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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호의 서재입니다.

오피스 108

웹소설 > 일반연재 > 일반소설, 중·단편

완결

설호(雪虎)
작품등록일 :
2019.10.25 20:57
최근연재일 :
2020.06.06 00:19
연재수 :
109 회
조회수 :
38,806
추천수 :
1,022
글자수 :
254,932

작성
20.02.29 22:24
조회
292
추천
8
글자
8쪽

56. 양들의 분노

DUMMY

누적된 스트레스 탓인지 언제부터인가 전날의 피로가 가시질 않는다. 그런데 이상하다. 지금까지 한 번도 당한 적이 없는데 왜 스트레스가 쌓이는 걸까? 아직 사회생활 1년도 채 안 되는 신입이다. 어쩌면 그동안 많은 일을 겪으면서 남들 보다 일찍 조직의 조직생활에 적응한 것인지도 모른다.


“선미씨. 기팀장 아직 출근 안 했어요?”

“참, 어제 퇴근하면서 오후에 출근한다고 했는데 제가 깜빡했네요.”


순간, 여기저기서 환호에 가까운 작은 탄성이 터져 나왔다. 얼마나 싫었으면 저렇게들 좋을까? 그런데 팀원들이 기쁨의 수다를 떠는 사이 입을 꽉 다문 채 깊은 생각에 빠져 있던 조과장이 팀원들을 향해 입을 열었다.


“잠시 회의실에서 얘기 좀 합시다.”


오랜만에 꿀맛 같은 시간을 보내던 팀원들은 무슨 일인가 하는 표정으로 회의실로 모였다. 그런데 조과장의 표정이 심상치 않다. 비장함이 서린 그의 얼굴은 팀원들까지 긴장케 만들었다. 모두 숨을 죽이고 그가 입을 열기를 기다렸다.


“다름이 아니라. 모두 알다시피 요즘 팀 분위기가 말이 아닙니다. 그래서 말인데 이대로 가만히 있을 수는 없을 것 같아서 기팀장과 담판을 지으려고 해요.”

“어차피 얘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저도 공장으로 보내달라고 할까 생각 중이에요. 제가 청육에 입사한 지 6년째인데 기팀장 같은 사람은 처음 봤어요. 공장 같았으면 벌써 난리가 났을 거예요.”


조과장이 지른 불씨에 임대리까지 가세하자 그동안 숨을 죽이고 있던 팀원들의 원성 가득한 소리들이 튀어 나왔다. 뜻밖인 것은 거기에 차도한까지 가세했다는 것이다. 차도한은 팀에서 기팀장이 함부로 대하지 못하는 유일한 팀원이다.


“며칠 전 퇴근했는데 아버지께서 기팀장얘기를 하시면서 힘들지 않느냐고 물으시더라고요. 어떻게 아시냐고 여쭸더니 임원들하고 점심 식사하시다가 들으셨대요.”

“그런데 왜들 가만히 있는 거죠?”

“사장님 때문이죠.”


그러면 사장은 기팀장의 언행을 모르고 있다는 것이다. 생각해 보니 MMS 프로젝트 초기에 사장의 두터운 신임 때문에 누구도 손팀장에게 태클을 걸지 못했다. 지금 기팀장의 만행에 가까운 언행을 제지하지 못하는 것도 비슷한 맥락일 것이다.


“그렇다고 이대로 참고 있을 수만은 없을 것 같아서 내가 총대를 지려고 해요.”


너무 뜻밖이다. 대체 어디서 저런 용기가 생긴 걸까? 손팀장 때도 말없이 시키는 대로 하던 사람이다. 그랬던 그가 정말 조과장 맞나 할 정도로 돌변해 있다.


“어쩌려고요?”

“저희 담당 임원하고 감사님께 면담을 요청할 거예요. 제가 부탁하고 싶은 건 일이 잘 풀려서 감사실에서 부르면 그냥 본대로 말해줘요. 그리고 이번 일은 모두 저 혼자 한 것으로 할 테니까 여러분은 몰랐다고 하세요.”

“에이 남자가 돼 갖고 그러면 안 되죠. 저도 동참합니다.”


생각지 않았던 임대리의 가세는 팀원들의 결속을 이끌어냈다. 그러나 조과장의 정중한 거절로 일단 임대리는 이선으로 물러나기로 했다. 이럴 때 어찌해야 하나? 조과장과 임대리는 그렇다 쳐도 남자 사원 중 선임이 가만히 있어도 되는 건가? 이때 속내를 눈치 챘는지 선미가 가만히 있으라며 눈치를 준다.


“자, 얘기 끝났으니 모두 자리로 돌아가고 전 지금 올라갈 겁니다.”

“만약 잘 안 되면 어떻게 해요?”

“그만 둘 거예요. 그동안 얘기를 안 했는데 저희 집에서 커피 체인점을 해요. 마침 자격증도 있고 해서 바리스터로 일 할 생각이에요.”


역시 믿는 구석이 있었다. 만약 조과장이 그만 두면 선미와 만남의 장소로 이용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날 오후, 무슨 일이 있었는지 전혀 모르는 채 출근한 기탐장은 오자마자 조과장을 들볶기 시작했다.


“조과장. 팀장이 자리 비웠다가 출근했으면 그 사이 아무 일 없었는지 보고를 해야지. 오거나 말거나 신경도 안 쓰고 말이야.”

“무슨 일 있었으면 보고 드렸겠죠.”

“뭐요? 무슨 말투가 그래요? 팀장이 지적하면 잘못했다고 해야지 지금 나한테 따지는 겁니까?”

“따지는 게 아니라. 가는 말이 고아와 오는 말이 고운 법인데 팀장님께선 화부터 냈지 않습니까?”

“그러면 당신이 탐장하던가.”

“저도 그러고 싶습니다.”

“뭐요? 당신 혼나고 싶어?”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한다고 했습니다. 저도 더 이상 못 참겠습니다. 이것 처리해 주십시오.”

“이게 뭡니까?”

“사직서입니다.”


조과장의 강경한 자세에 기팀장 얼굴엔 당황한 기색이 역력하다. 그런데다 둘을 지켜보던 임대리가 내민 전근 신청서는 그토록 기세등등하던 기팀장을 코너에 몰기에 충분하다. 그날 오후, 사직서를 던지 조과장이 자리를 비운 가운데 기팀장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자리에서 꼼짝하지 않았다.


“팀장님.”

“아, 선미씨.”

“감사님 전화인데요. 지금 올라오시랍니다.”

“감사님이? 왜 내 스마트폰으로 안하고.”

“팀장님께서 전화를 안 받으셔서 사무실로 전화하셨답니다.”


얼마나 당황했으면 스마트폰에 전화가 온 것도 몰랐을까? 그는 황급히 스마트폰을 꺼내 보고 의자를 박차고 밖으로 사라졌다. 감사의 호출이면 민전무와 감사가 조과장의 면담요청을 받아들였다는 것이다. 과연 어떻게 될까? 조과장의 희생이 헛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리고 한 시간 쯤 지났을 때, 책상 위에 있던 전화기가 울렸다.


“진정도입니다.”

“난데.”

“예. 선배님.”

“지금 잠깐 내려와. 다른 사람한텐 말하지 말고.”

“네.”


정말 오랜만에 듣는 정선배 목소리다. 그런데 무슨 일일까? 아무래도 이번 일로 부른 것 같다. 인사팀으로 내려가니 팀원들이 반갑게 인사를 건넨다. 자기 책상 옆에 놓인 의자를 권한 정선배는 조용한 어조로 속삭이듯 입을 열었다.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예상대로다. 그런데 정선배는 어떻게 알았을까? 아직 조과장의 사직서는 기팀장 책상 위에 있다. 의문이 들었지만 잠시 접어두고 그동안 보았던 것들을 털어놓았다. 한참 뒤, 얘기를 듣고 난 정선배는 모든 내막을 알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그런 일이 있었으면 얘길 하지 그랬어.”

“그 생각을 안 한 건 아닌데 괜히 남의 일에 끼어드는 것 같아서 말씀 못 드렸습니다.”

“아무튼 넌 조용히 있어.”

“조과장은 어떻게 되는 겁니까?”

“아직 몰라. 그것 때문에 지금 긴급 임원회의가 열리고 있어.”

“그러면 사장님도 아시겠네요?”

“당연하지. 다시 말하지만 넌 조용히 있어. 알았지?”


그리고 다음 날, 누구도 생각지 못한 조치가 이루어졌다. 기팀장은 사외 이사로 발령이 났고 조과장은 본인이 뜻을 굽히지 않아 사직 처리하는 것으로 결론이 났다. 그리고 임대리의 공장 전근 신청은 인력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반려됐다.


“조과장님. 정말 서운하네요.”

“아마 정도씨가 제일 기억에 남을 것 같네요. 그리고 사실은 저 알고 있었어요.”

“뭘요?”

“선미씨하고 사귀는 거요. 내가 일 시작하면 약도 보낼 테니까 둘이 같이 와요. 커피 공짜로 줄게요.”


압박과 설움에서 팀원들을 구출한 영웅 조재용은 모두의 감사를 받으며 청육을 떠났고 기팀장 입장을 배려해 송별 회식은 나중에 따로 날을 잡기로 했다. 조재용이 떠난 다음날 전날 휴가를 냈다가 출근한 기재욱은 말없이 사물을 챙겼다.


“자, 갑니다. 그동안 서운한 게 많았겠지만 제 본심이 아니었습니다. 저는 팀을 좀 더 강하게 만들고 싶어서 그랬던 건데 방법이 틀렸던 것 같습니다. 모두 감사했습니다.”


그 이후 기재욱은 가끔 회사에 들러 사장만 만나고 사라졌다. 그런데 사장이 너무 쉽게 결정한 것이 이상하다. 그렇게 많은 반대가 있었는데도 끝까지 손팀장을 밀어줬던 사장이다. 그런데 자신이 직접 데려온 기재욱을 임원들 요구대로 순순히 내보낸 이유가 뭘까?


“선배님. 그게 이상하더라고요.”

“두고 보면 알아. 지금은 그냥 모른 척하고 잔이나 받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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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 70. 고래싸움 20.04.13 266 7 7쪽
69 69. 여인천하 20.04.10 266 7 4쪽
68 68. 도장 찍기 20.04.08 283 7 5쪽
67 67. 갑돌이와 갑순이 20.04.08 254 6 4쪽
66 66. 은(銀)수저 20.04.08 251 7 5쪽
65 65. 긴장 속의 만남 20.04.08 240 8 4쪽
64 64. 빗나간 카더라 20.04.08 249 8 4쪽
63 63. 드러난 야심 20.03.16 274 8 5쪽
62 62. 남은 자들의 전쟁 20.03.15 278 8 4쪽
61 61. 뒤늦은 보상 20.03.11 290 8 6쪽
60 60. 존재감 20.03.09 278 8 6쪽
59 59. 목격자 20.03.06 278 8 8쪽
58 58. 낯선 느낌 20.03.04 283 9 5쪽
57 57. 양지와 음지 20.03.02 291 9 4쪽
» 56. 양들의 분노 20.02.29 293 8 8쪽
55 55. 빙하기 20.02.26 302 9 4쪽
54 54. 야누스 20.02.25 313 10 5쪽
53 53. 뉴 페이스 20.02.25 300 8 4쪽
52 52. 괘씸죄 20.02.18 324 9 4쪽
51 51. 빛바랜 영전(榮轉) +1 20.02.17 332 13 5쪽
50 50. 논공행상(論功行賞) 20.02.14 322 8 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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