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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호의 서재입니다.

오피스 108

웹소설 > 일반연재 > 일반소설, 중·단편

완결

설호(雪虎)
작품등록일 :
2019.10.25 20:57
최근연재일 :
2020.06.06 00:19
연재수 :
109 회
조회수 :
38,803
추천수 :
1,022
글자수 :
254,932

작성
20.04.08 00:53
조회
250
추천
7
글자
5쪽

66. 은(銀)수저

DUMMY

강팀장이 부임한 후 팀장실엔 집에서 가져온 머신으로 내린 커피 향이 가득했다. 그런데 어찌나 깔끔한지 책상 위엔 노트북과 필기도구 그리고 커피 잔뿐이고 퇴근하기 전에 언제 갖다 놨는지 커다란 솔로 먼지를 쓸어내는 바람에 하얀이 할 일은 커피 머신 옆에 생수를 사다 놓는 것뿐이다.


“고마워요. 하얀씨.”


강팀장이 하얀을 볼 때마다 하는 인사다. 이런 재벌가 출신과는 어울리지 않는 태도는 팀원뿐만 아니라 다른 팀장들까지 고개를 갸웃거리게 만들었다. 부임한지 한 달 밖에 안 됐지만 예전에 자기 배경을 믿고 온갖 갑질을 일삼았던 강철호와는 분명 180도 다른 사람이다.


“진작 했어야하는데 그동안 매일 손님들 만나느라 이제야 시간이 났네요. 오늘은 내가 전입 신고하는 턱으로 사는 거니까 마음껏 들어요.”


지난번 망년회처럼 호텔은 아니지만 오너 출신 팀장 덕에 여한 없이 먹었다. 그런데 그에겐 다른 팀장들과 다른 게 있었다. 술을 전혀 마시지 않는 그는 옆에 담배와 라이터를 놓아두고 가끔씩 밖에 나갔다 오곤 하는 것이다.


“술이나 담배나 건강에 안 좋은 건 똑같죠. 하지만 술 먹고 실수하는 사람은 봤어도 담배피고 실수하는 사람은 없잖아요. 안 그래요?”


왜 금연하지 않느냐는 물음에 그가 내세운 논리다. 그리고 술은 과음을 하면 건강을 해치는 것은 물론 많은 돈이 들어가지만 담배는 큰돈이 들어가는 것도 아니고 적당히만 하면 건강을 해칠 리도 없다는 것이다. 아무튼 참으로 별난 금수저다. 그러던 어느 날, 생각지 않은 메시지를 받았다.


[진정도대리. 할 얘기가 있으니 지하 커피숍으로 오시오.]


스마트폰이 진동음을 울려 꺼내보니 강팀장이 보낸 메시지가 있다. 그런데 왜 직접 말하지 않고 메시지를 보냈을까? 이것은 다른 팀원들이 있는 데선 할 수 없는 이야기가 있다는 뜻일 것이다.


“어서 와요. 커피는 내가 미리 시켰어요. 괜찮죠?”

“예.”

“이렇게 부른 것은 다름이 아니라.”


잠시 말이 없던 그는 주문한 커피가 나오자 천천히 입을 열었다. 자신이 팀장으로 부임하긴 했지만 전공분야가 아니라서 업무파악에 애로가 많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앞으로 자주 물어볼 테니 팀원들 모르게 도와달라는 부탁이다.


“당연히 그래야죠. 그런데 진선미대리도 있는데 왜 저를?”

“인사팀장한테서 그동안 팀에서 있었던 일들을 들었는데 진정도대리가 팀원 중에서 가장 정직하고 입이 무겁다고 들었어요. 그리고 생각도 깊고. 그래서 앞으로 숨은 조력자가 돼줬으면 좋겠어요.”


그냥 도와달라는 것뿐인데 왜 이렇게 부담스럽지? 별의별 생각이 다 든다. 이러다 드라마에서 봤던 재벌가의 암투에 연루되는 건 아닐까? 이 사람은 평범한 팀장도 아니고 재벌가 배경을 등에 업은 팀장이다. 업무파악은 핑계고 이 사람의 숨은 의도가 뭘까? 어찌됐든 팀장의 부탁이니 들어줘야 한다.


“이렇게 하면 되겠습니다. 다른 팀원들 모르게 해야 하니까 팀에서 일어나는 업무를 쉽게 풀어서 메일로 보고하겠습니다.”

“역시! 내가 사람을 잘 봤다니까.”


그날 이후 팀 내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쉽게 풀어서 강팀장에게 메일로 보고하는 일이 추가됐다. 그 덕에 강팀장은 대리들이 보고하는 업무를 쉽게 이해했고 시간이 지나면서 IT 전문가로서의 사고까지 갖추게 됐다.


“참, 내가 부임한 지 한 달이 넘었는데 여기는 사다리 같은 것 안합니까?”

“네?”

“그 왜 있잖아요? 종이에 여러 줄 그어서 등수 정한 다음 각자 등수대로 돈 내서 간식 사먹는 것 말이에요.”

“알고는 있었습니다만.”

“아직도 날 금수저라고 생각들 하나 본데 앞으론 은수저라고 불러줘요.”


은수저? 대체 이 사람 재벌가 사람 맞아? 혹시 우릴 떠보려고 이러는 건가? 전혀 생각지 못했던 사다리 타기에 팀원들까지 어안이 벙벙한 채 참가했다. 그런데 이사람, 진심이었나? 진지한 표정으로 자기 것을 고른 강팀장은 끝에서 두 번째 등수인 것으로 확인되자 사오기 걸릴까봐 조마조마 했다면서 만 원짜리 한 장을 내려놓았다.

“큰일 날 뻔했네.”


너무 뜻밖이었을까? 아니면 그의 숫한 태도가 좋아서였을까? 그의 한마디에 사무실이 웃음바다로 변했다. 아무튼 천 원짜리가 걸린 강팀장은 남은 돈을 꼴지를 면한 자축의 의미로 기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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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 70. 고래싸움 20.04.13 266 7 7쪽
69 69. 여인천하 20.04.10 266 7 4쪽
68 68. 도장 찍기 20.04.08 283 7 5쪽
67 67. 갑돌이와 갑순이 20.04.08 254 6 4쪽
» 66. 은(銀)수저 20.04.08 251 7 5쪽
65 65. 긴장 속의 만남 20.04.08 240 8 4쪽
64 64. 빗나간 카더라 20.04.08 249 8 4쪽
63 63. 드러난 야심 20.03.16 274 8 5쪽
62 62. 남은 자들의 전쟁 20.03.15 278 8 4쪽
61 61. 뒤늦은 보상 20.03.11 290 8 6쪽
60 60. 존재감 20.03.09 278 8 6쪽
59 59. 목격자 20.03.06 278 8 8쪽
58 58. 낯선 느낌 20.03.04 283 9 5쪽
57 57. 양지와 음지 20.03.02 291 9 4쪽
56 56. 양들의 분노 20.02.29 292 8 8쪽
55 55. 빙하기 20.02.26 302 9 4쪽
54 54. 야누스 20.02.25 313 10 5쪽
53 53. 뉴 페이스 20.02.25 300 8 4쪽
52 52. 괘씸죄 20.02.18 324 9 4쪽
51 51. 빛바랜 영전(榮轉) +1 20.02.17 332 13 5쪽
50 50. 논공행상(論功行賞) 20.02.14 321 8 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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