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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재에 당도한 것을 환영하오, 낯선이여.

나라 망친 악녀가 날 너무 좋아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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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U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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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11 2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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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17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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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아가씨의 사상검증

DUMMY

한 차례 고신을 끝내고 살려뒀던 암살자 셋이 끝내 마법사가 오기 전에 죽었다.


그 사실에 후작가는 탄식하면서도 수습에 들어갔다.


죽은 자는 말이 없는 법이라고 하는데 사실 그렇지도 않다.


말을 못 할 뿐이지 말 대신 다른 방식으로 참 많은 것을 남기기 때문이다.


"특정 조건이 성립하면 발동하는 저주가 뇌를 망가뜨린 것 같습니다. 보통 이걸 금제라고 하죠."


시체 상태를 확인하며 담담하게 해설하는 마법사.


마탑에서 파견 나온 장년의 마법사는 이리저리 죽은 세 암살자의 말로를 확인하면서 소견을 얘기했다.


"흠, 셋 다 금제··· 때문에 죽은 것도 같은데, 이 사람은 조금 다른 느낌이기도 하고."


뇌에 막대한 데미지가 가해진 건 똑같지만 다른 둘과 죽은 방식이 좀 다른 시신을 가만히 확인한다.


다른 둘은 뇌가 타버렸다.

하지만 이쪽은 뇌가 짓뭉개졌다.


그 방식의 차이가 흥미로웠다.


왜 한 구만 사인이 비슷하면서도 다른 걸까?


순하게 생각하면 금제의 강도가 달랐다거나 저주가 좀 달랐던 걸 수도 있겠지만···.


"흐음, 흠···."


좀 더 탐구해보고 싶어진 마법사가 이 시신을 수습해서 마탑으로 가져가도 괜찮겠냐고 요청한다.


현장을 둘러보던 후작은 그 요청에 잠깐 생각에 잠기다가 뭐라도 정보를 얻으면 즉각 보고한다는 조건으로 허락했다.


남은 건 시체밖에 없는 상황이다.


그걸 가지고 뭐라도 건져보자면 결국 마법사의 도움이 필요했기에 차라리 잘 됐다고 생각하며 원하는 대로 암살자의 시체를 떠넘겼다.


간밤에 죽은 셋만이 아니라 고문받던 과정에서 죽은 둘까지 포함해서.


"비교군은 많을수록 좋죠."


간만에 흥미로운 샘플을 찾았다는 듯 웃는 마법사.


그런 그를 보며 버몬트 후작은 속으로 생각했다.


‘저런 이상한 인간이 아카데미 교수로 취임할 예정이라고?’


조만간 딸이 입학할 아카데미에 저런 이상자가 교수로 강단에 선다는 사실이 못내 아버지로서 마음에 걸리는 후작이었다.


하여간 마법사라는 족속은 마음에 들지 않는다.


진리의 탐구자니 뭐니 하면서 별별 해괴한 짓은 다 하고 다니니까.


특히 편견일 수도 있지만 마탑 소속 마법사는 진짜배기 미친놈들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는 후작이었다.


그래도 지금은 그 미치광이 손을 빌릴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니까.


도무지 마음에 들지 않는 현실에 혀를 차면서 후작은 우선 이번 일은 여기서 덮어두기로 했다.


실패한 반란은 권력 강화에 도움이 된다고 하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반란이 일어날 정도로 약해졌다는 사실을 알리는 꼴이 될 수도 있다.


가족이 습격당했다는 걸 너무 크게 떠들고 다녀서 좋은 것도 없다.


이런 건수는 적절하게 휘둘러 써야지 요란하게 구는 건 현명하지 못하다.


마음에 들지 않지만, 지금은 가족이 무사하다는 사실에 만족하기로 했다.


"호오, 혹시 재갈이 풀렸다 다시 채워진 건가? 이거 갈수록···."


더는 이 장소에 미치광이 마법사와 같이 있고 싶지도 않았던 버몬트 후작이 감옥에서 발길을 돌렸다.


그렇게 엘리제 암살 미수 사건은 일단락이 되는 것 같았으나,


"엘리제!"


"이, 이솔렛?"


소란은 아직 끝나지 않은 모양이다.


"왜 여기에?"


정말 생각지도 못한 이솔렛의 갑작스러운 방문에 놀란 얼굴로 그녀를 마중하는 엘리제.


그럴 수밖에 없지.


여름에 휴양지에서 다시 만나자고 그렇게 작별했는데 아직 봄이 한창인 시기에 돌연 후작령을 방문했으니까. 어떻게 놀라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런데 생각해보면 당연한 일이다.


하나뿐인 소중한 친구가 집에 돌아가는 길에 입에 담기도 불측한 일을 당했단다.


그 소식을 듣고 가만히 있으면 그건 친구가 아니지.


괜찮은지 편지로 연락해서 안부도 묻고 하는 게 일반적이었는데 이솔렛은 좀 더 행동력이 뛰어났을 뿐이다. 소식을 접하기 무섭게 유스티치아 자작을 졸라 후작령을 향해 기수를 돌렸다.


원래는 봄 동안 여름 휴양을 즐길 준비를 하면서 막바지 다이어트와 몸만들기, 교양 수업 등에 몰두할 예정이었지만── 그런 건 소중한 친구의 안부를 직접 확인하고자 하는 이솔렛의 의지 앞에 아무것도 아니었다.


자작을 들들 볶을 정도로 애원해서 결국 버몬트 후작령에 반년은 이른 시기에 신세 지러 왔다.


원래 가을부터 할 예정이었던 일종의 위탁교육을 봄부터 바로 시작하기로 한 것이다.


이제 그랑시아 아카데미에 입학할 때까지 이솔렛은 쭉 버몬트 후작가에 머물면서 후작 부인에게 다양한 숙녀의 작법을 배우면서 레이디로서 부족한 몸가짐을 바로 할 예정이었다.


그러다 여름에는 같이 휴가도 가는 거고.


"정말 괜찮은 거 맞나요?"


"예, 예에, 물론 괜찮답니다."


보다시피 멀쩡하다고 이솔렛을 향해 살짝 당황한 기색으로 웃어 보이는 엘리제.


"무사해서 정말 다행이에요."


손을 꼭 쥐고 엘리제의 안부를 확인한 이솔렛이 겨우 안심한 얼굴로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그 반응에 엘리제는 낯간지러운 느낌을 받아 어쩔 줄 몰라 했다.


가족도 아닌 상대에게 이런 식으로 진심을 담은 걱정을 받아본 건 레오 이후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항상 두려움만 사 왔던 그녀였기에 엘리제가 어디 상태가 안 좋으면 엘리제를 걱정하기보단 그로 인해 괜한 불똥이 튀지 않을까 다들 겁에 질린 반응을 먼저 보이곤 했다.


그렇다 보니 타인에게 위로받거나 걱정을 받는 것에 익숙하지 않은 엘리제는 드물게 당황한 반응을 보였다.


굉장히 낯간지럽지만,


‘나쁘진 않네.’


누군가 자신을 진심으로 위해준다는 건 꽤 즐거운 기분이었다.


계산적으로 사귄 친구.

일종의 우정 놀이.


하지만 계기가 무엇이든 이런 식으로 진짜가 되어가기도 하는 거겠지.


물론,


"아, 레오 집사님! 알려주신 운동법 덕분에···."


"하하, 그거 다행이네요. 그리고 말씀 편하게···."


"그럴까요? 그럼 레오 씨라고···."


우정은 우정이고 사랑은 사랑이지.


다이어트라는 공통분모를 통해 친근하게 대화를 나누는 레오와 이솔렛을 보는 엘리제의 눈빛이 심상치 않다.


탁 소리가 나게 부채를 접으면서 그 소리를 통해 둘의 대화를 중단시킨다.


"안나, 이솔렛을 객실로···."


반사적으로 지시를 내리던 엘리제가 불현듯 무언가를 떠올렸다.


따라 방을 하나 내주는 것보단 아예 잘 때까지 곁에 두고 감시하는 게 낫지 않을까?


자꾸 도둑고양이 같은 무빙을 보이는 이솔렛을 생각하면 그게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엘리제는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이솔렛에게 제안했다.


"괜찮다면 이솔렛, 머무는 동안 저와 같은 방을 쓰지 않겠어요?"


"네? 같은 방?"


"네에, 실은 저, 친구와 파자마 파티를 한다거나 잠자리에서 수다를 떨다 같이 잠드는 것에 흥미가 있답니다."


"아."


부디 그 꿈을 우리는 걸 도와주지 않겠어요? 하고 기도하듯 손을 모아 부탁하는 엘리제.


그런 그녀의 부탁을 어떻게 이솔렛이 거절할 수 있겠는가?


친구와 그런 식으로 우정을 나누는 건 이솔렛에게도 로망이었고 기다렸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면서 제안을 수락했다.


그 모습을 보며 엘리제는 만족감을 느꼈다.


이걸로 항상 곁에 있으면서 도둑고양이 짓을 하진 않는지 감시할 수 있다.


친구와 동침하고 싶다느니 하는 건 물론 거짓이지.


필요 이상으로 레오와 이솔렛이 친해지는 것을 견제하기 위한 감시용 장치에 불과한 입에 발린 소리였다.


하지만 제법 그럴싸한 사탕발림이었고 이솔렛은 감쪽 같이 속아 넘어가 후작령에 머무는 동안 엘리제와 같은 방을 쓰는 일이 됐다.


처음 이 소식을 들은 후작 부인은 당연히 내켜 하지 않았다.


손님에게 내어줄 방도 없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으니 그다지 좋은 행동은 아니라고 여긴 것이다.


방은 따로 잡고 파자마 파티를 하거나 그럴 때만 동침하는 게 어떻겠냐고 말했지만, 딸의 어리광에 결국 백기를 들 수밖에 없었다.


딸이 우정을 키우겠다는데 어쩌겠는가.


갑자기 안 하던 짓을 한다고 한숨을 쉬면서도 허락했다.


그렇게 시작된 이솔렛의 버몬트 후작가 생활.


오전에는 후작 부인에게 숙녀로서 갖춰야 할 여러 가지를 배우면서 교양을 쌓고, 오후에는 운동하며 몸을 만들고, 저녁에는 엘리제와 우정을 쌓는 나날.


극단적인 생각까지 하던 시절에는 상상도 하지 못한 충실한 나날을 보내면서 이솔렛은 점차 아름답게 피어나는 꽃처럼 어디 내놓아도 부끄럽지 않을 레이디가 되어갔다.


그 모습을 보며 엘리제는 슬슬 때가 무르익어간다고 생각했다.


이제 슬슬 이솔렛에게 삼왕자를 향한 애정과 호감을 심어나갈 때가 되었다는 걸 느꼈다.


사실 아카데미에 간 후에 해도 늦지 않은 일이긴 하지만, 다이어트 때문에 얽히면서 레오랑 살갑게 구는 모습만 봐도 불편함이 일어나 좀 서두르기로 했다.


"이솔렛은 어떤 신사분이 이상형인가요?"


"네, 네엣?!"


오늘도 충실한 일과를 끝내고 나란히 침대에 누워서 잠을 청하려던 차에 튀어나온 엘리제의 물음.


그 맥락 없이 뜬금없는 질문에 이솔렛은 허를 찔린 것 같은 반응을 보였다.


이 타이밍에 갑자기 연애 이야기를 나누게 될 줄은 생각지 못했다.


언젠가는 이런 것도 해보고 싶다고 생각하긴 했었지만, 이건 너무 갑작스러운 게 아닌가 싶다.


그래도 그간 배운 몸가짐에 따라 침착함을 유지하면서 이솔렛이 엘리제의 물음에 답한다.


"으음, 갑자기 왜 그런 질문을?"


"실은 낮에 연애소설을 읽었거든요. 그걸 읽다 보니 문득 이솔렛은 어떤 남성분을 좋아할까 궁금해지더라고요."


친구랑 이런 연애 얘기, 꼭 나누어보고 싶기도 했다면서 척척 흙발로 부끄러운 연애사를 밀고 들어오는 엘리제에게 이솔렛은 어쩔 줄 모르는 반응을 보였다.


"그, 그게···."


"아, 그 반응을 보니 알겠네요. 마음에 둔 스타일의 남성이 있긴 있군요?"


아예 그런 게 없다면 이런 쑥스러운 반응도 보이지 않았겠지.


이렇게 우물쭈물한다는 시점에서 이상형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있긴 있다는 걸 직감한 엘리제가 팍팍 치고 들어간다.


"혹시··· 삼왕자 요슈아님?"


은근히 그러길 바란다는 마음을 더해 던진 말에 화들짝 놀라는 이솔렛.


"그런?! 저한텐 너무 과분한 분이세요. 왕자님께는 역시 엘리제 같은 레이디가···."


빠직.


웃고 있던 엘리제의 이마 위로 순간 힘줄이 십자 마크를 그렸다.


‘이게 진짜···.’


누가 누구한테 어울린다고?


자각 없이, 악의 없이 자꾸 역린을 건드리는 이솔렛을 향해 엘리제의 미소가 경련을 일으킨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그걸 알아차리지 못한 이솔렛은 부끄럽다는 듯 볼을 감싸 쥔 채 자신만의 세계에 빠져 계속 말을 이어 나갔다.


마치 이런 질문, 꼭 한 번은 듣고 싶었다는 듯 기다렸다는 것처럼 이상형을 설명한다.


"물론 왕자님의 피앙세가 되는 건 굉장히 영광스러운 일이겠지만, 전 사실 왕자님처럼 절벽 위의 꽃 같은 분보다는 엘리제처럼 상냥하고 친절한 사람이 좋아요."


싫은 건 아니지만, 여러 일로 자존감이 낮아진 이솔렛이라 그런지 솔직히 왕자는 부담스러운 것 같다.


‘상냥하고 친절?’


"그리고 역시 저만을 바라봐주고···."


‘뭔가 기시감이 드는 기분이──?’


"어떤 순간에도 저와 함께하며 곁을 지켜줄 그런 반려를 만나고 싶어요."


소박하고 으레 여성이 꿈꾸는 평범한 이상형이라고 하면 평범했는데···.


‘이 여자, 지금 은근히 돌려서 레오를 말하는 거 아니야?’


콩깍지가 낀 엘리제에게는 좀 다르게 보이는 모양이다.


작가의말

선작, 추천, 댓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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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 귀찮은 건 피하는 게 상책 NEW 19시간 전 113 8 12쪽
» 아가씨의 사상검증 +2 24.09.17 177 8 12쪽
37 레이디의 복수는 10년이 지나도 늦지 않다 +2 24.09.16 197 8 12쪽
36 소란스러운 귀로 +1 24.09.15 223 13 12쪽
35 집으로 +1 24.09.14 260 8 13쪽
34 잊고 있던 일 +3 24.09.13 259 9 13쪽
33 아픈 교훈을 새겨주지 +1 24.09.12 287 11 12쪽
32 끝나지 않은 아가씨의 선물 +1 24.09.11 330 11 13쪽
31 정령의 가호를 얻다 +2 24.09.10 290 15 12쪽
30 보물의 주인이 바뀌다 +2 24.09.09 338 14 13쪽
29 집사와 함께 춤을 +3 24.09.08 345 14 13쪽
28 아가씨의 꿍꿍이 +1 24.09.08 338 13 13쪽
27 염탐과 다이어트 +1 24.09.07 341 12 14쪽
26 이솔렛 유스티치아 +2 24.09.06 368 12 13쪽
25 짜증 스택이 쌓이는 아가씨 +3 24.09.05 359 14 13쪽
24 불편한 동행 +3 24.09.04 379 15 12쪽
23 행운의 여신이 악녀를 비웃다 +2 24.09.03 408 15 12쪽
22 아가씨는 상사상애가 하고 싶다 +1 24.09.02 444 13 12쪽
21 네 초콜릿에 약을 탔어 +2 24.09.01 452 16 13쪽
20 산 제물을 준비하자 +2 24.08.31 477 14 13쪽
19 휴가 복귀 +2 24.08.30 475 19 13쪽
18 장가는 언제? +1 24.08.29 487 18 12쪽
17 전부 아가씨 손바닥 위 +1 24.08.28 475 19 13쪽
16 시련이라는 이름의 선물 +3 24.08.27 495 22 13쪽
15 내조의 여왕 +1 24.08.26 529 19 12쪽
14 어딜 가도 그분이 보여요 +5 24.08.25 573 23 12쪽
13 해충을 제거하다 +3 24.08.24 569 22 12쪽
12 악녀는 사라진 게 아니다 +1 24.08.23 583 23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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