 대한 부끄러움도 느꼈고, 잡혀있을 동안 잊고 있었던 공포심이라는 감정도 다시 알았어요. 그런데 가장 크게 느낀 감정은 다른 것이 아니고 바로 어색함이었어요.”


“어색함?”


“인질들을 구출하고 테러리스트들을 사전에 제압하거나, 신분을 숨기고 첩보일을 자주 하는등 사선을 걸어왔던 제가 직접 인질이 되고 다른 사람에게 구해진다는 경험이 상황 훈련을 빼면 처음 있는 일이었으니까요. 재현씨를 곧바로 따라갔던 이유도 그런 것 때문이에요. 그대로 일을 하지 않으면 뭔가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끊임없이 의문을 가져야 했으니까요.”


어색함이라. 무슨 느낌으로 말한건지는 알 것 같다. 이제까지 자신이 해왔던 모든 것이 일련의 한 사건으로 부정당하는 느낌. 내가 직접 겪어본 적은 없지만 영화같은 매체에서 간접적으로 체험한 적은 있으니까. 물론 납치를 당한 사건이 자신의 정체성을 의심하는 사건이 되는지에 대해서는 의구심이 들긴 했지만, 따로 지적하지는 않기로 했다.


“저희 집안은 조상 대대로 내려오는 개국 공신의 집안이었는데, 그 탓에 무조건 국가의 요직을 담당하거나 국가 기관에서 일하는 것이 거의 암묵적인 관행이었어요. 그래서 저도 그렇게 살 수 있도록 계속 교육을 받아왔고, 그게 제 삶에서 당연한거라고 여겨왔어요. 그런데 그 날 재현씨에게 구해진 그날 처음으로 생각하게 된 거에요. 과연 러시아 정보국의 요원으로 사는게 정말 내가 원하던 삶일까. 그리고 결론을 냈어요, 아니라는걸. 제가 원하던 삶은 정보국 요원의 삶이 아니었단걸 알았죠. 그래서 원래는 그만두려고 했는데, 정보국에서 잠시 휴가겸 여유 기간을 줄테니까 조금 생각하는 시간을 가져보라고 한거죠.”


“그래서 우리들을 따라온건가요?”


“때마침 알게 된 소중한 인연이기도 하고, 뭔가 재밌어보였어요. 가상의 신분이긴 했지만 탐정이라는 신분의 케롤라인의 삶을 사는게 꽤 마음에 들었거든요.”


“그런 사정이 있는 줄은 몰랐어요. 그냥 우리를 놀리는 거라고만 생각했지.”


“별로 재현씨나 애들을 탓하는 건 아니에요. 오히려 별로 싫은 티 내지 않고 저를 항상 잘 받아준 것에 대해서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었어요. 쿨럭쿨럭!”


케롤라인은 입에서 다시 연신 피를 토해내기 시작했다. 숨도 아까보다 훨씬 가파지기 시작했고 상태가 훨씬 악화되고 있다는게 느껴졌다.


“케롤라인...”


“그리고 있잖아요. 혹시 내가 아주 조금은 재현씨한테 호감이 있었다고 하면...안 믿으실 건가요?”


“이제 와서 그런게 무슨 소용이에요.”


난 이야기를 듣지 않으려고 했다. 그래서 슬며시 귀를 막으며 그대로 자리를 벗어날 생각이었다.


“끝까지 들어줘요...마지막에 정말 이러기에요?”


내 옷깃을 잡은 그녀의 손은 매우 떨렸고 손에 들어간 힘도 내가 살짝만 떨치려고 해도 금방 떨어질 것 같이 미약했다. 너무나도 가련한 그 모습이 내 심정을 더욱 암울하게 만들었다.


“딱히 연애감정을 느꼈다는건 아니에요...그러기엔 우리 둘다 만난 시간이 너무 적고 그렇게 좋은 만남도 아니었다고 생각하니까요. 그래도, 저를 구해준 남자인데다가 이제껏 제 인생에서 가장 즐거울만한 순간들을 함께 했던 사람에게 약간의 호감을 가진다는게....그렇게 이상한건가요?”


“.....”


난 케롤라인의 말에 대답하지 못했다. 이제껏 연애 감정과는 전혀 거리가 먼 삶을 살아온 나에게는 상당히 고난이도의 질문이었던 탓이다. 그래도 어떤 답을 내리면 좋을지 충분히 고심하고 있는 상태였다.


“대답해달라는 말은 안할게요. 어차피 난 곧 있으면 가야 할 사람이니까요. 대신, 마지막으로 재현씨가 저에 대해서 하는 생각을....말해줬으면 해요.”


수많은 단어들이 머릿속에 열거되었다. 예쁨,이상함,귀찮음,당당함. 그 여러 가지 단어들이 복합적으로 연상되면서 최종적으로 든 결론은 이거였다.


“즐거웠습니다.”


즐겁다. 그 한 줄로 설명이 가능했다. 이 외국에 와서 나보다 어린 나이대의 애들을 팀원으로 데리고 계속 작전을 수행해야 한다는게 나름 좋게좋게 생각하자고 해도 잘되지 않을때가 많았다. 러시아에서의 일을 다 끝내고도 내가 계속 이 일을 해야하는가에 대해서 불안감을 가진 경우가 종종 있었다.


그래서 미국에서 케롤라인을 다시 봤을때는, 왜 이곳에 있는가 싶으면서도 내심 반가웠다. 뭔가 그녀와 대화하고 같이 행동하면 페이스에 휘말리기는 해도 즐겁다고 느꼈다. 애들을 대하는 것도 나 이상으로 능숙했고, 나에게 도움을 주면서 계속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려는 노력도 지속적으로 보여줬다 보니 싫은 인상도 없었다. 오히려 드러내지는 않았지만 나도 케롤라인에게 인간적인 호감과 여성으로서의 호감도 약간씩 가지고 있었다고 생각한다.


“그래요...? 그러면 다행..이...네요”


“이봐요. 케롤라인씨. 케롤라인!”


힘겹게 말을 이어나가고 있던 케롤라인의 말이 완전히 멈췄다. 눈도 완전히 감긴채였고, 미약하게 색색소리가 나던 숨소리도 더 이상 나지 않았다.


난 케롤라인의 몸을 흔들었다. 처음에는 가볍게 흔들다가 반응이 없자 조금씩 강도를 높여서, 마지막에 이르러서는 완전히 멱살을 잡고 흔든다는 느낌으로 계속 흔들어보았지만 그녀의 의식은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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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 062. 기적의 치유사(2) +1 20.12.11 183 2 12쪽
63 061. 기적의 치유사 +1 20.12.10 188 2 12쪽
62 060. 주체할 수 없는 분노 +1 20.12.09 184 1 12쪽
» 059. 이별 +1 20.12.08 178 3 11쪽
60 058. 광기의 놀이공원(5) +1 20.12.07 181 3 12쪽
59 057. 광기의 놀이공원(4) +1 20.12.06 185 3 12쪽
58 056. 광기의 놀이공원(3) +1 20.12.05 190 3 12쪽
57 055. 광기의 놀이공원(2) +1 20.12.04 186 2 11쪽
56 054. 광기의 놀이공원 +1 20.12.03 198 3 11쪽
55 053. 과거를 보는 남자 +1 20.12.02 207 2 11쪽
54 052. 다시 만난 그 녀석 +1 20.12.01 214 3 11쪽
53 051. 대장(2) +1 20.11.30 219 3 11쪽
52 050. 대장 +1 20.11.29 228 3 11쪽
51 049. 전화위복(轉禍爲福) +1 20.11.28 257 4 11쪽
50 048. 다가오는 그들 +1 20.11.27 243 5 11쪽
49 047. 위기일발 +1 20.11.26 261 5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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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 044. 다음 행선지는 어디? +2 20.11.23 315 5 12쪽
45 043. 조사결과 +2 20.11.22 330 5 13쪽
44 042. 러시아 해외정보국 +1 20.11.21 342 5 12쪽
43 특별 작전 참모(캐릭터 외전) +1 20.11.20 339 5 10쪽
42 041. 케롤라인 +1 20.11.19 358 5 12쪽
41 040. 탈출 +1 20.11.18 367 6 11쪽
40 039. 한계돌파 +1 20.11.17 394 4 13쪽
39 038. 타임어택 +1 20.11.16 355 5 11쪽
38 037. 천의 얼굴(5) +1 20.11.15 376 6 11쪽
37 036. 천의 얼굴(4) +1 20.11.14 375 7 11쪽
36 035. 천의 얼굴(3) +1 20.11.13 380 6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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