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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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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설호(雪虎)
작품등록일 :
2011.04.03 23:48
최근연재일 :
2011.04.03 23:48
연재수 :
32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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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3,799
추천수 :
1,256
글자수 :
98,359

작성
11.03.06 1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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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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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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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쪽

미령(美靈)-19

DUMMY

슬슬 겁이 나면서 긴장하기 시작한 영욱은 책상에 앉아 모니터를 켰다. 그런데 화면을 바라본 영욱은 의구심이 생기기 시작했다.

-선생님 오늘 밤 뵐게요.

화면 속에 영선이 보낸 메시지창이 올라와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새벽에 메시지를 보냈다는 것인데 밤새 컴퓨터가 꺼져 있었다면 상대방 역시 메시지를 보낼 수 없었을 것이었다. 기억을 더듬던 영욱은 자신이 확신했던 기억을 의심하기 시작했다.

‘그럼 내가 컴퓨터를 켜놨었나?’

한참동안 기억을 더듬던 영욱은 결국 지금의 현실에 순응하기로 했다. 어제 저녁 분명히 컴퓨터를 끄고 나왔다면 반드시 의심을 가져야 했지만 그것으로 인해 감당해야 할 분위기를 회피하고 싶었던 것이다. 영욱은 애써 모른 척하고 글을 쓰기 시작했다. 그러다 보면 이러한 상황을 잊을 것 같아서였다. 점심 먹을 때를 빼고 하루 종일 컴퓨터 앞에만 있던 영욱이 자리에서 일어난 것은 저녁 시간이 훨씬 지난 때였다. 글 쓰는데 몰입하다 보니 저녁 먹는 것을 깜박했던 것이다. 냉장고를 뒤져 대충 늦은 저녁을 때운 영욱은 12시가 가까워오자 영선이 들어오길 기다렸다. 그러나 영선은 30분이 지나도록 들어오지 않았다. 오늘은 들어오지 않으려는 것 같아 컴퓨터를 끈 영욱은 방을 나오려다가 확실히 꺼졌는지 확인을 했다. 거의 하루 종일 컴퓨터 앞에만 있어서인지 침대에 눕자마자 온 몽이 욱신거리는 것을 느꼈다. 학교 다닐 때는 원고지 사오십장은 어렵지 않게 써내곤 했는데 나이 때문일까? 침대에 눕자마자 잠이 쏟아져왔다.

“선생님 저예요.”

“영선씨?”

“네.”

영선은 선글라스를 쓰고 있었지만 상당한 미인이었고 몸매도 날씬한 것이 어떤 남자라도 한눈에 반할 정도였다.

“짐작했던 대로 미인이네요.”

“감사합니다.”

뜻밖에 미인과 데이트를 하게 된 영욱은 기분이 좋았는지 콧노래가 저절로 나오고 있었다. 공원의 산책로를 걷는 동안 연신 영선의 옆모습을 훔쳐보던 영욱은 마침 눈에 띠는 레스토랑으로 영선을 안내했다. 각 좌석마다 파티션 같은 칸막이가 있어 나이 많은 사람과 젊은 여자와 다니는 것에 색안경을 쓸 사람들의 시선도 피할 수 있었다. 무슨 얘기를 하는지 모르게 영성과의 대화에 빠져 있다가 레스토랑을 나온 영욱은 문득 영선의 선글라스가 눈에 들어왔다. 생각해 보니 영선은 처음 만났을 때부터 저녁 먹을 때까지 한 번도 벗지 않았었다. 별이 반짝이는 지금은 선글라스를 써야 할 이유가 없었다.

“우리 저기 가서 좀 앉을까요?”

아파트 단지에 들어선 영욱은 등나무 아래에 있는 벤치를 가리켰다. 영선은 앞장서서 벤치로 향했고 영선이 벤치에 앉자 영욱은 그 옆에 앉아 담배를 꺼내며 입을 열었다.

“영선씨 궁금한 것이 있어요.”

“네. 말씀하세요.”

영선은 밝게 웃으며 영욱을 바라보았다.

“아까부터 보니까 선글라스를 계속 쓰고 있던데. 무슨 사정이라도 있는 건가요?”

영선은 빙그레 웃으며 고개를 돌릴 뿐 대답이 없었다. 영욱은 다그쳐 물을까 했으나 실례가 될 것 같아 담배 연기만 허공에 날리고 있었다. 그런데 대답하기 곤란한 사정이 있는 것으로 생각한 영욱이 그만 일어서려고 할 때였다. 계속 침묵하고 있던 영선이 입을 연 것이다.

“선생님 약속하신 거 잊지 않았죠?”

“아, 그거요? 당연하죠.”

“그럼.”

그제야 영선은 천천히 선글라스를 벗었다. 영욱은 떨리는 가슴으로 영선에게서 눈을 떼지 않았다. 그런데 선글라스를 벗고 고개를 든 영선의 얼굴은 너무나 뜻밖이었다. 영욱은 가슴이 철렁했지만 애써 태연한 척 했다. 가로등 불빛에 비친 영선은 뿌옇게 혼탁해진 눈으로 영욱을 바라보았다.

“보셨어요?”

“네.”

“어때요?”

“실은 좀 놀랐어요. 눈이 좀 특이하네요.”

“시력이 좀 안 좋아서 그렇지 생활하는 덴 지장 없어요.”

“아, 그랬군요.”

영욱은 얼마 전 화이트셔츠를 양복이라고 했던 영선을 이해했다. 그러나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일에 영욱의 말투는 계속 쭈뼛거렸다. 그것이 재미있었는지 영선은 소리 없이 웃기만 했다.

“그런데 정말 보이긴 하는 건가요?”

“그럼요. 하지만 문제가 좀 있어요.”

“문제요?”

“전 밤에만 밖에 나올 수 있어요. 낮엔 너무 눈이 부셔서 거의 뜨질 못해요.”

“그렇군요. 잠깐만 실례할게요.”

담배가 거의 필터 끝까지 타버린 것을 본 영욱은 꽁초를 버리기 위해 조금 떨어진 쓰레기통으로 갔다. 거기서 마지막 한 모금을 빨아들인 영욱은 꽁초를 버리고 벤치 쪽으로 돌아섰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조금 전까지 벤치에 있었던 영선이 사라지고 없는 것이다. 벤치주변을 몇 차례 두리번거렸지만 영선은 어디에도 없었다. 혹시나 하여 입구로 가는 길을 따라 가보았으나 마치 연기 사라지듯 영선의 모습은 찾을 수가 없었다.

‘사람 간다는 말도 없이 사라졌네. 이럴 줄 알았으면 휴대폰 번호라도 물어 볼걸.’

영욱은 아쉬운 마음에 발길을 돌렸다. 그때였다. 누군가 뒤에서 부르는 소리에 고개를 돌리던 영욱의 머리에 갑자기 쿵하는 충격이 전해지는 것이다. 잠시 정신을 잃었던 영욱이 눈을 떴을 때는 안방의 적막함뿐이었다.

‘후유. 꿈이었네.’

그러나 꿈에서 보았던 영선의 모습은 생생하게 남아있었다. 그녀의 미모는 정상적인 눈이 아닌데도 영욱을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영욱은 같은 일이 현실에서 일어나도 그녀를 사랑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말도 없이 사라진 것을 생각하니 조금은 서운하기도 했다. 한참동안 멍하니 천정만 바라보던 문득 정신이 들었는지 스스로를 책망했다.

‘최영욱 지금 뭐하는 거냐?’

힘차게 이불을 걷어 제치고 일어난 영욱은 이마에 내려온 머리를 쓸어 올렸다. 그런데 갑자기 이마에 통증이 느껴지는 것이다. 아픈 곳을 만져보니 도톰한 것이 혹 하나가 불거져 있었다.

‘이게 어떻게 된 거야?’

그러나 이마에 혹이 생긴 것은 당연했다. 영욱은 의식을 못했지만 자다가 침대 옆에 붙여놓았던 간이 탁자를 들이받으면서 깨어났던 것이다. 그것을 모르는 영욱은 마치 초자연적인 현상을 경험한 것 같았다. 다행히 자국이 크지 않아 자세히 보지 않으면 표가 날 정도는 아니었다. 아침을 먹고 영욱은 오랜만에 집을 나섰다. 그동안 길게 자란 머리를 깍고 소설을 쓰는데 필요한 조언도 구할 겸하여 전에 인터넷에서 보았던 출판사를 찾아가려는 것이다. 동네 이발소에서 머리를 깎고 면도까지 하고난 영욱은 오랜만에 개운함을 느꼈다. 예전엔 매일 면도를 하고 한 달에 한번은 반드시 이발을 했지만 이제는 굳이 그럴 필요를 느끼지 못해 실로 오랜만에 맛보는 기분이었다. 이발소를 나온 영욱은 인터넷에서 봐둔 출판사를 찾아갔다. 찾아간 곳은 국내 메이저급 출판사답게 제법 큰 규모를 갖추고 있었다.

“그렇군요. 그런데 작가의 길이라는 게 생각보다 험난합니다. 여길 보십시오.”

편집부 직원이 가리키는 책상위엔 다른 사람들이 보낸 원고가 수북이 쌓여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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