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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 망친 악녀가 날 너무 좋아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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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UT
작품등록일 :
2024.08.11 2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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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12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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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쪽

프롤로그

DUMMY

버몬트 후작가의 하나뿐인 영애 엘리제 버몬트님을 모신지 10년.


부족함 많은 견습 집사였던 내가 단순히 맡을 사람이 없다는 이유로 벼락출세를 한 지 10년이 지났다.


그 10년, 왜 전속 집사를 맡을 사람이 없다는 건지 싫어질 정도로 잘 알게 됐다.


지독한 히스테리.

안하무인인 성격.


감당할 수 없는 가학심까지 더해져 ‘악녀’라는 말이 딱 어울리는 엘리제 영애는 손 쓸 도리가 없을 정도로 까다로운 상사였다.


기존 담당자가 전부 사표를 던지고 도망갈 만도 하다.


그걸 조금만 일찍 알았다면··· 달라질 건 없긴 했겠네.


후작가의 봉신인 기사 가문의 막내가 바로 나다.


전부 내던지고 어디론가 떠나버릴 수 있는 신분도 아니었기 때문에 일종의 제물이 되어 참고 인내하고 보필할 수밖에 없었다.


다른 선택지가 존재하는 집사와는 상황이 전혀 달랐던 거다.


기사 집안 막내답게 장래 모험가나 용병이라도 되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었는데 돌연 집사 교육을 받은 건 다 이런 이유였다.


일반적인 고용 관계의 집사는 도망가기 급급하니 입장상 그럴 수 없는 나를 집사로 만들었다는 소리다.


사람 인생을 뭐로 생각하는 거냐고 반발감이 들지 않았다고 한다면 거짓말이겠지. 하지만 이 나이까지 먹여주고 재워주고 입혀준 은혜가 있는 것도 사실이었고··· 가족은 평범하게 좋아한다.


그런 가족이 상급자 집안에 압박받고 일종의 인질로 잡힌 시점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건 없지.


내가 전설 속 소드마스터라도 됐다면 또 모르겠지만 나중에 칼밥 먹고 살 수 있을까 고민할 정도로 재능은 평범했으니까.


사실 그래서 차라리 이것도 괜찮다고 생각하고 받아들였다.


장남은 장남이니까 가문을 이어받을 준비를 하고 차남은 만일의 경우를 대비해 장남의 스페어로 준비되지만, 나 같은 막내는?


있는 집안이라면 귀여움받는 막내였겠지만 우리 집안은 좋게 말해서 청빈, 나쁘게 말해서 빈곤한 기사 가문이었다.


최소한의 교육을 베풀어졌으나 딱 그 정도였고 성인이 된 후에는 알아서 먹고 살길을 찾아야만 했다는 소리다.


그런데 어정쩡한 재능 탓에 진로를 고민하던 차에 집사라는 레일이 깔리게 된 거다.


등 떠밀려 강제로 갈 수밖에 없는 길이라고 해도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차라리 기꺼운 일이기도 했다.


지독한 악녀 소리가 절로 나오는 영애를 모셔야 한다는 건 심신 모두 고통스럽고 힘든 일이긴 했지만, 그 대신 후작가답게 봉급 하나는 두둑하기도 했고.


적당히 영애가 시집갈 때까지만 버티면 자유를 찾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고 버텼다.


그러던 어느 날의 일이었다.


"뭔가 요즘 엘리제 아가씨가··· 좀 달라지신 것 같지 않아?"


"그걸 달라졌다는 한마디로 설명할 수 있나? 그보다는 이상해졌다고 하는 쪽이···."


"쉿! 얘가 정신이 나갔지? 누가 들으면 경을 칠 소리를!"


이미 들었습니다, 메이드 아가씨들.


쓰게 웃으며 난 아무것도 못 들은 척 자리를 떠나는 동시에 방금 들은 시녀들 잡담을 생각했다.


그 말 그대로다.


아가씨가 달라지셨다.


얼핏 봐선 여느 때와 다를 게 없었지만··· 아는 사람은 안다.


10년을 곁에서 모신 나는 더욱 모를 수가 없지.


어찌 된 조화인지 알 수 없었으나 엘리제 아가씨는 변하셨다.


그것도 명백히 좋은 방향으로 변했다고 할 수 있겠지.


별 이유도 없이 주변에 히스테리를 부리는 일도 사라졌고 손찌검을 하는 일도, 잔혹한 면모도 사라지셨다. 아니, 사라졌다는 표현은 정확하지 않다. 자제력이 생겼고 고양이가 발톱을 숨기듯 잘 감출 수 있게 되셨다고 하는 게 정확한 표현이겠지.


놀라운 일이다.


후작님이 저명한 강사를 초청해 어떻게든 교정하고자 했으나 실패한 아가씨의 성미가 하루아침에 좋은 방향으로 성장한 거다.


그래, 성장이다.


좋지 않은 면모는 자제력을 발휘해 감추게 되었고 귀족 영애다운 고아한 자태를 연기할 수 있게 되었으며 동시에 기품있는 카리스마를 몸에 둘렀다.


예전에는 폭력과 짜증이라는 수단으로 아랫사람을 마구잡이로 휘둘렀다면 이제는 분위기로 압도하며 ‘통제’하게 된 거다.


그 변화를 대다수는 기꺼워했으나 일부는 불편하게 여겼다.


원인을 알 수 없는 갑작스러운 변모였고, 무엇보다 종종 나이를 잊게 만드는 모습을 보이게 된 탓이다.


특히 때때로 보이는 잘 갈린 칼날 같은 위태로운 일면은 10년을 곁에서 모신 나조차 오싹할 때가 있다.


이것만 이상한 게 아니다.


이미 충분히 이상하지만, 더 이상한 점이 있다.


착각이 아니라면 나를 보는 엘리제 아가씨의 눈빛이 전과 다르다.


시선에 내포된 게 무엇인지 설명하기 좀 힘든데··· 아무튼 달랐다. 전에는 그야말로 귀찮은 벌레를 보는 시선이었다. 어떻게 해야 이 귀찮은 족쇄를 부숴 눈앞에서 사라지게 할 수 있을까, 하는 그런 시선이었다는 거다.


그런데 지금은··· 모르겠다.


눈빛에 담긴 감정이 너무나 복잡해서 도저히 읽어낼 수가 없을 지경이었는데 딱 하나만은 알겠더라.


호의.


내가 말하고도 믿기질 않았지만 날 향한 눈길 속에 호의···가 있는 것 같다.


저택의 사용인은 나를 포함해 전원 쓰다 버리는 손수건 정도로 여기던 사람이 인간 대접을 넘어 호의라니.


당연히 후작 부부는 어떻게 된 영문인지 내막을 알고자 하셨다.


그러면서도 선뜻 아가씨에게 사정을 캐묻거나 하진 못했는데, 괜히 건드렸다가 뭐가 됐든 긍정적이던 이 변화가 돌연 사라지고 다시 예전의 그 심려 끼치는 망아지로 돌아갈까 두려운 것이다.


결국 자연스럽게 진상규명의 역할은 내게 주어졌다.


10년 동안 먹은 눈칫밥을 총동원해 엘리제 아가씨의 기분이 가장 좋아 보이는 타이밍에 조심스럽게 질문을 던졌다.


건방지다. 주제넘다. 짜증 난다.


이러면서 따귀라도 한 대 날릴 걸 각오했는데,


"꿈을 꿨답니다."


그런 각오가 무색하게 아가씨는 답해주었다.


"예에, 그건 정말 지독한 꿈이었어요."


"자신이 진정 원하는 게 뭔지도 모른 채 천치처럼, 보답받지 못할 사랑을 맹목적으로 불태우는 여자의 꿈이었죠."


"끔찍했답니다? 꿈에 나온 그 바보 여자는 미련한 사랑 끝에 어느 길을 가도 파멸하는 운명. 가질 수 없다면 차라리 부숴버리겠다고 반란군과 손을 잡아도, 혁명군을 동원해도, 마족을 이용해도 비참하게 죽는 결말 밖에는 없었거든요."


"그야말로 패배하는 역할을 확정된 인형 같은 꼴이었죠."


"그래도 몇 번이고 반복되는 그 구역질 나는 광경 속에 오직 한 사람만은 항상 마지막까지 그 여자 곁을 지켜주더군요."


"후훗, 전부 가질 수 있지만 가장 원하는 건 가지지 못한다고 절규하던 주제에. 실은 처음부터 가장 원하는 게 옆에 있었는데, 그것도 모르고 마지막까지 다른 곳만 보던 그 꼬락서니는 정말이지."


"끝끝내 마녀라 손가락질받으며 타죽던 모습은 가히 악몽 그 자체였답니다."


문제는 얘기를 들어도 이해하기 힘든 소리라는 점이었다.


그러니까 정리해보자면 안 좋은 꿈을 꾸었고 그걸 계기로 변하기로 마음먹었다는, 뭐 그런 소리인가?


사람은 어지간한 일이 아닌 이상 변하지 않는다고 하는데 아가씨가 이렇게 달라지실 정도면 정말 흉흉한 꿈이었다는 뜻이로군.


"어, 그거··· 사제님이라도 만나보는 게 좋지 않을까요?"


혹시 무언가 저주를 받거나 한 건 아닐까.


이런 말, 불충할 수도 있지만 솔직히 엘리제 아가씨는 충분히 누군가가 악의로 저주를 걸만한 짓을 수도 없이 저질러왔으니까.


후작가문의 재력과 권력으로 없던 일로 무마하긴 했지만, 인생이 파국 직전까지 몰린 이가 내 기억에만 한둘이 아니다.


잠들기 전에 또 몰래 이상한 소설이라도 본 영향이 아니라면 이건 검사를 한 번 받아보는 게 좋지 않을까 싶다.


"사양하겠어요."


아, 이거 한 대 맞겠다.


그런 생각이 반사적으로 들 정도로 사제를 언급한 순간 무슨 연유인지 아가씨의 분위기가 마법이라도 쓴 것처럼 싸늘해졌다.


감히 자신의 기분을 상하게 했다는 죄로 따귀라도 한 대 맞을 걸 각오하고 있는데···.


"오늘은 날이 좋네요. 갑자기 피크닉이 가고 싶어졌어요. 레오, 나갈 준비를."


"예, 예에, 바로 준비하겠습니다."


"빠르게 부탁해요."


웃으면서 ‘부탁’이라는 말을 한다.


······부탁이란다, 부탁.


‘그’ 후작영애 엘리제가 부탁이래.


오슬오슬 소름이 돋는 기분을 느끼며 아가씨의 요망대로 피크닉 준비를 위해 걸음을 옮겼다.


뒤쪽에서 "귀여우셔라." 같은 소리가 들린 기분이지만 아마 착각이겠지.


그래서 결국 따님의 변모에 대해 후작님께는 뭐라 보고드리면 좋으려나.


귀족 영애의 집사 노릇이라는 건 이다지도 힘든 거구나.


휴, 하루라도 빨리 퇴직하고 싶다.


작가의말

선작, 추천, 댓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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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 아가씨의 사상검증 NEW +1 6시간 전 76 5 12쪽
37 레이디의 복수는 10년이 지나도 늦지 않다 +2 24.09.16 146 7 12쪽
36 소란스러운 귀로 +1 24.09.15 186 12 12쪽
35 집으로 +1 24.09.14 226 7 13쪽
34 잊고 있던 일 +3 24.09.13 222 8 13쪽
33 아픈 교훈을 새겨주지 +1 24.09.12 259 10 12쪽
32 끝나지 않은 아가씨의 선물 +1 24.09.11 299 10 13쪽
31 정령의 가호를 얻다 +2 24.09.10 261 14 12쪽
30 보물의 주인이 바뀌다 +2 24.09.09 306 13 13쪽
29 집사와 함께 춤을 +3 24.09.08 318 12 13쪽
28 아가씨의 꿍꿍이 +1 24.09.08 311 11 13쪽
27 염탐과 다이어트 +1 24.09.07 312 10 14쪽
26 이솔렛 유스티치아 +2 24.09.06 337 10 13쪽
25 짜증 스택이 쌓이는 아가씨 +3 24.09.05 330 12 13쪽
24 불편한 동행 +3 24.09.04 351 13 12쪽
23 행운의 여신이 악녀를 비웃다 +2 24.09.03 377 12 12쪽
22 아가씨는 상사상애가 하고 싶다 +1 24.09.02 411 10 12쪽
21 네 초콜릿에 약을 탔어 +2 24.09.01 420 14 13쪽
20 산 제물을 준비하자 +2 24.08.31 446 12 13쪽
19 휴가 복귀 +2 24.08.30 444 17 13쪽
18 장가는 언제? +1 24.08.29 452 16 12쪽
17 전부 아가씨 손바닥 위 +1 24.08.28 441 17 13쪽
16 시련이라는 이름의 선물 +3 24.08.27 462 20 13쪽
15 내조의 여왕 +1 24.08.26 493 17 12쪽
14 어딜 가도 그분이 보여요 +5 24.08.25 529 20 12쪽
13 해충을 제거하다 +3 24.08.24 530 18 12쪽
12 악녀는 사라진 게 아니다 +1 24.08.23 540 20 12쪽
11 미래에 투자하다 24.08.22 562 2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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