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설호의 서재입니다.

표지

미령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완결

설호(雪虎)
작품등록일 :
2011.04.03 23:48
최근연재일 :
2011.04.03 23:48
연재수 :
32 회
조회수 :
113,165
추천수 :
1,192
글자수 :
98,359

작성
11.03.13 14:28
조회
1,818
추천
28
글자
8쪽

미령(美靈)-31

DUMMY

영욱은 단지를 갖고 온 이유를 설명하고 미령을 덥석 끌어안았다. 너무나 터프한 그의 행동은 미령도 잠시 당황할 정도였다. 귀신을 당황케 하는 것은 새벽닭 소리와 부적이었지만 이런 경우에도 당황하는 것을 보면 귀신이나 사람이나 감정을 느끼는 것은 다르지 않은 것 같았다. 영욱은 밤새 미령을 밑에 뉘어 놓고 자신의 팔과 다리로 스스로를 지탱한 채 그녀가 만족할 때까지 기력을 다했다. 몇 번의 흐름이 지났을까? 영욱은 거의 기진맥진한 상태에 이르러서야 흐름을 멈추었다. 그동안 오늘 같은 날이 흔치 않았던 미령도 힘이 들었는지 게슴츠레한 눈으로 영욱을 바라보았다.

“선생님 너무 무리하신 거 아닌가요?”

“오늘은 이러고 싶었어요.”

“왜요? 복권 때문에요?”

“그보다는 아이들이 틀렸다는 걸 가르칠 수 있게 해준 게 고마워서요.”

고마워하는 영욱에게 미소를 보이긴 했지만 미령은 여전히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영욱은 돈 많은 엄마를 따라갔던 선택을 후회할 아이들을 생각하니 안쓰러우면서도 한편으로는 통쾌했다. 그 때문인지 영욱은 어느새 만용을 부리고 있었다.

“미령씨 나한테 부탁할 일 없어요?”

영욱의 말에 빙그레 웃기만 하던 미령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솔직히 없진 않죠.”

“그래요?”

“그런데 그게 말처럼 쉽지가 않아요.”

“말해 봐요.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면 해 줄 테니.”

영욱은 그녀의 대답을 기다렸다. 하지만 그녀는 쉽게 입을 열지 못했다. 그것은 인간이 사는 세계와 귀신이 사는 세계는 확연한 차이가 있었기 때문이다. 인간이 사는 세계에선 웬만하면 돈으로 모든 것이 해결되었지만 귀신이 사는 세계에선 돈은 있으나마나한 것이었다. 한참을 고민하다가 어렵게 꺼낸 미령의 얘기는 영욱으로 하여금 망설이게 만들었다. 미령이 원하는 것은 영욱이 수명을 나눠주는 것이었다. 원래 미령은 48년이라는 수명을 갖고 태어났었다. 그런데 서른넷에 죽었으니 14년이란 세월을 채우지 못한 것이다. 미령은 그 세월을 채우고 싶었다. 그렇다고 삶과 죽음이 되돌려지는 것은 아니었다. 대신 남은 세월동안은 남의 몸을 빌려 현실에서 살 수 있어서였다, 비록 빙의로 사는 것이지만 그렇게라도 하여 저승에 들어갈 자격을 얻고 싶었던 것이다. 하지만 영욱은 자신의 수명이 얼마나 남아있는지도 모르는데 무조건 들어줄 수는 없었다. 더구나 그에겐 지은이 있었기에 더더욱 그럴 수가 없었다.

“어렵겠죠?”

미령이 미안해하며 물었지만 영욱은 대답할 수가 없었다. 그런 마음을 눈치 챘는지 미령은 영욱이 더 이상 난처하지 않게 하려고 어깨에 기대며 말했다.

“마음 쓰지 마세요. 전 지금 이대로도 만족할 수 있으니까요.”

그녀가 위안을 했지만 영욱의 마음은 무겁기만 했다.

“미령씨. 내가 앞으로 얼마나 살 수 있는지 알 수 있어요?”

“그건 곤란해요. 사람이 죽고 사는 건 하늘이 정하는 것인데 설령 알아낸다고 해도 천기를 누설하는 것이라 절대 말 못해요. 안 그래도 이미 한번 했는데.”

미령이 끝에 말했던 것은 로또복권을 두고 한 말이었다. 그러나 영욱은 들은 척도 하지 않고 자기말만 계속했다.

“만약 내가 살 수 있는 세월이 많이 남아있다면 14년은 몰라도 그 반은 줄 수 있을 것 같아요.”

“말만이라도 고마워요. 하지만 또 다시 천기를 누설하면 지금처럼 옆에 있지도 못하게 될 수도 있어요.”

상대가 지은이었다면 과감히 도박을 했겠지만 이미 죽어서 귀신이 된 미령은 그럴 정도는 아니었다. 월요일 오후, 오전에 복권을 돈으로 환전한 영욱은 경미 몰래 아이들을 만나고 있었다.

“엄마한테는 절대 얘기해선 안 돼. 만약 엄마가 알면 그 돈 얼마 가지도 못해. 알았어?”

아이들은 이미 지은 죄 때문인지 얼굴을 숙인 채 대답도 못하고 있었다.

“사람이 그러는 거 아니다. 엄연한 아버지인데 어쩜 한 번도 연락을 안 하냐?”

“죄송해요.”

“지금 당장 아쉬우니까 그런 소리가 나오겠지. 솔직히 다신 너희들 안 보려고 했어.”

아이들은 더 이상 말이 없었고 딸아이는 고개를 숙인 채 훌쩍이기 시작했다.

“너희들에겐 나보다 돈 많은 네 엄마가 더 끌렸겠지. 그러나 이걸 알아야 해. 이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어. 너희들 외가를 보면 충분히 실감이 갈 거다. 아무튼 이렇게 마주하는 건 이번이 마지막이다. 나중에 나 죽었다는 소리 듣더라도 올 필요 없다. 나 역시 그건 바라지 않으니까. 그리고 한 가지 더. 나 곧 결혼한다.”

말을 끝낸 영욱이 일어나는 것을 본 아이들은 그제야 고개를 들었다. 아이들은 최소한 양심은 있었는지 고개만 숙일 뿐 안녕히 가시라는 말도 꺼내지 못했다. 아이들은 영욱이 탄 버스가 떠날 때까지 계속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나 영욱은 창가에 자리를 잡고도 일부러 아이들을 외면했다. 그것은 아이들에게 전에 알고 있던 아버지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하려는 것이었다. 그 사이 절정에 다다른 날씨에 남들은 피서다 뭐다하여 여행을 떠나기 바빴지만 영욱은 그런 세상의 풍경들을 바라보기만 했다. 베란다에서 무심코 바깥 풍경을 바라보던 영욱은 옛날에 지은과 함께 했던 여름휴가를 떠올렸다. 오늘처럼 더웠던 그날, 설악산 계곡에서 지은의 살 냄새를 맡으며 하룻밤을 보냈었다. 늦은 밤 남들 몰래 계곡물에 목욕을 하던 그녀의 하얀 피부가 달빛에 반사되던 광경은 선녀가 나무꾼을 기다리는 모습이었다. 처음엔 순수하게 시작했던 여행이었지만 이러한 광경은 영욱이 성욕을 억제할 수 없게 했다. 갑자기 옷을 벗고 물속으로 따라 들어온 영욱이 당황스러웠지만 이미 마음의 준비가 돼 있었던 지은은 수줍게 눈을 감고 자신의 모든 것을 맡겼던 것이다. 그러나 끝내는 지은에게 상처만 남긴 지난 과거로 퇴색돼 있었다.

‘내가 미친놈이었지.’

영욱이 자책을 하는 순간 이심전심이었을까? 진동음을 듣고 휴대폰을 보니 지은의 전화가 걸려와 있었다.

“날 더운데 어떻게 지내?”

“잘 지내고 있어요. 전무님은 어떻게 지내세요?”

“혼자 사는 사람이 늘 그렇지 뭐.”

“피서 안 가세요?”

“피서? 생략했어. 혼자 가기도 그렇고 해서.”

영욱은 지은이하고 며칠 여행이라도 다녀왔으면 하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그 옛날의 상처를 떠올리게 할 것 같아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런데 뜻밖에도 지은이 그 옛날 기억을 꺼내는 것이다.

“전무님 기억하세요?”

“응? 뭘?”

“옛날에 설악산 갔던 일이요.”

영욱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물론 기억하지.”

“그때 계곡물 정말 시원했어요. 그렇죠?”

“응. 그랬지.”

지은이 앞에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영욱은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이제는 잊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여태껏 기억하고 있는 것을 보면 그만큼 상처가 컸다는 것이다.

“그걸 아직도 기억해?”

“전무님 생각이 나서 전화했는데 갑자기 그게 생각이 나네요.”

“옛날 생각하면 지은이한테 면목이 없어.”

“괜찮아요. 다 지난 일이잖아요.”

“아직도 재혼생각 없어?”

지은은 말이 없었다. 영욱은 어쩌면 지은이 이혼한 자신을 마음에 두고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청혼해 볼까 하는 생각을 했지만 그녀가 정말 그런지 알 수도 없고 지난 일을 생각하면 너무 뻔뻔하다는 생각에 차마 용기를 내지 못했다. 하지만 이번이 아니면 다시는 지은을 잡을 수 없을 것 같은 영욱은 한번 떠보기나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3

  • 작성자
    Lv.99 지리산불곰
    작성일
    11.03.13 15:13
    No. 1

    무척이나 현실스럽네여. 그래서 인지 더 안타까운거 같아여 ㅠㅠ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15 파장
    작성일
    11.03.13 16:30
    No. 2

    참으로 독특한 설정(귀신과의 '흐름'까지;가능 불가능을 떠나서)의 좋은 글, 게다가 계속된 연참 연참...... 정말 감사히 잘 보고 있습니다. 건필!
    (오타:초중반, 그러나 영욱은 들은 ccjr(척?)도 하지 않고/ 아이들은 영욱이 탄 버스가 떠날 때가지 ->까지?)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69 하르딘
    작성일
    11.03.13 17:15
    No. 3

    무협, 환타지만 보다가 색다른 소재의 글을 보는데

    정말 재미있습니다..^^

    찬성: 0 | 반대: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미령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32 미령(美靈)-독자 여러분께 올림 +18 11.04.03 1,340 15 2쪽
» 미령(美靈)-31 +3 11.03.13 1,819 28 8쪽
30 미령(美靈)-30 +5 11.03.13 1,900 23 7쪽
29 미령(美靈)-29 +4 11.03.12 1,831 27 7쪽
28 미령(美靈)-28 +1 11.03.11 2,009 26 8쪽
27 미령(美靈)-27 +4 11.03.11 2,005 23 8쪽
26 미령(美靈)-26 +5 11.03.10 2,002 20 9쪽
25 미령(美靈)-25 +5 11.03.10 2,172 25 7쪽
24 미령(美靈)-24 +6 11.03.09 2,303 23 7쪽
23 미령(美靈)-23 +6 11.03.09 2,226 24 7쪽
22 미령(美靈)-22 +7 11.03.08 2,482 26 7쪽
21 미령(美靈)-21 +8 11.03.08 2,572 25 7쪽
20 미령(美靈)-20 +5 11.03.07 2,577 28 7쪽
19 미령(美靈)-19 11.03.06 2,419 21 7쪽
18 미령(美靈)-18 +2 11.03.06 2,562 25 7쪽
17 미령(美靈)-17 +2 11.03.05 2,590 37 7쪽
16 미령(美靈)-16 +2 11.03.04 2,607 22 7쪽
15 미령(美靈)-15 +2 11.03.03 2,550 22 7쪽
14 미령(美靈)-14 11.03.02 2,724 21 7쪽
13 미령(美靈)-13 11.03.01 2,752 22 7쪽
12 미령(美靈)-12 +1 11.02.28 2,852 22 7쪽
11 미령(美靈)-11 11.02.27 2,676 20 7쪽
10 미령(美靈)-10 11.02.27 2,842 20 7쪽
9 미령(美靈)-9 +1 11.02.26 3,018 20 7쪽
8 미령(美靈)-8 11.02.25 2,924 22 7쪽
7 미령(美靈)-7 11.02.24 3,054 20 7쪽
6 미령(美靈)-6 +5 11.02.23 2,978 21 7쪽
5 미령(美靈)-5 +2 11.02.23 3,040 23 7쪽
4 미령(美靈)-4 +2 11.02.23 3,244 25 7쪽
3 미령(美靈)-3 +4 11.02.22 3,376 27 7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설호(雪虎)' 작가를 후원합니다!

  • 보유 골드: 0 G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