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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 망친 악녀가 날 너무 좋아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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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U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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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11 2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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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18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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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귀찮은 건 피하는 게 상책

DUMMY

상냥하다.


‘상냥하다? 레오네.’


친절하다.


‘친절하다? 레오지.’


언제나 자신만을 봐준다.


‘일편단심 하면 레오 아니야?’


어떤 순간에도 함께하며 곁을 지켜준다.


‘이거야말로 레오잖아!’


단단히 오해한 듯 이불 속에서 움켜쥔 엘리제의 주먹이 부들부들 떨린다.


어디까지나 이솔렛이 말한 건 일반적인 여성의 이상형일 뿐이다.


일에 너무 몰두하느라 가정에 소홀하지 않은 그런 이상적인 남편감을 말한 것뿐이었지만, 아무래도 엘리제에게는 다르게 들리는 모양이다.


게다가 여기에 결정타를 치는 발언이 추가되었으니.


"시, 신분의 격차 같은 것도 고려해야 하지 않을까요?"


"확실히···."


그건 그렇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던 이솔렛이 돌연 로맨틱하다는 듯 말한다.


"그런 격차를 뛰어넘는 사랑을 이룰 수 있다면 멋지기는 하겠네요."


야! 이 도둑고양이 년이 누굴 넘봐!


반사적으로 그렇게 소리 지를뻔한 걸 간신히 참아낸 엘리제.


비록 계기는 계산적인 만남이었지만 그래도 진솔한 것이 되어가는 첫 우정.


가능하면 많은 사랑의 지지자를 얻기 위해서라도 이솔렛과의 인연을 소중히 하고 싶다. 그러니까 필사적으로 냉정을 유지한 채 자신이 그냥 오해하는 걸 수도 있다고 생각하며 마지막 확인에 들어간다.


"혹시··· 지금 좋아하는 사람이 있나요? 있다면 그 사람, 설마 제가 아는 인물인가요?"


"앗."


수줍게 시선을 돌리는 이솔렛.


그 반응을 본 순간 엘리제의 표정이 싸늘하게 식는다.


여기선 그런 사람 아직 없다고, 그냥 이랬으면 좋겠다는 이상형을 꿈꿔보았을 뿐이라는 대답이 돌아왔어야만 했다.


그런데 이런 반응이라니.


있다는 거야? 좋아하는 사람이? 그것도 그게 정말 내가 아는 사람이라고?


앞선 모든 조건을 만족하면서 이솔렛과 친한 남성이라고 해봤자 딱 한 사람밖에 없잖은가.


레오.


그 생각에 엘리제의 경각심이 한계치를 돌파하기 시작했다.


‘지금 당장 힙노를 풀어서 다시 뒤룩뒤룩 살찐 추한 돼지로 만들어 버리겠···!’


공허를 연상시키는 새까맣게 죽은 눈빛으로 엘리제가 극단적인 짓을 벌이려는 순간이었다.


"역시 엘리제도 알아차린 거군요. 사실은··· 맞아요."


자신이 지금 얼마나 위험한 다리를 건너고 있는지도 모른 채 청순한 목소리로 이솔렛이 말한다.


‘그래, 네가 실토하는구나. 내 당장──.‘


"제가 좋아하는 건 엘리제에요."


당장 손을 쓰려는 순간 들려온 그 말에 휘몰아치던 엘리제의 독기가 삐끗했다.


"···네?"


생각지도 못한 너무나 엉뚱한 소리에 엘리제는 화를 내던 것도 잊은 채 어리둥절한 반응을 보인다.


"지금은 절 구원해줄 엘리제가 가장 좋아요."


상냥하고, 친절하고, 항상 곁에 있어 주고 챙겨준다.


이솔렛에게 엘리제는 바로 그런 존재라면서 웃는데 그 말을 들은 엘리제는 머리가 펑크가 날 것 같은 기분이었다.


지금 이 아가씨가 뭐라고 한 거야? 내가 좋다고?


당황하면서 엘리제가 반사적으로 스르륵 거리를 벌린다.


정조의 위기를 느낀 것이다.


그런 엘리제를 보고 이솔렛이 당황해서 손사래까지 쳐가며 다급히 말을 잇는다.


"아니아니아니, 그런 뜻으로 좋아한다는 건 아니니까요?!"


자신이 좀 오해할 소리를 했다는 걸 뒤늦게 자각한 이솔렛이 새빨갛게 달아오른 얼굴로 도리질을 친다.


엘리제를 향한 이솔렛의 마음은 어디까지나 ‘좋아’이지 ‘사랑’은 아니라는 것이다.


친애의 정인 것이지 애정의 연심이 아니라는 것을 다급히 어필한다.


"저도 멋진 남성분과 아름다운 사랑을 하고 싶지만, 지금은 엘리제만큼 멋진 남자는 눈에 들어오지 않기도 하고···."


손가락을 꼬물거리면서 변명처럼 말하는 그녀를 보고 엘리제는 그제야 이중의 의미로 안심했다.


자신이 생각지도 못하게 노려지고 있는 게 아니라는 사실과 이솔렛이 레오에게 마음이 있는 게 아니라는 걸 말이다.


특히 이솔렛이 레오를 좋아하는 게 아니라는 사실이 무엇보다 흡족했다.


정확히 말해 호감이야 있긴 한 것 같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아는 사람, 친한 지인을 향한 것이지 여자가 남자에게 향하는 그런 마음은 아닌 것으로 보였다.


이제야 오해가 좀 풀리는 기색인 엘리제.


우정도 사랑도 모두 지킬 수 있다는 사실에 만족감을 느끼면서 이솔렛과 나란히 침대에 누워 잠을 청한다.


찰싹 엉겨 붙는 이솔렛이 좀 귀찮다는 마음도 있었지만, 거부하지 않기로 했다.


사람의 온기를 느끼면서 잠자리에 드는 게 대체 얼마 만인지.


피식 웃으면서 눈을 감는데 생각처럼 잠이 잘 오질 않고 이런저런 잡생각이 떠오른다.


설마하니 그 이솔렛에게 엘리제가 가장 좋아요, 같은 소리를 듣게 될 줄은 꿈에도 상상 못했다.


엘리제의 기억 속 이솔렛은 항상 그녀를 향해 불쌍하다는 동정의 시선을 향해왔으니까.


"딱한 사람···."


마치 그렇게 말하는 것 같은 시선이 항상 불편하고 불쾌하고 짜증 났었다.


어려운 시절이 있었던 만큼 또래보다 훨씬 성숙하고 그만큼 모두의 이해자로 아카데미의 인기인이었던 이솔렛 유스티치아.


성녀나 공녀와는 다른 의미로 자신과 대척점에 섰던 이솔렛은 명백히 적이었다.


연적을 넘어 존재 자체로 자신을 비참하게 만드는 그런 존재였다는 거다.


그런 사람이 지금은 자신에게 좋아한다고 찰싹 엉겨 붙어 새근새근 완전히 안심하고 방심한 모습으로 자고 있다.


그 사실에 참, 말로 설명하기 힘든 감정을 느끼는 엘리제였다.


어이가 없기도 하고 우습기도 하고 유쾌하기도 하고 떫은 기분이기도 했다.


정말 복잡한 감정이 감은 눈 뒤로 소용돌이쳤는데 한 가지 확실한 건 생각보단 그리 나쁘지 않다는 점이다.


희미한 미소를 지은 채 이솔렛의 고른 숨소리를 자장가 삼아 잠이 드는 엘리제.


내일은 또 어떤 일이 기다리고 있을지 살짝 기대된다.


"아카데미에서 후작령으로 체험학습을 온다던데 얘기 들었어?"


"들었어. 기사 지망생들이랑 행정관료 지망생, 그리고 마법 생도도 몇몇 온다며?"


"골고루도 온다. 그런데 왜 갑자기 우리 후작령으로 온다는 거야?"


"내가 듣기로는 봄이면 원래 현장 체험을 나가고는 했는데 학생들 요청으로 원래 체험처 대신 우리 영지로 선회했데."


"뭐? 왜? 원래 가려던 곳에 문제라도 생겼나?"


"그게 아니라 화제의 주인공인 아가씨랑 레오 집사님을 실제로 만나고 싶어서 그랬다더라."


정정하겠다.


아무래도 괜히 기대한 것 같다고 엘리제는 들려오는 시종들 목소리에 우아하게 차를 마시다가 말고 혀를 차게 됐다.


따사로운 햇볕이 내리쬐는 테라스.


오전 교양 수업이 다 끝나고 식후 차를 마시면서 여유를 즐기던 엘리제는 음미하던 로제티가 갑자기 시궁창 물로 변하기라도 한 것 같은 표정을 지었다.


순간적이었지만 계속 엘리제를 보며 재잘거리던 이솔렛은 그 변화를 놓치지 않았다.


"엘리제? 무슨 일 있나요? 갑자기 기분이 별로 안 좋아 보이는데."


기분이 안 좋다.


그 말을 들은 순간 차 시중을 들기 위해 배후에 시립하고 있던 안나가 트라우마가 발동한 것처럼 움찔한다.


이솔렛도 있고, 예전처럼 기분대로 손찌검하거나 그런 일은 없었으나 여전히 시종들은 엘리제를 어려워했다. 그건 엘리제의 성격이 상대적으로 둥글어진 후에 시녀로 들어온 안나도 다르지 않았다.


직접적으로 맞거나 인격모독을 당한 적은 분명히 없다.


좋아하는 사람 앞에서 가능하면 예쁜 모습만 보이고 싶은 여심에 따라 내숭을 떠는 일이 많았으니까.


하지만 손을 쓰거나 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풍기는 분위기만으로도 엘리제는 안나에게 두려운 상대였다.


대체 어떻게 저런 사람을 10년 동안 모셨나 레오가 존경스러울 지경이었고, 지금도 레오에게 많이 의존하고 있다. 그런 모습 때문에 더욱 엘리제의 심기를 거스른다는 사실은 전혀 모른 채 말이지.


아무튼 엘리제가 기분이 안 좋은 것 같다는 이솔렛의 말에 안나는 질겁했고 레오는 이유를 추측했다.


‘아카데미 학생들이 영지에 오는 게 귀찮은 모양이시군.’


역시 경험에서 나오는 바이브는 뭐가 달라도 다르다고, 레오는 어렵지 않게 진실을 유추해낼 수 있었다.


갑자기 체험학습 장소가 버몬트 후작령으로 변경된 이유부터가 빈민가의 성녀로 최근 이름을 알리고 있는 아가씨와 정령의 가호를 받은 것으로 유명한 집사 때문이라고 하잖은가.


분명 접견 신청을 할 게 뻔했고 본인 의사가 어떻든 아무래도 그 접견은 이루어질 가능성이 컸다.


이제 곧 아카데미 입학할 거고 그렇게 되면 이번에 견학하러 온 이들이 전부 고스란히 선배가 되는 거다.


미리미리 인맥을 쌓아둬서 나쁠 게 없다고 후작 부부가 자리를 주선할 게 분명했다.


설령 만남을 거절한다고 해도 큰 의미는 없다.


기사 지망생은 버몬트 기사단에서 학습할 거고 행정관료 지망생은 문신들 보조를 하면서 현장을 배울 예정인데 오다가다 엘리제를 힐끔거리면서 구경할 게 뻔하지.


그런 시선이 달가울 리가 없고 꼭 동물원 몬스터가 된 기분일 테니 티타임을 즐기다 말고 기분이 나빠질 만도 했다.


특히 어디로 튈지 모르는 마법사를 지망하는 학생까지 소수지만 온다고 했다.


상상만으로도 피곤한 기색인 엘리제를 보며 이해했다는 듯 이솔렛이 고개를 끄덕인다.


"그럼 아카데미 생도들이 돌아갈 때까지 잠시 자리를 피해 있는 건 어때요?"


그 말을 들은 엘리제가 잠시 머릿속으로 계산기를 두드렸다.


아카데미 학생들의 현장학습은 2주 동안 진행된다.


즉 2주 동안 적당한 이유를 대고 잠시 외유를 즐기고 온다면 확실히 동물원 몬스터 꼴이 되는 건 피할 수 있긴 할 거다.


적어도 구경거리 신세가 되는 시간을 최소한으로 줄일 수는 있겠지.


"음~."


제법 나쁘지 않은 아이디어인 것 같다고 생각하며 검지 끝을 턱에 댄 채 고개를 갸우뚱하고 무슨 이유를 대고 도망칠까 고심하는 엘리제.


그러다 문득 빈 찻잔을 채워주는 레오가 눈에 들어왔다.


"아하."


그 순간 적당한 핑곗거리가 생각났다.


삼왕자와의 혼담을 거절하면서 엘리제는 후작 앞에서 분명히 선언했다.


다른 집안으로 시집가는 대신 데릴사위를 들여 대를 잇고 가문을 통치하겠다고.


버몬트 후작은 어떻게 생각했을지 몰라도 엘리제에게 그 말은 진심이었다. 그리고 지금, 그때 했던 말이 아카데미 견학생들 피해 달아날 좋은 명분이 되어줄 것 같다.


"영지 시찰이라니?"


장차 가문을 이어 나갈 사람이 영지가 어떻게 굴러가고 있는지 몰라서는 말이 안 된다.


영지 구석구석 변방 마을까지 둘러보면서 현실을 눈에 담고 오겠다.


그런 딸아이의 말에 버몬트 후작은 마뜩잖은 표정을 지었다.


얼마 전에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흉측한 일을 겪은 지 얼마나 지났다고.


"겸사겸사 이솔렛에게 우리 후작령을 자랑하고 싶기도 해요."


한동안은 집안에 가만히 있었으면 싶은 후작이었지만, 그는 잘 알고 있다.


지금 저런 표정을 짓고 있는 딸의 고집은 누가 와도 꺾을 수 없다는 걸 말이다.


"어쩔 수 없구나."


평소보다 호위를 배로 늘리는 대신 외유를 허락하기로 했다.


흔쾌히──는 아니었지만 어쨌든 허락을 받아낸 엘리제는 이제야 살 것 같다는 듯 방긋 웃었다.


이걸로 귀찮은 아카데미 학생들을 피하는 동시에, 미래의 시부모께 인사도 드릴 수 있게 됐다.


"쿠후후."


즉흥적으로 떠올린 생각이었지만 정말 잘한 결정이 아니었나 헤실헤실 입꼬리가 풀린다.


품위 없는 얼굴이라는 걸 알면서도 흐물흐물 녹아내린 표정을 짓는 걸 막을 수가 없다.


이건 마치 상견례라도 하는 것 같지 않은가?


살짝 귀찮은 방해꾼이 많은 게 흠이긴 했지만, 상관없다.


장차 시부모가 될 레오의 부모님을 만나서 인사드리고 눈도장 찍고 점수 딸 생각에 가슴이 뛰는 엘리제였다.


작가의말

선작, 추천, 댓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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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귀찮은 건 피하는 게 상책 24.09.18 158 10 12쪽
38 아가씨의 사상검증 +2 24.09.17 206 8 12쪽
37 레이디의 복수는 10년이 지나도 늦지 않다 +2 24.09.16 220 8 12쪽
36 소란스러운 귀로 +1 24.09.15 243 13 12쪽
35 집으로 +1 24.09.14 274 8 13쪽
34 잊고 있던 일 +3 24.09.13 274 10 13쪽
33 아픈 교훈을 새겨주지 +1 24.09.12 300 12 12쪽
32 끝나지 않은 아가씨의 선물 +1 24.09.11 343 11 13쪽
31 정령의 가호를 얻다 +2 24.09.10 301 15 12쪽
30 보물의 주인이 바뀌다 +2 24.09.09 350 14 13쪽
29 집사와 함께 춤을 +3 24.09.08 356 14 13쪽
28 아가씨의 꿍꿍이 +1 24.09.08 353 13 13쪽
27 염탐과 다이어트 +1 24.09.07 354 12 14쪽
26 이솔렛 유스티치아 +2 24.09.06 383 12 13쪽
25 짜증 스택이 쌓이는 아가씨 +3 24.09.05 374 14 13쪽
24 불편한 동행 +3 24.09.04 394 15 12쪽
23 행운의 여신이 악녀를 비웃다 +2 24.09.03 424 16 12쪽
22 아가씨는 상사상애가 하고 싶다 +1 24.09.02 464 13 12쪽
21 네 초콜릿에 약을 탔어 +2 24.09.01 471 16 13쪽
20 산 제물을 준비하자 +2 24.08.31 496 14 13쪽
19 휴가 복귀 +2 24.08.30 491 19 13쪽
18 장가는 언제? +1 24.08.29 504 18 12쪽
17 전부 아가씨 손바닥 위 +1 24.08.28 490 19 13쪽
16 시련이라는 이름의 선물 +3 24.08.27 512 22 13쪽
15 내조의 여왕 +1 24.08.26 552 19 12쪽
14 어딜 가도 그분이 보여요 +5 24.08.25 594 23 12쪽
13 해충을 제거하다 +3 24.08.24 592 22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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