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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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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설호(雪虎)
작품등록일 :
2011.04.03 23:48
최근연재일 :
2011.04.03 23:48
연재수 :
32 회
조회수 :
113,787
추천수 :
1,256
글자수 :
98,359

작성
11.02.27 01:23
조회
2,860
추천
23
글자
7쪽

미령(美靈)-10

DUMMY

최근 며칠간 집안에서는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런 날이 계속되면서 영욱은 겪었던 일들이 처음 이사하고 나서 적응이 안 돼 자신이 착각한 것이라는 쪽으로 생각이 기울고 있었다. 그렇게 며칠이 지난 어느 날 저녁 영욱은 영선이라는 여자와 두 번째 대화에 빠지고 있었다. 영욱이 컴퓨터로 인터넷을 하고 있는데 영선이 말을 걸어 온 것이다. 실은 인터넷을 하고 있으면 그녀가 말을 걸어올 것이라는 기대를 하던 중이었다. 다시 시작된 영선과의 채팅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계속됐다.

-우리 이러지 말고 이웃끼리 만나서 커피 한잔 하는 것 어때요?

-낮에요?

-그렇죠.

-저도 그러고 싶지만 그럴 수가 없답니다. ^ ^

-무슨 사정이 있나요?

-전 밖에 나갈 수가 없어요.

영욱은 여자가 장애가 있거나 외모 상에 문제가 있는 것으로 생각됐다.

-혹시 장애가 있으신가요?

-그게 좀. 아무튼 밖에 못 나가요. 더군다나 낮엔 더욱 그렇죠.

-그럼 늘 집에만 계시나요?

-네.

-답답하지 않으세요?

-이제는 적응돼서 괜찮아요.

-가족이 없다고 하셨죠?

-네. 참, 님도 가족이 없다고 했었나요?

가족이 없는 것이 아니었지만 차마 이혼이라는 단어를 올릴 수가 없어 잠시 망설이던 영욱은 슬쩍 영선의 마음을 떠볼 겸 털어놓기로 했다.

-그런 건 아닌데 실은 이혼했어요.

-그럼 아이들은요?

-제 엄마하고 살죠.

-그렇군요.

영선의 반응이 지극히 평범한 것이어서 달리 할 말이 없어지자 대화는 잠시 침묵이 이어졌다. 영욱은 공연히 꺼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대로 영선과의 인연이 끊기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에 영욱은 대화를 다른 방향으로 이끌려고 했다. 그러나 곧이어 나온 영선의 말은 대화를 계속하려던 영욱의 계획을 여지없이 무너뜨리는 것이었다.

-어머, 죄송해요. 벌써 시간이 됐네요.

-시간이요? 어디 가세요?

-그런 건 아닌데 아무튼요. 그럼 이만.

여자는 영욱의 대답도 듣지 않고 접속을 끊었다. 서운한 마음에 컴퓨터를 끄고 시계를 보니 새벽 다섯 시였다.

‘꼭 이 시간만 되면 가네. 아이고. 나도 좀 자야겠다.’

여자와 대화만 했다 하면 날을 새는 통에 그날은 하루 종일 잠을 자야 했다. 잠을 자려고 침대에 누운 영욱은 여자에 대한 생각을 했다. 아직 몇 번 접하지 못했지만 어느새 여자가 궁금해지기 시작한 것이다.

‘도대체 어떤 여자일까?’

영욱은 바깥출입을 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면 분명 신체적으로 문제가 있을 것이라는 짐작을 했다.

‘아무려면 어때?’

옛날엔 장애가 있는 사람들은 쳐다보지도 않았다. 하지만 지금의 영욱은 그런 것까지도 수용할 것 같았다. 인생에서 낙오했다는 생각에 자신의 모습이 초라하게 느껴진 것이다. 몇 시간을 늘어지게 자고 난 영욱은 머리맡에 있는 디지털시계를 쳐다보았다. 시간은 오후 5시를 넘고 있었다.

‘그럼 내가 12시간을 잤단 말야?’

어차피 하루가 다 지나간 마당에 좀 더 누워 있다가 저녁이나 먹어야겠다고 생각한 영욱은 TV를 켰다. 여기저기 채널을 바꾸어 보았지만 정규방송은 아직 시간이 일러서인지 볼만한 것이 없어 세수를 할까 했으나 혼자 사는 집에 볼 사람도 없고 갑자기 귀찮은 생각이 들어 그만두기로 마음먹었다. 예전 같으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지만 어느새 혼자만의 생활에 익숙해져 있었던 것이다. 저녁을 준비하려던 영욱은 그것마저도 귀찮아지자 중국집에 전화를 했다.

“중국집이죠?”

“네. 그렇습니다.”

“여기 정식하나 갖다 주세요.”

“네. 알겠습니다. 주소가 어떻게 되십니까?”

“131동 1116호입니다.”

“네?”

“131동 1116호입니다.”

“아, 네. 잠깐만요.”

수화기에선 자기들끼리 뭐라고 얘기는 것이 들렸지만 정확히 알아들을 수는 없었다. 그런데 잠시 후 돌아온 대답은 황당하기 작이 없었다.

“손님 죄송합니다. 지금 저희 배달원이 병원에 가서 지금은 배달이 힘들겠습니다.”

“아, 네. 알겠습니다.”

정말 웃기는 집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배가 부른 모양이군.’

영욱은 그동안 모아 놓은 광고지에서 다른 중국집 광고지를 찾아 전화를 했다.

“중국집이죠?”

“네. 그렇습니다.”

“여기 131동 1116호인데 정식 하나만 갖다 주시겠습니까?”

“네? 죄송하지만 어디시라고 했죠?”

“131동 1116호입니다.”

“아, 네. 그런데 거긴 좀.”

“네?”

“죄송합니다. 손님. 저희 배달원들이 거긴 안 가려고 해서요.”

“그게 무슨 말입니까?”

“죄송합니다.“

“이유가 뭐죠?”

“저도 잘 모르는데 거기 배달가라고 하면 다들 그만 두겠다고 해서 말이죠. 죄송합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나 참. 이상한 사람들 다 보겠네. 알았어요. 그만 두세요.”

“죄송합니다.”

영욱은 세 군데나 더 전화를 했지만 모두 비슷한 대답뿐이었다.

‘왜들 그러지?’

결국 집에 있는 것으로 저녁을 해결할 수밖에 없었다. 설거지를 끝내고 담배를 피우려던 영욱은 문득 지난번 슈퍼에서 음료수를 갖다 놓은 일을 생각했다. 보통 물건을 전달해 주고 가는 것이 정상적인 것인데 음료수 박스만 달랑 갖다 놓고 급히 돌아간 것을 보면 그 사람도 중국집 배달원들처럼 배달오기를 꺼렸던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비약된 것일 수도 있었지만 예전에 TV 납량특집으로 방영된 프로에 이와 비슷한 장면이 나왔던 것이 생각나자 갑자기 오싹해지는 것을 느꼈다.

‘세상에 귀신이 어디 있어.’

영욱은 애써 두려움을 부정하고 샤워를 했다. 샤워를 끝낸 영욱은 입었던 팬티를 빨래바구니에 던져 놓고 욕실에서 나왔다. 그런데 옷장에 넣어둔 팬티를 꺼내려던 영욱은 고개를 갸우뚱했다. 침대위에 새 팬티 하나가 곱게 접혀있는 것이다. 그 순간, 샤워를 하는 동안 가셨던 오싹함이 또 다시 엄습하기 시작했다. 갑자기 방안이 서늘해지는 것을 느끼며 몇 번을 생각했지만 새 팬티를 꺼낸 기억은 전혀 없었다.

‘도대체 어떻게 된 거야? 입던 팬티였나?’

평소 철저한 정리정돈 습관 때문에 입었던 팬티를 그렇게 접어놓았을 것으로 생각하고 옷장에서 다른 팬티를 꺼내 입고 침대 위에 있던 팬티를 빨래바구니에 넣었다. 하지만 저녁 내내 TV를 보며 시간을 보냈지만 찜찜한 생각은 떨쳐 버릴 수가 없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입고 있던 팬티는 욕실에서 벗어 빨래바구니에 넣은 것이 분명했다. 그날 밤 도저히 맨 정신으론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마침 오랜 전 거래처에서 선물 받은 양주가 생각난 영욱은 몇 잔을 거푸 들이키고 술기운에 몸을 맡겼다.

‘이게 무슨 소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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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미령(美靈)-23 +6 11.03.09 2,246 26 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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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미령(美靈)-9 +1 11.02.26 3,034 22 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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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미령(美靈)-7 11.02.24 3,072 22 7쪽
6 미령(美靈)-6 +5 11.02.23 2,990 23 7쪽
5 미령(美靈)-5 +2 11.02.23 3,057 25 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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