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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 망친 악녀가 날 너무 좋아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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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U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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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11 2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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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25 0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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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어딜 가도 그분이 보여요

DUMMY

일을 잘 못 해 엘리제 버몬트 아가씨의 눈 밖에 난 시녀 하나를 해고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후작가에 그 사실이 공표되었다.


뭐 공표라고 해도 사람들 불러 모아 선언문이라도 낭독하는 그런 건 아니었고, 그냥 시녀장 선에서 하루아침에 처리한 것에 불과하긴 하지만.


숨어서 몰래 진행한 건 아니니까 공표했다고도 할 수 있겠지.


최근 일자리 창출의 의미로 새로운 인력이 다수 들어오기도 해서 일 못한 시녀 하나 쫓아낸 건 딱히 별일도 아니긴 하다.


그래도 이슈가 된 것은 사실이었는데 엘리제가 직접 지목해서 해고를 지시했다는 이유 때문이다.


더구나 일을 못 해서 그랬다고 하는데 평상시 쫓겨난 시녀를 아는 사람들은 이상하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해고된 시녀, 일 잘했으니까.


그런 사람을 일 못해서 해고한다니, 사실상 억지고 트집이다.


분명 다른 이유가 있다는 걸 느끼는 사람은 느꼈지만, 그것과 별개로 이렇다 할 목소리는 나오지 않았다.


그야 사람 하나 신세 망친 것도 아니고 그냥 해고했을 뿐이니까.


일을 잘하지 못한다고 고용주가 퇴직금까지 들려서 쫓아낸 게 끝인데 그걸 가지고 뭐라고 할 간 큰 사람은 아무도 없지.


오히려 자비로운 처사라는 말까지 나올 정도였다.


퇴직금은 고사하고 봉급도 제대로 안 주다가 쫓아내는 악덕귀족도 분명 존재하는 세상이다.


고용보장이나 노동법 같은 건 일절 존재하지 않았으니까.


게다가 예전과 달리 얌전히 해고만 했다는 것도 놀랍도록 자비로운 일이었다.


차라리 그만두겠다는 말이 나올 때까지 음습하게 괴롭힌 끝에 사람 하나 폐인으로 만들어 쫓아버리는 경우도 심심찮게 있었는데 그때에 비하면야.


최근 엘리제의 이미지가 호전되고 있다는 것도 있어서 더욱 일을 제대로 못 해서 쫓아냈다니까 다들 그런가 보다 하고 넘어가는 기색이다.


물론 평상시 쫓겨난 시녀를 아는 이들은 이상하다고 생각하긴 했지만, 퇴직금도 몇 달치 봉급 이상으로 받아서 갔으니 뭐라 할 말도 없고.


무엇보다 할 말이 있다고 한들 감히 평민 따위가 귀족에게 무슨 말을 할 수 있겠는가.


예전처럼 경을 치지 않고 얌전히 돈까지 챙겨서 퇴직하게 해준 것만으로도 감사할 일이지.


이런 인식, 상황 자체를 문제라고 여기는 이들이 점점 태동하는 시대기는 해도 후작가 사람 중에는 없어서.


시녀 하나 후작가 아가씨에게 밉보여서 쫓겨난 일은 자연스럽게 묻혀갔다.


단, 오랜만에 옛날 생각나게 만드는 이번 일을 여전히 가십거리로 삼는 이들도 있긴 했다.


진심까진 아니지만, 심심하니까 이런저런 시답잖은 얘기를 하는 것이다.


"혹시 그 메이드 아가씨, 레오 너랑 친하게 지내는 게 아니꼽다고 쫓아낸 거 아니야?"


그리고 의외로 그런 얘기 속에 진실이 있기도 했다.


하인들 사이에서 액막이 취급받으며 기피당하는 레오.


하지만 그건 다시 말해 하인이 아니라면 레오랑 친하게 지내는 사람도 있다는 뜻이다.


후작가의 막내 기사 그라함 웨스커가 바로 그런 사람 중 하나로 후작가 사람 중 거의 유일한 레오의 친구였다.


사실 둘이 친구라는 말이 무색하게 나이 차이는 상당히 난다.


그라함이 레오보다 한두 살도 아니고 8살이나 많았으니까.


형이나 다름없긴 했지만, 둘이 후작가에 들어온 시기가 비슷하기도 하고 힘겨운 버몬트 기사단 막내 생활을 버티는 데는 동생보다 친구가 좋다는 이유로 친구 먹고 있다.


친구이자 형님.


후작가에 온 이후 온통 엘리제에게 시달리는 나날 속에서 유일하게 마음 터놓고 얘기할 수 있는 사람이라 레오도 여러모로 의지하고 있다.


다만, 악의 없이 던진 말이라고 해도 이런 건 그냥 넘어갈 수 없다.


엘리제 아가씨를 모시는 집사로서도, 퇴직을 꿈꾸는 레오로서도 말이다.


"말도 안 되는 소리인 거 그라함 경도 알고 계시죠?"


"푸흐흐."


제발 그런 끔찍한 소리 말라는 듯 고개를 젓는 레오에게 그라함은 어딘지 음흉한 웃음을 흘려보았다.


페이스도 좋고 기사고, 저택에서 일하는 여러 시녀 가슴을 울리는 사나이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경박스러운 웃음이었지만 여기서 그걸 지적할 사람은 없다.


사람이 항상 긴장하고 살 수는 없는 일.


풀어질 때도 필요하기에 둘이 이렇게 한숨 돌릴 때는 다른 사람에게 보여주기 힘든 진솔한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그간 아가씨한테 시달려서 그런 생각이 안 들 수도 있겠지만, 혹시 모르는 거 아니야? 미운 정이 들어서 아가씨가 널 계속 곁에 두고 싶어 하고 독점욕을 보이시는 걸 수도. 너도 최근에는 엘리제 아가씨가 잘해준다고 좋아했잖아."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죠."


아무렴 아가씨가 질투심에 나랑 친한 시녀를 쫓아냈겠냐고 실소를 흘리는 레오.


그라함도 진심으로 한 소리는 아니긴 했지만, 레오의 반응을 보니 왠지 더 놀리고 싶어졌다.


"만약에 내 말이 맞으면? 아가씨가 너한테 호감을 품었다면?"


"행여나 어디서 그런 소리 마십쇼. 저 목 날아갑니다. 어쩌면 그라함 경이 치라는 명을 받을 수도 있다고요."


상상만으로도 끔찍하다는 듯 부르르 몸을 떠는 레오였지만, 그라함은 이 재미있는 명제를 바꿀 생각이 없는 것 같다.


어쩔 수 없이 한숨을 내쉬면서 레오는 대충 답해주고 다른 얘기나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예예, 그럴 리가 없지만 만약 그런 거라면 제가 적금 깨서 그라함 경 가지고 싶다던 드워프제 도검이라도 사드리죠."


이제 성에 차냐는 듯 휙휙 손을 저으며 성의 없이 대꾸하는 레오에게 "그 말 기억해둔다." 하고 장난스럽게 말을 받는 그라함이었다.


무슨 기사라는 사람이 이렇게 장난을 좋아하는 건지 모르겠다고 고개를 저으면서 레오는 검술 조언이나 해달라고 부탁했다.


기연에 이어 카일과의 대련까지.


전에는 감도 잡히지 않았던 엑스퍼트의 벽이 이젠 눈에 또렷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 말은 즉 실체조차 보이지 않던 때와 달리 이젠 어떻게 저 벽을 넘을까 계산할 수 있게 됐다는 뜻이다.


이렇게 시간 내서 그라함에게 틈틈이 도움을 청하고 있는데 그럴 때마다 그라함은 도무지 이해가 안 된다는 표정을 짓고는 했다. 그도 그럴 것이 후작가 사람 중에 레오의 실력을 가장 잘 아는 건 그라함이었다.


집사 일하면서도 검을 놓지 않는 성실함이 마음에 들어 10년 동안 꾸준히 지도를 해주고 있었으니까.


그런 가르침 속에 그라함 역시 배우는 게 있었기 때문에 일방적인 은혜까진 아니었지만, 스승 같은 것이긴 하다.


그런 그라함이 봤을 때 최근 레오의 성장세는 이해가 불가능한 수준이었다.


자력으로 엑스퍼트에 오르는 데 10년은 걸릴 거라고 그라함은 생각했다.


그런데 이 추세라면 1년이면 오르겠네?


"나 몰래 영약이라도 사 먹었냐?"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인지 기이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는 그라함이었다.


"그럴 돈 있었으면 노후 자금으로 썼겠죠."


"그런데 이렇게 일취월장한다고? 카일 경의 가르침이 그 정도였나···?"


천재는 가르치는 것도 천재인가, 하고 감탄하는 그라함을 보고 살짝 양심에 찔리는 레오였다.


진실은 기연 덕이었지만, 사람들이 알면 다양하게 귀찮아질 수 있으니 함구하라는 엘리제의 명을 어길 순 없었으니까. 카일 루에게 잘 배운 덕분이라는 걸로 얼버무렸다.


"뭐 됐다. 집사 은퇴하고 칼밥 먹고살 거면 강해서 나쁠 거 없으니까."


좀 석연치 않은 표정이긴 했지만, 정식 제자는 아니라고 해도 10년 동안 검술을 봐준 상대가 드디어 빛을 보는데 기꺼워하지 않을 사람은 드물다.


특히 노력가를 좋아하는 그라함으로서는 레오의 성장이 달가운 일이었다.


그라함 웨스커를 마지막으로 현재 10년 동안 새로운 기사를 들이고 있지 않은 버몬트 기사단이다.


결원이 생긴다면 보충은 하겠지만, 그전까지는 쭉 막내인 셈이었고 그래서 더 레오에게 애착이 가는 걸 수도 있겠다.


형 노릇 하면서 막내 신세 벗어난 기분을 느낄 수 있으니까.


"후욱, 후우."


"좋아, 그 페이스 그대로 마나를 한계까지 쥐어짜면서 100번만 더 휘두르자."


"으윽···."


표정만 봐서는 그냥 괴롭히면서 즐기고 있는 것도 같지만··· 아닐 거다, 아마.


땀을 비 오듯 흘리면서 그라함의 지시를 따라 단련을 게을리하지 않는 레오.


누가 보면 집사인지 기사후보생인지 헷갈리는 모습이기도 했는데 사실 그건 그라함 역시 같다.


"너 이러고 있어도 정말 괜찮은 거냐?"


예전에는 어디까지나 가벼운 트레이닝이었다.


다른 이유가 아니라 시간상 어쩔 수 없는 부분이었다.


그런데 최근에는 훈련에 투자하는 시간이 상당히 늘었는데 그라함은 그 부분이 신경 쓰였다.


집사 일 안 하고 이렇게 칼만 휘두르고 있어도 괜찮은 건가 싶었던 것이다.


이러다 얘 잘리는 거 아니야?


최근 일 제대로 안 한다는 이유로 시녀 한 명 해고된 상황이었기 때문에 더욱 신경 쓰일 수밖에.


아니, 레오의 특수한 입장을 생각하면 잘리지는 않겠지만 대신 굉장히 고달픈 처지에 놓일 수도 있다.


그걸 생각해서 걱정해주는 그라함에게 오늘 단련을 끝내고 씻으러 가기 전에 잠깐 숨 좀 돌리던 레오가 답했다.


"아가씨께서 중요한 시기일 테니 당분간은 훈련에 집중해도 좋다고 하셨거든요."


흘린 땀을 수건으로 닦으며 말하는 레오에게 그라함은 진심으로 놀랐다는 얼굴을 했다.


딱히 일이 없어도 자신을 위해 대기해야지 그 시간을 사적으로 쓰는 건 용납하지 않던 엘리제였다.


그런데 아랫사람에게 그런 배려를 해준다?


‘진짜 아가씨가 레오를···?’


이건 아무래도 묘한 생각을 품지 않는 것이 더 힘들었다.


그렇게 죽고 못 살던 왕자와의 혼담도 거절한 것도 그렇고 최근 행보도 그렇고 그럴싸하긴 했다.


‘에이, 아니겠지.’


하지만 대체 엘리제가 뜬금없이 레오에게 반할 이유가 뭐가 있냐는 합리적인 판단하에 스멀스멀 피어나는 의구심을 지워버린다.


그 대신,


"카일 경도 말하긴 했지만, 역시 벽을 넘는 지름길은 없는 거겠죠?"


여러모로 답답해 보이는 레오의 질문에 답변이나 해주기로 했다.


"흠··· 고식적인 방법이긴 한데 생사가 오가는 치열한 경험 한 번 제대로 하면 넘어설 수도? 아, 물론 안 죽고 살아남는다는 전제하에."


실전만큼 좋은 경험치가 없지만, 막상 제자를 키울 때 스승이 그걸 남발하지 않는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그만큼 위험하기 때문에 못 하는 거다.


자칫 귀중한 제자가 실전 경험 쌓다 죽을 수도 있으니까.


실전이 괜히 실전이 아니지.


생사를 장담할 수 없었고 그러니 스승의 입회하에 실전이나 다름없는 승부를 펼치는 정도가 최선이었다.


아쉽게도 레오에게는 그런 스승이 없다.


당장 그라함 역시 정식 제자도 아닌 레오를 위해 그렇게까지 해줄 수는 없다.


하기 싫은 게 아니라 그의 입장과 신분을 생각하면 해줄 수 없는 거다.


이런 식으로 트레이닝을 좀 봐주는 정도가 최선이지.


"넌 충분히 잘하고 있어."


애초에 막연히 언젠가는 오를 거라 생각하고 반쯤 포기하던 경지다.


최근 이렇게 매달리기 시작하고 실제로 넘어설 각이 보이는 게 더 이상한 일이지.


그러니 그라함도 조바심 내면서 괜한 짓은 관두라고 경고하는 것이고.


친가에서 아버지에게 배울 때도 비슷한 얘기를 들었고 7살에 만난 선생님도 같은 얘기를 했었다.


어쩌다 지도해준 카일 루조차 그랬고.


가르침은 얌전히 잘 받아들이는 레오였기에 객기 부리지 않고 얌전히 따르기로 했다.


때론 돌아가는 길이 가장 빠른 길이라는 마인드로 얌전히 답답한 마음 털어버리며 나날이 벽을 넘어서기 위한 발판을 쌓듯 수행을 쌓아 올리기로 했다.


문제는,


"아하. 다음 선물은 실전이 좋겠네요."


이 얘기를 엘리제가 들었다는 정도?


작가의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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