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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재에 당도한 것을 환영하오, 낯선이여.

나라 망친 악녀가 날 너무 좋아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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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U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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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15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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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소란스러운 귀로

DUMMY

일이 벌어진 건 막 유스티치아 자작령을 빠져나와 후작령으로 향하는 산길로 접어들었을 무렵이었다.


움찔.


무언가를 직감한 엘리제가 고개를 들어 창밖을 주시했다.


따사로운 봄기운이 가득 느껴지는 산길은 일견 평화롭기만 했지만, 그 평화의 가죽을 뒤집어쓴 무언가가 도사리고 있다는 느낌이 엄습했다.


"레오."


"예, 아가씨. 필요하신 거라도 있으십니까?"


"뭔가 느낌이 좋지 않네요. 마부에게 서행하라 이르고 기사들에게도 경계하라고 전해줘요."


뜬금없는 말이었지만──.


"알겠습니다."


레오는 군말 없이 엘리제의 지시를 따랐다.


원론적으로 말해 조심해서 나쁠 게 없기도 했거니와 상전이 지시하면 그게 뭐든 따라야지.


다년간 경험을 통해 주입된 그 진리에 따라 레오는 즉각 창문을 열고 바깥에 엘리제의 요청을 전달했다.


명백히 습격을 우려하는 것 같은 그 지시에 기사들은 어리둥절한 반응을 보얐다.


하지만 기사는 괜히 기사가 아니다.


지금 지형이 매복과 암습에 아주 좋은 지형이라는 걸 알아차린 그들은 혹시나 하는 마음에 엘리제의 말처럼 경계도를 높였다.


그게 정답이었다.


퉁!


부지불식간에 날아든 석궁 한 발이 마차 천장에 틀어박혔으니까.


"습격이다!"


"전원 마차를 중심으로 방진!"


실로 기민한 움직임이었다.


기사가 왜 기사인지 증명하는 것처럼 평화롭기만 하던 봄날의 귀경길 벌어진 갑작스러운 습격이었지만 기다렸다는 듯 대응한다.


가장 귀한 분이 탑승한 마차를 중심으로 포진하며 석궁이 쏘아진 방향을 주시한다.


후속타가 이어질 것을 상정하고 재빨리 방패를 높이 들지만, 이상하게도 이어지는 사격은 없다.


이상하다는 생각이 좌중을 지배했지만 지금 우선할 건 아가씨의 안전 확보와 매복병의 토벌이다.


고블린이나 오크처럼 인간의 도구를 남획해서 쓸 줄 아는 몬스터의 공격이 아닐까도 생각했지만, 뭔가 지성이 느껴지는 습격이었다.


적은 같은 인간이라고 생각하는 게 맞겠지.


두 영지의 접경지인 이곳에 산적이 있을 리는 없었고 노상강도나 이동하는 도적 떼일 가능성이 있는데 그렇다고 해도 뭔가 이상하다.


"눈이 있다면 후작가 깃발을 봤을 텐데 공격한다고?"


"정신이 나가버린 도적인지, 혹은···."


"이상하군. 왜 후속 공격이 없지? 석궁까지 쏜 주제에 이제 와서 겁을 먹기라도 헀다는 건가?"


커지는 위화감.


"···당했다! 당장 마차를──."


그 위화감의 정체를 경험 많은 노기사가 알아차렸을 때는 한발 늦었다.


쿵!


산과 지축을 울리는 폭음과 함께 마차 밑에서 폭발이 일어났다.


미리 심어둔 폭탄이 터졌고 그 충격파에 마차 주위로 모여 방진을 형성하고 있던 기사들이 날아갔다.


"꺄아악!"


폭발의 충격으로 요동치는 마차 안에서 잔뜩 겁에 질린 안나의 비명이 터져 나왔다.


그 소리를 통해 알 수 있지만 다행히 마차도, 탑승자도 무사하다.


귀족, 그것도 후작가 사람이 타는 마차다.


각종 방호 마법이 떡칠된 마차를 이 정도 폭발로 날려버릴 생각을 하는 건 오만한 것이지.


하지만,


"이, 이런! 길이 무너진다!"


"이대로는 마차가 벼랑으로···!"


마법 덕에 마차는 멀쩡해도 그 마차가 서 있던 땅은? 굴곡진 산길은 어떨까?


처음부터 폭발의 목표는 마차 그 자체가 아니라 마차를 벼랑 아래로 굴러 떨어뜨리는 것이 분명했다.


폭파된 산길이 무너져내리며 지탱할 곳을 잃은 마차 역시 토사와 바위에 휩쓸려 벼랑으로 기운다.


탑승자는 무사했으나 마차를 끌던 말과 마부는 폭발의 충격에 즉사한 상황.


속절없이 벼랑 아래로 쓸려 내려가던 마차 문짝이 쾅 소리를 내며 떨어져 나갈 듯 열린다.


"실례하겠습니다!"


"아···."


그 안에서 레오가 한쪽에는 엘리제, 다른 쪽에는 안나를 팔로 들어 옆구리에 낀 채 벼랑 아래로 떨어지는 마차에서 뛰어올라 탈출했다.


워낙 걸출한 무인들과 비교를 당해서 그렇지 소드 엑스퍼트 하급이면 충분히 초인의 범주에 들어간다.


벼랑으로 떨어지기 직전인 마차에서 레이디 두 명 구출해서 튀어나오는 정도야 못할 것도 없지.


마나를 실은 두 다리로 마차를 박차고 도약한 레오가 안전한 곳에 착지한다.


"잘했다!"


"적습! 방패를 들어!"


잠시 레오의 존재를 잊고 어두워졌던 기사들 표정이 환해진다.


일반인인 마부는 즉사했지만, 갑옷까지 입은 기사를 고작 그 정도도 폭발로 죽일 순 없지.


정신을 차린 이들이 재빨리 엘리제 곁으로 모여 다시 방진을 형성하는데 마차 밖으로 나오기만 기다렸다는 듯 화살이 날아든다.


그걸 병장기로 쳐내는 기사들.


"괜찮습니다! 아가씨는 제가 지킬 테니 가서 매복한 놈들을 처리해주십쇼!"


그런 기사를 향해 레오가 소리쳤다.


"그렇지, 가호!"


순간 무슨 만용인가 싶던 기사들 표정이 밝아졌다.


뒤늦게 레오가 정령의 가호를 받았다는 걸 떠올렸기 때문이다.


실제로 레오와 엘리제 쪽으로 날아들던 화살이 바람의 벽에 막혀 사방으로 흩어지고 있다.


그 모습을 보고 안심하며 살아남은 시종들과 혹시 모를 추가 습격을 대비해 일부 병력을 남긴 채 기사들이 습격자를 처리하러 땅을 박찼다.


"이놈들! 단순한 도적이 아니로구나!"


"체계적인 훈련을 받은 놈들이다! 연계에 조심해!"


"군대라도 상대하는 기분이군!"


병장기가 부딪히는 소리.

사람이 죽는소리.

피 냄새가 퍼져나가는 산중.

생사가 오가는 현장.


그야말로 적나라한 전투의 모습에 이런 것과 연이 먼 안나 같은 시종들은 들려오는 소리와 풍겨오는 피비린내만으로 죽은 사람처럼 안색이 창백해진다.


비위와 담이 약한 이들 중에는 헛구역질을 하는 이도 있다.


그런 가운데 엘리제는──


‘아아, 레오의 강인한 팔이 내 허리를··· 허리를 그렇게 단단히 감싸서··· 우후훗.’


조금 전 마차에서 탈출하던 순간을 몇 번이고 반추하며 행복에 잠긴 상태였다.


겁에 질려 덜덜 떠는 것보다는 낫다···고도 할 수 있겠지만 목숨이 노려지는 이런 끔찍한 상황에서 일반적으로 규중처녀가 보일 반응이 아닌 건 확실했다.


보통 다른 영애 같으면 밤에 잠도 이루지 못할 트라우마가 되어도 이상하지 않을 판국인데 말이다.


누가 봐도 평범하지 않을 그 모습은 오히려 보는 이로 하여금 공포에 가까운 이질감을 자아낼 지경이다.


하지만 다행히 다들 급박하게 돌아가는 상황에 정신이 팔려 그런 그녀의 이상함을 신경 쓰는 이가 없다.


긴장하거나, 경계하거나, 겁에 질려 떨기 바빠서 엘리제의 반응 같은 거나 살피고 있을 겨를이 없다는 말이다.


레오 역시 지금이야말로 받은 은혜를 다해 지켜야만 한다는 사명감에 불타고 있어서.


‘아아, 멋져.’


그런 레오를 보면서 엘리제는 황홀함에 잠기고 있다.


그야말로 동화에 나올 것 같은, 레이디를 지키는 기사의 모습이 아닌가.


사실 이 모든 상황이 엘리제로서는 하품만 나오는 수준이었지만, 보호받고 있다는 생각에 뇌내마약이 마구 뿜어질 정도로 짜릿했다.


"레, 레오···."


그래서 좀 더 이 상황을 즐기고 만끽하고 싶은 마음에 있지도 않은 공포심을 억지로 쥐어짜서 겁에 질린 가냘픈 아가씨를 연기했다.


그게 잘 먹힌 것 같다.


"괜찮습니다, 아가씨. 제가 반드시 흉적으로부터 지켜드리겠습니다."


아마 정말 위험한 순간이 온다면 오히려 반대의 결과가 나올 거다.


엘리제가 힘을 써서 레오를 지켜주겠지. 


그렇지만 지금만은 결사적인 표정으로 각오를 다지는 레오를 보니 꿈에서 보았던, 세상을 적으로 돌리는 한이 있어도 마지막까지 자기 곁을 지켜주던 레오의 모습이 떠올라 엘리제는 새삼 연정이 요동치는 걸 느꼈다.


결과적으로는 잘 계획된 암살 시도였지만, 기사단의 활약으로 무위로 돌아가고 끝났다.


여차하면 몸을 던져 지키겠다는 레오의 각오가 무색하게도 적은 소탕되었다.


"흥! 고작 이따위 습격으로 아가씨께 해를 입힐 수 있을 것 같더냐?"


당당하게 그리 소리치는 기사들.


하지만 제법 아찔했다는 건 본인들이 가장 잘 알고 있다.


정면으로 승부를 본다면 당연히 상대 자체가 되질 않는다. 그걸 잘 알기 때문에 기사에게 경호를 받는 VIP를 제거하기 위해 다양하게 획책했고 그게 실제로 아찔하기도 했다.


일부러 석궁을 쏴서 습격을 알리고 마차 주변으로 포진하게 만든 후 폭사를 유도.


그게 잘 안 통해도 지반을 붕괴시켜 낙사를 유도.


그마저도 실패하면 마차를 버리고 나온 목표를 직접 사살 시도.


그야말로 이중, 삼중으로 준비했고 그만큼 진심으로 죽이려고 들었다는 거다.


그리고 당연히 그 목표는 엘리제다.


그 정도로 공을 들여 제거를 시도할 상대가 지금 일행 중에는 엘리제 밖에 없었으니 그야 당연한 결론이지.


물론 적들은 죽은 순간까지 말 한마디 하지 않았다.


작전이 실패했다고 판단하자 동귀어진을 시도하거나 독단을 깨물고 자결한 것이다.


"마치 광신도라도 상대하는 기분이군."


"설마 사교도?" 


"정체가 뭐든 심상치 않아. 이렇게 잘 훈련된 놈들이 아가씨를 노리다니, 대체···."


상황을 수습하는 기사들 표정이 하나 같이 어둡다.


독기와 광기로 무장한 적의 공격에 사상자도 발생했고 이런 놈들이 호위 중이던 귀족을 노렸다는 게 무엇보다 마음을 무겁게 했다.


단순한 암살자가 자객이었다면 차라리 마음은 편했을 텐데, 이런 집단이 암습하다니 심상치 않다는 게 한눈에 보였으니까.


대체 정체가 무엇인가?


간신히 자결을 막고 포박한 놈들을 ‘가볍게’ 심문해보았으나 하나 같이 말은 고사하고 신음조차 내지 않는다.


혹시 마법적인 금제라도 가해진 건가 싶었는데 만약 그렇다면 더더욱 심각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골치 아프군."


"대체 뭐 하는 놈들이야."


"이런 놈들이 아가씨를 노렸다고? 왜?"


과거 엘리제가 업보를 많이 쌓긴 했지만, 그렇다고 해도 이런 놈들이 목숨을 노려올 정도는 아니다.


그런데 일이 벌어졌다.


특히 불과 얼마 전에 엘리제의 전속 집사 레오가 괴한의 습격을 받는 일이 있었다.


그게 일종의 경고거나 진짜 목표는 엘리제 아가씨가 아니냐는 말이 있었다.


결국 아무런 단서도 잡지 못해 일단 묻어두게 됐지만, 오늘 일과 겹쳐 다시금 지난 일이 부상하게 된다.


진실은 그게 아니라 순전히 어쩌다 우연히 그런 식이 된 거였지만, 진실을 아는 이가 이 자리에 한 명밖에 없으니 심각하게 해석될 수밖에.


그리고 습격의 동기조차 명확하지 않은 이 상황 속에 직접적으로 목숨이 노려진 엘리제는,


‘설마··· 그곳에서?’


겁먹은 연기에 집중하며 티를 내진 않았으나 짐작 가는 바가 있었다.


정확히는 자신을 제거하려는 확실한 동기를 지닌 곳이 있다.


혁명군.


가질 수 없다면 부숴버리겠다는, 엘리제도 익히 잘 아는 그 마인드로 이왕자가 준비한 칼날.


착한 귀족은 죽은 귀족뿐이라는 기치를 내건 무리다.


평민과 귀족 사이의 갈등을 먹고 자라는 세력에게 평민의 지지를 받는 귀족 따위 언어도단.


혁명의 불길을 약하게 만들 소지가 다분한 ‘빈민가의 성녀’ 같은 건 영향력이 더 커지기 전에 죽여 없애고자 할만하지.


물증이 있거나 한 건 아니었지만 정황 증거 하나는 더없이 확실했다.


저런 정체불명의 잘 훈련된 군인이 갑자기 또 어디서 튀어나왔겠는가?


제국도 의심을 거둘 수 없긴 하지만, 이 타이밍에 제국이 자신을 노린다고 생각하기에는 근거나 동기가 빈약하다고 판단한 엘리제였다.


‘이 비슷한 시기에 친서민파 귀족이 연달아 의문사해서 화제였던 것도 같고.’


지금 생각해보면 혁명군에서 갈등을 조장하기 위해 걸림돌이 되는 귀족을 싹 제거한 게 아닌가 싶다. 자신도 그 대상에 올랐다는 사실에 엘리제는 뿌듯했다.


제대로 살고 있다는 생각이 무럭무럭 들었기 때문이다.


물론 이 모든 건 추측일 뿐이다.


하지만 이런 일이 다 그렇지만 의심 하나면 충분하지.


운 좋게 자결하기 전에 생포한 이들이 몇 있다.


적당한 타이밍에 ‘뇌’에 직접 물어보면 될 일이라고 엘리제는 가볍게 생각했다.


중요한 건 무탈하게 살아있다는 거다.


자신도, 레오도.


암살 위협 따위, 새삼스러워서 겁도 나지 않았기에 지금은 그거면 됐다고 생각을 마무리 짓는 엘리제였다.


작가의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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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란스러운 귀로 +1 24.09.15 224 13 12쪽
35 집으로 +1 24.09.14 261 8 13쪽
34 잊고 있던 일 +3 24.09.13 261 9 13쪽
33 아픈 교훈을 새겨주지 +1 24.09.12 287 1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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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정령의 가호를 얻다 +2 24.09.10 290 15 12쪽
30 보물의 주인이 바뀌다 +2 24.09.09 339 14 13쪽
29 집사와 함께 춤을 +3 24.09.08 345 14 13쪽
28 아가씨의 꿍꿍이 +1 24.09.08 340 13 13쪽
27 염탐과 다이어트 +1 24.09.07 341 12 14쪽
26 이솔렛 유스티치아 +2 24.09.06 369 12 13쪽
25 짜증 스택이 쌓이는 아가씨 +3 24.09.05 360 14 13쪽
24 불편한 동행 +3 24.09.04 380 15 12쪽
23 행운의 여신이 악녀를 비웃다 +2 24.09.03 408 15 12쪽
22 아가씨는 상사상애가 하고 싶다 +1 24.09.02 445 13 12쪽
21 네 초콜릿에 약을 탔어 +2 24.09.01 452 16 13쪽
20 산 제물을 준비하자 +2 24.08.31 478 14 13쪽
19 휴가 복귀 +2 24.08.30 475 19 13쪽
18 장가는 언제? +1 24.08.29 488 18 12쪽
17 전부 아가씨 손바닥 위 +1 24.08.28 475 19 13쪽
16 시련이라는 이름의 선물 +3 24.08.27 495 22 13쪽
15 내조의 여왕 +1 24.08.26 530 19 12쪽
14 어딜 가도 그분이 보여요 +5 24.08.25 573 23 12쪽
13 해충을 제거하다 +3 24.08.24 569 22 12쪽
12 악녀는 사라진 게 아니다 +1 24.08.23 584 23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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