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7. 불협화음
파견 직원 정준호는 예상보다 빨리 팀에 적응했다. 처음엔 그의 빈틈없는 행동에 경계심을 가졌던 팀원들도 식구로 대하기 시작했고 저녁 때 자신들 모임에 끼워주기까지 했다. 하지만 주 4일은 청육에서 근무하고 마지막 금요일은 ‘코넷’에 출근해 주간보고를 해야 했기 때문에 불금을 같이 즐기지는 못했다.
“정준호씨. 이것 좀 손봐줄 수 있어요?”
“그럼요.”
공구를 잘 다루고 전자공학 지식까지 갖춘 그는 가끔 컴퓨터에 이상이 생긴 팀원들의 부탁도 마다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런 일이 계속되면서 생각지 않았던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그런데 그 사단의 중심에 늘 미호가 있는 것이다.
“오대리님 전 네트워크 관리하러 왔지. 이런 것 하려고 온 게 아닙니다.”
“정준호씨. 아무리 파견이라고 해도 여기 근무하면 정보관리팀 직원 아닌가요?”
“대리님 말씀도 맞습니다. 하지만 제 일과 관련 없는 것까지 시키시는 건 너무 하지 않습니까?”
“정준호씨 무슨 일이야?”
그동안 자주는 아니지만 미호는 정준호에게 집에서 쓰던 전자제품 수리까지 부탁했던 것이다. 물론 미호도 처음부터 이랬던 것은 아니다. 그런데 사람이 한번 맛을 보면 습관이 된다고 했던가? A/S를 받았으면 돈이 들어갔을 일이 정준호 덕에 절약이 되자 어느새 당연한 것으로 여기게 된 것이다.
“오대리님. 정준호씨가 비록 정보관리팀 직원이긴 하나 이 사람 소속은 ‘코넷’입니다. 이 사람이 업무 외적인 지시까지 받을 이유는 없습니다.”
“알았어요. 을 주제에 감히 갑의 말을 씹어?”
이렇게 되면 더는 보고 있을 수만은 없다. 결국 그동안 속에 쌓였던 화가 폭발하면서 미호와 정면으로 붙고 말았다. 미호의 성격을 모르지 않는 팀원들은 이제 큰일 났다 싶은 표정이다. 그런데 늘 돌부처 같던 사람이 돌변하면 이렇게 되는 건가?
“그동안 오대리님이 우리 정준호씨한테 함부로 하는 것 볼 때마다 기분이 어땠는지 아십니까? 생각 같아선 싸대기를 올려붙이고 싶었는데 오대리님 체면 생각해서 참았던 거예요. 장준호씨는 내 부하 직원입니다. 할 얘기 있으면 저한테 하세요. 이 사무실에 대리가 오대리님 뿐입니까?”
생전 처음 당하는 반격에 당황한 미호는 반박도 못하고 자리로 돌아갔다. 예기치 않은 일로 사무실엔 싸늘한 기운이 돌았고 마침 외출에서 돌아온 강팀장까지 머쓱해할 정도다. 그러나 강팀장은 모른 척했고 팀에 다시는 봄이 오지 않을 것 같은 시간들이 이어졌다.
“대리님. 저녁에 시간 좀 내주시겠습니까?”
그렇지 않아도 이번 일로 팀원들과도 소원해진 정준호를 위해 단합의 시간을 가지려던 참이었다. 그러나 할 얘기가 있다면서 둘만의 시간을 원하는 정준호 때문에 단합의 장은 다음으로 미뤘다.
“제가 여기 있게 된 것 궁금하지 않으세요?”
“사실 궁금했어. 하지만 팀장님이 결정한 일이고 해서 신경 쓰지 않았지. 왜? 내가 모르는 일이 있나?”
“원래 저희 ‘코넷’은 직원을 파견하지 않습니다. 아시다시피 원격으로 관리가 가능하기 때문에 Physical한 Trouble이 아니면 직원을 보내지 않습니다.”
그런데 윤팀장이 부임하면서 대형 고객사에 상주 직원 파견 제도가 생겼고 그 첫 번째가 정준호였던 것이다. 기존의 회선사용료만으론 성이 안찼던 회사 입장에선 직원 파견에 따른 수당이 추가되니 솔깃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우리 말고 다른 회사에 파견된 직원이 또 있습니까?”
“주로 대형 고객사들입니다. 윤팀장님이 수완이 좋은 것 같아요. 저희 고객사 중 30%에 직원을 상주시켰으니까요.”
“대단한 분이네요.”
“아마 ‘코넷’ 역사상 처음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정준호의 얘기를 듣는 동안 또 다른 사실을 알게 됐다. 윤태호 팀장의 인맥이 상상을 넘는다는 사실이다. 확인된 것은 아니지만 공직에 있었다는 소문이 있는 윤팀장이 오고 나서 매년 시달리던 세무감사가 사라지고 수년 째 계속되던 송사까지 해결되더라는 것이다.
“그러면 친구 부탁으로 그런 줄 알았는데 아닌가 보네요.”
“제 생각엔 국정원이나 국세청 같은데 있었던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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