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설호의 서재입니다.

미령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완결

설호(雪虎)
작품등록일 :
2011.04.03 23:48
최근연재일 :
2011.04.03 23:48
연재수 :
32 회
조회수 :
113,783
추천수 :
1,256
글자수 :
98,359

작성
11.02.23 19:51
조회
3,260
추천
27
글자
7쪽

미령(美靈)-4

DUMMY

“강남에서 10시에 출발할 거니까 여기엔 12시 조금 넘어서 도착할 겁니다.”

“알겠습니다. 그런데 그건 뭡니까?”

“아, 이거요. 욕실에 보니까 널려 있기에 버리려고 갖고 왔어요. 전 주인이 쓰던 것 같은데 그냥 버리려고요.”

순간 직원은 눈이 동그래져 있었다.

“그게 그 집 욕실에 있었다구요?”

“네. 그리고 통풍이 잘 안되는지 바닥에 물이 흥건하더군요,”

“그럴 리가 없는데.”

“그럴 리가 없다니요?”

“아, 아닙니다. 아까 가구 옮기던 사람이 손을 씻다가 흘렸나 보죠. 가시죠. 제가 버스 정류장까지 모셔다 드릴 게요.”

어딘지 모르게 서두는 것 같은 직원이 이상했으나 미처 물어볼 틈도 주지 않고 단지를 빠져 나온 그는 영욱을 버스정류장에 내려주고 쏜살같이 사라졌다.

‘젊은 사람이. 급하긴.’

집으로 돌아온 영욱은 혹시 빠트린 것 없나 하고 짐이 담겨 있는 박스를 확인했다. 그러는 사이 저녁때가 되어 라면을 끓이려는데 핸드폰이 진동음을 내고 있었다.

“네.”

“안녕하세요. 전무님.”

그 옛날 영욱이 잘나가던 시절 한때 결혼까지 생각했던 바로 그 지은이었다.

“이게 누구야? 지은이 아냐? 잘 지내지?”

“네. 전무님 건강하시죠?”

“나야 뭐. 늘 그렇지.”

“갑자기 생각나서 안부 전화 드렸어요.”

“그래도 잊지 않고 있네?”

“그럼요. 전무님을 어떻게 잊겠어요.”

만약 그때 지은이와 결혼 했더라면 오늘날 요 모양 요 꼴은 안됐을 것이다. 한 때의 잘못된 선택에 대한 대가가 이렇게 쓰라릴 것이라는 것은 전혀 생각지 못했다.

“애기 잘 크지?”

그런데 금방 대답할 것 같았던 지은은 대답이 없었다. 전 같으면 금방 그럼요 하고 대답했을 지은이였다.

“왜? 무슨 일 있어?”

“실은 그 게요.”

“응.”

“지난봄에 있었던 교통사고로 저 혼자 됐어요.”

“그게 무슨 소리야?”

“시댁에 일이 있어서 가다가 과속하던 버스에 저희 차가 받혔는데 차가 전복되면서 남편하고 애기가 먼저 갔어요.”

“저런. 연락하지 않고.”

“저도 병원에서 나온 지 얼만 안 돼요. 그리고 그때 저도 많이 다쳐서 경황이 없었어요.”

“병원에 오래 있었던 것을 보니 지은이도 많이 다쳤었나 보네.”

“네.”

순간 영욱은 묘한 기분이 들었다. 경미와 헤어진 지금 어쩌면 이것도 잘못된 길을 걸어 온 자신에게 하늘이 주는 또 다른 기회일지 모른다는 엉뚱한 생각이 들었다.

“차라리 그때 같이 죽었더라면.”

“쓸데없는 소리. 지금은 완쾌된 거야?”

“그렇긴 한데.”

“왜? 아직 완전히 회복 된 것이 아닌가?”

“아직은 좀 그래요.”

“우리 이러지 말고 언제 얼굴 한번 보자.”

“저도 그러고 싶긴 한데. 지금은 뵙기가 좀 그래서요. 나중에 또 연락드릴게요.”

“그래. 아직 마음을 추스르지 못한 것 같은데 마음 정리되면 그때 얼굴 한번 보자.”

“네. 그럼 안녕히 계세요.”

전화를 끊은 영욱은 지난 시간들을 떠 올렸다. 한때는 결혼까지 생각했던 지은이었지만 조실부모 하고 성정하는 동안 친척집을 전전했던 배경 때문에 차마 청혼할 용기를 내지 못하다가 경미를 만나면서부터 사랑이 식어갔던 것이다, 표면적으로는 집안의 반대를 핑계로 내세웠지만 그것은 자신의 속내를 감추기 위한 구실에 불과했다. 그것만 아니었다면 경미보다 인물도 뛰어나고 지적인 지은과 결혼했을 텐데 그때는 어째서 용기가 없었는지 아무리 생각해도 후회막급이었다. 뒤늦은 후회를 했지만 지나가 버린 세월의 조각일 뿐이었다. 이사 가기 하루 전날 은행에서 직원에게 줄 복비를 찾아왔다. 직원계좌로 입금시키면 됐지만 평생 카드만 썼던 영욱은 인터넷 뱅킹을 할 불 몰랐던 것이다. 하루종일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기다렸지만 경미는 물론 아이들도 전화 한통 없었다. 내일이면 이제 이 집과의 인연은 끝이다. 영욱은 자신의 힘으로 마련한 것이 아니어서 애착 같은 것은 없었다.

‘어차피 내 집도 아닌데 미련이 있을 리 없지.’

오히려 홀가분했고 생각해 보면 달리 서운할 것도 없었다. 어쨌든 경미의 아버지 덕에 평생 쪼들림 없이 살았고 남들이 부러워 할 만큼 호화스런 생활과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은 모두 하면서 살았으니 결국 비긴 거나 진배없었다. 내일 이사할 생각을 하며 고독한 잠을 청하려던 영욱은 문득 사흘 전 만났던 중개소 직원이 생각났다.

‘이상해.’

아무리 생각해도 그는 뭔가 감추고 있는 듯했고 집을 소개한다는 사람이 집안에 들어오기를 주저했던 점, 욕실에 있던 것들을 들고 나왔을 때 놀라던 표정, 집주인의 얼굴에 드리웠던 예사롭지 않은 그림자 그리고 복도식 아파트인데도 다른 아파트와 달리 너무나 고요한 분위기 등 집 자체를 빼면 모두가 마음에 걸리는 것들뿐이었다.

‘강남에만 살아서 그런 가?’

영욱은 예감이 좋지 않았지만 애써 그것들을 부정하며 눈을 감았다. 다음날 아침, 평소처럼 아침잠에 빠져있던 영욱은 현관 차임벨 소리에 눈을 뜨고 시계를 보았다.

‘이런.’

영욱은 깜작 놀라 서둘러 옷을 입었다. 이삿짐센터에서 오기로 했는데 그만 늦잠을 자고 만 것이다. 현관문을 열자 이삿짐센터에서 왔다며 건장한 사내 둘이 들어왔다.

“안녕하세요? 사장님.”

“어서 오세요. 제가 깜박 늦잠을 잤네요.”

“아, 예. 짐은 어디 있습니까?”

“이 방입니다. 여기 있는 것들만 내가면 됩니다.”

그 사이 한 사람은 베란다에서 아파트 밑에 대기 중이던 사다리차 기사에게 작업을 지시하고 있었다.

“짐이 이것뿐입니까?”

“네. 이방에 있는 것만 빼면 됩니다.”

“아, 그래서 차를 작은 것으로 계약하셨군요.”

“네.”

“그럼 시작해.”

이사엔 이골이 난 그들은 정상적인 이사가 아니라는 것을 아는 눈치였다. 직원들이 짐을 포장하는 사이 영욱은 세수를 마치고 자신이 쓰던 칫솔과 수건을 챙겨들고 나왔다. 짐이 많지 않아 작업은 금방 끝났다. 직원들이 내려가고 베란다 창문을 잠그는 영욱은 그래도 몇 십 년 동안 정들었던 때문인지 쉽게 발을 떼지 못했다. 골프가방이 눈에 띄었으나 이제 그것은 사치스런 물건이 되어있었다. 집안을 한 바퀴 둘러본 뒤 마지막으로 현관문을 잠그는 영욱의 마음은 착잡했다. 열쇠를 경비에게 맡기고 센터 트럭에 오른 영욱은 마지막으로 딸아이에게 문자를 보냈다.

‘아빠 지금 간다고 엄마한테 전해라. 잘 살아라.’

트럭을 타고 단지를 빠져나오는 영욱의 마음은 더욱 착잡했다. 마치 귀양살이 가는 사람처럼 잔뜩 풀이 죽어 있었고 표정은 멍하기만 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2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미령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32 미령(美靈)-독자 여러분께 올림 +18 11.04.03 1,367 17 2쪽
31 미령(美靈)-31 +3 11.03.13 1,839 30 8쪽
30 미령(美靈)-30 +5 11.03.13 1,919 25 7쪽
29 미령(美靈)-29 +4 11.03.12 1,851 28 7쪽
28 미령(美靈)-28 +1 11.03.11 2,029 28 8쪽
27 미령(美靈)-27 +4 11.03.11 2,023 25 8쪽
26 미령(美靈)-26 +5 11.03.10 2,018 22 9쪽
25 미령(美靈)-25 +5 11.03.10 2,189 27 7쪽
24 미령(美靈)-24 +6 11.03.09 2,319 25 7쪽
23 미령(美靈)-23 +6 11.03.09 2,246 26 7쪽
22 미령(美靈)-22 +7 11.03.08 2,500 28 7쪽
21 미령(美靈)-21 +8 11.03.08 2,601 27 7쪽
20 미령(美靈)-20 +5 11.03.07 2,594 30 7쪽
19 미령(美靈)-19 11.03.06 2,438 23 7쪽
18 미령(美靈)-18 +2 11.03.06 2,578 27 7쪽
17 미령(美靈)-17 +2 11.03.05 2,609 39 7쪽
16 미령(美靈)-16 +2 11.03.04 2,620 24 7쪽
15 미령(美靈)-15 +2 11.03.03 2,569 24 7쪽
14 미령(美靈)-14 11.03.02 2,737 23 7쪽
13 미령(美靈)-13 11.03.01 2,766 24 7쪽
12 미령(美靈)-12 +1 11.02.28 2,867 24 7쪽
11 미령(美靈)-11 11.02.27 2,689 22 7쪽
10 미령(美靈)-10 11.02.27 2,860 23 7쪽
9 미령(美靈)-9 +1 11.02.26 3,034 22 7쪽
8 미령(美靈)-8 11.02.25 2,944 24 7쪽
7 미령(美靈)-7 11.02.24 3,072 22 7쪽
6 미령(美靈)-6 +5 11.02.23 2,990 23 7쪽
5 미령(美靈)-5 +2 11.02.23 3,057 25 7쪽
» 미령(美靈)-4 +2 11.02.23 3,261 27 7쪽
3 미령(美靈)-3 +4 11.02.22 3,393 29 7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