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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호의 서재입니다.

미령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완결

설호(雪虎)
작품등록일 :
2011.04.03 23:48
최근연재일 :
2011.04.03 23:48
연재수 :
32 회
조회수 :
113,793
추천수 :
1,256
글자수 :
98,359

작성
11.03.06 00:25
조회
2,578
추천
27
글자
7쪽

미령(美靈)-18

DUMMY

어쨌든 그 다음 이야기를 이런저런 내용으로 이어가려 했지만 스토리는 자꾸 엉뚱한 쪽으로 흐를 뿐이었고 앞뒤도 맞지 않아 뒤죽박죽이었다. 몇 번을 썼다 지웠다 했지만 앞부분과의 매끄러운 연결은 좀처럼 쉽지 않았다. 영욱이 이렇게 헤매는 사이 밖은 점점 어두워지고 있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연신 줄담배를 피우며 썼다 지우기를 반복하던 영욱이 서재로 쓰는 건넌방에서 나온 것은 안방에서 들리는 TV소리 때문이었다.

‘내가 TV를 켜 놓았었나?’

어두컴컴한 거실엔 지나 안방 문을 열자 저녁 뉴스를 진행하는 앵커의 목소리가 어둠 속에서 낭랑하게 들렸다. 그런데 이번에도 TV를 켠 기억이 없는 것이다. 순간, 오싹함을 느낀 영욱은 불을 켜고 방안을 둘러보았다. 그때 영욱의 눈에 들어 온 것은 빠끔히 열린 욕실 문이었다. 마치 누군가 욕실에 들어간 것을 모르게 하려고 완전히 닫지 않은 것처럼 보였다. 겁이 난 영욱은 벽에 몸을 바짝 붙이고 손가락으로 문을 밀었다. 공포영화의 한 장면처럼 스르르 문이 열린 욕실은 물기하나 없이 바짝 말라있었다.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쉰 영욱은 문득 번쩍이는 빨간 불빛을 보고 리모컨을 집어 들었다.

‘그러면 그렇지.’

TV가 켜졌던 것은 리모컨 때문이었다. 알람 대신 아침 8시에 자동으로 켜지도록 맞춰 놓는 다는 것이 AM 대신 PM을 선택했던 것이다. 영욱은 곧바로 설정을 수정하고 냉장고에 있는 재료로 만든 샌드위치로 저녁을 때웠다. 그런데 간단히 때울 거였으면 차라리 밥을 먹는 것이 나을 뻔했다. 남이 만들어 주는 샌드위치는 간단하기 짝이 없지만 직접 만들어 먹는 샌드위치는 뒤치다꺼리가 만만치 않았던 것이다. 그 바람에 소설에 대한 생각을 잠시 잊었던 영욱은 정리를 끝내고 새로운 마음으로 컴퓨터 앞에 앉았다. 생각지도 못한 일로 기분 전환도 했지만 달라진 것은 없었다. 아무리 잘 쓰려고 해도 글은 자꾸만 삼천포로 빠졌고 몇 줄 썼다가 지우는 것을 반복하면서 제자리걸음만 계속했다. 결국 저녁 내내 무의미한 시간을 보낸 영욱은 머리가 복잡해져 서재에서 나와야 했다. 이때 거실에 있는 시계가 12시를 알리고 있었다. 문득 영선이 생각났으나 이미 컴퓨터도 껐고 또 피곤하기도 하여 곧바로 안방 침대로 향했다. 침대에 누운 영욱은 이제 막 시작했는데 첫 술에 배부를 수 있느냐는 식으로 스스로 위로하며 눈을 감았다.

“글은 잘 돼요?”

“댁이 상관할 일이 아닙니다.”

여자는 친숙해지려고 노력하는 것 같았지만 영욱의 태도는 여전히 퉁명스럽기만 했다.

“내가 그렇게 싫어요?”

영욱은 여자가 묻는데도 대답하지 않았다.

“우리 이렇게 같이 지낸지가 한 달이 넘었는데 이제는 마음 여는 게 어때요?”

“조용히 좀 해 줄래요? 나 지금 글 쓰는 중입니다.”

여자는 잠시 영욱의 뒤에서 글 쓰는 것을 보다가 화가 났는지 머리카락을 날리며 서재를 나갔다. 그제야 뒤를 돌아 본 영욱은 열려있는 방문을 닫으려고 문으로 다가갔다. 그런데 영욱의 귀에 여자의 흐느끼는 소리가 들려오는 것이다. 영욱은 너무 야박하게 해서 저러나 하여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내가 좀 심했나?’

주방으로 간 영욱은 빠끔히 열린 문틈으로 방안을 들여다보았다. 등을 보이고 앉은 여자의 어깨는 흐느낌에 맞춰 들썩거리고 있었다. 머쓱해진 영욱은 여자를 달랬다.

“이것 봐요. 그만 울어요.”

하지만 여자는 여전히 울고 있었다.

“미안해요. 이제 그만 화 풀어요.”

영욱이 사과를 하자 여자는 울음을 그치고 방에서 나왔다. 미안하기도 하고 그동안 자신의 행동 때문에 쑥스러워진 영욱은 여자를 똑바로 쳐다보지 못했다. 하지만 식탁 의자에 고개를 숙이고 있는 여자를 본 영욱은 문득 그녀의 얼굴이 궁금했다. 생각해 보니 지금까지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던 것이다. 옆모습이라도 볼까 하고 곁눈질을 했으나 늘어진 머리카락 때문에 얼굴을 볼 수가 없었다.

“아까는 내가 미안했어요. 요즘 신경이 예민해져서 그랬어요.”

“화가 나서 그런 게 아니었어요.”

“그럼 왜 울었어요?”

“내 신세가 한스러워서요.”

영욱은 갑자기 여자가 측은하고 불쌍해 보였다. 마침 커피머신에 내려진 커피가 있어 잔에 따라 여자 앞에 놓았다.

“무슨 사연이 있나 본데 사는 게 그런 거예요.”

“사연이요? 많죠. 한번 들어 보실래요?”

뜻밖에 나온 여자의 말에 영욱은 호기심이 발동했다. 한편으로는 어쩌면 소설의 소재가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여자와 마주하고 앉았다.

“어떤 사연인데요?”

여자는 천천히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이제야 얼굴을 보겠구나.’

영욱은 그동안 보지 못한 여자의 얼굴을 보게 됐다는 것에 작은 설렘이 느껴졌다. 그런데 머리카락 사이로 드러난 여자의 얼굴을 보는 순간 갑자기 숨이 막힌 영욱은 그 자리에 대(大)자로 눕고 말았다. 몇 시나 됐을까? 눈을 뜬 영욱은 머리맡에 있던 디지털시계를 바라보았다. 새벽 다섯 시. 도대체 무엇에 놀랐던 건지 꿈에서 정신을 잃었던 것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더욱 이상한 것은 분명 여자의 얼굴을 보는 순간 정신을 잃었던 것 같은데 그 얼굴이 전혀 기억나지 않는 것이다.

‘왜 자꾸 이런 꿈을 꾸는 거지?’

은근히 속이 상하기 시작했다. 영욱은 정말 이집에 뭐가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직 잠이 덜 깬 채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가 또 다시 잠이 들었던 영욱이 눈을 뜬 것은 오전 10시가 훨씬 지나서였다. 새벽에 깼을 때는 온 몸이 노곤하던 것이 몇 시간 더 잔 것이 효과가 있는지 한결 개운했다. 침대를 정리하고 세수를 하던 영욱은 문득 눈에 들어온 거울 속 자신의 모습이 전과는 상당히 달라졌다는 것을 알았다. 양 볼이 들어간 것이 더욱 야위어 있었고 피부는 전보다 하얗게 변해 있었다. 하지만 그것이 싫지는 않았다. 오히려 전보다 얼굴 윤곽도 또렷하게 보였고 똥배도 거의 들어가 있었기 때문이다. 세수를 끝내고 간단히 아침을 때운 영욱은 마침 토요일이고 하여 일주일간 모아놨던 옷들을 세탁기에 넣고 스위치를 눌렀다. 곧이어 물이 들어가는 소리를 듣고 거실 청소를 끝낸 영욱은 건넌방으로 향했다. 그런데 건넌방 앞에 다가간 영욱은 섬뜩한 느낌이 들었다. 빠끔히 열린 문틈으로 컴퓨터냉각팬 돌아가는 소리가 들리는 것이다. 영욱은 혹시 착각한 게 아닌가 하였으나 어제 저녁 컴퓨터가 꺼지는 것을 확인하고 방에 불을 끈 것이 확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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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미령(美靈)-31 +3 11.03.13 1,840 30 8쪽
30 미령(美靈)-30 +5 11.03.13 1,920 25 7쪽
29 미령(美靈)-29 +4 11.03.12 1,851 28 7쪽
28 미령(美靈)-28 +1 11.03.11 2,030 28 8쪽
27 미령(美靈)-27 +4 11.03.11 2,023 25 8쪽
26 미령(美靈)-26 +5 11.03.10 2,018 22 9쪽
25 미령(美靈)-25 +5 11.03.10 2,189 27 7쪽
24 미령(美靈)-24 +6 11.03.09 2,319 25 7쪽
23 미령(美靈)-23 +6 11.03.09 2,247 26 7쪽
22 미령(美靈)-22 +7 11.03.08 2,500 28 7쪽
21 미령(美靈)-21 +8 11.03.08 2,601 27 7쪽
20 미령(美靈)-20 +5 11.03.07 2,595 30 7쪽
19 미령(美靈)-19 11.03.06 2,438 23 7쪽
» 미령(美靈)-18 +2 11.03.06 2,578 27 7쪽
17 미령(美靈)-17 +2 11.03.05 2,609 39 7쪽
16 미령(美靈)-16 +2 11.03.04 2,620 24 7쪽
15 미령(美靈)-15 +2 11.03.03 2,569 24 7쪽
14 미령(美靈)-14 11.03.02 2,737 23 7쪽
13 미령(美靈)-13 11.03.01 2,766 24 7쪽
12 미령(美靈)-12 +1 11.02.28 2,867 24 7쪽
11 미령(美靈)-11 11.02.27 2,689 22 7쪽
10 미령(美靈)-10 11.02.27 2,861 23 7쪽
9 미령(美靈)-9 +1 11.02.26 3,034 22 7쪽
8 미령(美靈)-8 11.02.25 2,945 24 7쪽
7 미령(美靈)-7 11.02.24 3,072 22 7쪽
6 미령(美靈)-6 +5 11.02.23 2,991 23 7쪽
5 미령(美靈)-5 +2 11.02.23 3,057 25 7쪽
4 미령(美靈)-4 +2 11.02.23 3,261 27 7쪽
3 미령(美靈)-3 +4 11.02.22 3,393 29 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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