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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재에 당도한 것을 환영하오, 낯선이여.

나라 망친 악녀가 날 너무 좋아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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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U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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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11 2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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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23 0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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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악녀는 사라진 게 아니다

DUMMY

모험가 길드.


그 현판을 앞에 둔 레오는 만감이 교차하는 기분이었다.


10살, 반강제로 버몬트 후작가에 집사로 팔려 오기 전까지만 해도 항상 장래에 대해 생각할 때면 후보에 오르고는 했던 것이 모험가였다.


기사, 모험가, 용병.


어른이 되면 이 셋 중 하나가 되어 살아갈 거라고 막연히 생각했었는데 인생은 결코 생각한 대로만 흘러가지 않는다는 걸 참 어린 나이에 깨닫게 됐다.


꿈과 달리 현실은 상상도 해본 적이 없는 집사가 되어 이렇게 모험가 길드 앞에 서게 됐으니까.


"편견을 심어드리려는 건 아닙니다만, 모험가 중에는 길거리 왈패와 다를 게 없는 자들도 많습니다. 눈이 있다면 후작가의 인장을 보고도 무례를 저지르진 않을 거라고 생각합니다만···."


가능하면 엘리제를 대동하고 모험가 길드에 들어가고 싶지 않다.


필사적으로 설득해본 레오였지만, 노력이 무색하게 전혀 통하지 않았고 결국 찾는 사람에게 동석하는 일이 됐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트러블이 일어나지 않도록 노파심에 최대한 모험가에 대해 얘기하고는 있지만,


"모험가라. 어릴 적엔 그런 걸 상상해본 적도 있었죠. 현실은 이야기와 달리 무척 추레한 것 같네요."


전혀 귀담아듣는 기색이 아닌 엘리제를 보고 레오는 반쯤 포기하는 마음이 됐다.


뭐 호위 기사도 있고 아무리 개념 없는 모험가라도 눈이 박혀있다면 알아서 조심하겠지.


일말의 우려를 마음에 품은 채 레오는 엘리제를 모시고 모험가 길드 안으로 입장했다.


당연히 들어선 순간 장내의 시선이 일제히 쏠린다.


기사, 집사, 아가씨.


모험가 길드와는 아무래도 거리가 있을 수밖에 없는 조합이 행차하셨으니 시선이 안 쏠리면 그게 더 이상한 거다.


"저 문장은···."


"버몬트 후작가가 왜 여길?"


"어? 설마 후작영애···?"


"기사? 누구 잡아가려고 왔나?"


술렁거리는 모험가들.


그만큼 예측 불허의 상황이 발생했다는 거지.


잠깐 오묘한 침묵과 대치가 이어졌는데 2층으로 통하는 계단에서 우당탕 누군가 구르다시피 내려오는 게 보인다.


"영애께서 무, 무슨 일로···! 오셨···!"


숨넘어가는 기색으로 마중하는 머리가 벗겨지기 시작한 남자.


아마도 이곳 책임자, 그러니까 길드장이 아닌가 싶다.


입고 있는 옷도 그렇고 다른 직원들 반응도 그렇고 최소한 중책에 있는 인물임이 틀림없어 보인다.


"길드나 그 쪽에게 일이 있어서 온 건 아니니 신경 끄도록."


안으로 모시겠다는 말에 시간 아깝게 귀찮은 짓은 사양이라는 듯 거절한 엘리제.


그녀가 휙 주변을 둘러보더니 목적하는 사람을 발견한 듯 눈을 빛낸다.


접수원이 있는 곳으로 척척 걸어가는 엘리제를 따라 레오 역시 황급히 이동한다.


갑작스러운 귀빈의 행차에 혼란과 경계심으로 가득한 모험가 길드.


그런 길드를 레오는 예의 주시했다.


행여나 돌발행동하는 사람이 있진 않은지 주의하는 것도 있었고 언젠가는 직장이 될 수도 있는 곳이라 견학한다는 느낌도 있다.


‘확실히 용병보다는 모험가가 낫나.’


철저하게 하나의 무력 집단으로 각종 분쟁에 동원되는 용병과 달리 모험가는 해결사라 부를 수 있다.


민간의 자질구레한 일부터 귀족의 말 못 할 사정까지 깔끔하게 대신 의뢰를 받아 처리해준다.


그 과정에 몬스터 처리도 하고 던전을 탐험하는 일도 있지.


용병보다는 자유로운 분위기에 대민친화적이라는 점에서 장래 희망은 모험가가 나을 것 같다고 생각하는 레오.


자신이 평생 엘리제 곁을 지키게 될 가능성 같은 건 요만큼도 생각하지 않는 눈치였다.


이런 걸 두고 동상이몽이라고 하는 거겠지.


한쪽은 가족화 그릴 생각하면서 모험가 길드까지 왔는데 다른 한명은 퇴직하고 모험가 길드에서 일할 것만 생각하고 있었으니까.


그런 엇갈림 속에 엘리제가 한 접수원 앞에 섰다.


"마일로?"


"예? 예에, 제가 마일로입니다만···."


지금 뭐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 건지 영문을 모르겠다는 얼굴로 눈을 깜빡이는 청년.


"모험가 길드에서 일하고 있는 접수원이 꽤 전도유망한 예술가라는 얘기를 듣고 후원할까 싶어서 왔어요. 지금은 그림을 그리고 있나요?"


"그걸 어떻게 아셨죠?"


이어지는 엘리제의 말을 들은 남자, 마일로가 경악했다.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건지 뇌가 받아는 들였는데 이해를 제대로 못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가 예술가를 꿈꾸면서 먹고살 돈과 화구 값을 벌기 위해 모험가 길드에서 접수원 일을 하는 건 사실이다. 지인 중에는 그런 마일로를 응원하는 이들도 제법 있었고, 최근 공모전에 출품하려고 그림 작업에 몰두하고 있는 것도 맞다.


그 공모전을 통해 자신의 실력을 선보이고 세상에 인정받겠다.


그런 심산으로 공들여서 길드 일이 끝나면 밤이 깊도록 그림을 그리고 있긴 했는데 그걸 설마 귀족이 알고 찾아올 줄은 상상도 못 했다.


게다가 방금 후원이라고 한 게 제대로 들은 거라면···.


‘내가 지금 꿈을 꾸고 있는 건가?’


후작가의 영애가 아직 세상에 인정도 못 받은 자신을 찾아와 후원을 언급하다니.


이걸 꿈이라고 생각하지 않으면 뭐라 생각하겠는가.


기껏해야 질 나쁜 장난 정도겠지.


평소에 예술가 지망생을 찾아다니면서 싹이 보이는 이들을 후원하는 귀족도 있긴 하지만, 엘리제는 그런 인물이 아니었으니까.


정식으로 등단한 것은 아니지만 예술계에 몸을 담고 있는 만큼 눈에 들면 좋을 재력가 리스트 같은 건 꿰고 있다. 그런 이들 중에 엘리제의 이름은 당연히 존재하지 않았는데 이런 일이 벌어지다니.


공모전 등에서 좋은 평가를 받고 후원을 약속받은 거면 이해라도 하지.


아직 세상에 아무것도 보여준 게 없는데 어디서 무슨 소문을 듣고 이렇게 자신을 찾아온 건지 이해가 가질 않았다.


무엇보다 현재 작업 중이라는 건 또 어떻게 알았단 말인가.


"그, 실례지만 제가 그림을 그리는 건 어떻게 아셨는지요?"


지인 중에 후작가에서 일하는 사람이 있었던가, 하고 기억을 더듬어보는 마일로.


그런 그에게 엘리제게 피식 웃으면서 마일로의 손끝을 가리킨다.


"손톱에 물감이 묻어있잖아요."


주의 깊게 관찰하면 다 보인다는 듯 말하고 있었지만, 실상은 그게 아니지.


그냥 알고 있는 거다.


이 시기에 공모전 출품을 위해 마일로가 그림을 그리고 있으며, 그 그림을 계기로 본격적으로 예술계에 발을 들인다는 사실을.


그래서 아직은 예술가 마일로보다 길드 접수원 마일로로 더 잘 알려진 이 시기에 접촉한 것이기도 하지.


"그래서 어떻게 할 생각인가요? 제 후원, 거절하진 않겠죠?"


팔짱을 낀 채 빨리 결정하라는 듯 묻는 엘리제에게 너무 갑작스러운 상황들 속에 멍청한 표정을 짓고 있던 마일로는 반사적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이 은혜, 잊지 않겠습니다."


아직 아무것도 증명하지 못한 지망생에게 귀족이 후원자로 붙는다?


그것도 후작가의 영애나 되는 사람이?


그 사실만으로 이슈가 되고 자기 작품을 봐주는 사람이 생길 거다.


좋은 작품을 만드는 것도 중요하지만 성공을 위해서는 운도 필요하다는 걸 잘 알고 있는 마일로가 이 제안을 거절할 가능성 같은 건 사실 없다고 보는 게 맞지.


굴러온 복을 차버릴 마일로도 아니었기에 격렬히 고개를 끄덕이며 엘리제의 후원을 받아들였다.


이게 시작이었다.


후작령을 좀 더 살기 좋은 곳으로 바꾸기 위해 소외계층을 위한 공공복지나 자선사업을 벌이겠다는 엘리제의 주장이 거짓이 아님을 증명하듯 그녀는 행동과 실천으로 증명했다.


처음에는 많은 사람이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았다.


당장 후작가 사람들이 가장 의심이 많았다.


저 사악한 여자가 또 무슨 짓을 꾸미는 건가 하고 김장을 늦추지 않았지.


요즘 좀 조용하다고 해서 과거에 하루가 멀다고 시종을 괴롭히던 게 없던 사실이 되는 게 아니니까.


분명 새로운 형태의 기발한 괴롭힘을 떠올려서 그걸 하는 중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가식도 꾸준하면 진정성이 생긴다는 걸 증명하는 것처럼 묵묵히 자기 할 일 하는 엘리제를 보고 후작가에 서서히 훈풍이 불기 시작했다.


아! 우리 아가씨가 정말 변하셨구나!


이렇게 생각하고 달라진 엘리제를 기꺼워하는 이들이 하나둘 늘어가는 추세였다.


물론 아직도 의심을 완전히 거두기에는 이르다는 이들도 있었다.


주로 엘리제에게 직접 당해본 경험이 있거나 당하는 사람을 목격한 이들 중심으로 그랬다.


사람은 그리 쉽게 달라지지 않는 법이라고 엘리제 버몬트가 착해졌다는 걸 믿지 않았다.


그간 쌓인 엘리제의 악명에 대해 소문만 들었던 이들은 쉽게 그녀의 변화를 받아들였지만, 경험으로 학습한 이들은 그럴 수 없었던 것이다.


그래도 경험으로 치자면 가장 경험자라 할 수 있는 레오가 엘리제가 변했다는 걸 받아들였으니까.


결국 다른 이들도 그녀의 변화를 인정하는 건 시간문제였다.


그걸 위해 계산적으로 마음에도 없는 선행을 꾸준히 쌓아나가는 엘리제.


삼왕자에게 잘 보이기 위해 본심과 다른 행동도 꾹 참고 몇 번이고 했던 기억이 있다. 그에 비하면 가끔 위문에 나서면서 지갑 여는 정도는 일도 아니지.


취향 아닌 옷을 억지로 입거나 문학작품 같은 걸 삼왕자 마음에 들기 위해서라는 이유로 꾸역꾸역 읽어나가던 노고에 비하면 이런 건 일도 아니라는 듯 엘리제는 달라진 모습을 꾸며냈다.


그런 가운데 아카데미 입학 전에 필요한 인맥과 재력을 차근차근 쌓아나가는 것도 잊지 않았다.


크게 성공할 예술가 섭외부터 시작해서 잭폿이 터질 투자처에 돈을 묻어두거나 당장 큰돈이 될 사업에 손을 대는 등등.


부모가 깜짝 놀랄 수완을 선보이면서 엘리제는 그야말로 온 왕국이 자신을 다시 보게 만들어 나갔다.


특히 이 모든 일의 진짜 이유라고 할 수 있는, 레오에게 두려움 사기 싫다는 목적도 이 페이스라면 어렵지 않게 이룰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세상 모든 일은 작용과 반작용이 있는 법이다.


‘웃고 있어.’


결국 이게 다 자신의 집사 레오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 한 일이다. 그런데 정작 다른 이들, 다른 년들이 사람 우습게 보고 감히 레오에게 꼬리를 치기 시작했다.


우연히 목격했다.


안 어울리는 짓을 하고 다니는 통에 정신적 피로감이 쌓여 적당한 핑계로 레오와 오붓하게 나들이라도 나갈까 하던 차였다.


평소라면 사람을 불러 레오를 호출했겠지만, 오늘은 왠지 그러고 싶은 기분이라 직접 찾아 나섰다가 목격했다.


어디서 본 기억이 있는 시녀가 레오 앞에서 눈웃음을 치고 있다.


그걸 본 순간 레오와 둘이 나들이 나갈 생각에 즐거웠던 기분이 싸늘하게 식어가는 걸 느꼈다.


오랜만에 악녀라 지탄받던, 그리 오래되지도 않은 과거로 돌아간 것 같은 기분을 느끼는 엘리제.


‘감히.’


눈에서 불꽃이 튄다.


너그럽게 이해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선 광경.


그녀의 감정에 호응하듯 주변 사물이 파르르 흔들린다.


당장이라도 유리창이 갈라질 것처럼 비명을 지르는 소리를 듣고 간신히 정신을 차린 엘리제가 심호흡을 했다.


어떻게 할까?


고민은 그리 길지 않았다.


"───거기 너."


마침 지나가던 시녀를 불러들이는 엘리제.


"시녀장을 불러와."


자신을 향해 손가락을 까딱이는 엘리제 앞으로 쪼르르 달려온 시녀가 고개를 조아리고 지시를 듣는다.


"내 방에 있을 테니까 빨리."


시녀는 이게 다 무슨 일인가 싶었지만, 감히 되물을 용기는 없었다.


"아, 걱정하지 말렴. 너 때문은 아니니까."


안심하라는 듯 그렇게 말하며 차갑게 웃는 엘리제의 얼굴을 본 어린 시녀는 귀신이라도 본 사람처럼 혼비백산 시녀장을 찾아 달아났다.


한동안 조용하던 후작가에 익스플로전이 터졌다.


작가의말

선작, 추천, 댓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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