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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 님의 서재입니다.

망자여, 왕이 되어라!

웹소설 > 일반연재 > 대체역사, 전쟁·밀리터리

완결

bok2705
작품등록일 :
2019.04.01 11:28
최근연재일 :
2021.01.04 19:00
연재수 :
210 회
조회수 :
821,474
추천수 :
13,730
글자수 :
1,133,243

작성
19.08.19 12:00
조회
5,061
추천
89
글자
12쪽

45화: 진의[眞意] (3)

*본작은 역사적 고증보다는 상상의 비중이 더 큰 작품입니다. 참고해주시기 바랍니다. 이미 지난 시대를 배경으로 나올 수 있는 수많은 픽션 중 하나라고 생각해주시면 될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DUMMY

<망자여, 왕이 되어라!>

45화: 진의[眞意] (3)


[자네 말이 맞아.]


한세걸이 말했다.


[민위군이 위협이 될 만한 수준이었다면 그들과 먼저 협상하는 게 맞겠지.]


[잘 알고 있네. 그걸 아는 사람이 여긴 뭐하러 왔어?]


[앞으로 그럴 일이 없을 것 같아서.]


[그게 무슨 소리야?]


[무슨 뜻이겠어? 민위군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거지.]


[뭐···?]


[없어졌다고. 제 앞가림도 못 하는 어중이떠중이들만 남았을 뿐이야. 구태여 그런 송사리들과 협상할 필요가 있겠나?]


일본 제국이라는 이름의 재앙을 피해 만주로 이주했던 주민들 사이에서 또 다른 재앙으로 군림했던 존재, ‘민위군(民爲軍)’.


그 민위군이 해체되었다.


호환 마마나 다름없던 마적단 연합의 갑작스러운 해체 소식은 회담장에 있던 주민들을 충격의 도가니 속으로 몰아넣었다.


-그 자식들이 사라졌다고? 그게 참말이야?-

-군벌 똘마니가 그렇게 말해주던데... 나도 믿기지 않는구먼...-


소식을 접한 사람 중 평정심을 유지하는 데 성공한 자는 아무도 없었다.


기습작전 중단에 따라 회담장에 남게 된 장정은 물론이요, 되도록 감정을 드러내지 말아야 할 공동체 지도부도 표정관리를 제대로 하지 못했다.


대성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렇게 조선인 모두가 충격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가운데, 대화의 주도권은 천리군으로 넘어가 버렸다.


이내 대성과 주민들은 한세걸로부터 민위군의 마지막 순간을 들을 수 있었다.


[자네가 이곳 주민들을 군인으로 양성할 동안, 나는 늙은이들의 목을 쳐내고 군대를 얻었네. 나름대로 긴 시간이었지. 그런데 민위군은 그동안 아무것도 하지 못했더군.]


[민위군 구역에도 들어갔던 모양이네. 언제 또 들어가셨을까? 당신이 좋아하는 ‘정보 수집’하러 갔다 오셨나?]


[맞아. 당시에는 민위군을 더 위협적인 존재로 생각했었거든. 자네에 관한 이야기는 그때만 해도 뜬소문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으니까.]


[······]


[하지만 이게 웬걸. 내가 알던 민위군이 감쪽같이 사라졌지 뭐야. 이 지역의 패자를 자처하던 녀석들 말이야. 어디에도 남아있지 않았어. 어디에도.]


[서로 내전을 벌이고 있었으니까.]


[그래. 남아 있던 녀석들은 그저 민위군이란 이름 아래서 총질만 일삼던 마적 조무래기들뿐이었지.]


한세걸이 한심하다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분열로 점철된 집단의 최후는 해체보다는 소멸, 아니, 사실상 자멸에 가까운 것이었다.


조선인 총대장이 쿠데타로 쫓겨난 이후, 민위군은 새로운 지도자를 세우는 데 실패했다. 새로운 지도부를 구성하려는 노력도 없었다. 쿠데타의 주역이었던 주요 파벌들은 조직의 주도권을 두고 끊임없이 분쟁을 벌였고, 분열을 일으켰다.


그 결과, 민위군은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경쟁 세력이 내부 기반을 다지고 그것도 모자라 외부로 힘을 표출하는 와중에도, 민위군은 어떠한 발전도 변화도 이루지 못했다.


그저 ‘총대장’이라는 직함 하나를 차지하겠다는 일념으로 파벌 간, 파벌 내 이합집산을 거듭하며 쇠퇴의 길만 걸었을 뿐이었다.


군벌에 맞설 대규모 원정군을 조직할 정도로 세를 과시했던 마적단 연합체는 그렇게 자기 자신을 벼랑 끝으로 몰아갔다.


민위군의 상태는 바람 앞의 등불과도 같았다. 그러나 이들의 마지막 숨통을 끊은 이는 그들 자신이 아니었다.


[물론 위협이 될 만한 집단이 아예 없진 않았어. ‘민복부’에 자리 잡은 녀석들은 성장잠재력이 조금이나마 있었지.]


[‘민복부’라면··· 설마 민위군 본부에까지 정보원을 파견했던 거야?]


[아니, 내 정예부대를 파견했지. 자네 세력이 국경과 가까운 마을에서 전투를 벌일 동안 말이야.]


민위군을 벼랑 밑으로 밀어 넣은 장본인은 바로 한세걸이었다.


분열의 주역 중 하나이자 조직의 명맥을 간신히 잇고 있던 민위군 본부 세력은 천리군 정예부대의 공격에 허무하게 무너져 내렸다. 요새 문이 열리던 날, 민위군 병사들은 대도를 들고 달려들었고 기관총 세례와 함께 지옥으로 떨어졌다.


하지만 치열했던 전투의 양상과 다르게 민간인 희생은 얼마 나오지 않았다. 한세걸의 군대가 민간인을 건드리지 않은 덕분이었다.


여기까지가 한세걸의 주장이었다.


[내 계획에 방해될만한 놈은 사전에 제거하는 게 옳다고 봐. 철저하게 말이지. 그렇지만 민간인은 전혀 건드리지 않았어. 한족이든, 조선인이든 간에.]


[민간인은 왜 그냥 놔뒀지? 당신네 입에서 나올 소리는 아닌 듯한데.]


[그들은 나의 적이 아니니까.]


[적이 아니라고? 그러면 당신 적은 누군데? 당신의 그 비밀스러운 계획에 방해될 만한 것들인가?]


[대충 그렇다고 봐야지.]


[그럼 나도, 아니, 우리 마을도 적의 범주에 해당하겠군. 당신 구역과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매일같이 총질하고 있으니까. 안 그래?]


순간 마주 앉은 두 집단의 지도부 사이로 무거운 정적이 흘렀다. 그러나 침묵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곧 한세걸이 침묵을 깨고 먼저 입을 열었다.


[우리 젊은 친구는 내가 여전히 못 미더운 모양이군.]


[난 처음부터 당신을 믿지 않았어. 중간에 살짝 넘어갈 뻔도 했지만··· 당신이 해준 민위군 이야기가 정신을 번쩍 들게 해줬지.]


[내가 자네를 적으로 여긴다고 생각하는 건가? 어째서 그렇게 단정 짓는 거야?]


[당신은 무장하지 않은 민간인만을 원하는 것 같거든. 한세걸 당신이 앞세운 야포 앞에 머리를 조아릴, 당신 통제에 군말 없이 따를 사람들 말이야.]


[참 요즘 시대에 보기 힘든 친구구먼··· 두 번, 세 번 곱씹어가며 의심하는 경우는 처음인데.]


한세걸이 혀를 차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먼저 대화하자고 나선 사람으로선 당연히 답답할 터였다. 무슨 말을 해도 일단 의문부터 품고 받아들일 생각을 하지 않으니 말이다.


그러나 대성도 답답하긴 매한가지였다. 총성 없는 대립 끝에 마련된 이 회담은 보여주기식 회동이 아니었다. 대성을 따르는 마을 주민들의 목숨과 미래가 걸린 중요한 자리였다.


따라서 누구처럼 제안 하나 하고 답변 하나 주고받고 마는 형식적인 회담을 할 수 없었다. 불한당 같은 놈들의 손에 애써 일군 터전을 잃고 자식을 보내는 역사가 반복되지 않게 해야 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상대방의 진의(眞意)를 반드시 알아야만 했다. 하지만 상대방은 산해관 수문장처럼 진의는커녕, 감정을 엿볼 기회조차 주지 않았다. 그저 말 돌리기 기술만 열심히 보여줄 뿐, 그야말로 돌아버릴 노릇이었다.


결국, 대성은 상대방에게 감정을 드러내지 말아야 한다는 원칙을 어길 수밖에 없었다. 그는 고개를 천천히 젓는 한세걸을 바라보며 격양된 목소리로 언성을 높였다.


[두 번, 세 번 곱씹는 경우는 처음이라고?]


[그래. 솔직히 나는 할 만큼 했어. 근데 젊은 친구, 아니, 정태준 자네는 도저히 들을 생각을 하지 않는 것 같군.]


[할 만큼 했다고? 뭘 할 만큼 했는데? 억지로 글 쓰는 사람마냥 빙빙 돌리는 게 할 만큼 한 거야?]


[뭐라고?]


[당신이 원하는 걸 정확하게 말하란 말이야. 괜히 이상한 사례 들고 와서 스무고개 타지 말고. 무슨 조건을 내세우든 간에, 당신은 결국 우리 마을을 통제하고 싶은 거잖아.]


[······]


[무장해제시키든, 정예부대로 짓밟든, 당신이 원하는 방식대로 말이야. 왜? 민위군은 이미 한참 전에 끝장냈으니까. 그나마 당신을 귀찮게 할 만한 세력은 우리밖에 없으니까. 아니야?]


대성은 한세걸이 대답할 틈을 주지 않고 발언을 이어갔다.


[자, 내가 할 말은 다 끝났어. 이제 한세걸 당신 차례야. 당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게 뭔지 정확히 말해. 제안에 딱 맞는 대응을 해줄 테니. 알았어?]


대성이 말했다.


사실상 최후통첩이었다.


결과를 각오하고 승부수를 던진 만큼, 상대방도 그에 맞는 반응을 보여야 할 터였다. 스무고개 같은 답답한 말 돌리기는 더 이상 나올 수 없었다.


다시 한 번 찾아온 일촉즉발의 상황, 회담장에 모인 사람 모두가 숨죽이고 지켜보는 가운데, 한세걸이 천천히 운을 띄웠다.


[흠··· 이제 알겠군. 자네가 어떤 성향인지. 내 방식이 답답하게 느껴졌다면 사과하겠네.]


[사과는 당신 부하 때문에 죽은-]


[내가 원하는 건 아까 말한 대로야. 서로 건드리지 않는 것. 난 자네가 민복부를 접수하든, 민위군 구역 전체를 장악하든 신경 쓰지 않을 거야. 마음대로 해. 대신 내 구역은 건들지 마.]


[정말 그게 다야?]


[더 있으니까 끝까지 들어.]


한세걸이 말했다.


[조금 전에 자네가 물어봤었지? 누굴 적으로 생각하느냐고. 본론부터 말하자면 난 자네를 적으로 생각하지 않아.]


[어째서?]


[자네는 힘을 쓸 줄 안다고 생각했거든. 자네를 따르는 자들도 마찬가지고. 그간 마적단에게 시달리던 사람들을 구할 목적으로 싸웠잖아? 아닌가?]


[하다 하다 천리군한테 그런 말을 듣게 될 줄이야. 생각지도 못했군. 그래, 당신 말이 맞아. 우린 누구처럼 학살을 저지르기 위해 싸우지 않았어.]


[······]


[이렇게 되면 마적단이 당신의 적이라 할 수 있겠네. 아니면 만주 어딘가에 있을 다른 군벌이려나? 대답해. 그들이 당신의 적이야?]


대성이 물음에 한세걸이 고개를 저었다.


[그놈들은··· 상대할 가치도 없는 놈들이지. 내가 말하는 적은 그런 무뢰배들이 아니야.]


[그럼 누군데?]


[내 동포와 터전을 짓밟은 놈들. 그 전에 자네의 터전을 빼앗고 동포를 학살한 놈들이기도 하지.]


[설마 일본···]


[그래, 일본 제국. 내 적은 일본 제국이야. 제 몸 하나 간수 못 하는 마적 조무래기가 아니라.]


마을 주민들은 ‘일본 제국’이라는 말을 듣자마자 일제히 동요했다.


당시 아시아 최강의 패자로 군림하던 이 악랄한 국가는 고된 타지 생활로 인해 주민들의 기억 저편으로 물러나 있었다.


대성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한강에 몸을 던지기 전에도 그랬듯, 만주에서의 삶 또한 치열하기 짝이 없었기 때문이다.


한 마디로 일본을 신경 쓸 여유가 없었다. 괭이가 부러지도록 땅을 갈아도 입에 풀칠하는 것조차 힘든 마당에, 시시각각 덤벼드는 마적단까지··· 불모지나 다름없는 지역에서 살아남기란 그야말로 투쟁 그 자체였다. 일본을 의식하는 시간을 갖는다는 것 자체가 사치로 여겨졌다.


물론 대성이 처음부터 ‘일본 제국’을 의식하지 않았던 건 아니었다. 전문가 수준에는 못 미치더라도 학습지 재고를 처리하면서 스스로 깨우친 게 많았던 만큼, 일제가 저질렀던 만행 대부분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림 좋은 떡도 배가 불러야 보이고, 재난도 직접 겪어봐야 실감하는 법. 대성 본인에게나, 그를 정태준으로 알고 있는 마을 주민에게나 당장 맞서야 할 재난은 마적단과 군벌이었지, 일제가 아니었다.


그렇게 일본 제국이라 불리는 악의 근원은 주민들 마음속 어딘가에 고이 잠들어 버렸고, 생존이라는 명분에 밀려 한동안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적어도 한세걸의 입에서 일제가 언급되기 전까지는···


[난 그놈이야말로 진정 무너뜨려야 할 적이라고 생각했어.]


한세걸의 한 마디는 회담의 방향을 바꾸었다.


그리고 역사의 한 줄기까지 아무도 예측하지 못한 길로 이끌었다.




잘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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