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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호의 서재입니다.

미령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완결

설호(雪虎)
작품등록일 :
2011.04.03 23:48
최근연재일 :
2011.04.03 23:48
연재수 :
32 회
조회수 :
113,791
추천수 :
1,256
글자수 :
98,359

작성
11.03.09 00:56
조회
2,246
추천
26
글자
7쪽

미령(美靈)-23

DUMMY

하루 종일 기분 좋게 글을 쓰고 나니 밖은 어느새 어두워져 있었다. 그제야 시장기를 느낀 영욱은 냉장고를 열었다. 그러나 하루 종일 의자에 앉아있어 피곤했던 영욱은 반찬그릇 꺼내는 것조차 귀찮았다. 그렇다고 점심을 건너뛴 마당에 저녁까지 생략할 수는 없었다. 대충 때울 만한 것이 없을까 하던 영욱은 냉장고 깊숙이 숨어있던 식빵과 햄을 발견했다. 그러나 언제 사다 놓은 건지 기억에도 없는 식빵은 딱딱하게 말라있어 도저히 먹을 수가 없었다. 하는 수없이 전기밥솥에 있던 밥과 햄으로 저녁을 때운 영욱은 느끼한 속 때문에 줄담배를 피워야 했다. 어느 정도 느끼함이 가시자 샤워를 시작한 영욱은 오늘밤 다시 찾아올 미령 생각에 소름이 돋았다. 그런데도 영욱이 도망치지 않는 것은 약속만 지키면 죽을 일은 없을 거라는 믿음 때문이었다. 샤워를 마치고 욕실에서 나온 영욱은 TV를 켰다. TV를 보면서 미령에 대한 생각을 잠시라도 잊으려는 심산이었다. 그러나 머릿속엔 여전히 미령에 대한 생각뿐이었다. 그 사이 시간이 흐르고 TV에서 자정 뉴스가 시작되면서 디지털시계가 숫자 0을 가리키고 있었다. 영욱은 TV를 끄고 눈만 내놓고 이불을 뒤집어썼다. 하지만 마음의 준비를 했어도 이제 곧 들어올 그녀를 생각하니 마치 방망이질을 하듯 쿵쿵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잠시 후 서늘한 기운을 느낀 영욱이 눈을 질끈 감는 사이 미령이 모습을 나타내자 섬뜩해진 영욱은 자신도 모르게 꿀꺽하고 소리를 내고 말았다.

“아직도 무서워요?”

영욱이 누워있는 침대로 다가온 미령의 얼굴은 더욱 소름이 끼쳤다. 그런데 무슨 배장인지 영욱은 더듬거리는 소리로 화를 내기 시작했다.

“무 무섭긴 뭐가 무서워요?”

하지만 미령은 눈 하나 까딱하지 않았다. 이미 영욱이 겁먹은 것을 눈치 챈 미령은 빙그레 웃으며 마치 뱀이 몸을 감듯이 온몸을 감싸기 시작했다. 어느새 하얀 안개 같은 것에 감싸인 영욱은 차가운 냉기에 소름이 돋았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미령의 미모가 그리 싫지 않다는 것이었다. 소름이 끼치긴 했지만 한편으로는 보기 드문 그녀의 미모에 끌리긴 했던 것이다. 사람과 밤을 보내는 것처럼 침대가 요동치는 것은 아니었지만 끊이지 않는 쾌감은 어느 것과도 비할 바가 못 됐다. 물리적인 힘을 가할 필요도 없이 온몸에 전해지는 전율에 정신을 놓아버린 영욱은 어느새 안개의 차가움마저 잊고 있었다. 마침내 몸이 공중에 뜨는 것 같은 느낌이 든 영욱이 게슴츠레 눈을 떴을 때는 바로 코앞에 미령의 차가운 눈이 다가와 있었다. 그것을 보는 순간 정신이 번쩍 든 영욱을 본 미령은 주도하던 흐름을 멈췄다.

“지금 뭐하는 거예요?”

“미안해요. 나도 모르게 놀라는 바람에 그만.”

“내가 그렇게 무서워요?”

“아니 그렇다기보다 너무 차갑다고 해야 하나?”

그 사이 영욱에게서 떨어진 미령은 날카로울 정도로 곧게 선 콧날과 짙으면서도 약간 치켜 올라간 눈썹 그리고 핏기 하나 없는 얼굴로 냉기를 발산하고 있었다.

“기분 상했어요?”

미령은 대답이 없었다. 사람 같으면 어영부영 스킨십으로 달랬겠지만 그녀에겐 그것이 불가능했다. 어떻게 해야 그녀의 기분을 풀 수 있을까 하고 고민하던 영욱은 이런저런 변명을 늘어놓았다. 귀신에게도 그 모습이 애처로웠는지 미령의 얼굴엔 어느새 미소가 번지기 시작했다. 그것을 보고 미령의 화가 물렸다고 생각한 영욱은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런데 다시 다가올 줄 알았던 미령이 미처 생각지 못한 것을 묻는 것이다.

“무엇을 요구할지 생각해 봤어요?”

미령의 화가 풀린 것을 확신하는 순간 등줄기에선 시원한 땀 한 줄기가 흘러내렸다. 겨우 마음을 가라앉힌 영욱은 잠시 생각하는 척하다가 입을 열었다.

“아직요. 막상 하려니까 당장 생각나는 게 없네요.”

“너무 어렵게 생각하지 말아요. 가장 바라던 것부터 해요.”

미령의 목소리 톤이 누그러진 것을 들은 영욱은 갑자기 소변이 마려오기 시작했다. 긴장이 풀리면서 찾아온 지극히 자연스런 생리현상이었다. 그런데 욕실에 들어가기 위해 무심코 불을 켰을 때였다. 갑자기 미령이 찢어질 듯 비명을 지르며 사라지는 것이다. 영욱은 아차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이미 일은 저질렀고 뒤늦게 불을 껐지만 미령은 돌아오지 않았다. 미안한 생각이 들었으나 그녀의 약점을 파악했다는 생각에 한편으론 든든하기도 했다. 이제는 그녀가 자신을 괴롭히면 내세울 무기가 생긴 것이다. 그렇게 갑자기 사라진 미령은 그날 이후 며칠간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처음 하루 이틀은 언제 올까 하는 마음에 궁금하기도 했지만 그런 날이 열흘 넘게 계속되자 이제는 오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갑자기 발길을 끊은 게 시원섭섭한 반면, 지금 쓰고 있는 소설의 소재가 없어져 조금은 아쉽기도 했다. 그로부터 한 달이 지나도록 미령은 나타나지 않았고 이제는 아주 가버렸다고 단정한 어느 날 영욱은 열대야 때문에 선풍기를 틀어 놓은 채 잠이 들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열대야에 굴복한 선풍기는 미지근한 바람을 토해고 있었다. 그 바람에 잠을 갠 영욱은 이럴 줄 알았으면 지난번 전자제품 살 때 에어컨을 장만하지 않았던 것이 후회가 되었다. 가까운데 산과 하천이 있는데다 처음 집을 보러 왔을 때는 차가울 정도로 바람이 불어 사지 않았던 것인데 오늘 같은 날은 그 필요성을 절감할 수밖에 없었다. 비라도 와 줬으면 하는 생각에 베란다로 나간 영욱은 유난히 밝은 달빛을 바라보던 중 문득 귀신 나오기 딱 좋은 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그것이 화근이었을까? 다시 잠을 청하려고 거실로 들어오면서 무심코 쳐다 본 안방 커튼이 흐느적거리는 것이다. 선풍기가 안방에 있었다면 당연한 일이지만 지금 선풍기는 거실에 있고 바람 한 점 불지 않는 지금 커튼이 흔들릴 이유가 없었다.

‘여자가 왔나?’

영욱은 오싹했다. 기온이 30도를 넘는데도 등줄기가 시원해지면서 온 몸의 땀이 들어가는 것 같았다. 영욱은 숨을 죽이고 안방 안을 들여다보았다. 그러자 그전까지 흐느적거리던 커튼이 서서히 멈추더니 미동조차 하지 않았고 방안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날이 더워 헛것을 보았다고 생각한 영욱이 거실로 들어어는 순간 주방에서 뭔가 희끄무레한 것이 다가오는 것이다. 미령이었다.“미 미령씨?”

“그동안 잘 있었어요?”

영욱은 반가움 보다 실망감이 더했지만 애써 반가운 척했다. 하지만 예전처럼 소름이 끼치거나 하지는 않았다. 그런데 가까이 다가온 미령은 많이 달라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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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미령(美靈)-31 +3 11.03.13 1,840 30 8쪽
30 미령(美靈)-30 +5 11.03.13 1,919 25 7쪽
29 미령(美靈)-29 +4 11.03.12 1,851 28 7쪽
28 미령(美靈)-28 +1 11.03.11 2,030 28 8쪽
27 미령(美靈)-27 +4 11.03.11 2,023 25 8쪽
26 미령(美靈)-26 +5 11.03.10 2,018 22 9쪽
25 미령(美靈)-25 +5 11.03.10 2,189 27 7쪽
24 미령(美靈)-24 +6 11.03.09 2,319 25 7쪽
» 미령(美靈)-23 +6 11.03.09 2,247 26 7쪽
22 미령(美靈)-22 +7 11.03.08 2,500 28 7쪽
21 미령(美靈)-21 +8 11.03.08 2,601 27 7쪽
20 미령(美靈)-20 +5 11.03.07 2,595 30 7쪽
19 미령(美靈)-19 11.03.06 2,438 23 7쪽
18 미령(美靈)-18 +2 11.03.06 2,578 27 7쪽
17 미령(美靈)-17 +2 11.03.05 2,609 39 7쪽
16 미령(美靈)-16 +2 11.03.04 2,620 24 7쪽
15 미령(美靈)-15 +2 11.03.03 2,569 24 7쪽
14 미령(美靈)-14 11.03.02 2,737 23 7쪽
13 미령(美靈)-13 11.03.01 2,766 24 7쪽
12 미령(美靈)-12 +1 11.02.28 2,867 24 7쪽
11 미령(美靈)-11 11.02.27 2,689 22 7쪽
10 미령(美靈)-10 11.02.27 2,861 23 7쪽
9 미령(美靈)-9 +1 11.02.26 3,034 22 7쪽
8 미령(美靈)-8 11.02.25 2,945 24 7쪽
7 미령(美靈)-7 11.02.24 3,072 22 7쪽
6 미령(美靈)-6 +5 11.02.23 2,991 23 7쪽
5 미령(美靈)-5 +2 11.02.23 3,057 25 7쪽
4 미령(美靈)-4 +2 11.02.23 3,261 27 7쪽
3 미령(美靈)-3 +4 11.02.22 3,393 29 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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