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5. 긴장 속의 만남
오늘 아침 출근길은 기대보다는 우려가 앞선다. 애써 부정했지만 아직도 개재욱 트라우마가 남아있는 것 같다. 사무실에 도착하니 모두가 같은 마음인지 긴장된 표정으로 말이 없다. 어제 저녁부터 시작해 새벽에 끝났다는 사무실 개조공사는 전에 없던 팀장실을 만들었고 유리벽 너머엔 최신 가구들이 임원실을 방불케 했다.
“역시 오너는 다르네요.”
“앞으로 저기서 회의를 하겠네요.”
팀장실 안엔 원목 책상과 임원용 의자가 있고 그 옆엔 여덟 명이 앉을 수 있는 회의용 탁자가 놓여 있다. 소문을 듣고 구경 왔던 다른 팀장들은 혀를 내두를 뿐 누구도 감히 입을 열지 못했다.
“그런데 아무래도 전 불안한데요?”
임대리의 걱정도 무리는 아니다. 미호가 한 말이 있긴 하지만 오너 가(家) 사람인데 갑질이 없겠느냐는 것이다. 더구나 부사장인 아버지가 한 직장에 있으니 개재욱보다 더하면 더했지 절데 덜하진 않을 것이라 생각이 지배적이다.
“그래도 한 가지 좋은 건 있어요. 다른 팀에서 우릴 얕보진 못하겠죠.”
“오대리님. 뉴스 못 봤어요? 재벌 딸이 난동 피운 거. 뿐인가요? 온갖 막말로 모욕까지 줬잖아요. 아무튼 우린 이제 죽었어요.”
그런데 온다던 팀장은 왜 오전이 다 지나가는데도 나타나지 않는 걸까? 조마조마한 시간들이 지나고 모두 점심을 먹으려고 밖으로 나왔다. 점심시간이 되자마자 나왔는데도 거리엔 사람들로 북적인다.
“우리 점심 든든히 먹읍시다. 재벌가 팀장 만나려면 속이 든든해야 돼요.”
“전 좋습니다. 어디 싸고 양 많은데 갈까요?”
몸집이 큰 손정남은 월급의 25%가 먹는 것으로 나간다고 한다. 집안의 막내라는 그는 평소엔 거의 말이 없는 편인데 먹는 얘기만 나오면 만면에 희색을 띠고 끼어든다. 잠시 눈치를 보던 그는 퇴근 때 자주 들르는 곳이 있다며 우릴 안내했다.
“이 동네에 이런 집이 있었어?”
“아, 작년 11월에 생긴 집인데요. 다른 데 보다 많이 줘요.”
조금은 허름해 보이는 그 집은 회사에서 조금 떨어진 골목에 위치한 음식점으로 젊은이들이 좋아하는 돈가스부터 순두부까지 다양한 메뉴를 팔고 있었다. 그런데 정남의 말대로 양이 보통이 아니다.
“어때요? 이 집 괜찮죠?”
“좀 멀긴 해도 가성비가 좋네. 번화가에서 벗어나 있으니 양으로 승부하는 거겠지.”
거리가 멀었던 관계로 사무실엔 점심시간이 거의 끝날 때쯤 도착했다. 그런데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팀장실 안은 물론 문밖까지 온갖 화초들이 줄지어 있는 것이다. 가까이 다가가보니 형형색색의 ‘祝 就任’이라 쓰인 리본들이 달려있다.
“와! 엄청나네.”
이때, 사무실이 문이 열리고 인사팀장과 처음 보는 사람이 모습을 나타냈다. 바로 말로만 듣던 신임 팀장이다. 서른 중반으로 보이는 그는 180이 채 안 되는 키에 미호의 말처럼 반듯한 용모가 인상적이다.
“오늘 부임하신 강철민 팀장님입니다.”
“여러분 반가워요.”
정선배의 소개로 일일이 팀원들과 인사를 나눈 그는 팀장실을 보자 눈이 휘둥그레지며 너무 과한 것 아니냐며 흡족해했다. 사무실을 돌아본 그가 관심을 보인 것은 시스템실이다.
“야! 완벽하네요.”
“여기 팀원들이 워낙 책임감이 강합니다.”
“그런 것 같네요. 너무 완벽해요.”
시스템실을 둘러본 강팀장은 대리들을 방으로 불러 현재 팀 상황에 대해 묻고 향후 팀 운영에 필요한 간단한 지시사항을 전달했다. 그러나 담당 임원은 신임 사장 민진태가 계속 팀을 맡고 싶다는 의사를 보여 새로 임명된 사람은 없다.
“팀장님. 앞으로 팀장님 방은 은하얀씨가 관리하도록 시키겠습니다.”
“아, 난 그런 것 질색입니다. 하얀씨가 그런 것 하려고 회사 다니는 것 아니잖아요. 그런 일은 내가 직접 할 테니까 그렇게 알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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