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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호의 서재입니다.

오피스 108

웹소설 > 일반연재 > 일반소설, 중·단편

완결

설호(雪虎)
작품등록일 :
2019.10.25 20:57
최근연재일 :
2020.06.06 00:19
연재수 :
109 회
조회수 :
38,804
추천수 :
1,022
글자수 :
254,932

작성
20.04.21 17:38
조회
237
추천
6
글자
4쪽

74. 호감과 사랑

DUMMY

일이 잘 풀리려니까 생각지 않은 행운까지 찾아왔다. 사실 먼저 결혼한 친구들이 신혼집을 마련했다는 소릴 들을 때마다 그럴 수 없는 현실이 불만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금수저나 은수저는 아니지만 흙수저 보다는 나은 동수저, 이제 남은 일은 선미를 부모님께 소개하는 일이다.


“정도씨. 좋은 일 있나 봐요?”

“좋은 일이라니요?”

“에이. 얼굴에 쓰여 있는데요. 뭐.”


순간, 갑자기 생각이 멈춘다. 오랫동안 선미와 같은 시공을 공유했지만 정작 해야 할 이야기는 한 적이 없다. 저녁을 먹을 때도 주로 회사 이야기뿐이었다. 섣부른 확신이었을까? 혹시 늦은 것은 아닐까? 생각해 보니 남들 다하는 것도 안했다.


‘그냥 가까운 동료로 생각하는 건 아닐까?’


화이트데이, 빼빼로데이, 지난 크리스마스마저도 선물한 적이 없다. 그런데도 투정 한번 하지 않은 것을 보면 정말 그런지도 모른다. 이런 바보, 마음을 전할 그 많은 기회들을 그냥 보내버리다니, 천성이 멍청해서 그랬을까? 아니면 여자를 사랑할 줄 몰라서 그랬을까?


“오늘 대리님들하고 저녁 같이 하고 싶은데 혹시 선약 있어요?”


지난번 임원전용시스템 구축으로 회사에서 입지가 상승한 강팀장이 감사의 뜻으로 저녁을 사겠다고 한다. 이럴 때 누구도 외면할 수 없다는 것은 직장인이면 결코 모를 수 없는 일이다. 회의가 끝나고 방에서 나온 임대리와 오대리는 의자에 앉자마자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고 누가 들을까 곁눈질을 하며 속삭인다.


‘그래. 어쩌면 오늘이 기회인지도 몰라.‘


회식이 끝나고 집에 바래다주면서 얘기해 봐야겠다. 그런데 뭐라고 하지? 일단 슬쩍 떠볼까? 하지만 그런 꼼수엔 영 소질이 없으니 망신으로 끝나버릴 수도 있다. 어떻게든 말을 해야 하는데 묘안이 떠오르질 않는다. 이래서 말 한마디 값이 천량이라고 한 걸까? 오후 내내 생각했지만 대책도 못 세운 채 저녁을 맞았다.


“모두 수고 많았어요. 오늘은 내 개인카드로 사는 거니까 마음껏 즐겨요.”


역시 막강한 집안 배경을 지닌 팀장 덕에 망년회 때나 갈만한 고급 한정식 집에서 회식을 하게 됐다. 동네 한식집에선 좀처럼 보기 힘든 음식들이 오르내렸고 팀원들 손에 들린 술잔들은 쉬지 않고 식탁 위를 건너다녔다. 선미를 비롯한 모두가 즐거워하는 동안 복잡한 머릿속 때문인지 음식 맛도 모른 채 접시를 비웠다.


“임대리. 여기 음식 어때요?”

“이런 음식은 처음 먹어보는데 정말 맛있습니다.”

“다른 분들은요?”


듣기 좋으라고 한 소리가 아니라 음식은 최고급이다. 모자란 것 있으면 더 주문하라는 강팀장의 권유가 있었지만 후식도 남길 정도로 배를 채웠다. 회식이 끝나고 대리기사를 부른 강팀장이 먼저 집으로 떠나고 각자 흩어지는 사이 선미와 함께 버스에 올랐다.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해요?”

“내가요?”

“회식 내내 그러던데 무슨 일 있어요?”

“있잖아요? 우리 만나지 2년 됐잖아요.”


어렵게 말을 꺼냈다. 그런데 선미는 첫마디만 듣고도 무슨 말을 하려는지 안다는 듯 미소를 짓는다. 하지만 집에 도착할 때까지 더 이상의 대화는 이어지지 않았다. 거절당한 건가? 아니면 생각할 시간이 필요한 건가?


“이제 오니?”

“예. 저녁 드셨어요?”

“너 기다리다가 안 와서 엄마하고 먹었어.”

“죄송해요. 오늘 회식이 있었는데 깜빡하고 연락을 못 드렸어요.”

“됐다. 얼른 씻고 자라.”


어지간히 고민이 됐던 모양이다. 엄마한테 한마디 들을 것을 뻔히 알고도 전화하는 것을 깜빡했으니 말이다. 아버지와 마주쳤으니 망정이지 안 그랬더라면 엄마의 투정에 가까운 잔소리에 시달렸을 것이다. 심신이 모두 피폐해져 대충 씻고 침대에 몸을 맡겼다. 지금쯤 선미는 뭘 하고 있을까? 호감과 사랑을 놓고 고민하느라 뒤척이고 있을까? 아니면 술기운에 취해 잠에 빠졌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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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8 68. 도장 찍기 20.04.08 283 7 5쪽
67 67. 갑돌이와 갑순이 20.04.08 254 6 4쪽
66 66. 은(銀)수저 20.04.08 251 7 5쪽
65 65. 긴장 속의 만남 20.04.08 240 8 4쪽
64 64. 빗나간 카더라 20.04.08 249 8 4쪽
63 63. 드러난 야심 20.03.16 274 8 5쪽
62 62. 남은 자들의 전쟁 20.03.15 278 8 4쪽
61 61. 뒤늦은 보상 20.03.11 290 8 6쪽
60 60. 존재감 20.03.09 278 8 6쪽
59 59. 목격자 20.03.06 278 8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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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 53. 뉴 페이스 20.02.25 300 8 4쪽
52 52. 괘씸죄 20.02.18 324 9 4쪽
51 51. 빛바랜 영전(榮轉) +1 20.02.17 332 13 5쪽
50 50. 논공행상(論功行賞) 20.02.14 321 8 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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