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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키드 님의 서재입니다.

각성자 수난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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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라이키드
작품등록일 :
2020.10.14 17:41
최근연재일 :
2021.01.09 06:00
연재수 :
92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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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4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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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491,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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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30 0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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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051. 대장(2)

DUMMY

“나름대로 사격 실력은 괜찮군. 따로 훈련을 받았나?”


백발의 남자는 어느새 케롤라인의 바로 앞에 다다랐다. 케롤라인은 그를 제압하기 위해서 곧바로 몸을 낮게 숙이며 그의 발목을 거세게 차려 했지만 남자는 우습다는 듯이 공중제비를 돌며 뒤로 회피했고, 다시 케롤라인에게 붙어 목덜미를 잡아챘다.


“반응속도도 괜찮아. 일반인은 아닌거 같은데.”


케롤라인에게 그리 좋은 인상은 없지만 이대로 당하는 걸 두고보고 있을 수는 없었다. 제자리의 땅을 박차며 난 순간적으로 폭발적인 가속도를 내며 남자에게 달려나갔고, 주먹을 앞으로 내리꽃았다.


‘들어갔다.’


주먹끝으로 느껴지는 묵직한 감각. 이것은 막히거나 피해진 것이 아닌 정확히 얼굴을 가격했을 때의 감각이었다. 그러나 뭔가 이상했다. 이 정도의 가속도가 더해진 주먹을 맞으면 상대방이 뒤로 넘어가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그런데 주먹에는 아직까지 상대방의 살이 닿는 느낌이 느껴지고 있었다. 이 남자는 가속도가 엄청 붙은 내 주먹을 맞고도 제자리에서 버텨낸 것이다.


“그런데로 조금 위력이 있군. 속도로만 밀어붙이는게 아니라 때리는 법을 조금 더 제대로 알았다면 주먹이 더 강했겠군.”


어디서 담담하게 남의 주먹을 평가하는거야? 참을 수가 없어진 나는 어떻게든 녀석을 쓰러뜨리겠다는 마인드로 때리고 또 때렸다. 녀석은 피하지 않았다. 몸이나 팔 같은 곳이 아니라 얼굴이라서 근육이 발달한 것도 아닐텐데 아무런 표정 변화없이 묵묵히 내가 때리는 것을 맞아주고 있었다. 이건 분명 나를 얕보고 있는 것이다. 어차피 아프지도 않으니까 얼마든지 때려보라는 듯이 깔보고 있는 것이었다.


탁!


그렇게 계속 남자의 얼굴을 가격하고 있던 내 주먹은 케롤라인을 붙잡지 않은 다른 한 손으로 아주 여유롭게 막아내었다. 그리고 어째선지 이 남자의 손을 뿌리치려고 해도 손에 제대로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주먹에 잡생각이 많이 들어가 있군. 적당히 빠르기만 한 주먹이야.”


“어디서 수작질이야.”


화가 치밀어오른 나는 오른손을 계속 쓰는 것을 포기하고 왼손을 이용해 다시 공격을 이어나가려 했지만 소용없었다. 오히려 남자가 무릎을 이용해 내 복부를 정확하게 가격했다. 난 정신이 끊어질 것만 같은 아찔함을 맛보면서 바닥을 향해 침을 토해냈다. 그때랑 똑같았다. 세크매트에게 노려졌을 때, 한세진에게 위압감을 느꼈을 때, 천의 얼굴 간부에게 압도적으로 밀렸을 때. 전부 지금과 같은 기분이었다. 압도적인 강함에 대한 두려움과 나 자신에 대한 비참함과 분노. 몸에서 힘이 빠져가면 갈수록 오만가지의 감정이 느껴졌다.


“그거다. 약자가 가져야 하는 눈빛. 절망과 분노에 사로잡혀 상대방을 죽이겠다는 마음가짐. 그걸 가지고 다시 덤벼라.”


풀썩.


백발의 남자는 자신의 손아귀에 잡혀있던 나를 그대로 바닥으로 풀어주었다. 그리고서 고개를 까딱였다. 공격할 수 있는 기회를 주겠다는 뜻이었다. 난 아직 남자에게 붙잡혀있는 케롤라인을 바라보았다. 이미 그녀는 의식을 잃은 듯 보였다. 나를 상대하면서도 케롤라인을 기절시킬 정도로 여유가 넘쳤다고 생각하니 분노는 더욱 커져갔다. 이것이 저 녀석이 의도하는대로라는 것을 알았지만 멈출수가 없었다. 이대로 가만히 죽을바에야 뭐라도 해봐야겠다는 생각만이 앞설뿐이었다.


“이성을 잃고 날뛰지 말라고 처음 가르쳐드릴때부터 말하지 않았었나요?”


나의 등에 올라간 손길과 함께 들려온 부드러운 음성. 난 이 목소리의 주인을 매우 잘 알고 있었다.


“박성태씨?”


“오랜만입니다. 재현씨. 다른 동에 있는 테러리스트들을 조금 뚫고 오느라고 늦었습니다.”


“공항에 파견된다는 사람이 성태씨였어요?”


“그렇더군요. 곧바로 미국으로 가줬으면 좋겠다는 지시를 전달받았습니다. 강민정씨는 따로 다른 임무를 할 일이 있어서 같이 오지 않았지만 말이죠.”


박성태의 얼굴을 봤으니 강민정의 얼굴도 오랜만에 한번 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다른 일이 있다면 어쩔 수 없겠다. 그래도 오랜만에 다소 친근한 사람하고 이야기를 하니까 열이 뻗쳐있던게 조금 나아지는 기분인데.


“기껏 싸울만한 흥을 돋궈놓았더니 다 식히는군. 뭐하는 놈이냐.”


백발의 남자는 갑자기 난입한 박성태를 향해 노골적으로 분노를 드러내었다. 나와 케롤라인을 대할때와는 사뭇 다른 태도였다.


“그건 알아서 뭐하시게요?”


나왔다. 존댓말이지만 그 특유의 말투로 상대방을 짜증나게 하는 박성태 특유의 깐족거림. 웃으면서 존댓말을 하니까 예의바른 것처럼 보이지만 그 실상은 상대방을 아무렇지도 않게 찢어죽이는 피의 광대였다. 피의 광대란 피에 젖으면서 계속 웃는 것이 신기해서 내가 개인적으로 붙인 별명이었다.


“하긴. 그럼 지금 네놈을 완전히 찢어발겨주지.”


남자는 나와 케롤라인을 상대할 때와는 다르게 소매품에서 단검치고는 살짝 긴 칼을 꺼내들었다. 날이 조금 굽어있는 것으로 보아서 곡도라고 해야하나? 박성태가 들고 있는 것은 경찰들이 자주 쓴다고 하는 진압봉처럼 생긴 물건이었다.


남자의 곡도와 박성태의 진압봉이 수차례 부딪히며 마찰음을 낸다. 힘은 대략 엇비슷한 듯 했지만 아무래도 총알조차 여유롭게 피했을 정도의 속도를 지니고 있다보니 공방이 이어지면서 박성태는 여러번 곡도에 베이는 것을 허용했다. 그럼에도 전혀 걱정은 되지 않았다. 이미 박성태의 능력이 무엇인지 난 잘 알고 있으니까.


“호오. 아프다고 생각할만한 부위들을 수차례 베었는데 놀랍군. 상처도 빠르게 재생되는 것 같고.”


백발의 남자는 박성태를 보고 순수하게 감탄했다.


“그 능력은 겉으로 봐서는 대부분의 상처와 부상을 회복할 수 있는 좋은 능력을 보이겠지만 실상은 고통을 감내하지 못해서야 아무 쓸모가 없는 능력이지. 꽤나 피나는 노력을 했겠군.”


“그건 알 바 없구요. 제대로 덤비기나 하시죠?”


적에게 자신의 능력에 대해서 이야기를 듣는 것이 그리 탐닥치 않은지 박성태는 노골적으로 얼굴을 찌푸렸다. 그리고 그의 머리통을 측면에서 정확하게 가격하기 위해 공중으로 도약했다.


“조금 칭찬해줬다고 우쭐대는군.”


나름 회심의 일격으로 휘두른 박성태의 일격이었지만 백발의 남자는 너무나도 허망하게 그것을 붙잡았다. 그리고 어디에서 나오는지 모를 정도의 힘으로 진압봉을 정확히 반으로 으스러뜨렸다. 저 정도로 힘이 강했던가?


“조금 힘이 강하긴 한 모양이지만, 그래봤자 사람이 연속해서 때리다보면 결국 죽겠지.”


힘의 차이를 확인했지만 박성태는 당황하지 않았다. 오히려 더욱 호기스러운 태도를 보이면서 남자에게 달려들었다.


“신체재생 능력자의 약점이 뭔 줄 아나? 자신은 무한히 재생하는거라고 착각한다는거다.”


백색 머리의 남자는 순식간에 박성태에게 쇄도했다. 그리고서 베었다.


“그까짓 칼질쯤이야.”


“무르군. 오만함이 하늘을 찔러.”


칼의 일격은 한번으로 끝나지 않았다. 이미 한번 베어서 상처가 난 곳은 어김없이 박성태의 능력이 발동하여 상처를 재생하기 시작했지만, 남자가 휘두르는 칼날은 그 이상으로 수많은 상처들을 내었다.


바람과 같은 검격들이 박성태의 몸이 셀 수도 없는 수많은 상처를 내면서 그만큼 많은 피가 바닥과 주변으로 흩뿌려졌다. 남자의 공격을 막거나 피하기는커녕 제대로 반응하기도 어려운 박성태의 얼굴은 서서히 고통으로 물들어갔다. 난 그런 박성태의 얼굴을 처음 보았다. 이전에 서울 한복판에 등장했던 꺾다리의 오른팔을 상대할 때도 저 정도는 아니었다. 게다가 박성태는 그 뒤로 무수히 많은 훈련을 거듭하며 더욱 강해진 상태였다. 그가 저리 속수무책을 당한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았다.


“신체재생이라고 해봐야 결국은 한계가 있는 법이지. 네가 끊임없이 느껴지는 고통 속에서 몸부림치며 죽든, 훨씬 빠른 상처를 다 재생해내지 못하고 자멸하든 죽일 방법이야 얼마든지 있다. 한번에 커다란 피해를 주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라는 이야기다.”


저 남자가 제시한 방법은 터무니없었지만 반박할 수 없는 말이기도 했다. 이미 그는 박성태라는 인물을 상대로 그것을 말끔하게 실현하고 있었으니까. 막말로 지금 이 자리에 있는 모든 사람이 그 어떠한 수단을 동원해도 저 자를 이길 수 없다. 그런 생각이 당연하게 들 정도로 수준차이가 극명한 상황이었다.


“더 덤비지 않는건가?”


제자리에서 상처를 간신히 수복하며 노려보고만 있는 박성태에게 백발의 남자가 비웃는 듯이 물었다. 박성태는 이를 갈면서도 쉽사리 덤벼들지는 않았다. 아마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는거겠지.


“결국 그 정도군. 흥이 식었다.”


남자의 표정에서 완전히 흥미가 사라졌다. 피가 묻어있는 날카로운 곡도를 주머니에서 꺼낸 천으로 쓱쓱 닦는가 싶더니 다시 집어넣었다.


“이런 덜떨어진 녀석들을 제대로 부하라고 생각한 적은 없지만, 그래도 나를 따르고는 있는 놈들이니 원수는 갚아주는게 도리겠지.”


원수를 갚아준다고? 설마 이 테러리스트 집단의 리더가 저 남자였던건가.


테러리스트 대장은 허벅지 춤으로 손을 가져가 홀더에서 작은 칼을 꺼내들었다. 곡도보다는 날이 짧지만 굉장히 날카로워 보이는 예리한 칼이었다.


“뭐 그런 놈이 있을리는 없지만 먼저 죽고 싶은 놈이 있으면 내가 죽는다는 것을 느끼지도 못하게 말끔하게 죽여주도록 하마.”


장난으로 하는 말 같이 들릴 수 있지만 저 남자는 진심이었다. 지금 이 자리에 있는 모두를 완전히 묻어버리려고 하고 있었다.


“박성태씨. 혹시 다른 지원자들은 안왔어요?”


“그 사람들은 C동에서 한창 테러리스드들 상대하느라 정신없습니다. 그리고 와봤자..”


뒷말은 이어지지 않았지만 대략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는 예상이 간다. 이 테러리스트 집단을 이끄는 저 대장이라는 자는 단순히 물량공세로 이길 수 있을만한 인물이 아니다.


물론 그도 인간이니 당연히 한계점이라는게 존재하겠지만 적어도 통신을 이용한 추가적인 지원요청도 불가능한 지금 상태에서 저 남자를 이기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박성태씨. 혹시 제가 죽으면 애들이랑 다른 사람들을 데리고 최대한 빨리 도망치세요.”


“무슨 소리를 하는겁니까. 그런건 죽지 않는 제가 해야...”


“아까부터 계속 피가 안멈추는게 눈에 보이는데 안죽기는 뭐가 안죽어요. 그런 상태여도 박성태씨 실력을 믿으니까 부탁하는겁니다.”


저 남자와의 전투로 몸상태가 나빠졌다고는 하지만 평범한 테러리스트들 정도라면 능히 상대할 수 있을거라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이제까지 알고 지낸 경험도 있으니 그라면 믿을 수 있었다.


“용감하군. 하지만 그 이상으로 무지하다. 내가 네놈을 썰어버리는 데에 시간이 얼마나 걸릴 거라고 생각하지?”


난 테러리스트 대장을 정면으로 막아섰고 그는 칼날을 내 얼굴쪽으로 들이밀며 달려들기 위한 자세를 취했다. 어떻게든 반응한다. 그리고 역으로 반격한다. 그 생각 하나만으로 온몸의 감각을 곤두세웠다. 그리고 곧 그것은 무용지물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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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 060. 주체할 수 없는 분노 +1 20.12.09 183 1 12쪽
61 059. 이별 +1 20.12.08 177 3 11쪽
60 058. 광기의 놀이공원(5) +1 20.12.07 181 3 12쪽
59 057. 광기의 놀이공원(4) +1 20.12.06 185 3 12쪽
58 056. 광기의 놀이공원(3) +1 20.12.05 190 3 12쪽
57 055. 광기의 놀이공원(2) +1 20.12.04 186 2 11쪽
56 054. 광기의 놀이공원 +1 20.12.03 198 3 11쪽
55 053. 과거를 보는 남자 +1 20.12.02 207 2 11쪽
54 052. 다시 만난 그 녀석 +1 20.12.01 214 3 11쪽
» 051. 대장(2) +1 20.11.30 219 3 11쪽
52 050. 대장 +1 20.11.29 228 3 11쪽
51 049. 전화위복(轉禍爲福) +1 20.11.28 257 4 11쪽
50 048. 다가오는 그들 +1 20.11.27 242 5 11쪽
49 047. 위기일발 +1 20.11.26 260 5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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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 045. 다음 행선지는 어디?(2) +1 20.11.24 282 4 11쪽
46 044. 다음 행선지는 어디? +2 20.11.23 315 5 12쪽
45 043. 조사결과 +2 20.11.22 330 5 13쪽
44 042. 러시아 해외정보국 +1 20.11.21 341 5 12쪽
43 특별 작전 참모(캐릭터 외전) +1 20.11.20 338 5 10쪽
42 041. 케롤라인 +1 20.11.19 357 5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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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 039. 한계돌파 +1 20.11.17 394 4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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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 036. 천의 얼굴(4) +1 20.11.14 375 7 11쪽
36 035. 천의 얼굴(3) +1 20.11.13 380 6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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