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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호의 서재입니다.

미령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완결

설호(雪虎)
작품등록일 :
2011.04.03 23:48
최근연재일 :
2011.04.03 23:48
연재수 :
32 회
조회수 :
113,776
추천수 :
1,256
글자수 :
98,359

작성
11.03.08 14:59
조회
2,4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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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글자
7쪽

미령(美靈)-22

DUMMY

결국 두려움을 견디다 못한 영욱은 베개와 이불을 들고 건넌방으로 갔다. 그래봐야 별 도움은 안 되겠지만 넓은 안방 보다는 작은 방이 덜 무서울 것 같았다. 드디어 벽시계가 자정을 알리고 잔뜩 긴장하여 눈을 질끈 감고 있던 영욱은 한참이 지나도 아무 일 없자 살며시 눈을 떴다. 그 순간 가슴이 철렁하며 소름이 돋기 시작했다. 언제 나타났는지 미령이 하얀 눈으로 내려다보고 있는 것이다.

“왜 여기 있어요?”

“그 그냥요.”

머뭇거리는 영욱의 속을 눈치 챘는지 미끄러지듯 다가 온 미령은 차갑게 물었다.

“아직 마음을 못정하신 거군요?”

“네. 아직.”

영욱은 잔뜩 굳어있는 입술을 억지로 움직이고 있었다.

“그럴 줄 알았어요. 귀신하고 사랑하기가 쉽진 않죠.”

그것이 앞으로는 사랑을 요구하지 않겠다는 것이길 기도했지만 곧이어 나온 미령의 대답은 절대 그럴 생각이 없다는 것이었다.

“그럼 우리 거래해요.”

“거래요?”

“평생 절 사랑해 주시면 그 대가로 전 선생님 원하시는 것 다 들어드리죠.”

미령의 표정은 사뭇 진지했다.

“내가 원하는 것이면 다 된다는 거죠?”

“네. 그런데 조건이 있어요. 어떤 것이든 단 한번 밖엔 들어줄 수가 없어요.”

“그렇군요.”

영욱은 망설였다. 지금 자신의 처지를 감안하면 거절하기 쉽지 않은 제안이었다. 그러나 진실이 담긴 사랑이어야 하는 것과 평생이란 제약이 마음에 걸려 선뜻 대답할 수가 없었다. 그것은 아직은 본격적으로 이야기가 오간 것은 아니지만 마음에 지은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거절하자니 평생 무의미한 삶을 살다가 끝날지 모른다는 생각과 자신도 전 주인처럼 쫓겨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에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 사이 미령은 달빛을 바라보며 영욱의 대답을 기다리고 있었다. 한참을 고민하던 영욱은 어차피 모든 것을 잃은 지금 이제 살면 얼마나 살겠냐는 생각에 제안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바라는 것이 사랑뿐인가요?”

“네.”

“왜 그렇게 사랑에 집착하는 거죠?”

그것이 궁금했으나 미령의 얘기를 듣고 나니 충분히 그럴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화류계에서 인생을 보낸 그녀는 한 번도 진정한 사랑을 받아보지 못했다. 어려서 부모의 사랑을 알기도 전에 고아원에 보내졌고 사춘기를 지나 성인이 되어서도 그녀가 받았던 것은 언제나 그녀의 육체를 탐했던 사내들의 탐욕뿐이었다. 그 때문에 늘 진실 된 사랑에 목말라 했고 자신도 다른 여자들처럼 가정을 꾸미고 한 남자로부터 사랑받으며 살고 싶었지만 그 꿈을 포기해야만 했던 것이다.

“그런데 사람도 아니고 귀신하고 어떻게 사랑을 나누죠?”

“선생님은 거짓 없이 절 받아주시기만 하면 되요.”

“그럼 내가 특별히 해야 할 것은 없겠네요?”

“하지만 조금이라도 가식적이거나 저하고 거래하는 동안 다른 여자와 관계를 갖거나 해서도 안돼요.”

“만약 다른 여자와 관계를 갖게 되면 어떻게 되죠?”

“그건 배신이죠. 그때는.”

눈을 무섭게 치뜬 미령은 더 이상 말이 없었다. 그녀가 말하지 않아도 다음에 나올 말은 뻔했다.

“한 가지 물어 볼게 있어요. 만약 내가 재혼하게 되면 그때는 어떻게 되는 거죠?”

“이집에 다른 여자가 들어오는 건 허락할 수 없어요.”

“그럼 그때는 내가 나가야겠군요?”

미령은 대답이 없었다. 그것은 그녀가 부정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했다. 그것이 걸렸는지 곧이어 계속된 미령의 목소리는 조금 전과는 달리 약간 누그러진 톤으로 변해 있었다.

“그 얘긴 나중에 다시 하기로 해요. 오늘은 첫날인데 그런 얘기나 하며 보내고 싶진 않아요.”

영욱은 말을 끝내자마자 다가오는 미령을 피하려 했지만 어찌된 일인지 조금 전까지 자연스럽던 팔다리가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러더니 입조차 벌릴 수 없게 되었고 영욱이 고요 속에 발버둥을 치는 사이 미령은 벌거벗겨진 그의 몸을 정복하고 있었다. 그것을 바라보는 영욱의 눈에 어디선가 나타난 연기가 몸을 감싸듯 하더니 마치 공중에 뜬 것처럼 정신이 몽롱해졌고 미령이 주도하는 흐름이 계속 될수록 모든 것을 포기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그런 와중에도 귀신이 어련하겠나 했던 영욱은 그 옛날 신혼 때보다 강한 쾌감에 빠지고 있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문득 정신이 들어 깨어났을 때는 이미 밖은 훤하게 밝아 있었다. 일어나는 순간 문득 허전함을 느낀 영욱은 팬티를 찾기 위해 방안을 두리번거렸다. 하지만 아무리 찾아도 팬티가 보이지 않는 것이다. 하는 수없이 안방으로 간 영욱은 다른 팬티를 꺼내 입었다. 그런데 방안이 어두운 것 같아 커튼을 열던 영욱은 문득 베란다 빨래걸이에 눈이 갔다. 거기엔 조금 전 찾았던 팬티가 널려 있었다. 황급히 베란다로 나가 만져 보니 아직 축축한 것이 빨아 너른지 얼마 지나지 않은 것이 분명했다.

‘혹시 미령이? 그럴 리가.’

하지만 간밤에 집안엔 자신과 그녀뿐이었고 자신은 내내 정신을 잃다시피 했으니 미령이 아니면 그렇게 할 사람이 없었다. 믿기지 않은 현실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주방으로 간 영욱에게 이번엔 더욱 놀라운 광경이 펼쳐져 있었다. 식탁에 아침상이 차려져 있는 것이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지?’

그러나 영욱은 선뜻 숟가락을 들지 못했다. 사람도 아닌 귀신이 차렸다고 생각하니 입에 넣기가 찜찜했던 것이다. 그러나 어차피 사람 먹는 음식인데 누가 차리면 어떠냐는 생각에 수저를 들고 이것저것 맛을 보기 시작했다. 그런데 어느 것을 먹어봐도 영욱의 혀를 마비시킬 정도로 놀라웠다.

‘야, 기가 막히네.’

이혼한 뒤 처음으로 남이 차려준 아침이었다. 입에 착착 달라붙는 맛에 순식간에 아침을 끝내고 담배를 피우던 영욱은 무릎을 치며 흐뭇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부터 있을 일들을 소설로 쓰면 되겠다는 생각이 그의 머릿속을 스친 것이다. 지금까지 이야기만으로도 소설 같다고 하기에 충분한데 앞으로 일어날 일들은 더할 나위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렇지 않아도 스토리를 어떤 식으로 전개해가나 하고 걱정했는데 힘들이지 않고 소재를 구할 수 있으니 얼마나 잘 된 일인가? 일이 잘되려고 그런 것이라는 생각이 들자 미래의 자신이 보이는 것 같았다. 이제 미령에게 부탁하면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는 것은 문제도 아닐 것이라는 믿음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건 그렇고 미래의 대작가가 이러고 있을 시간이 있나.’

미래의 꿈에 부풀어 욕실로 들어간 영욱은 양치질을 하는 동안 거울에 비친 자신을 바라보았다. 귀신하고 하룻밤을 지낸 자신이 다르게 보였던 것이다. 아침을 먹고 글을 쓰기 시작한 영욱은 매우 흡족했다. 그동안 연결이 매끄럽지 않아 고생했던 대목들이 신기하게도 술술 풀리는 것이 만사가 형통할 것 같았다. 여기에 어제의 일까지 연결하니 한편의 영화나 다름없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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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7

  • 작성자
    Lv.99 la*****
    작성일
    11.03.08 15:06
    No. 1

    흥미롭군요!!
    이렇게 쉽게 이야기가 전개될 것 같지는 않은데 앞으로가 기대됩니다. ^^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오후1시
    작성일
    11.03.08 17:03
    No. 2

    이제 후배랑 사랑에 빠질차례인걸까요?

    기대되네요 ㅎㅎ

    찬성: 0 | 반대: 0 삭제

  • 작성자
    Lv.54 레드러너
    작성일
    11.03.08 17:18
    No. 3

    어떻게 될런지 ㅎㅎ
    글 재밋게 읽고 있습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12 햇살반디
    작성일
    11.03.08 17:22
    No. 4

    ㅎㅎ 잘보고 가요~~ 재밌네요 담편도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57 ye**
    작성일
    11.03.08 17:24
    No. 5

    하하 재미있습니다아~~

    이왕이면 영욱이라는 필명을 쓰시지 그러셨어요. 그럼 더 재미있는 트릭이 됐을 텐데..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76 운동잡식
    작성일
    11.03.08 17:36
    No. 6

    잘 보고 갑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15 파장
    작성일
    11.03.08 18:49
    No. 7

    정말 어떻게 이럴 수가 있지? 이거야 말로 판타지네. 현대 판타지. ^^

    영욱이란 필명을 못 쓴 이유는... 본명이라서?... 아악, 용서해 주세요, 미령씨!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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