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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 님의 서재입니다.

망자여, 왕이 되어라!

웹소설 > 일반연재 > 대체역사, 전쟁·밀리터리

완결

bok2705
작품등록일 :
2019.04.01 11:28
최근연재일 :
2021.01.04 19:00
연재수 :
210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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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1,133,243

작성
19.08.30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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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
87
글자
12쪽

46화: 두번째 나비효과 (1)

*본작은 역사적 고증보다는 상상의 비중이 더 큰 작품입니다. 참고해주시기 바랍니다. 이미 지난 시대를 배경으로 나올 수 있는 수많은 픽션 중 하나라고 생각해주시면 될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DUMMY

<망자여, 왕이 되어라!>

46화: 두번째 나비효과 (1)


“장군님께서 생각하시는 적은 일본 제국입니다.”


-뭐···? 누, 누구···?’


“일본 제국이야말로 진정 무너뜨려야 할 적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일··· 일제를 무너뜨리겠다고?-


‘일본 제국’이란 말에 마을 주민들은 일제히 동요했다. 그리고 빠른 속도로 반응했다.


그러나 그들이 보여준 모습은 후손이 상상하던 이미지와는 전혀 다른 종류의 것이었다.


후손들이 떠올렸을 법한, 아니, 마땅히 그랬을 것이라고 여겼던 투사와 열사의 모습은 어디에도 없었다.


그저 웃음소리를 내지 않으려는 사람들만 눈에 들어올 뿐이었다.


헛웃음이 나올 수밖에 없는 말을 들었는데 중요한 자리여서 어떻게든 참아야만 할 때, 바로 그런 상황에서나 볼 법한 모양새였다.


주민들은 회담 분위기에 괜한 악영향이 가지 않도록 입을 굳게 다물고 죽을 힘을 다해 어금니를 깨물고 있었다.


하지만 한 번 샘솟은 감정은 어떤 식으로든 드러나는 법, 주민들은 이런 상황에 처한 사람들 대부분이 그렇듯 마음을 완전히 다스리지 못했다.


대성은 주민들의 눈빛을 보는 것만으로도 그들이 부관의 말을 어떻게 받아들였는지 알 수 있었다.


‘다들 약장수 구경하듯이 보고 있네.’


부관을 향한 주민들의 시선은 사기꾼을 향한 경멸 어린 시선과 별반 차이 나지 않았다. 그것도 말이 좋아 사기꾼이었지 그냥 미친 사람을 대하는 것 같았다.


그렇게 부관은 군벌 앞잡이라는 이미지와 더불어 사기꾼 타이틀까지 얻게 되었다.


하지만 그는 그저 통역하는 사람이었을 뿐, 궤변으로 치부된 발언의 장본인이 아니었다.


주민들은 이내 젊은 군벌 지도자가 앉은 자리로 시선을 옮겼다.


불신과 회의감으로 가득 찬 시선이었다.


이는 마을 지도부도 마찬가지였다. 상대방에게 의중을 간파당하는 일이 없게끔, 불필요한 의견과 감정 표출을 하지 말자고 거듭 다짐했던 지도부 일원은 거세게 요동치는 마음을 더 이상 억누를 수 없었다.


그들은 마을 주민들을 대표하여 상대방의 진심을 알고자 했다. 아니, 이미 내린 결론을 확인하고자 했다.


“부관이라 그랬나? 자네 대장한테 물어보고 싶은 게 있는데."


“말씀하십시오.”


"이렇게 물어봐 주게나. 방금 한 말 진심이냐고."


상기가 말했다. 대성에게 협상 전권을 맡긴 뒤 줄곧 침묵을 지켜왔던 그는 조선인 부관과 한세걸을 번갈아 보며 불신과 우려가 혼재된 복잡미묘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리고 질문을 전해 들은 한세걸이 고개를 끄덕이자 한숨을 내쉬었다.


마적단과 싸울 때는 물론이요, 협상 전 공동체의 존망 가능성을 논할 때조차 볼 수 없었던 깊은 한숨이었다.


“휴우··· 좀 이상한 놈인 줄 알았건만··· 완전히 정신 나간 작자였구먼···”


“예? 방금 뭐라고 하셨습니까?”


“자네가 모시고 있는 대장 말이야. 정신 나갔다고. 미쳤단 말일세.”


“그 말은 전하지 않겠습니다.”


부관이 말했다.


하지만 별 의미 없는 행동이었다.


굳이 통역을 거치지 않아도 상대방의 의중을 파악할 방법은 많았으니까.


상기는 철없는 어린애를 쳐다보듯 한세걸을 응시하고 있었다. 비단 그뿐만 아니라, 회담장에 모인 마을 주민 대부분이 상기와 비슷한 표정으로 한세걸을 바라보고 있었다.


주민들의 표정은 천리군과의 혈전을 각오했을 때보다도 더 어두웠다.


그들은 진심으로 걱정하고 있었다. 아니, 두려워하고 있었다.


그리고 한세걸이 이를 그냥 넘길 리가 없었다.


[부관. 방금 저 사람이 뭐라고 한 건가?]


[예···? 아... 딱히 중요한 말은 하지 않았습니다. 별거 아닙니다.]


[별 게 아니라니?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인가? 이 회담 자체가 중요한데, 별 게 아닌 발언이 어디 있어?]


[죄, 죄송합니다. 총사령님···]


[누가 말하든, 무엇을 말하든, 하나도 빠뜨리지 않고 전해주게. 판단은 내가 할 테니까.]


한세걸의 불호령이 떨어지기 무섭게, 부관은 통역하지 않았던 상기의 나머지 발언도 마저 전해주었다. 더불어 주민들의 반응까지 일일이 정리해서 전달했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이윽고 한세걸이 상기를 보며 조심스럽게 말문을 열었다.


[우리가 미쳤다라... 무슨 연유로 그렇게 생각하시는 겁니까?]


"그 말 말고는 딱히 할 말이 떠오르지 않았기 때문이네. 지금 상대가 어떤 놈들인지 알고 말하는 건가?"


[예. 일본 제국이지요. 그들이 아니면 누구겠습니까? 땡볕 아래서 땀 흘리는 농민들이요? 아무 생각 없이 철로 근처만 어슬렁거리는 총잡이들이요? 이 사람들은 나의 적이 아닙니다.]


“대체 뭘 믿고 그러는 건지··· 잘 들어보게. 자네가 일컫는 적은 술에 절어 사는 열차 강도나 마적이 아니야. 올해 무슨 일이 일어났었는지도 모르나?”


[여기 있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습니다. 내 터전이 유린당하고 셀 수 없이 많은 내 동료들이 죽임을 당했죠. 바로 관동군에 의해서.]


“그래. 놈들은 재앙 그 자체야. 이 지역에서 놈들과 맞설 수 있는 세력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고.”


상기가 격양된 목소리로 말했다.


얼핏 보면 이상한 상황이었다. 천리군이 지옥에 떨어지는 날만 바라던 사람들이 도리어 천리군의 앞날을 걱정하고 있다니.


분명 후손들이 상상하던 것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그러나 대성은 딱히 할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당시 정세를 한 번이라도 생각해봤으면, 아니, 당시 세상을 조금이라도 살아봤으면 그렇게 이상한 반응이 아니었으니 말이다.


인정하고 싶든, 싶지 않든 간에 만주의 새로운 주인은 누가 봐도 일본 제국이었다. 그들은 수십만에 달하던 봉천 군벌을 일거에 무너뜨리고, 아시아의 제왕을 자처하던 거대한 중원대륙을 단번에 침묵시키며 만주를 차지했다.


그리고 이 사안은 별문제 없이 받아들여졌다. 강자가 약자를 수탈하고, 약자는 강자에게 시달려야 하는 원리가 당연하게 여겨지는 시대였으니까. 세계열강은 일제의 만주 점령을 국권 침탈 때와 마찬가지로 전혀 문제 삼지 않았다.


그것이 바로 당시 정세였다. 약자들이 강자들에게 맞설 방법은 없었다. 게다가 이 시기의 강자들은 잔혹하기까지 했다. 저항하는 자에게는 참혹한 보복과 대가만이 기다리고 있었다.


“이보게. 놈들과 싸움으로써 뭘 얻을 수 있을 것 같나? 나도 한때 일제와 맞서 싸웠었어. 죽을 힘을 다해 싸웠지. 그렇게 하면 뭔가 바뀔 줄 알고 말이야. 하지만 잘 보게. 내가 바꾼 게 있는가?”


[······]


“아무것도 바뀌지 않았어. 아무것도··· 애꿎은 이들의 운명만 나락으로 떨어뜨렸을 뿐이지··· 그래서 말하는 거네. 자네의 적은 자네만 공격하지 않아. 자네의 결정에 따를 이들은 물론이고, 그들이 아는 수많은 사람까지 해칠 걸세."


[휴···]


“신중하게 생각하게. 놈들은 자네가 이끄는 병력으로 어찌해볼 상대가 아니야.”


[결국, 가만히 있으라는 말씀이시군요.]


“후손들에게 말하긴 참으로 부끄럽네만... 어쩌겠나··· 현실이-"


[그래도 전 가만히 있지 않을 겁니다.]


“뭐라고···?”


상기를 포함, 모든 공동체 주민의 시선이 다시 한 번 한세걸에게 모였다.


[당신들이 뭐라고 하든, 전 그들과 맞설 겁니다. 물론 저도 잘 알고 있습니다. 제 군대만으로는 일제를 죽었다 깨어나도 꺾지 못한다는 사실을요.]


“그걸 아는 사람이 대체 왜-"


[해야 할 일이기 때문입니다. 힘을 가진 자라면 마땅히 해야 할 일이지요.]


“자네-“


[저만 그렇게 생각하는 게 아닙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일본 제국과 맞서 싸우는 자들이 있습니다. 바로 북쪽 저 멀리 위치한 ‘흑하’ 지역에서 말이지요. 잘 알아두셨으면 하네요.]


“마점산··· 마점산을 말하는 건가?”


상기의 물음에 한세걸이 고개를 끄덕였다. ‘마점산’. 이는 대성에게도 익숙한 이름이었다. 그는 상기와 처음 만났을 때를 떠올렸다.


‘마점산이라면··· 맞아. 촌장님이 관동군이 그 사람과 싸우고 있다고 지나가듯이 말했었지. 근데 아직도 버티고 있었단 말이야?'


대성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비슷한 생각을 한 듯했다. 사람들은 관동군에 저항하는 군대가 남아있다는 사실에 놀라움을 표했다.


한세걸은 그 마점산이 이끄는 군대를 지원할 생각이었다.


[아까 말한 대로 제 군대 하나만으론 관동군을 물리치기 어렵습니다. 인정합니다.]


“······”


[하지만 모두가 힘을 합친다면 어떻게 될 것 같습니까? 우린 지금까지 힘을 합친 적이 없습니다. 놈들의 만주 침공을 막아내지 못한 것도 스스로 분열했기 때문이었지요.]


“힘을 모으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네.”


[압니다. 하나같이 자기 이권만 지키려고 할 테니까요. 실제로도 그랬고. 하지만 난 그들과 다릅니다.]


한세걸이 말했다. 그는 자신에 대한 사람들의 불신을 완전히 씻어내려고 작정한 듯, 일장연설하듯이 쉬지 않고 말을 쏟아냈다.


[황금? 보석? 난 이따위 물건 모으는 데 관심 없습니다. 어차피 죽으면 다 두고 갈 것들 아닙니까?]


“흠··· 그렇긴 하지..."


[그럼 이제 어떻게 해야겠습니까? 옳은 일에 써야지요. 가진 게 있으면 옳은 일에 써야하는 법 아니겠습니까?]


"근데 이 상황에서 그 말이 왜 나오는 건가?"


[나에게 옳은 일이란 이 땅에서 일본 제국을 몰아내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나에게는 그들과 맞설 물자와 시설, 인력이 있습니다. 못해도 내 동료들이 허무하게 짓밟히지 않게 만들 수준은 되지요.]


이윽고 한세걸은 자신의 군대가 보유한 전력과 군수시설 현황, 그리고 예상되는 생산량까지 대강 말해주었다. 그러나 말이 좋아 대강이지, 참모들이 말리지 않는 게 이상할 정도로 상세한 정보였다.


[물론 이건 모든 전력을 집중했을 때만 가능한 얘기입니다. 누군가 방해하지 않아야만 달성할 수 있지요.]


"......"


[그래서 여기까지 찾아온 겁니다. 여러 마을에서 저 친구에 관한 이야기를 들으면서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거든요. 저 친구라면 좀 다르지 않을까? 뭔가 말이 통하지 않을까.]


한세걸의 시선은 어느덧 대성을 향하고 있었다. 대성은 회담에 참석한 조선인 공동체 일원 중 젊은 군벌 지도자의 계획에 반대 의견을 내비치지 않은 유일한 인물이었다.


반대하지 않은 이유는 간단했다.


자신은 본래 이 시대를 살던 인물이 아니었으니까.


사실 그가 역사를 바라보는 관점은 아이러니하게도 조상들의 원한을 사고 있던 천리군의 새로운 지도자와 비슷했다.


비단 그뿐만이 아니었다. 대성이 파는 학습지로 공부하던 나이 어린 후손들도 한세걸과 별반 다르지 않게 생각하는 편이었다.


-그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 대부분은 왜 저항하지 않았을까? 왜 적극적으로 일제를 몰아내려 하지 않았을까? 대체 뭘 믿고 기다리기만 한 걸까?-


대성은 학습지 사이트에 가끔 올라오는 아이들의 질문에 이런 답변을 하곤 했다.


-그들은 일제가 쉽게 패망할 줄 몰랐을 것이다. 당시 사람들의 관점으로 봤을 때 일제는 쉽게 몰아내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과연 그랬을까?'


‘제대로 싸우려고 했던 사람들이 있기는 했던걸까? 과연 얼마나 있었을까?'


'맞서 볼 힘을 가지고도 그 힘을 제대로 쓴 사람이 얼마나 있었는가?’


순간 많은 생각이 대성의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갔다. 곧 한강 한가운데서 만주 벌판으로 떨어진 이래 ‘생존’부터 해야 한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제쳐놓았던, 의미 없는 잡념으로 여겼던 것들이 그의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그리고 하나의 결론으로 합쳐졌다.


‘어쨌든 나는 힘을 갖고 있다.’




잘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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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8 207화: 해방 (2) +5 21.01.01 1,934 53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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