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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 망친 악녀가 날 너무 좋아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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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U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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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11 2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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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04 0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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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편한 동행

DUMMY

견습 시녀 안나 카레니나.


그녀를 향한 레오의 평가는 아무래도 박한 감이 있다.


견습 딱지가 붙은 만큼 일을 못 해서 레오의 수고를 늘리기 때문도 있지만, 사실 누구나 처음은 있는 법이니까. 게다가 안나는 꽤 똘똘한 편이고 심성 자체는 고와서 선배 시종으로서 좋게 보이는 구석도 있다.


정말 레오가 안나를 껄끄럽게 생각하는 이유는 역시 엘리제 관련이었다.


엘리제가 안나를 싫어한다.


그것도 이상할 정도로 싫어한다.


예전처럼 못살게 굴고 정신 착란 일으킬 정도로 괴롭히진 않지만, 안나를 보는 시선이 절대 곱지 않다.


그게 단순히 일을 못 하고 하는 짓이 마음에 안 들어서 그런 수준을 넘어섰다.


꼭 무슨 원수── 비슷한 무언가를 보는 것만 같은 반응을 보인다.


그게 통 이상해서 한 번은 솔직하게 물어본 적도 있었다.


"안나 양을 싫어하시는 이유라도 있으십니까?"


10년의 경험을 통해 레오는 잘 알고 있다.


엘리제의 ‘싫음’에도 패턴이 있다는 것을.


괴롭히는 게, 반응이 재미있어서 싫어하는 경우도 있고 그냥 하는 짓이 마음에 안 들어서, 혹은 뭔가 눈 밖에 나서, 괜스레 짜증이 나서 등등 다양하다.


그런 싫음 중에서도 지금 안나에게 엘리제가 보이는 불호는 상당히 드문 축에 속했다.


진심으로 싫어하는 거다.


굉장히 드문 케이스다.


자신보다 아랫사람을 동등한 인격체로 대우하지 않는 만큼 그런 상대에게 진심이 되는 일은 좀처럼 없는 엘리제였다.


그런 그녀가 잘 알던 사이도 아닌 준남작가의 딸에게 이 정도로 진심에서 우러나는 혐오를 보인다는 게 레오로서는 놀라울 정도였다.


언제 둘이 만난 적이 있고 그때 안나가 엘리제를 진심으로 만들어버릴 정도로 뭔가 실수하거나 했으면 이해라도 하는데···.


원인을 알아야 해결도 할 수 있는 법.


조심스럽게 안나를 싫어하는 이유를 묻는 레오.


유스티치아 자작령으로 가는 길에 삼왕자가 합류한 후로 더욱 기분이 안 좋아 보이니까 신경 쓸 수밖에.


안나가 삼왕자를 훔쳐보며 그야말로 소녀의 얼굴을 할 때마다 당장 토악질이라도 하고 싶은 기색을 보이니까.


전속 집사로서 모시는 아가씨의 심중을 파악하는 건 급선무 아니겠는가.


처음에는 좋아하는 남자에게 다른 여자라 치근덕거리는 꼴이 싫어서 그런가 싶었지만, 삼왕자를 대하는 사무적인 엘리제의 태도를 보면 그것도 아니다.


대체 안나의 뭐가 그렇게 마음에 안 들어서 그러나 자력으로 추론하는 데 실패하고 질문을 던진 레오에게,


"서브 여주를 향한 악역의 질시──라고 해두죠."


엘리제는 수수께끼 같은 이상한 대답만 하고 더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서브 여주가 뭐야? 악역? 질시? 누가 누굴 질투한다는 거고 누가 악역이라는 건데?’


의문이 꼬리를 무는 기분.


이럴 줄 알았으면 차라리 물어보지 말 걸 그럤다고 속으로 한숨지으면서 야영 준비를 이어 나가는 레오였다.


원래 예정대로였다면 진작 자작령까지 가는 길에 있는 도시에 도착해 제대로 된 숙소에서 하루 묵고 발길을 재촉했어야 하는데 예정이 틀어졌다.


가도를 따라 여행한다는 게 원래 이렇다.


몬스터, 자연재해 등으로 길이 망가지는 바람에 시일이 지체될 수도 있고 다양한 이유로 스케줄대로 풀리지 않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그걸 감안에도 현재 이동 속도는 좀 느린 편이었는데 이유야 대귀족과 왕족의 행차가 하나로 묶이면서 그만큼 행렬이 길어졌으니까.


최대한 단출하게 준비했다고 한들 귀한 분들 모시는데 빠질 수 없는 것들을 챙기다 보니 이렇게 됐다.


그런 면에서는 삼왕자와 동행하게 된 게 레오 같은 시종 입장에서도 피곤하긴 했다.


챙겨야 할 상전이 늘어났는데 좋아할 사람이 세상에 어딨겠는가.


적어도 레오는 일거리가 늘어났다고 기뻐하는 독특한 취향이 아니었다.


추가 보수가 주어지는 것도 아닌데.


"카일, 자작령까지 가는 동안 저 친구 단련을 좀 도와주는 건 어때?"


즉 이건 다시 말해 보너스를 준다면 그렇게 나쁘지만도 않다는 얘기가 된다.


"예?"


"고마워, 그럼 부탁할게."


눈을 깜빡이며 갑자기 무슨 소리를 하는 건지 모르겠다는 반응을 보이는 카일에게 삼왕자 요슈아가 눈웃음 치며 고개를 끄덕인다.


"···방금 예는 수락의 뜻이 아니었습니다만."


그런 주군을 향해 도무지 무슨 생각인지 모르겠다는 반응을 보이는 카일.


무뚝뚝한 검술 외골수기는 해도 사실 카일이 눈치가 없는 건 아니다.


하지만 지금만은 눈치 없는 사람이 되기로 했다.


절대 주군과 저 위험한 여자가 자기 없는 자리에서 따로 독대하는 상황을 만들지 않겠다는 이유였다.


그리고 그런 카일이 요슈아로서는 달갑지 않았다.


그림자처럼 호위로 붙어 다니는 거야 이젠 익숙해서 딱히 감흥이 없지만, 불편할 정도로 엘리제를 경계하는 모습을 보이니까 그건 여러 가지로 생각이 많아진다.


좀 편하게 후작영애 엘리제와 이런저런 얘기를 나눠보고 싶은데 카일이 곤두선 상태로 옆에 있으니 그게 잘 안된다는 거다.


그래서 잠시 카일을 치울 시간을 만들고자 했고, 그 핑계로 엘리제의 전속 집사 레오를 떠올렸다.


저번에 결례를 범한 대가로 그랬던 것처럼 가서 검술 좀 봐주면서 자리 비켜달라는 거다.


"그래야 할 이유를 모르겠습니다."


"왜? 저번에 그 친구, 좀 더 두드려보고 싶다고 했잖아."


"그건···."


확실히 레오의 정수리를 두드려 기절시키고 떠나면서 그런 말을 한 적이 있긴 있다.


집사 일하면서도 착실하게 검술을 닦은 성실함이 마음에 들기도 해서 장인이 금속을 감정하듯 레오라는 주괴를 살펴보고 싶다는 생각이 있긴 했지.


하지만 그런 개인적인 흥미는 삼왕자의 안위와는 비교조차 할 수 없는 것이다.


특히 엘리제 버몬트는 삼왕자 요슈아와 마주할 때마다 기분이 좋지 않은 기색이었다.


무례를 저지르는 일 없이 연기야 잘 꾸며내고 있었지만, 카일의 눈을 속일 순 없었다.


싸늘하게 식은 눈빛 속에는 명백히 불호의 감정이 담겨있다.


개인적으로 그게 놀랍긴 했다. 기본적으로 뭇 여성들에게 호감을 받는 주군을 향해 저런 감정을 보이는 여성이 세상에 있다는 사실이 말이다.


아마 요슈아 역시 엘리제가 자신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건 느끼고 있겠지.


그리고 그래서 더욱 관심을 가지는 걸 거다.


모두가 예라고 할 때 아니라고 하는 사람에게 눈길이 갈 수밖에 없는 건 당연한 일이었으니까.


어떻게든 엘리제와 시간을 보내면서 그녀가 어떤 사람인지 알고자 하는 주군을 보고 카일의 수심은 깊어만 갔다.


"엄밀히 말해 안나 양도 함께라 카일이 빠져도 단둘은 아니잖아?"


"그러니 더욱 제가 있다고 해도 다를 건 없지 않겠습니까."


"다르지."


휙휙 고개를 젓는 요슈아.


카일이 동석하면 경계하는 카일 탓에 명백히 분위기가 더 안 좋아지는데 그게 어떻게 같겠는가.


"뭐가 그렇게 걱정이야. 그래, 카일 말처럼 엘리제 영애가 날 죽이려고 든다고 치자. 그게 성공할 수 있겠어?"


그럴 사람도 아니겠지만, 설령 시도한다고 되겠냐고 천진하게 웃는 삼왕자 요슈아.


지금 행렬에 호위가 카일만 있는 것도 아니다.


딱 붙어서 경호하지 않을 뿐이지 조금 떨어진 곳에 귀를 곤두세운 기사가 한둘이 아니다.


무엇보다 왕족의 안전을 위해 각종 아티팩트를 치렁치렁 달고 있었다.


과연 그걸 뚫고 자신을 죽일 수 있겠냐고 어깨를 으쓱이면서 요슈아는 카일을 안심시켰다.


"이상을 깨닫고 카일이 달려올 시간 정도는 충분히 벌 수 있으니까 너무 걱정하지 말라고."


바로 옆에 천재 기사가 있어서 그렇지, 알고 보면 요슈아 역시 한 실력 하는 편이다.


충분히 안전할 거라는 계산 하에 행동하는 거니까 마음 놓고 잠시 자리 좀 비켜달라.


그렇게 말하는 요슈아에게 카일은 대놓고 마뜩잖은 한숨을 내쉬었다.


이런 상태에 접어든 요슈아는 말릴 수 없다.


경험을 통해 그 사실을 잘 알고 있는 카일은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도 한 가지, 묻지 않을 수 없는 게 있다.


"대체 무슨 얘기를 나누고 싶어서 그러십니까?"


천하의 삼왕자가 자기 싫다는 여자 상대로 이렇게까지 할 줄은 몰랐다.


설마 자존심이 있지 구애를 할 것 같지는 않고, 대체 무슨 대화를 그리 나누고 싶어서 그러나 싶다.


"카일이 골치 아파하는 정치 얘기."


따지고 보면 이거, 생각해서 자리 피할 수 있게 배려해주는 거다? 하고 웃는 삼왕자 요슈아에게 카일은 떨떠름한 얼굴을 했다.


실제로 정치니 하는 그런 얘기, 가만히 듣고 있노라면 검밖에 모르는 카일에게는 무슨 정신 공격이라도 당하는 것 같은 기분이었으니까.


"그녀가 벌이고 있는 자선사업에 꽤 흥미가 가서 말이야. 알지? 요즘 평민 계층이 좀 어수선한 거."


국정운영에 좋은 자극이 되어줄 것 같아서 얘기를 들어보고 싶다는 요슈아를 보며 카일은 잠깐 고민하다가 물었다.


"연애··· 쪽 얘기는 아니라는 말씀이군요?"


"응? 하하, 설마 내가 엘리제 영애를 꾀기라도 할 것 같아서 그래?"


진심으로 재미있다는 듯 배꼽 잡고 웃는 삼왕자.


"그럴 리가 없잖아."


흥미가 있는 건 사실이지만, 이 흥미가 기인하는 감정이 무엇인지는 알 수 없었다.


적어도 카일이 우려하는 그런 새콤달콤한 감정은 아니지 않을까.


"그리고 이런 말, 결례일 수도 있지만···."


잠시 생각에 잠기는 요슈아의 뇌리에 떠오르는 여성은 엘리제가 아닌 엘리제 곁을 지키고 있던 메이드였다.


"이성으로서 매력은 오히려 그 안나라는 아가씨 쪽이 더 끌리거든."


그건 그것대로 또 문제다.


후작가 여식을 앞에 두고 정작 그 옆에 있는 한미한 집안 여식에게 눈이 간다니.


외척 발호를 경계하는 것도 정도가 있지.


왕실의 권위와 권세를 위해서도 어느 정도는 좋은 집안일 필요가 있다.


준남작?


대를 거듭해 작위를 계승하지도 못하는, 진짜 귀족이라 할 수도 없는 가문이 아닌가.


첩으로 거둔다면 또 모르겠지만── 아니 첩으로 들이는 것도 잡음이 상당할 거다.


그걸 모를 사람도 아닌데 안나인지 하는 시녀를 언급하다니.


자신을 안심시키기 위해 그냥 해본 소리인지, 본심인지 알 수 없는 카일이었다.


충성을 다해 모시는 주군이지만 이럴 때는 종종 속을 알 수가 없다.


아무튼 축객령이 떨어졌다.


본의가 아니지만 물러가는 수밖에.


"부디 왕자님의 신변이 얼마나 중요한지 자각하시고···."


한바탕 잔소리를 늘어놓으면서 요슈아의 기가 질리게 만든 후에야 레오를 찾아 이동하는 카일.


이런 인과로 레오는 유스티치아 자작령으로 가는 동안 왕국이 자랑하는 검술천재에게 심심풀이로 수행을 받는 일이 됐다.


이건 말할 것도 없이 굉장한 행운이었다.


카일에게 검술 교사로서의 재능이 있느냐를 떠나 천재의 검을 받아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갓 엑스퍼트에 올라 안정되지 않은 레오에게는 큰 성장의 밑거름이다.


그걸 알기 때문에 엘리제도 끊는 속으로 참고 요슈아 왕자와 어울려주고 있다.


자신이 참을수록 자신이 사랑하는 남자가 더 강해질 수 있으니까.


레오를 위하는 마음으로 인내하고 있었고, 겸사겸사 시녀 안나와 삼왕자 요슈아의 접점을 늘리려는 의도도 있었다.


메인은 이솔렛 유스티치아였지만 보험은 많아서 나쁠 것도 없지.


"어떻게든 빈민층 구제를 위한 제도를 고안하고 실행시키고 싶은데, 좀처럼 발의를 지지받지 못하더군요. 또 기껏 발의했는데 과연 현실적으로 개선이 될까 하는 미혹도 있고요."


"그러시군요."


"그런 점에서 여러 자선사업을 통해 실제 사람을 돕고 성과를 내는 엘리제 영애의 도움을 좀 받을 수 있으면 좋을 것 같습니다. 현재 생각하고 있는 게 공공의료 도입인데···."


그러니까 이런 현실을 모르는 삼왕자의 얘기도 견딜 수 있다.


견딜 수──


"각 종파에 연락해서 그들이 주말마다 하는 의료봉사를 좀 더 체계적으로 해보는 건 어떻겠냐고 협의를 해볼까 싶습니다."


"관두는 게 좋아요. 종교계와 척질 생각이 아니시라면요."


없었다.


작가의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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