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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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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설호(雪虎)
작품등록일 :
2011.04.03 23:48
최근연재일 :
2011.04.03 23:48
연재수 :
32 회
조회수 :
113,792
추천수 :
1,256
글자수 :
98,359

작성
11.03.13 03:24
조회
1,919
추천
25
글자
7쪽

미령(美靈)-30

DUMMY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감히 꿈도 꾸지 못할 일이지만 이미 귀신이라는 존재에 익숙해져서인지 술기운 도는 영욱은 덤덤하게 바라보기만 했다. 영욱이 이렇게 하는 것은 미령이 단지에서 어떻게 나오는지 궁금해서였다. 그러나 그런 용기도 잠시, 자정이 가까워지자 술기운이 약해지면서 가슴이 두근거렸다.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기다리기를 삼십분, 이미 자정은 지났지만 미령은 나오지 않았다. 어제 너무 힘들었기 때문인가 했지만 미령이 나오지 않는 것은 아직 켜져 있는 거실의 샹들리에 때문이었다. 그것도 모르고 오늘은 미령이 오지 않는 것으로 생각했던 영욱은 스위치를 내리는 순간 머리털이 곤두서는 느낌이 들었다. 달빛만이 어스레한 거실에 단지에서 새어나온 안개가 서서히 깔리는 것이다. 곧이어 서서히 뭉쳐진 안개가 희끄무레한 형체로 변하면서 그 속에 미령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단지에서 나온 미령은 이상했는지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여기는?”

“거 거실 이예요.”

“알아요. 그런데 어떻게 여기에 있는 거죠?”

미령의 눈치를 살피는 영욱은 조심스러운 말투로 대답을 했다.

“제가 단지를 갖고 왔어요.”

“왜요?”

“그냥 좀 궁금해서.”

“그럼 다 보셨겠네요?”

“네.”

“왜 그랬어요?”

순간, 영욱은 가슴이 철렁했다. 미령의 말이 하지 말아야 할 것을 했다는 것으로 들린 것이다.

“미안해요. 내가 해선 안 될 일 한 거죠?”

“그런 건 아닌데 솔직히 보여드리고 싶지 않았거든요.”

다행히 미령은 화를 내진 않았다. 잠시 긴장했던 탓일까? 갑자기 다리가 풀린 영욱은 소파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 모습이 우스웠는지 미령은 살포시 미소를 지었다.

“왜 웃어요?”

“제가 선생님을 어떻게 할 줄 알았나 보죠?”

그제야 영욱의 얼굴이 펴지기 시작했다.

“솔직히 긴장했어요.”

영욱의 투정 섞인 말에 미령은 큰소리로 웃어댔다. 미령이 그렇게 웃는 것은 처음이었다. 미령은 재미있어 했지만 영욱에게는 소름끼치는 소리였다. 한참을 웃어대던 미령은 이내 표정을 바꾸더니 심각하게 말했다.

“앞으로는 절대 갖고 오지 마세요. 조금 전엔 불빛이었으니까 괜찮았지만 만약 단지가 햇빛에 노출되면 전 지금의 모습을 유지할 수가 없어요.”

“그 얘긴?”

“저처럼 한을 지니고 있는 귀신은 그렇게 되면 사람을 해칠 수밖에 없게 돼요. 햇빛을 피할 수 있는 방법은 다른 사람 몸에 들어가는 것뿐인데 그렇게 되면 그 사람은 인생을 망치게 되겠죠.”

섬뜩한 얘기였다. 단순히 취중에 한번 해 보았던 것인데 자칫했으면 엄청난 결과를 가져왔을 수도 있는 일이었다.

“그런데 어디서 술 냄새가 나는 것 같은데?”

“내가 마셨어요.”

미령은 걱정스런 표정으로 물었다.

“무슨 근심거리라도 있어요?”

“근심은요.”

영욱은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내뱉고는 안방으로 들어갔다. 그 사이 미령은 이미 안방에 들어와 있었다. 그런데 영욱이 들어온 것을 본 미령이 갑자기 메모지를 준비하라는 것이다.

“갑자기 메모지는 왜요?”

영욱이 의아해 하면서 물었지만 미령은 하라면 하지 무슨 말이 많으냐는 듯 바라보기만 했다. 영욱이 침대 옆 탁자에서 메모지를 꺼내들자 미령은 숫자들을 읊기 시작했다.

“5번 9번 15번 19번 22번 36번”

미령이 부르는 대로 받아 적은 영욱은 고개를 갸우뚱했다.

“이게 뭐예요?”

“이번 주 로또 번호예요.”

“로또번호요?”

서민이라면 누가보다도 눈치 챌만한 것을 묻는 영욱이 답답했는지 미령은 한심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래요. 이번 주말에 추첨할 로또복권 당첨번호예요.”

“이게 정말 나온다는 말 이예요?”

“그것 빼내느라 좀 힘들었어요. 부탁을 들어주긴 했지만 아무튼 이해가 안돼요. 그럴 가치가 있는 건지 모르겠네요.”

“말했잖아요. 가족이란 게 그런 거라고. 그리고 미령씨도 이해한 줄 알았는데요?”

“물론 그게 사랑이라는 건 알겠는데 제가 보기엔 책임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그게 맞을지도 모르죠. 그 아이들 스스로 세상에 나온 건 아니니까요.”

영욱이 숫자가 적힌 메모지를 지갑에 넣는 것을 본 미령은 흐름을 시작했다. 미령이 가르쳐 준 번호가 당첨될지는 모르지만 아무튼 걱정을 덜게 돼 마음이 편해진 영욱은 흐름이 끝나도록 의식을 놓지 않았다. 그런데도 미령이 불만스러워 하지 않았던 것은 영욱이 그만큼 진심으로 응했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무슨 생각을 한 건지 영욱이 엉뚱한 질문을 하는 것이다.

“미령씨 만약에 말이죠. 내가 재혼하고 나서도 같이 산다면 어떻겠어요?”

“저야 좋지만. 그런데 그건 왜 묻는 거죠?”

“그냥요.”

“재혼하시는 분이 동의하면 모를까 불가능하죠. 사람도 아닌데.”

그러나 미령의 얼굴은 내심 그랬으면 하는 표정이었다. 영욱은 문득 자신이 지금 무슨 소릴 하고 있나 하는 생각을 했다. 영욱은 자칫 하다가는 이루지 못할 희망을 갖게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슬쩍 화제를 바꿨다.

“어제 무척 힘들어했는데 괜찮았어요?”

“이제 다 회복됐어요.”

잠시 후 한차례 흐름이 더 이루진 뒤 난 미령은 홀연히 사라졌다. 미령이 가고 영욱은 단지를 원래 있던 곳에 갖다 두고 잠이 들었다. 몇 시간 뒤 느지막이 잠에서 깨어난 영욱은 아침을 먹고 뒷동네 슈퍼에서 로또복권을 샀다. 영욱은 당첨금이 얼마가 되든지 간에 반은 자신이 갖고 나머지만 아이들에게 줄 생각을 했다. 처음엔 아이들에게 모두 줘버릴까도 생각했지만 미령이 시킨 것도 있고 아직 정해진 것은 아니지만 지은과 결혼하려면 자금이 필요했던 것이다. 영욱은 영수증을 지갑에 넣고 슈퍼를 나오다가 문득 미령이 가르쳐 준 번호로 여러 장을 살까 하는 생각을 했다. 견물생심(見物生心)이라고 했던가? 아이들 생각에 순수한 마음으로 복권을 샀던 영욱도 잠시 욕심에 유혹된 것이다. 그러나 어쩐지 찔리는 구석이 느껴진 영욱은 이내 집으로 발길을 돌렸다. 드디어 토요일 저녁, TV엔 영욱이 들고 있는 영수증에 찍혀진 번호 6개가 화면에 표시되고 있었다. 한때 돈 많았던 처가 덕에 26억이란 돈을 만져보지 못한 것은 아니지만 단돈 천원으로 이런 거액을 벌기는 처음이었다. 세금을 제외하고도 거의 20억이나 되는 돈이었다.

‘자식이란 게 뭔지.’

마음이 편치 않았던 영욱은 아버지 역할을 하게 된 것으로 불편한 심기를 가리기로 했다. 그 사이 자정이 가까워오자 TV를 끈 영욱은 작은방에 있던 단지를 안방으로 가져왔다. 오늘밤은 미령이 기진맥진 할 때까지 사랑해 주면서 아이들에 대한 생각을 잊으려는 것이다. 단지를 갖고 온 것은 기진맥진한 미령이 단지에 들어갈 때 힘들지 않게 하는 배려였다. 잠시 후 자정이 지나면서 단지에서 안개가 새어나오더니 서서히 미령의 모습을 갖추고 있었다.

마치 기다란 끈이 새어나오듯 하던 안개가 모두 빠져나오자 주변을 두리번거린 미령은 어리둥절한 표정이었다.

“여긴 안방이잖아요?”

“맞아요.”

미령은 요즘 이 사람이 왜 이러나 하는 표정으로 영욱을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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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미령(美靈)-31 +3 11.03.13 1,840 30 8쪽
» 미령(美靈)-30 +5 11.03.13 1,920 25 7쪽
29 미령(美靈)-29 +4 11.03.12 1,851 28 7쪽
28 미령(美靈)-28 +1 11.03.11 2,030 28 8쪽
27 미령(美靈)-27 +4 11.03.11 2,023 25 8쪽
26 미령(美靈)-26 +5 11.03.10 2,018 22 9쪽
25 미령(美靈)-25 +5 11.03.10 2,189 27 7쪽
24 미령(美靈)-24 +6 11.03.09 2,319 25 7쪽
23 미령(美靈)-23 +6 11.03.09 2,247 26 7쪽
22 미령(美靈)-22 +7 11.03.08 2,500 28 7쪽
21 미령(美靈)-21 +8 11.03.08 2,601 27 7쪽
20 미령(美靈)-20 +5 11.03.07 2,595 30 7쪽
19 미령(美靈)-19 11.03.06 2,438 23 7쪽
18 미령(美靈)-18 +2 11.03.06 2,578 27 7쪽
17 미령(美靈)-17 +2 11.03.05 2,609 39 7쪽
16 미령(美靈)-16 +2 11.03.04 2,620 24 7쪽
15 미령(美靈)-15 +2 11.03.03 2,569 24 7쪽
14 미령(美靈)-14 11.03.02 2,737 23 7쪽
13 미령(美靈)-13 11.03.01 2,766 24 7쪽
12 미령(美靈)-12 +1 11.02.28 2,867 24 7쪽
11 미령(美靈)-11 11.02.27 2,689 22 7쪽
10 미령(美靈)-10 11.02.27 2,861 23 7쪽
9 미령(美靈)-9 +1 11.02.26 3,034 22 7쪽
8 미령(美靈)-8 11.02.25 2,945 24 7쪽
7 미령(美靈)-7 11.02.24 3,072 22 7쪽
6 미령(美靈)-6 +5 11.02.23 2,991 23 7쪽
5 미령(美靈)-5 +2 11.02.23 3,057 25 7쪽
4 미령(美靈)-4 +2 11.02.23 3,261 27 7쪽
3 미령(美靈)-3 +4 11.02.22 3,393 29 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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