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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호의 서재입니다.

미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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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설호(雪虎)
작품등록일 :
2011.04.03 23:48
최근연재일 :
2011.04.03 23:48
연재수 :
32 회
조회수 :
113,786
추천수 :
1,256
글자수 :
98,359

작성
11.03.11 14:57
조회
2,029
추천
28
글자
8쪽

미령(美靈)-28

DUMMY

그러나 미령은 방법에 대해선 어떤 말도 하지 않았다. 그 대신 아이들이 졸업할 때까지 먹고 살만큼만 도와주라는 조건을 내놓는 것이다.

“그건 미령씨가 상관할 일이 아닌 것 같은데요?”

“답답하군요. 그 사람들이 그동안 어떻게 살았는지 몰라서 그래요?”

경미와 아이들의 과거에 대한 얘기를 하는 미령을 본 영욱은 소름이 끼쳤다. 이것은 미령이 자신의 주변 사람들에 대해 모든 것을 알고 있다는 소리나 마찬가지였다. 미령은 경미와 아이들의 씀씀이가 어떠했다는 것을 알고 미리 충고를 한 것이다.

“아이들은 모르겠는데 전부인은 전혀 달라지지 않아요. 도와줄 때도 절대 부인이 손대지 못하게 해야 해요. 그렇지 않으면 모든 게 수포로 돌아갑니다.”

“알았어요. 그렇게 할 게요.”

“그리고 잊지 않으셨죠? 어떤 것이든 단 한번밖엔 들어드릴 수가 없다는 거요. 아무튼 이해할 수가 없네요. 그런 인간들을 돕겠다는 게.”

미령이 답답해하는 것을 본 영욱은 빙그레 미소만 지을 뿐이었다. 영욱의 그러한 행동은 살아생전에 한 번도 가족의 따뜻함을 경험해 보지 못한 미령에게는 도저히 받아들이기 힘든 것이었다.

“그런데 당장은 불가능해요. 천기를 훔치려면 시간이 좀 걸리거든요.”

영욱이 고개를 끄덕이자 하얀 안개가 흐르듯 감싸더니 정신을 빼앗기 시작했다. 미령의 흐름에 빠져 있는 동안 그녀는 상대로부터 전해오는 느낌과 자신의 느낌을 조화시키고 있었다. 그러나 아이들 소식에 영욱의 마음이 편치 않았던 탓인지 그것이 쉽지 않았던 미령은 결국 흐름을 멈추고 말았다. 잠시 후 영욱이 정신을 차렸을 때 미령은 아직도 축 늘어진 채 옆에 누워 있었다.

“힘들었어요?”

“네.”

“귀신도 컨디션이 나쁜 때가 있나보군요?”

“그게 아니라. 당신 때문 이예요.”

“저 때문이라구요?”

영욱은 이해 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미령으로부터 얘기를 들은 영욱은 그제야 약속했던 대로 최선을 다하지 않았던 것을 사과했다. 혹시 또 화를 내면 어쩌나 했지만 다행히 미령에게서 그런 기색은 찾아 볼 수 없었다. 미령은 여전히 힘이 드는 지 잠든 것처럼 누워 있었다. 그동안 거래를 끝내고 이렇게 오래 있은 적이 없어 그것을 보는 영욱은 어딘지 어색했다. 항상 영욱이 깨어나기 전에 사라졌기 때문에 이런 분위기가 익숙지 않았던 것이다. 한참동안 꼼짝하지 않던 미령이 다시 눈을 뜬 것은 디지털시계의 알람이 네 시를 알릴 때였다. 나무나 어색해 옆에서 바라보기만 하던 영욱은 갑자기 번득이는 그녀의 눈을 보고 하마터면 침대에서 떨어질 뻔했다. 처음 보는 것은 아니지만 아무 생각 없이 있다가 갑자기 눈이 마주치자 섬뜩했던 것이다. 이러는 사이 시계가 다섯 시를 알렸는데도 미령은 갈 생각을 하지 않았다.

“지금 가야 되잖아요?”

“벌서 갔어야죠.”

“그런데 왜 가지 않았어요?”

“사랑의 힘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갑자기 왜 그런 생각을?”

“아까 아이들 생각을 하는 것 보고 그게 진정한 사랑이라는 것을 알았어요. 선생님 대단해요. 이 말을 하고 싶었어요. 저 갈게요.”

생각지도 않았던 말을 들은 영욱은 기분이 이상했다. 그저 쾌락을 위해 자신과 거래하는 줄로만 알았던 미령에게 이런 감정이 있을 것으로는 전혀 생각지 않았던 것이다. 그 사이 창밖의 까맣던 하늘은 서서히 밝아오기 시작했고 미령은 연기가 되어 사라졌다. 미령은 갔지만 영욱은 한참동안 꼼짝도 하지 않았다. 옛날에 남을 헐뜯는 부하들을 볼 때마다 무엇이 됐든 색안경을 쓰고 보기 시작하면 누구도 믿지 못하게 된다고 충고했었다. 그런데 미령이 남기고 간 한마디는 영욱의 양심을 자극하는 것이었다. 그랬던 자신 때문에 미안함을 느낀 영욱은 오늘밤 미령을 만나면 귀신이 아닌 여자로 대해주기로 마음먹었다. 매일 밤 미령과 시간을 보낸 영욱은 아주 쉽게 소설을 이어갔다. 간밤에 보고 느낀 대로 쓰기면 하면 스토리가 저절로 연결됐으니 골머리 썩힐 일도 없었다. 하루 종일 건넌방에 틀어박혀 있던 영욱이 거실로 나온 것은 저녁 시간이 훨씬 지나서였다. 밖은 이미 컴컴해졌고 시계는 여덟시를 알리고 있었다.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나?’

종일 먹은 것이라곤 달걀프라이가 전부였던 영욱은 냉장고부터 뒤졌다. 냉장실엔 마트 식품코너에서 사온 김치와 계란 그리고 언제 사놓았는지 기억에도 없는 햄이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혹시 하고 전기밥솥을 열어보았으나 아침에 미리 해놓질 않아 밥한 톨 없었다. 당장 밥을 하기도 귀찮아 냉동실에 있던 식빵과 햄으로 저녁을 대신한 영욱은 침대에 누워 미령이 올 때까지 뉴스나 보고 있으려고 TV를 켰다. 그런데 한창 뉴스가 진행되던 중에 눈에 익은 장면이 나오는 것이다. 앵커의 멘트가 계속되는 가운데 영욱의 옛날 장인인 경미의 아버지 회사가 자료화면으로 방송되고 있었다. 보도내용은 불경기를 견디지 못한 회사가 오늘 오후 최종부도 처리됐다는 소식이었다. 대기업은 아니었지만 탄탄한 재무구조를 유지하는 회사로 재계에서는 이름 꽤나 있던 회사가 하루아침에 쓰러진 것이다. 뉴스를 보는 영욱은 그럴 줄 알았다는 표정이었다. 영욱이 이러는 것은 처가 식구들 모두 경미와 크게 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한창 떵떵거릴 때 조금이라도 정신을 차렸더라도 저런 꼴은 당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미 남남된 지 오래지만 그래도 한때 가족이었다는 생각에 한번 전화라도 해 볼까 했지만 그 집 사람들 성격에 고마워할 리가 없었다. 조상 덕에 부자가 됐으면 겸손해야 했지만 남들처럼 회장님 소리가 듣고 싶었던 장인은 빚더미에 앉은 회사를 사들이고 말았다. 백수건달인 처남을 사장에 앉히고 자신이 회장이 되긴 했으나 장부라곤 가계부 밖에 본 적이 없었고 처남은 그런 것과는 거리가 멀었던 것이다. 하는 수없이 회계사 하나를 데려와 경영을 맡긴 장인과 처남은 회사는 팽개친 채 인생을 즐길 생각뿐이었다. 그런데 운이 좋았는지 날로 사업이 번창하면서 이번엔 물 퍼내듯 돈을 뿌리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여자한테 빠지더니 결국 회사 돈까지 손을 대고만 것이다.

‘결국 저렇게 되고 말았군. 그 여자 얘기가 바로 저거였군.’

그 여자란 어제 전화했던 경미의 초등학교 동창을 말하는 것이다. 지금쯤 기울어진 집안 때문에 풀이 죽어있을 아이들이 생각난 영욱은 미령에게 부탁했던 일을 떠올렸다. 소설도 중요하지만 아이들 생계를 해결하는 것이 우선이었다. 뉴스가 끝나고 방에 불을 끈 영욱은 침대에 엎드려 한심하기 짝이 없는 처가식구들 생각을 했다. 그토록 도도하던 그들이 지금은 어떤 모습일까? 보나마나 지금쯤 돈을 구하려고 여기저기 구걸하듯 사정하고 있을 것이다. 영욱은 통쾌하면서도 한편으로는 한때 그런 사람들과 같은 시공에 존재했던 자신의 지난날을 회상하며 잠이 들었다. 그 사이 시계는 자정을 넘기고 있었고 잠결에 스산한 기운이 등 위를 스치는 느낌에 잠을 깬 영욱은 조용히 앉아있는 미령을 발견했다. 이제는 그녀의 모습에 적응이 됐는지 섬뜩함은 느껴지지 않았다. 대신 긴 머리가 흐느적대는 미령의 눈매는 영욱의 속을 꿰뚫고 있었다.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해요?”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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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1

  • 작성자
    Lv.15 파장
    작성일
    11.03.11 15:33
    No. 1

    연참에 감사 드립니다.
    (디지털 시계가 네시 반을 알리고... 시계가 네시를 알렸는데도 미령은 갈 생각을 하지 않았다. -> 다섯 시 아닐까요? / 회사가 하루 아침에 쓰려(러?)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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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미령(美靈)-13 11.03.01 2,766 24 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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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미령(美靈)-11 11.02.27 2,689 22 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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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미령(美靈)-9 +1 11.02.26 3,034 22 7쪽
8 미령(美靈)-8 11.02.25 2,944 24 7쪽
7 미령(美靈)-7 11.02.24 3,072 22 7쪽
6 미령(美靈)-6 +5 11.02.23 2,990 23 7쪽
5 미령(美靈)-5 +2 11.02.23 3,057 25 7쪽
4 미령(美靈)-4 +2 11.02.23 3,261 27 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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