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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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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설호(雪虎)
작품등록일 :
2011.04.03 23:48
최근연재일 :
2011.04.03 23:48
연재수 :
32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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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3,794
추천수 :
1,256
글자수 :
98,359

작성
11.03.02 18:52
조회
2,737
추천
23
글자
7쪽

미령(美靈)-14

DUMMY

‘이 여자가 오지영인가?’

영욱은 눈을 찡그렸다. 전에는 돋보기 없이도 보였던 것들이 그동안 정신적으로 힘들었던 탓에 노화가 당겨졌는지 제대로 보이질 않았다. 안방에서 돋보기를 찾아 쓰고 독사진들을 하나하나 들여다보니 좀 이상한 것이 있었다. 필름에 이상이 있었는지 아니면 습기 때문인지 심하게 손상돼 사진 속 인물을 알아보기가 힘들었다. 창고는 전 주인이 한 번도 손을 대지 않았는지 구석엔 곰팡이까지 끼어 있어 한참을 닦아내야 했다. 거의 한 시간이나 걸려 베란다 청소를 끝내고 소파에 앉아 담배를 피던 영욱은 문득 봉투에 있던 사진을 꺼냈다. 사진은 청소하는 사이 햇빛에 놓아두어서인지 바짝 말라있었다. 그런데 다시 사진을 꺼내 본 영욱은 여자가 입고 있는 의상에 눈길이 갔다. 사진 속 여자가 입고 있는 이브닝드레스가 언젠가 본 듯한 느낌을 준 것이다. 혹시 경미가 입었던 것과 같은 것이 아닐까 생각했지만 그건 아니었다. 그토록 오래 살았지만 경미는 신혼 때조차도 이브닝드레스는 입은 적이 없었다. 영욱은 손상이 된 사진들을 쓰레기통에 넣고 청소를 마무리했다. 저녁을 먹고 영욱은 집안 여기저기를 순찰하듯 점검했다. 현관문은 물론 베란다 창문까지 꼼꼼히 잠그고 그동안 주변에서 일어났던 일들을 생각했다. 오지영이라는 여자와 간병인의 사망, 그리고 배달한 물건을 제대로 전하지도 않고 도망쳐 버린 슈퍼 배달원, 불경기에 단골 하나라도 잡아야 할 중국집에서 배달을 꺼린 점, 거액을 들여 수리까지 하고도 반년도 못돼 싼값에 집을 팔아버린 전 주인의 행동 등, 모든 것이 상식적으로 이해되지 않는 의문투성이였다.

‘정말 그 할머니들 말대로 귀신이라도 나왔던 건가?’

그러나 한편으로는 이혼과 함께 찾아온 것도 있었다. 자신이 독신이 된 것처럼 사고로 가족을 잃고 홀로 된 지은의 소식, 한 번도 얼굴 본 적은 없지만 영선이라는 여자와의 만남 그리고 LCD TV의 경품 당첨 등 음지가 있었던 만큼 양지도 있었다. 지난 며칠은 영욱이 바랬던 것처럼 평범하게 지나갔다. 그러나 의혹은 여전히 풀리지 않았고 늘 가슴 한 구석에 그것이 자리 잡고 있었지만 새로운 일을 찾아야 하는 영욱은 어느새 오랜 과거 속의 일로 접어두고 있었다. 하지만 계속되는 불경기에 선뜻 덤빌만한 것이 없어 의미없는 날들만 보내고 있었다.

‘언제까지 이렇게 살 수는 없는데.’

물론 지금처럼 살아도 당장은 크게 걱정할 일은 없었지만 경미와 아이들에게 떳떳한 모습을 보여주고 그들로 하여금 후회하게 만들려면 뭔가 해야만 했다. 답답해진 영욱은 인터넷까지 검색했지만 졸음 때문에 쏟아지는 잠을 이기지 못했다.

“지금 뭐하는 겁니까?”

“선생님 저녁 차리잖아요?”

“누가 저녁 차려 달라고 했어요?”

“너무 그러지 말아요. 이것도 인연인데 이왕지사 이렇게 된 거 우리 좋게 지내봐요.”

한편으로는 그녀의 말이 옳았다. 법적으로 공동 명의로 되어 있으니 무조건 쫓아 낼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저녁을 차리는 여자는 칠흑 같은 긴 머리를 갖고 있었다. 게다가 몸매가 늘씬하여 뒷모습이 말 그대로 환상적이었다.

“좋아요. 할 수 없군요. 난 안방을 쓸 테니 그쪽은 건넌방을 쓰는 겁니다. 어때요?”

“전 여기 작은 방이면 돼요.”

“좋을 대로 해요.”

여자는 뒤로 돌아보지 않은 채 싱크대에서 칼질을 하며 대답했다.

“그런데 앞으로 뭐라고 부를까요?”

“그냥 편한 대로 하세요.”

“그럼 미스오라고 부르면 되겠군요?”

“전 영욱씨라고 할까요?”

“애인사이도 아닌데 그건 좀 민망하군요.”

“애인하죠. 뭐.”

영욱은 너무나 뻔뻔스런 여자의 태도에 기가 막혔다.

“뭐요? 말이 되는 얘기를 해요.”

“뭐 어때요? 어차피 독신끼리.”

“다 그만두고. 그냥.”

하지만 영욱은 마땅한 자신의 호칭이 생각나질 않았다.

“그럼 선생님이라고 할게요. 좋죠?”

“뭐. 딱히 마음에 안 들지만 좋을 대로 해요.”

그런데 대화하는 동안 여자는 한 번도 영욱을 바라본 적이 없었다. 사람과 대화할 때는 최소한 한번쯤은 돌아보는 것이 예의였다.

“이것 봐요. 사람이 말을 하면 좀 돌아봐요. 그런 예의도 없소?”

그래도 여자는 여전히 등을 보인 채 자기 할 일을 하며 대답을 했다.

“보시면 실망하실 텐데요?”

“결혼 할 것도 아닌데 그럴 일 없으니 걱정 말아요.”

“정말이죠?”

그 순간 머리카락을 날리며 돌아선 여자의 얼굴은 영욱의 머리카락을 곤두서게 만들었다.

“아!”

침대가 흥건히 젖을 정도로 악몽을 꾸고 난 영욱은 한숨을 쉬며 놀란 가슴을 쓸어내렸다.

“후유, 꿈이었구나.”

정신을 차리고 갈증이나 물을 마시러 가려던 영욱은 컴퓨터 화면을 쳐다보았다. 거기엔 영선의 메시지가 덩그러니 올라와 있었다. 그것을 본 영욱은 답장을 보내고 기다렸으나 영선의 대답은 없었다. 시계를 보니 이미 다섯 시를 넘긴 시각이었다.

주방에서 생수를 들이킨 영욱은 꿈에서 보았던 장면을 생각했다.

‘내가 뭘 보고 그렇게 놀랐던 거지?’

그런데 분명 뭔가 보고 놀랐던 것인데 그것이 무엇이었는지 전혀 생각나질 않는 것이다. 그때 현관 밖에서 신문 던지는 소리가 들렸다.

‘신문이 왔나?’

영욱이 현관문을 열고 신문을 집어 드는 순간 마침 옆집에서 나오던 남자와 눈이 마주쳤다. 남자는 새벽 운동을 가려는지 추리닝 차림이었다. 남자와 눈이 마주치자 영욱은 가볍게 목례를 했다.

“새로 이사 오셨습니까?”

“네.”

“아이고 반갑습니다. 저도 이사 온 지 얼마 안 됩니다.”

“아. 네. 저도 반갑습니다. 운동가시나 보군요?”

“네. 아침에 조깅 좀 하려구요. 그럼.”

“네. 다녀오십시오.”

신문을 들고 안으로 들어온 영욱은 돌이켜 생각해 보니 이웃이라곤 조금 전 보았던 남자가 처음이었다. 최근 여러 가지 의혹에 사로잡힌 영욱에겐 그것 역시 이상했다. 이사 온 뒤 낮에 한 번도 이웃을 본 적이 없었다. 결국 또 하나의 의혹을 갖게 된 셈이었다. 갑자기 그것이 궁금해진 영욱은 추리닝을 챙겨 입고 경비실로 내려갔다.

“아이구. 어서 오십시오.”

“네. 수고 많으시죠?”

“수고랄 거야 있습니까? 그런데 사시긴 괜찮으십니까?”

“네.”

“아. 네. 다행입니다.”

“다행이라뇨?”

“아, 아닙니다. 그냥 여쭤봤습니다. 그런데 아침 일찍 여긴 무슨 일로?”

“한 가지 물어볼 것이 있어서요. 저하고 같은 층엔 어떤 분들이 사십니까? 낮에 한 번도 이웃을 본 적이 없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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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미령(美靈)-23 +6 11.03.09 2,247 26 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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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미령(美靈)-21 +8 11.03.08 2,601 27 7쪽
20 미령(美靈)-20 +5 11.03.07 2,595 30 7쪽
19 미령(美靈)-19 11.03.06 2,438 23 7쪽
18 미령(美靈)-18 +2 11.03.06 2,579 27 7쪽
17 미령(美靈)-17 +2 11.03.05 2,609 39 7쪽
16 미령(美靈)-16 +2 11.03.04 2,620 24 7쪽
15 미령(美靈)-15 +2 11.03.03 2,569 24 7쪽
» 미령(美靈)-14 11.03.02 2,738 23 7쪽
13 미령(美靈)-13 11.03.01 2,766 24 7쪽
12 미령(美靈)-12 +1 11.02.28 2,867 24 7쪽
11 미령(美靈)-11 11.02.27 2,689 22 7쪽
10 미령(美靈)-10 11.02.27 2,861 23 7쪽
9 미령(美靈)-9 +1 11.02.26 3,034 22 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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