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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 망친 악녀가 날 너무 좋아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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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U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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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11 2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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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26 0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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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내조의 여왕

DUMMY

"암살 의뢰를 하고 싶어요."


야심한 시각.


후작령에 존재하는 유흥가 중에서도 슬림과 인접해 질이 나쁜 거리.


그런 장소에서도 외진 곳에 있는 아는 사람만 아는 술집.


도둑 길드의 본거지에 로브를 걸친 여인, 엘리제가 방문했다.


처음 이곳에 왔을 때처럼 또다시 불쑥 나타난 그녀는 도둑길드장 더크에게 다짜고짜 암살을 운운했다.


대번에 표정이 일그러진 더크가 이마를 짚더니 한숨을 쉰다.


느낌이 찜찜해서 바로 장소를 옮기길 잘했다.


남들 다 보는 앞에서 이런 소리를 했으면 골치 좀 아팠을 테니까.


애초에 이 후작영애는 대체 여길 뭐라고 생각하는 건지 더크는 의문이었다.


도둑 길드니까 차라리 뭘 훔쳐달라는 의뢰면 모르겠는데 암살이라니.


도둑답게 목숨을 훔쳐달라는 건지 뭔지···.


‘후작가 사람들까지 감쪽같기 속이고 여길 번번이 찾아오는 것도 특이하단 말이야.’


조사하면 조사할수록 엘리제 버몬트는 이상한 여인이었다.


저번 거래에서 대가로 지불한 전임 길드장의 정보를 어디서 얻은 건지도 여전히 오리무중이었고, 하는 행동 하나하나가 이상하기 짝이 없다.


악녀 소리 듣던 사람이 갑자기 달라져서 선행을 베풀고 다니는 것도 특이했고 기존 정보와 인물상이 일치하지 않는 것도 정도가 있지 이건 뭐 다른 사람이다.


그래도 어느 정도 엘리제 버몬트라는 인간을 파악해간다 싶던 차에 꺼낸 암살 운운.


다시 여길 찾아온 것도 놀라운데 그 목적이 암살 의뢰라니.


이걸 어떻게 받아들이면 좋을지 더크는 혼란스러웠다.


이 여자를 만난 이후 계속 이런 식인 것 같은데 어쩔 수가 없다.


이제 겨우 세 번째 만남이었지만 매번 만날 때마다 사람을 들었다 놨다 정신을 못 차리게 하니까.


"······정말 암살을 맡기고 싶은 거라면 암살자 길드라도 찾아가는 게 좋다고 생각하는데."


그런 건 우리 전공이 아니라고 씹어뱉듯 말하는 더크.


차라리 암살자랑 접선하는 방법을 팔았으면 팔았지 그런 의뢰는 안 받는다고 딱 자른다.


이런 소리, 웃기게 들리겠지만 도적으로서 지킬 선이 있고 일종의 긍지도 있다.


사람 죽이는 일은 안 한다는 거다.


전임 길드장 왈, 그딴 건 도둑이 아니라 강도지. 목숨까지 빼앗는 건 미학이 없어.


그런 관계로 암살 의뢰 같은 건 사양이라고 더 들어볼 마음도 없다는 듯 몸을 빼는 더크였다.


"아, 정정할게요."


그런 더크의 태도에 실수했다는 듯 태평한 얼굴로 엘리제가 발언을 수정했다.


"암살이 아니라 암습. 암습 의뢰하고 싶어요. 죽이는 건 안 돼요. 절대로."


무심코 ‘습관대로’ 암살을 입에 담았는데 실수다.


목적은 레오에게 죽음을 연상시킬 정도로 호된 경험을 하게 해주는 것이지 정말 죽이려는 게 아니다.


죽어선 곤란하지.


결코 있어선 안 될 일이다.


어디까지나 레오를 위해 좋은 실전 경험을 선물하려는 거니까.


그 선물이 지나쳐 받는 사람을 죽음에 이르게 하는 건 있어선 안 될 일 아니겠는가.


대신 어디 한 곳 크게 다치거나 하는 건 상관없다.


설령 사지가 잘린다거나 폐인이 된다고 해도 가슴 아프지만 그건 괜찮다.


엘리제는 고작 그런 걸로 식을 정도로 시시한 사랑을 하고 있지 않았으니까.


상대가 아무리 추하고 엉망이 된다고 해도 사랑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오히려 가끔은 생각한다.


차라리 어디 아무도 모르는 곳에 레오를 가두고 그의 모든 걸 관리하에 두고 탐닉하는 생활을 보내는 건 어떨까 하는 그런 생각.


일그러진 사랑.

병든 감정이라는 자각은 있지만, 굉장히 매력적으로 느껴지는 것도 사실이었다.


하지만 그 욕망을 실천하지 않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런 건 분명 그가 슬퍼할 테니까.


그렇게 일방적인 사랑으로는 만족할 수 없다는 탐욕스러운 이유도 있어서 자제하고 있는데, 아무튼 당장은 그게 중요한 게 아니니 넘기고.


"암살── 아니, 암습 대상은 레온하르트 번스타인."


"······뭐?"


엘리제 입에서 익숙한 이름이 튀어나온 순간 더크는 내가 지금 뭘 잘못 들은 건가 하는 얼굴이 됐다.


그럴 수밖에 없지.


눈앞에 있는 제정신 아닌 것으로 보이는 아가씨가 최근 집착하기 시작한 전속 집사 이름이었으니까.


조사 결과 후작영애는 집사에게 남다른 애착을 갖게 됐다는 결론이 나온 지 얼마 되지도 않았다.


그런데 분석이 무색하게 이런 소리를 한다는 게···.


설마 애들이 좋아하는 마음을 표현할 줄 몰라서 괴롭히는 것도 아니고 이게 지금 뭐 하자는 건지 영문을 모르겠다.


설마 처음부터 다시 조사하고 분석해야 하는 건가 싶어 골치가 아픈 더크였다.


"도둑길드원 중에는 상당한 실력자도 있는 걸로 알고 있어요. 그런 이들이 움직이면 충분히 아픈 교훈을 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데···."


가능은 하다.


가능은 한데, 그간 실체도 뚜렷하지 않은 자신들에 대해 어떻게 저렇게 빠삭한 건지 더크는 혼란스러웠다.


"···물어볼 타이밍이 늦긴 했지만, 이쯤 되면 그냥 넘어갈 수도 없군. 대체 우릴 어떻게 알고 찾아온 거고 어디까지 알고 있는 거지? 잭에 대한 건 어떻게 안 거고."


첫날 일이 있고 다방면에 걸쳐 엘리제에 대해 다시 조사한 도둑 길드.


하지만 조사하면 조사할수록 아이러니하게도 모르겠다는 결론만 나왔다.


왕국 제일의 정보력을 자부하는 게 우습게도 엘리제 버몬트는 미지 그 자체였다.


그 미지를 밝히기 위해 지금도 노력을 기울이고 있으나 도무지 갈피를 잡을 수가 없다.


아무도 몰랐던 전임 길드장의 행방, 이왕자의 이중생활 등등.


방심할 수 없는 이상한 여자라는 건 확실한데 그 이상은 의문으로 가득했다.


"이건 좀 실망이네요. 정보를 다루는 도둑 길드가 의뢰자에게 질문이라니."


한심하다는 듯 고개를 젓는 엘리제.


후드의 그늘에 가려 표정까진 자세히 보이지 않았지만, 볼 필요도 없다.


실로 자존심 구겨지는 상황에 떨떠름한 표정을 숨기지 못하는 더크였는데 그런 더크를 향해 엘리제가 잘 됐다는 듯 미소 지으며 말했다.


"그런 질문을 한다는 건 제가 준 힌트가 유용했다는 뜻이겠죠? 이번에도 거래하죠. 암습, 잘 처리해준다면 이전처럼 당신들도 모르던 사안에 대해 힌트를 주죠."


"힌트라."


어디서 그런 힌트를 얻었는지 같은, 결국 본인에 관한 이야기는 안 하겠다는 뜻이다.


하지만 더크 역시 처음부터 그런 걸 기대하진 않았기에 엘리제가 도둑 길드도 미처 파악하지 못한 유용한 것을 알려준다면 거래할 용의가 있었다.


"암습하라고 해도 상대가 아가씨 곁에 딱 붙어 다니니 곤란한데."


설마 댁이랑 같이 있는 상황에서 습격하라는 건 아닐 거 아니야.


그렇게 말하는 더크를 향해 엘리제는 턱 끝에 검지를 대고 갸웃하면서 그것도 괜찮은 그림이 나올 것 같다고 중얼거린다.


위기에 빠진 아가씨를 구하기 위해 몸을 불사르는 집사.


실로 멋진 그림이 나올 것 같긴 했으니까.


하지만 아쉽게도 상상으로 그칠 수밖에 없는 일이다.


정말 그런 짓을 벌였다간 일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질 게 불 보듯 훤했으니까.


억지로 상황을 만들어보자면 만들 수는 있겠지만··· 얻는 것에 비해 들이는 수고가 너무 컸고 위험부담 역시 크다. 아쉽지만 아가씨의 낭만을 자극하는 그런 이벤트는 다음으로 미루기로 했다.


"조만간 친가에 다녀오라고 휴가를 내보내죠. 그때를 이용해서 간담이 서늘한 경험을 선물해줘요."


"하."


이게 정말 잘하는 짓인지 모르겠다는 듯 뒷머리를 긁적이는 더크.


석연치 않은 구석이 많았지만, 어쩔 수 없다.


거절하기에는 상대가 가진 패가 너무 매력적으로 보였고 사람을 죽이라는 것도 아니고 위기감을 연출하라는 거였으니 못 할 일도 아니다.


말려드는 것 같다는 자각은 있었지만, 이미 미노타우루스에 올라탄 기세였다.


더크는 이전 거래가 그랬던 것처럼 이번에도 거래를 트기로 결심했다.


"계약금 준다고 생각하고, 하나만 답해줬으면 좋겠군. 우릴 어떻게 알았지? 잭이 알려준 건가?"


"좋아요. 선금 준다 생각하고 답해드리죠."


어차피 말해준들 알아듣지 못할 거라고 웃으면서 엘리제는 진실을 입에 담았다.


"더크, 당신이 알려줬어요."


"뭐?"


순간적으로 지금 이 여자가 조롱하는 건가 싶었으나 그런 분위기는 또 아니었다.


‘내가 알려줬다고?’


이 바닥에서 오래 살아남기 위해선 상대의 거짓을 간파하는 능력이 중요하다.


그런 면에서 더크는 전임 길드장이자 양부인 잭도 인정할 정도로 진실을 간파하는 능력이 탁월했다.


워낙 노안이라 착각하기에 십상이지만, 더크가 젊은 나이에 길드장에 오른 건 다 이유가 있다는 것이지.


그래서 지금 엘리제가 아무 말이나 되는대로 지껄이는 게 아니라는 걸 알았는데 그런 탓에 더욱 영문을 알 수가 없다.


‘젠장, 도무지 하나부터 열까지 이해할 수가 없는 여자야.’


무슨 스무고개라도 하는 것만 같은 혀를 차며 더크는 축객하듯 엘리제를 배웅했다.


어지간하면 정말 이번이 마지막 거래였으면 싶은 마음이지만, 그런 바람과 달리 긴 인연이 될 것 같다는 직감이 들어서 짜증이 났다.


이런 예감은 좀처럼 틀린 법이 없으니까.


할 수만 있다면 길드를 다른 장소로 옮기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정보상의 아이덴티티를 부정하는 것 같은 미지 덩어리 엘리제 버몬트를 탐구하다 말고 뜨는 건 지는 것 같아서 그건 또 싫었다.


최소한, 외부인은 접선 방법은 고사하고 존재 자체를 몰라야 정상인 도둑 길드를 어떻게 정확히 알고 찾아온 건지 그것만이라도 명확히 밝혀내야만 한다.


길드의 안전을 위해서라도.


그렇다고 힘으로 할 수도 없다는 건 지난 만남에서 싫을 정도로 깨달았으니 정보상답게 접근해야지.


"추측과 달리 잭을 만나 들은 게 아니라는 건 알았으니 일보 전진인가."


자신이 알려주었다던 그 말.


그 수수께끼를 풀기 위해 궁리에 잠기는 더크.


터무니 없이 부족한 단서 때문에 억측조차 해볼 수 없는 판국이라 결국 백기를 든다.


"이거야 원, 안 받느니만 못한 선수금이로군."



이렇게 되면 잔금을 받기 위해서라도 클라이언트가 원하는 대로 의뢰를 깔끔하게 끝낼 필요가 있겠다.


그런 의미에서 난데없이 봉변당하게 생긴 레오라는 청년에게는 미안하지만, 이것도 비즈니스니까 어쩔 수 없다고 동정을 표하며 누굴 자객으로 보낼지 머릿속으로 계산에 잠긴다.


동시에 결국 그 괴상망측한 아가씨는 자기 집사에게 뭘 하고 싶은 건가 추측해보기도 한다.


‘좋아하는 게 아니었나? 아니, 좋아하기 때문에 이런 짓을 하는 건가?’ 


만약 그렇다면 그 불쌍한 집사도 참 질 나쁜 여자에게 찍혔군.


끌끌 혀를 차며 머릿속으로 집사 레오의 프로필을 떠올린다.


기사 가문 막내.

평범한 재능.

10살에 후작가에 집사로 팔림.

소드 유저 상급.

최근 진전을 보임.

불쌍하게도 엘리제 버몬트의 관심을 한 몸에 받고 있음.

등등등.


세상일이라는 게 결국 다 그런 법이긴 하지만, 새삼 참 기구한 팔자라는 생각이 든다.


"후작가랑 엮이지만 않았어도 모험가로 꽤 잘 나갔을 것 같단 말이지."


어려서부터 가문 지원 받은 주제에 겨우 소드 유저 상급이냐고 할 게 아니다.


기준점을 어디에 두냐에 따라선 겨우 소드 유저가 아니라 놀랍게도 스물에 소드 유저 상급이었으니까.


저 악랄한 영애 밑에서 어찌 됐든 10년이나 버틴 것도 그렇고, 후작가만 아니었어도 뭐가 됐든 제법 크게 됐을 것 같다는 인물평이 절로 든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클라이언트의 심술 가득한 괴상한 의뢰에 누굴 보내면 좋을까 고민하게 된다.


죽지만 않으면 된다고는 했어도 너무 험한 꼴로 만들면 그 변덕이 수프 끓는 아가씨가 어떻게 나올지 모르는 거고.


신중하게 보낼 자객을 결정해야만 하는데 마땅히 떠오르는 인물이 없다.


아니, 적격인 길드원이 있긴 하지만 잭의 흔적을 쫓아 ‘제국’으로 보낸 상황이라.


"······내가 직접 나서는 수밖에 없나."


더크는 결국 입맛을 다시며 자신이 손수 처리해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주는 사람에겐 사랑이 가득 담긴.

하지만 받는 사람에겐 심술이 가득 담긴 선물의 배달부로 더크가 확정된 순간이었다.


작가의말

선작, 추천, 댓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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