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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 망친 악녀가 날 너무 좋아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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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U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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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11 2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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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03 0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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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행운의 여신이 악녀를 비웃다

DUMMY

"그 여자를 만나는 건 반대입니다."


느긋하게 나아가는 마차 안에서 딱 잘라 말하는 카일 루.


그런 심복을 향해 삼왕자 요슈아는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왜 그렇게 엘리제 버몬트 영애를 경계하는 거야?"


"그 여자는 위험합니다."


"위험?"


정말 어울리지 않는 표현이라고 눈을 깜빡이는 요슈아.


그의 기준에서는 그럴 수밖에 없다.


서면 작약, 앉으면 모란, 걸으면 백합.


그런 표현이 딱 어울리는 15살 아름다운 아가씨가 바로 요슈아가 생각하는 엘리제 버몬트라는 아가씨였다.


그런 그녀가 위험하다니?


달인이라 할 수 있는 카일에게는 자신은 알 수 없는 무언가가 보일 수도 있는 거겠지만, 도무지 이해가 안 가는 것도 사실이었다.


이런 주종 간 인식 불일치는 말주변 없는 카일이 제대로 엘리제의 위험성을 설명하지 못하는 탓도 있다.


분명 무언가를 느꼈다.


그것도 아차 하는 순간 삼왕자만이 아니라 자신까지 목숨을 잃게 되지 않을까 싶은 위험한 무언가를.


개미가 자신에게 살의를 품었다고 진지하게 위기감을 느끼는 사람이 세상에 몇이나 있을까?


그것도 개미 떼가 아니라 개미 한 마리가.


정말 엘리제 버몬트가 삼왕자에게 불충한 마음을 품었든 어떻든 위협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면 카일도 이렇게 반응하지 않았을 거다.


본능적으로 위협이 된다고 느꼈으니까 이렇게 반응하는 거다.


그 여자, 엘리제 버몬트는 그때 마음먹으면 정말 죽일 수 있었다.


삼왕자 요슈아도, 자신도.


근거는 없지만, 그런 직감이 들었고 카일은 그 직감을 신뢰해 어떻게든 주군이 위험한 여자를 만나려는 마음을 돌리고자 했다.


그 여자가 다른 마음을 품으면 도저히 삼왕자의 안전을 보장할 자신이 없다.


그러나 그런 카일의 마음을 모르는 요슈아로서는 엘리제 버몬트와 다시 만나 얘기를 나눠보기 위해 유스티치아 가문이 주최한 파티로 발길을 옮기고 있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기수를 돌리자.


그렇게 설득하는 카일의 말을 한 귀로 듣고 흘리면서 엘리제를 떠올리는 요슈아.


최근 놀라운 노블레스 오블리주 행보를 보이면서 빈민가의 성녀 소리를 듣고 있는 엘리제 버몬트.


그런 그녀의 모습에 요슈아는 역시 자기 생각이 맞았다는 확신을 품었다.


천성은 착한데 뭔가 모종의 이유야 있어 모질게 굴다 개심했다.


이야기에 나오는 것만 같은 그 변화에 주목하게 된다.


참 재미있는 아가씨다.


그렇게 생각하며 웃는 삼왕자 요슈아.


"혹시."


그런 주군을 수심에 잠긴 모습으로 가만히 지켜보던 카일이 묻는다.


"반하신 겁니까? 그 여자에게?"


위험합니다.

아무리 온순하다고 한들 독사를 곁에 두는 건 어리석은 짓입니다.


그리 말하며 진짜 그 여자는 아니라고 단호하게 고개를 젓는 카일을 보고 삼왕자 요슈아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반했다?"


그런 식으로 생각해본 적은 없다.


사랑? 애정? 친애? 잘 모르겠다.


지금 자신이 영애 엘리제를 향해 품은 이 감정이 무엇인지는 요슈아 본인도 알 수 없었다.


한 가지 확실한 건 호기심이 가득하다는 거다.


"글쎄, 그건 잘 모르겠네. 그냥··· 흥미가 가. 지금까지 그녀 같은 타입의 여성은 없었으니까."


결핍이라는 단어를 모르는 풍족한 인생을 살아온 삼왕자 요슈아.


그건 이성 관계도 다르지 않았다.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자신에게 잘 보이고 싶어 하는 레이디로 주변이 온통 가득했다.


그런 가운데 유일하게 자신을 보지 않고 돌아선 사람을 발견했으니 관심이 안 갈 수가 없지.


만약 그게 이런 관심을 유도하기 위해 술수라면 성공했다고 박수를 쳐주고 싶어질 정도였다.


"그 여자는 왕자님께 어울리지 않습니다."


요슈아가 엘리제에게 흥미를 보이는 만큼 날을 세우는 카일.


이런 걸 보면 천하의 가일 루도 연애에 있어선 초보구나 싶다.


하지 말라고 하면 할수록 더 하고 싶어지는 게 사람 마음이다.


엘리제 버몬트의 위험성을 강조하며 재고하라고 말할수록 오히려 더 의식하게 할 뿐이라는 걸 모르나 보다.


"참 드문 일이네. 카일이 레이디를 그런 식으로 막 부르다니."


기사도는 어떻게 된 거야, 하고 장난스럽게 웃는 요슈아를 보며 카일은 복잡한 표정을 지었다.


알고 있다.


이런 태도가 숙녀에게 무척 실례고 무례라는 것을.


더구나 첫 만남에서 결례를 범했는지 조용히 넘어가 준 상대다.


그런 엘리제를 향해 계속 적의와 경계를 보이는 게 옳지 못하다는 생각은 있었지만, 도저히 어쩔 수가 없다. 천적을 앞에 둔 개구리처럼 머리로는 괜찮다는 걸 알아도 몸이, 마음이 거부반응을 보인다.


소드마스터를 배출했던 유명한 무가라는 게 거짓말처럼 이젠 껍데기만 남은 버몬트 후작가.


그런 집안에서 태어나 교양으로 검 좀 휘둘러본 게 전부인 레이디를 상대로 천재 검사가 긴장한다는 게 상식적이진 않지.


그걸 알면서도 카일은 자신의 직감을 신뢰하기로 했다.


엘리제 버몬트는 위험한 여자다.


삼왕자, 주군의 곁에 둬도 괜찮은 상대가 아니다.


아무리 누가 뭐라고 해도 그 생각은 변치 않을 것 같다.


그런 카일의 태도에 요슈아는 어깨를 으쓱이며 그냥 다른 얘기나 꺼내는 게 낫겠다고 생각했다.


"그러고 보니 그때 카일이 지도해준 엘리제 영애의 집사, 최근 엑스퍼트에 올랐다지? 역시 카일이야."


그렇게 평범해 보이는 친구도 엑스퍼트의 벽을 넘게 해주다니, 천재는 가르치는 것도 천재인 건가 하고 악의 없이 말하며 웃는 요슈아.


왕족으로서 일국을 대표하는 인재라는 걸 매일 같이 보아온 요슈아다.


안목 하나는 확실했고 그런 그의 눈에 레온하르트 번스타인은 지극히 범재였다.


갈고 닦으면 빛나는 구석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은 들지만, 그런 수고를 들이지 않아도 알아서 빛나는 별 같은 인재가 손만 뻗으면 닿는 곳에 여럿 있는데 뭐 하러?


그날 실수를 대신한 지도 대련도 그저 여흥 정도로만 생각헀는데 정말 벽을 넘었다는 소식을 뒤늦게 접하고 많이 놀랐다.


‘카일에게 가르치는 소질까지 있었다니. 왕실기사단 교관 일을 맡기면 엑스퍼트가 양산되는 거 아니야?’


이런 생각까지 하게 될 정도로.


물론 바보 같은 생각이라는 건 알고 있지만, 그만큼 신기했으니까.


여러 검사와 기사를 본 결과 어느 정도 사람 보는 안목은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런 안목을 벗어난 레오의 성장이 신기할 수밖에.


카일이 요술을 부렸다고밖에는 생각되지 않는다.


"그렇게 보여도 그 친구는 거의 가득 찬 잔 같은 상태였습니다. 딱 한 방울만 더 부어도 넘칠 그런 상태였죠."


"신기하네. 그렇게 특출난 재능이 있어 보이진 않았는데, 내가 사람을 잘못 본 걸까."


"아닙니다. 왕자님의 안목은 정확했습니다. 뭔가 천운이 닿았던 거겠죠."


"헤에, 그거 소위 말하는 기연이라는 거? 하하, 꼭 소설 주인공 같은 사람이네. 레온하르트 번스타인이라."


입 안에서 그 이름을 가만히 굴려보는 요슈아.


그런 왕자를 보고 또 인재 수집욕이 발병한 건가 하고 생각하는 카일.


일왕자와 이왕자를 재치고 막내인 요슈아 삼왕자가 유력한 차기 국왕으로 기대받는 건 다름 아닌 이런 모습 때문이다. 인재를 알아보는 눈이 탁월하다.


왕이라는 게 결국 사람을 쓰는 자리라는 걸 생각하면 그야말로 왕재.


아마 17살 성인이 되면 정식으로 왕세자로 책봉되지 않겠냐는 말이 벌써 솔솔 흘러나오고 있다.


그래서 엘리제 버몬트는 안 되는 거라고 카일 루는 속으로 단정 지었다.


장차 국모가 될 수도 있는 삼왕자 요슈아의 반려를 그런 위험한 여자가 오르는 건 왕국의 미래를 생각해서라도 좌시할 수 없다는 마인드.


엘리제가 알았다면 쌍수를 들고 반길 그런 생각이었다.


이대로 아예 둘이 만나는 일도 없었으면 싶은 카일이었지만, 짓궂은 하늘은 그 마음을 비웃기라도 하는 것처럼 요슈아와 엘리제가 만나게 했다.


"이렇게 만날 줄이야. 뭔가··· 운명을 느끼게 하네요, 하하."


유스티치아 영지로 가는 길에 두 행렬이 교차한 것이다.


이런 상황을 피하기 위해 일주일이나 빨리 움직인 건데, 참 우습게 됐다.


삼왕자 역시 지지기반을 다진다는 차원에서 좀 일찍 가서 자작과 돈독한 시간을 가지려고 했던 탓에 발생한 일이다.


다른 레이디였다면 행운이라고 기뻐했겠지만, 엘리제에겐 불행 그 자체였다.


과거였다면 일부러 우연을 빙자해 이런 자리를 만들고자 노력했겠지만, 지금은 얘기가 달랐다.


운명이니 뭐니 하면서 반갑게 인사하고 가는 길이니 같이 가자는 삼왕자의 말에 영업용 스마일을 유지한 채 엘리제가 속으로 생각했다.


‘혁명 세력은 뭐 하나 몰라. 이 인간 단두대 안 보내고.’


살갑게 웃는, 뭇 레이디의 가슴을 울릴 미소를 보이는 삼왕자를 향해 ‘운명? 지랄하지 마.’ 하는 시선을 보이는 엘리제.


표정 관리는 탁월했지만 차마 눈빛까지 숨기긴 힘든 모양이다.


다행히 삼왕자 요슈아는 그런 눈빛을 알아차리지 못하는 것 같았지만.


정확히는 눈빛을 보고도 자신을 싫어할 리가 없다는 생각이 시선에 담긴 본심을 인지하지 못하게 하는 거다.


자신이 정한 척도를 절대적인 기준으로 삼는 삼왕자답게 말이다.


"왕자님과 동행이라니요. 너무나 과분한 영광입니다. 선행하시죠. 저흰 며칠 후에 이동을 재개하겠습니다."


완곡한 거절.


말 한번 잘했다는 듯 카일이 고개를 끄덕이며 엘리제의 말을 받았지만,


"빈민 구제에 앞장서는 엘리제 영애와 왕족으로서 논의하고 싶은 것도 있어서요."


삼왕자는 삼왕자대로 물러설 마음이 없는 눈치였다.


답이 없다.


여기서 더 사양하는 것도 왕족을 향한 무례였기에 결국 유스티치아 영지까지 동행하는 일이 됐다.


대놓고 마뜩잖은 표정을 짓는 카일과 속으로 짜증을 씹어뱉는 엘리제.


그 두 사람 외에는 모두가 행복한 합석이 됐다.


특히 안나 카레니나의 반응이 뜨거웠다.


선망하고 동경하는 이야기 속 왕자님을 실제로 만난 거니까.


평민에서 털 난 수준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닐 준남작가 여식으로서 언제 이렇게 가까이서 왕자의 존안을 볼 기회가 있겠는가?


다른 많은 레이디가 그런 것처럼 삼왕자 요슈아를 보고 홀딱 반한 듯한 안나의 모습을 보고 엘리제가 혐오스럽다는 표정을 지었다.


지금 요슈아를 향해 안나가 보이는 반응이 꼭 과거의 자신을 비추는 거울 같았으니까.


그래서 괜히 한마디 하게 된다.


"정신 차려요, 안나. 누군가 그러더군요. 동경은 이해에서 가장 먼 감정이라고."


"네?"


그게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는 듯 동그랗게 뜬 눈을 연거푸 깜빡이는 안나 카레니나.


"동경에 눈이 멀면 상대의 이상적인 면만 보게 되죠. 그 사람 자체가 아니라, 내가 보는 그 사람에게 빠져든다는 거예요."


진정한 의미로 상대가 어떤 사람인지 이해하지 못하게 된다.


그렇게 엘리제는 안나를 통해 과거의 어리석은 자신에게 일갈했다.


그와 동시에 이런 소리 입 아프게 한들 아픈 교훈을 얻기 전까진 깨닫지 못한다는 것도 알기에 엘리제는 더 입 아프게 떠드는 대신 침묵을 선택했다.


삼왕자와의 동행은 피할 수 없는 상황.


그러니 애써 지금 상황을 긍정적으로 보자면 두 가지 플러스 요인이 존재한다.


하나는 혼담이 파투 나긴 했지만 후작가와 왕실의 관계는 여전히 우호적이라는 걸 다른 귀족에게 보여줄 수 있다는 점.


다른 하나는 안나라는 삼왕자의 사랑을 받아낼 가능성이 있는 여자를 이용해 귀찮은 관심을 다른 쪽으로 돌릴 수도 있다는 점.


이렇게 생각하면 이 만남이 그리 나쁜 것만은──


"짜증 나."


아니라고 어떻게든 생각하고 싶었지만 역시 쉽지 않은 엘리제였다.


그리고 그렇게 그녀의 기분이 나빠질수록 그런 엘리제를 향한 카일의 경계와 고생도 늘어가고 있었다.


참으로 기묘한 구도가 아닐 수 없다.


호기심 섞인 시선으로 엘리제를 보는 삼왕자.

그런 삼왕자를 향해 몽롱한 눈빛을 보내는 안나.

한심하게 그런 시녀를 보며 삼왕자를 쳐낼 생각만 하는 엘리제.

그럴 때마다 엘리제를 경계하며 예의주시하는 카일.


한 발자국 멀어진 장소에서 이 묘한 구도를 지켜보며 레오는 생각했다.


‘집에 가고 싶다.’


유스티치아 영지까지 가는 길이 심로 그 자체가 될 것 같다고 말이다.


작가의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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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불편한 동행 +3 24.09.04 350 13 12쪽
» 행운의 여신이 악녀를 비웃다 +2 24.09.03 377 12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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