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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호의 서재입니다.

오피스 108

웹소설 > 일반연재 > 일반소설, 중·단편

완결

설호(雪虎)
작품등록일 :
2019.10.25 20:57
최근연재일 :
2020.06.06 00:19
연재수 :
109 회
조회수 :
38,780
추천수 :
1,022
글자수 :
254,932

작성
20.03.09 01:07
조회
277
추천
8
글자
6쪽

60. 존재감

DUMMY

그날의 재미있는 충격이 가시기도 전에 올해를 보내는 망년회가 오늘 저녁이다. 이미 마음이 콩 밭에 가있는 팀원들은 시간 가기만 기다리는 눈치다. 그러나 그 이유가 망년회 때문만은 아니다. 곧 있을 인사발령도 어수선한 분위기 조성에 한 몫을 보탠 것이다.


“이번엔 진급자가 많지 않을 거라던데?”

“나도 들었어.”

“대상자는 많은데 자리가 없는 게 문제지.”

“아주 치열하겠군.”


팀뿐만 아니라 회사 전체가 촉각을 세운 인사는 또 다시 온갖 카드라 통신을 불러일으켰고 년 수를 채운 대상자들은 하루가 1년 같은 시간들을 보내고 있다. 새해가 시작되면 희비가 엇갈리는 광경을 보게 될 것이다. 문득 지난번 특별 승진 발령을 받은 선미와 미호가 부럽다는 생각이 든다.


‘그냥 모른 척 했어야 했나?’


괜히 오지랖을 떨었다는 후회가 밀려든다. 재주는 곰이 넘었는데 돈은 왕서방이 챙긴 꼴이다. 원래 세상이 이런 것인가? 문득 손노문이 생각난다. 지난번 공로자로 인정받지 못한 것은 모두 그의 앙심 때문인 게 분명하다. 그런데 그는 밀고자가 유부돈인건 알고 있을까?


“정도씨. 혹시 소식 들었어요?”


속상한 마음에 멍하니 창밖을 바라보는데 임대리가 다가와 나지막한 소리로 입을 열었다. 그런데 임대리의 얘기는 정말 뜻밖의 사건이다. 손노문이 이사로 전근 간 계열사에 신임대표이사가 부임했는데 다름 아닌 주전노라는 것이다.


“손이사님 난리 났네요.”

“그러게요. 원수지간이 매일 얼굴 마주하게 생겼으니 참.”


사장은 물론 본사 팀장들마저도 멀리했던 그의 대표이사 부임은 모두에게 충격이다. 그런 주전노가 어떻게 그 자릴 꿰찰 수 있었을까? 의문은 오래가지 않았다. 모두의 의문에 김무용 이후 신 마당발로 등장한 미호가 나선 것이다.


“전에 있던 사장이 간암 투병 중인데다가 회사 사정이 안 좋아져서 자진 사퇴했대요. 그런데 주전노가 그만 둔 사장의 주식을 인수했대요.”

“결국 돈으로 자리를 산거네요.”

“그렇죠.”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떨어대던 수다는 6시가 되면서 끝이 났고 모두 기다렸다는 듯이 선미를 인솔자로 일제히 회사에서 나왔다. 오늘 가는 곳은 특별히 민전무가 고른 장소라 모두 호기심 반, 기대 반이다. 회사 앞에서 버스를 타고 간 곳은 시내에 위치한 호텔이다.


“신대리님 회식을 뷔페에서 해요?”

“아냐. 여기 중식당이야. 몇 층이더라?”


중식당은 호텔 꼭대기에 있는 ‘화룡’이라는 업소다. 이런 곳이면 적어도 1인당 4만 원은 족히 넘는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한참을 올라가니 문이 열리자마자 붉은 바탕에 황금색으로 ‘화룡’이라고 쓰인 간판이 눈에 들어온다.



“와! 엄청 크네.”


중식당은 200명이 들어가고도 남을 만큼 넓다. 미리 연락을 받은 종업원이 안내한 곳은 20명 정도 앉을 수 있는 방이다. 옷을 벗고 자리에 앉자 종업원들이 들어와 팀원들 앞에 놓인 잔에 일일이 차를 따르고 밖으로 사라졌다.


“정말 특별한 데 맞네요.”


민전무가 오길 기다리는 동안 방안을 둘러보니 회사 근처에 있는 고급 중식당과는 비교가 안 될 만큼 호화롭다. 특히 자스민 향이 은은한 차는 회사 근처에서 맛봤던 보리차하곤 차원이 다르다. 모두가 들뜬 마음에 수다를 떨고 있을 때 노크 소리가 나더니 종업원이 모습을 나타냈다.


“손님. 오셨습니다.”


잠시 후, 전원이 알아서 기립하고 밖에서 민전무 목소리가 들렸다. 들리는 소리로 보아 누구와 같이 온 것 같다. 그런데 뜻밖에도 먼저 모습을 나타낸 것은 민전무가 아니라 사장이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터라 모두 당황하며 머리를 숙였다.


“내가 너무 늦은 것은 아닌가? 모두 앉아요.”


뒤를 이어 들어온 민전무가 사장의 재킷을 옷걸이에 거는 동안 사장은 팀원들과 일일이 악수를 나눴다. 그 중 지난번 특별 승진을 한 선미와 미호에게 관심을 보였고 이미 구면인지 차도한에겐 어깨를 두드리며 격려까지 했다.


“다들 놀랐을 것 같은데 오늘 회식은 사장님께서 지난번 프로젝트 완수하느라 힘들었던 여러분을 격려하시기 위해 특별히 마련하셨습니다.”

“에이. 민전무도 참. 낯간지럽게 그런 얘긴 왜 해? 그냥 앉아.”


갑작스런 상황에 당황한 모두 경직된 상태에서 저녁을 먹다 보니 누구도 감히 입을 열지 못했고 사장이 하는 연설을 듣는데 집중했다. 그런데 술이 몇 잔 돌았을 때 갑자기 사장이 팀원들에게 술을 따라 주기 시작했고 민전무는 팀원들을 일일이 소개하며 사장의 시중을 들었다.


“진정도입니다.”

“아, 그렇군. 진정도씨는 내가 익히 들어서 알지. 민전무가 얘기 많이 하더군. 자, 우리 러브 샷 한잔 할까?”


뜻밖이다. 민전무하곤 개인면담조차 한 적이 없는데 무슨 얘기를 한 걸까? 그런데다 러브 샷이라니? 남들은 얼굴 도장 찍으려고 난리인데 이런 행운을 있을까? 기분이 날아갈 것 같다. 임대리는 회식이 끝난 뒤에도 흥분이 가시지 않는지 잔뜩 고무돼 있다.


“와! 내가 사장님 잔을 받다니, 공장에선 꿈도 꾸지 못할 일이예요.”


기대 이상으로 서프라이즈했던 회식이라 2차 얘기는 누구도 꺼내지 못했다. 아니, 그럴 여유가 없었을 것이다. 입사 후 이렇게 비싼 회식은 처음이라며 선미가 내민 영수증을 보니 말 그대로 억 소리가 날 정도다. 물론 계산은 민전무 법인카드로 했다.


“역시 사장님이 오시니까 수준이 다르네요.”

“더구나 오너 사장이잖아요. 그런데 뜻밖이에요. 제 기억에 사장님이 오늘처럼 팀 회식에 참석한 적이 없거든요.”


이제야 장소를 이곳으로 결정한 이유를 알 것 같다. 회사 근처에 있는 업소는 사장 레벨에 맞지 않는다는 뜻이다. 아무튼 사장이 어떤 존재인지 알 것 같다. 사장의 러브 샷 한방에 오랫동안 서운했던 감정이 사라졌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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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 70. 고래싸움 20.04.13 265 7 7쪽
69 69. 여인천하 20.04.10 266 7 4쪽
68 68. 도장 찍기 20.04.08 282 7 5쪽
67 67. 갑돌이와 갑순이 20.04.08 253 6 4쪽
66 66. 은(銀)수저 20.04.08 250 7 5쪽
65 65. 긴장 속의 만남 20.04.08 240 8 4쪽
64 64. 빗나간 카더라 20.04.08 249 8 4쪽
63 63. 드러난 야심 20.03.16 273 8 5쪽
62 62. 남은 자들의 전쟁 20.03.15 278 8 4쪽
61 61. 뒤늦은 보상 20.03.11 289 8 6쪽
» 60. 존재감 20.03.09 278 8 6쪽
59 59. 목격자 20.03.06 278 8 8쪽
58 58. 낯선 느낌 20.03.04 283 9 5쪽
57 57. 양지와 음지 20.03.02 291 9 4쪽
56 56. 양들의 분노 20.02.29 292 8 8쪽
55 55. 빙하기 20.02.26 302 9 4쪽
54 54. 야누스 20.02.25 313 10 5쪽
53 53. 뉴 페이스 20.02.25 299 8 4쪽
52 52. 괘씸죄 20.02.18 324 9 4쪽
51 51. 빛바랜 영전(榮轉) +1 20.02.17 332 13 5쪽
50 50. 논공행상(論功行賞) 20.02.14 321 8 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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