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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호의 서재입니다.

미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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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설호(雪虎)
작품등록일 :
2011.04.03 23:48
최근연재일 :
2011.04.03 23:48
연재수 :
32 회
조회수 :
113,775
추천수 :
1,256
글자수 :
98,359

작성
11.02.26 00:20
조회
3,033
추천
22
글자
7쪽

미령(美靈)-9

DUMMY

자다가 깨는 바람에 갈증을 느낀 영욱은 아까 마시던 음료수가 생각나 침대 옆에 두었던 컵을 들었다. 그런데 뭔가 이상했다. 자기 전에 분명 한 모금 밖에 마시지 않았는데 음료수는 컵의 밑바닥에 조금 남아있을 뿐이었다.

‘내가 다 마셨나?’

하지만 몇 번을 생각해도 분명히 음료수는 한 모금밖엔 마시지 않았다. 눕자마자 잠에 들었기 때문이 그럴 시간이 없었던 것이다. 음료수가 할리도 없는 일이어서 휘 혹시 쏟았나 하고 바닥을 확인했지만 어디에도 흘린 흔적은 없었다. 영욱은 며칠 전 주방에서 있었던 일과 낮에 TV가 켜져 있던 일을 생각했다. 그러나 나이가 든 탓에 잊어버렸던 건지도 모른다며 더 이상 괘념치 않았다. 다음날 영욱은 자신보다 먼저 은퇴한 지인들을 만나 이런저런 사업정보를 얻을까 하고 자문을 구하고 있었다.

“어지간하면 있는 돈으로 절약하면서 살아. 더구나 요즘엔 경기도 안 좋고 해서 성공하는 사람이 드물어. 자네처럼 경험 없는 사람들은 섣불리 손 안대는 게 남는 거야.”

열이면 열 모두 같은 소리였다. 결국 별 다른 소득도 없이 시간만 허비한 채 집으로 돌아와야 했다. 집 앞에 서서 현관문에 열쇠를 꽂으려던 영욱은 잠시 멈칫하고 현관문에 귀를 대보았다. 지난번처럼 무슨 소리가 나지 않나 해서였는데 아무소리도 들리지 않는 것을 확인하고 문을 열었다. 최근 갑작스런 환경 변화에 예민했던 탓으로 생각하고 안으로 들어섰지만 혹시나 하는 생각에 집안 여기저기를 둘러보았다.

‘그러면 그렇지.’

늦은 저녁, 가벼운 마음으로 저녁을 먹은 영욱은 한참 동안 게임에 빠져 있었다. 이혼 전에는 식구들 보기 민망해 가끔씩 했던 것인데 이제 눈치 볼 사람도 없으니 얼마든지 할 수 있었다. 그런데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한창 게임에 몰두하고 있을 때였다. 갑자기 메신저의 채팅 창이 뜨더니 누군가 메시지를 보내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영선이라는 닉네임에 여성 아바타가 표시되어 있었다.

“누구지?”

영욱은 게임을 끝내고 채팅창에 입력을 했다,

-누구시죠? 전 처음 뵙는 것 같은데.

-닉네임이 특이해서 그냥 한번 보내봤습니다.

영욱은 메신저에서‘열화’라는 닉네임을 쓰고 있었다.

-그러셨군요. 별 의미는 없고 그냥 생각나는 대로 만든 겁니다. 그런데 영선님은 어떻게 제 닉네임을 발견하셨나요?

-그냥 심심해서 접속자 명단을 보는데 눈에 들어오더군요. 혹시 기분 상하셨나요?

-아뇨. 그럴 리가요. 아무튼 반갑습니다.

-네. 저도요. 그런데 열화가 무슨 뜻인가요?

-열정이 단긴 불꽃이라는 뜻입니다.

-아, 그렇군요. 멋지네요.

-여긴 상계동인데 거긴 어딘가요?

-여기도 상계동 이예요.

-그래요? 이것 참 우연이군요.

-우연이요? 그렇죠. 우연이라고 할 수 있죠.

영욱은 우연치 않게 알게 된 여자와 한참동안 채팅을 하고 있었다.

-실례지만 무슨 일 하세요?

-아무 것도 안 해요. 님은 요?

-전 직장에서 은퇴하고 아직은 하는 일이 없습니다.

-그럼 연세가 많으시겠네요?

-네. 쉰 넷입니다. 님은 요?

-저한텐 별 의미가 없지만 굳이 계산한다면 서른넷이 되겠군요.

남자가 혼자되면 옆구리가 허전해져서 일까? 상대가 여자라는 사실에 영욱은 은근히 마음이 끌렸다.

-제 나이가 좀 많죠?

-적다고 할 수는 없죠.

-실망하셨나요?

-아뇨. 저한테 나이는 크게 의미가 없어요.

당장 사귈 것도 아닌데 영욱은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앞으로도 계속 대화하고 싶은 마음이 들어 조심스럽게 물었다.

-님을 제 친구 목록에 넣어도 되겠어요?

-네.

별일 아니었지만 영욱은 기분이 날아갈 것 같았다. 전 같으면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어쩌면 경미의 배신에 대한 복수심이 그렇게 만든 것인지도 몰랐다. 친구목록에 영선을 추가하면서 이왕이면 얼굴도 예뻤으면 하는 마음에 한번 물어볼까 했으나 처음 보는 사람에게 그런 것을 묻는 다는 것이 실례일 것 같아 생각을 접었다.

-가족은 많으세요?

-아뇨. 전 혼자입니다.

영욱은 잘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도 그렇답니다.

-결혼 안 하셨나요?

영욱은 선뜻 대답을 못했다. 흔치 않게 다가온 여자에게 자신의 치부를 드러내기가 싫었던 것이다.

-했었는데 지금은 사정이 있어서 혼자 살아요.

-아, 네.

영욱은 서른넷이나 된 여자이니 이미 눈치 챘을 거라고 생각했다. 어쩌면 이것으로 여자와는 끝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니 조금은 아쉽기도 했다. 하지만 크게 마음 쓸 일은 없었다. 오십이 넘은데다가 직업도 없고 이혼까지 한 남자에게 호감을 느낄 여자는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영욱은 여자가 더 이상 대화하지 않을 거라 여기고 대화가 끊기면 게임이나 계속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여자는 대화를 계속하고 있었다.

-상계동 어디쯤 사세요?

-이마트 건너편에 있는 아파트 아세요?

-네.’

-거기 삽니다. 님은 어디쯤 사세요?

-저도 같은 아파트예요. 놀라셨죠?

여자의 마지막 말은 여자가 자신을 이미 알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을 갖게 했다.

-혹시 절 아시는 분 아닌가요?

-아뇨.’

-그런데 어떻게 알았어요?

영욱은 은근히 기대했다. 어쩌면 지은이 장난으로 그러는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만약 그렇다면 당장 내일이라도 만나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냥 알았어요.

-혹시 지은이 아냐?

영욱은 채팅 창에 웃음소리가 나타나길 기대했다. 하지만 기대와 달리 여자의 대답은 달랐다.

-지은이요? 그게 누군데요?

순간 영욱은 아차 했다. 지은 역시 영욱이 이혼한 것과 상계동으로 이사한 것을 아직 모르고 있기 때문이다.

-아, 아닙니다. 혹시 제가 아는 사람인가 해서요.

그런데 여자의 메시지에서 풍기는 느낌은 조금 전과는 사뭇 차이가 있었다.

-지은이가 누구죠?

-옛날 회사 다닐 때 알았던 여자예요.

-아, 그렇군요. 죄송해요. 오늘은 이만 가야겠네요. 그럼 이만.

영욱은 아쉬웠지만 그렇다고 처음 알게 된 여자를 마냥 붙잡을 수는 없었다. 그 사이 밖은 이제 곧 동틀 것처럼 여명이 다가오고 있었다.

-네. 반가웠습니다.

영욱은 그제야 새벽 다섯 시를 가리키고 있는 시계를 보았다.

‘언제 시간이 이렇게 됐지?’

자신도 모르는 사이 낯선 여자와의 대화에 빠져 시간이 가는 줄도 몰랐던 것이다. 끊어진 대화창을 본 영욱은 이제 결혼이라는 굴레에서 벗어난 지금, 아무런 제약도 없는 자신에게 새로운 대화 상대가 생긴 것이 그리 싫지는 않았는데 조금은 아쉽다는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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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미령(美靈)-28 +1 11.03.11 2,029 28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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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미령(美靈)-20 +5 11.03.07 2,594 30 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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