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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 님의 서재입니다.

망자여, 왕이 되어라!

웹소설 > 일반연재 > 대체역사, 전쟁·밀리터리

완결

bok2705
작품등록일 :
2019.04.01 11:28
최근연재일 :
2021.01.04 19:00
연재수 :
210 회
조회수 :
821,528
추천수 :
13,730
글자수 :
1,133,243

작성
21.01.04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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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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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글자
12쪽

208화: 에필로그 - 그리고 지금 (완결)

*본작은 역사적 고증보다는 상상의 비중이 더 큰 작품입니다. 참고해주시기 바랍니다. 이미 지난 시대를 배경으로 나올 수 있는 수많은 픽션 중 하나라고 생각해주시면 될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DUMMY

<망자여, 왕이 되어라!>

208화: 에필로그 - 그리고 지금


서울역은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수많은 인파로 붐볐다. 사람들은 열차를 놓치지 않기 위해 부지런히 발걸음을 재촉했다.


태준도 그중 하나였다.


[하얼빈행 국제고속열차에 탑승하시려는 승객께서는 14번 승강장으로 가시기 바랍니다. 다시 한 번 알려드립니다. 하얼빈행 국제고속열차에 탑승하시려는 승객께서는 14번 승강장으로···]


유라시아 대륙횡단철도의 시발점이자 종착점으로서 사상 유례없는 규모로 지어진 초거대 역사(驛舍)에서 미아 신세가 되지 않으려면 안내 방송에 귀를 잘 기울어야 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오만가지 언어로 적힌 안내판은 도리어 혼란만 주었으니까. 특히 초행길인 이용객에는 더더욱 그랬다.


태준은 낑낑거리며 승강장으로 향했다. 그는 여느 직장인과 달리 어디 이사 가는 사람처럼 유독 가진 짐이 많았다.


어떻게 보면 이사 간다는 것도 아주 틀린 말은 아니었다. 학부 동기들이 방학 때 종종 신청하던 단기 현장 답사처럼 며칠 콧바람 쐬고 오는 게 아니었으니 말이다.


아침도 거의 먹는 둥 마는 둥 하고 일찍 나왔던지라 태준은 승차 시간에 맞춰 열차에 오를 수 있었다.


태준은 보관대에 짐을 욱여넣고 예약한 창가 변에 자리를 잡았다.


객차 곳곳에 설치된 스마트 티브이에서는 이른 아침부터 연신 뉴스 속보를 내보내고 있었다. 티브이 속 아나운서는 심각한 얼굴로 바다 건너 대륙의 소식을 전해주었다.


[속보입니다. 중국 서북부에 기반을 둔 중화 제국과 동남부에 기반을 둔 중화 사회주의 민주 공화국 간 국경 분쟁이 국지전으로 번지면서 양국 간 전면전이 벌어질 가능성이 커졌습니다. 정부는 만주 연방 공화국 정부와 긴급 회동을 갖고 향후 발생할지도 모를 난민 유입 문제에 대해 긴밀히 협조하기로 합의했습니다. 중화민국 정부는 별다른 입장을 내놓지 않았습니다.]


건너편에 앉아있던 중국인들의 표정은 아나운서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진 않았다.


하지만 눈살을 찌푸렸던 것도 잠시, 중국인들은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일상으로 돌아갔다.


정치 이슈와 빠르게 손절하고 못다 한 회사 업무와 휴대폰 속 너튜브의 무한 알고리즘 세계로 들어간 그들이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지는 불 보듯 뻔했다.


‘저 나라에서 안 태어난 게 다행이다.’


비즈니스 목적으로 한반도와 만주를 오가는 중국인들은 백이면 백 만주 연방 공화국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심지어 스스로를 중국인이라 칭하지도 않았다. 만주 연방 공화국 사람들이 선호하는 명칭은 중화도, 한족도 아닌 만주인이었다.


만주인들은 자기 나라에 대하여 상당한 자부심이 있었다. 그럴 만했다. 만주 연방 공화국은 동북아시아에서 대한민국과 더불어 정치적 혼란이나 불안 요소가 존재하지 않는 유이무이한 정상 국가였으니 말이다.


‘살을 에는 추위가 괴롭힐지라도 만주에 사는 게 중원에 사는 것보다 백만 배 낫다.’


만주인들은 겨울이 되면 이런 식으로 자기 나라에 대한 애정을 드러내곤 했다.


걸핏하면 사상범 단속한다면서 국민을 대상으로 잔혹한 숙청을 일삼는 군벌의 후예가 자칭 황제 노릇을 하는 중화 제국이나 전근대 봉건 이념을 배격한다면서 정작 3대 세습을 이룩한 중화 사회주의 민주 공화국의 사정을 생각하면 당연한 현상이었다.


넓게 따져보면 일본도 정치적 불안 요소가 그리 많지 않은 편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정상적인 국가와는 거리가 멀었다. 일본은 대한민국이나 만주 연방 공화국과 달리 국제 정세에 어떤 영향도 끼치지 못했다. 일본에는 그럴 만한 군대도, 자본도 없었다.


그저 한가롭게 풀 뜯어 먹는 소와 양 떼, 그 옆에서 한가로이 콧노래나 흥얼거리는 양치기 소년만 있을 뿐이었다.


‘태고의 자연과 여유를 간직한 아시아의 스위스, 일본에서 여유를 되찾아보세요! 일본국 정부는 바쁜 생활에 지친 여러분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Go to travel Japan~!’


하지만 이마저도 연출된 이미지에 불과했다. 근심·걱정 없이 사는 일본인은 풀이 잔뜩 묻은 옷을 입고 나와서 환하게 미소 짓는 일본 국왕 부부의 관광 홍보 영상에서나 볼 수 있었다.


대다수의 일본인은 당당하게 고개를 들고 다니지 못했다. 허름한 목장 살림에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기 위해 바다를 건너온 일본인들은 죄인처럼 고개를 푹 숙인 채 객차 한구석에서 만주인과 한국인들 눈치만 보고 있었다.


그들은 누가 무슨 말을 하든 상관하지 않았다. 아니, 못했다.


[이번 휴가 때는 일본이나 한번 가볼까? 왕이라는 놈까지 나서서 저렇게 와달라고 비는데 말이야.]

[왜? 가서 소젖 대신 짜주게? 열심히 일해서 번 돈을 뭐하러 그런 시골 촌구석에 가서 날리냐? 자선 사업하냐?]

[뭐 어때? 돈 들어봐야 얼마나 든다고. 쥐꼬리만큼 써줘도 국왕 이상으로 떠받들어 준다고 하던데. 그리고 한 번쯤은 자연 속에서 지내보는 것도 나쁘지 않지. 솔직히 빌딩 숲 보는 거 지겹잖아. 서울이나 장춘이나. 안 그래?]

[괜히 가서 아무것도 없다고 사기죄로 국왕 고소하지 말고 그냥 마카오나 가. 아니면 홍콩을 가든가. 혹시 알아? 레버 돌렸다가 잭폿 터질지?]


광고가 끝난 티브이에서는 계속해서 중화 제국과 중화 사회주의 민주 공화국의 무력 충돌 소식을 보도했지만, 만주인들은 일체의 관심도 보이지 않았다.


두 중국 간의 분쟁은 그저 생판 남의 나라에서 벌어지는 일이었을 뿐이었다.


만주에서 출장 온 직장인들은 그저 자신의 휴가 계획에 차질이 생기지 않기만을 바랐다. 통일에 대해 한 번이라도 진지하게 생각해봤거나 바랐던 만주인은 아무도 없었다.


네 조각으로 쪼개진 중국의 통일은 다음 세기에도 찾아오지 않을 듯했다.


***


만주인들의 여정은 하얼빈에서 끝났다.


하지만 태준의 여정은 하얼빈부터 시작이었다. 태준은 일본인 직원의 도움을 받아 짐을 내린 뒤, 곧바로 다른 승강장으로 향했다.


[한만 무비자 협정에 의거, 대한민국 국적을 보유한 승객께서는 따로 입국 심사를 받지 않으셔도 됩니다.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알려드립니다. 백산으로 가고자 하는 승객께서는 8번 승강장으로···]


태준은 낑낑거리며 짐을 날라 준 일본인 직원에게 팁을 건네준 뒤, 백산으로 향하는 열차에 몸을 실었다.


백산으로 가기 위해서는 고속열차보다 훨씬 느린 일반열차를 타야 했다.


국제고속열차와 달리 일반열차에서는 승객을 거의 볼 수 없었다. 유창한 한국어와 중국어로 인사말을 건네는 일본인 승무원과 가끔 마주칠 뿐이었다.


백산은 예나 지금이나 오지였다. 평생 풀만 보고 살다가 일생을 마치길 원하지 않는 일본인이 아닌 이상, 평범한 집안의 자식으로 태어나 평범한 인생을 산 청년이 이런 오지에, 그것도 장기간 머물 생각으로 갈 일은 없었다.


하지만 태준은 달랐다.


태준의 학부와 대학원 동기들은 백산에 가려는 그를 거의 뜯어말리다시피 했다. 학술회 뒤풀이든 사적인 술자리든, 동기들은 기회가 올 때마다 그를 서울에 머물게 하려고 했다.


[거참 이상한 친구네. 대성아. 잘 생각해봐. 너 중앙박물관도 어렵지 않게 들어갈 수 있잖아. 근데 뭐하러 거기까지 가.]

[너 거기 가면 피곤해진다. 겨울 되면 얼어 죽지. 잊을만하면 애들 단체로 찾아와서 난리 치지. 별로 좋은 선택이 아니야.]

[그것도 그렇고. 조선 해방군의 초기 활동에 관한 연구 자료는 서울에도 널릴 만큼 널려있잖아. 근데 굳이 현장까지 가서 몇 년씩 지낼 필요가 있을까? 잠깐 가는 거야 괜찮지만.]


비단 동기들만 반대했던 것이 아니었다. 부모님도 먼 오지로 떠나려는 자식의 결정을 처음부터 지지하고 나서진 않았다.


그러나 태준은 결심을 굽히지 않았다. 그는 주변에서 딴지를 걸려고 할 때마다 이렇게 답했다.


[누누이 말하지만, 내가 보고자 하는 건 그 시절 조선 해방군의 활동 기록이 아니야. 해방군과 함께했던 사람들의 흔적이지.]


태준의 결심은 어느 때보다 확고했고, 주변인들은 그의 결심을 막을 수 없었다. 그를 설득하기 위해 마련된 자리는 결국 그의 성공을 바라는 자리로 끝이 났다.


[에휴~ 조만간 누구 때문에 역사 교과서 두께 엄청나게 두꺼워지겠네. 대성이 네가 쏟아낼 수많은 재만 조선인 생활사 논문을 생각하니 벌써 머리가 지끈거린다.]

[그러니까 말이야. 어쨌든 우리 중 네가 잘 안 되기를 바라는 사람은 아무도 없으니까 열심히 해. 건강 잘 챙기고. 겨울에 춥다고 징징거리기만 해.]


***


[이용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좋은 하루 되십시오.]


태준은 일본인 승무원의 유창한 한국어 인사를 뒤로 한 채 백산역에 발을 내디뎠다.


참으로 이상했다. 그 시절에는 이곳이 이름이나 제대로 남으려나 생각하곤 했는데.


태준은 연구소에서 간단한 환영 인사를 거친 뒤 곧장 박물관으로 향했다.


백산은 예나 지금이나 작은 고장이었지만, 국립 백산 기념관은 그렇지 않았다.


기념관은 사적 보존 차원에서 옛 백산 마을까지 그대로 품었다. 덕분에 사람들은 나름대로 원형에 가까운 형태의 마을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태준은 마을 입구에 세워진 커다란 안내판 앞에 섰다. 그리고는 고개를 들어 설명란 옆에 큼지막하게 나온 백산 마을 주민들의 사진을 올려다보았다.


모두 익숙한 얼굴이었다. 학교 다닐 시절부터 역사 교과서에서 한 번쯤은 봤을 사진이니 익숙하게 느껴질 법도 했다.


하지만 태준이 익숙함을 느꼈던 것은 단순히 교과서를 많이 읽었기 때문이 아니었다.


태준에게는 남한테 말하지 않은 비밀이 하나 있었다. 심지어 부모님께도 말한 적이 없는 비밀이었다.


그가 말을 하지 않은 이유는 간단했다.


아무도 믿지 않을 게 분명했으니까.


태준은 사진에 조금 더 가까이 다가섰다.


한때 가족이나 다름없다고 생각했던 친구들과 이웃들. 세찬 바람 앞 등불처럼 꺼져가는 의식 속에서 다시는 볼 수 없으리라 생각했던 부모님.


그리고 정태준이라는 이름으로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던 그 사람.


해방군을 일으킨 이후의 그 사람의 행적에 대해서 모르는 대한민국 국민은 아무도 없었다.


어쩌면 태준이 모르는 세계에서 김대성이라는 이름으로 불렸을지도 모를 그 사람은 태준의 이름으로 항일 투쟁을 시작했고 만주에서 절대자로 군림하던 관동군을 무너뜨렸다.


더불어 여세를 몰아 조선 총독부까지 무덤으로 보내 버리고 한반도 해방을 이룩해냈다.


그는 명실상부 민족의 독립에 가장 큰 공을 세운 영웅이었다.


그는 해방 이후에도 힘겹게 되찾은 터전을 지키기 위해 평생을 바쳤고, 전 국민의 존경과 찬사를 받으며 생을 마쳤다.


그의 이야기는 소설로도 쓰이고 영화와 드라마로도 제작되었다.


한 마디로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그의 인생을 모르려야 모를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와 함께했던 사람들은? 진짜인지 환상인지 알 수 없는 흐릿한 옛 기억 속에서 태준이 가족처럼 생각했던 마을 사람들은? 그와 만났을 수많은 인연은?


태준은 그 사람이 자신에게 과제를 남겨주었다고 생각했다.


어쩌면 선물일지도 모를 일이었다. 연구도 웬만큼 기초적인 자료가 있어야 하는 법. 그 사람이 기록을 남기는 데 소홀했다면 이런 조연이나 단역들의 존재 자체도 알지 못했을 테니 말이다.


태준은 가방을 간단하게 챙겨 들고 박물관 밖으로 나섰다. 태준은 그 사람이 마을에서 마적단을 소탕하고 한창 활동을 개시할 무렵 코흘리개였던 백산 거주민을 만나러 가볼 생각이었다.


[대성씨 벌써 시작하시려고요?]

[예. 연구하고 싶은 게 산더미라서. 부저런히 시작해야죠.]


태준은 가벼운 발걸음으로 버스에 몸을 실었다.


대성이 남겨준 과제가, 아니, 선물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잘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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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 후기 +24 21.01.04 1,561 46 2쪽
» 208화: 에필로그 - 그리고 지금 (완결) +2 21.01.04 1,823 43 12쪽
208 207화: 해방 (2) +5 21.01.01 1,933 53 13쪽
207 206화: 해방 (1) +3 20.12.31 1,544 50 12쪽
206 205화: 결전 (4) +3 20.12.30 1,469 42 12쪽
205 204화: 결전 (3) +1 20.12.29 1,401 38 12쪽
204 203화: 결전 (2) +1 20.12.25 1,560 41 12쪽
203 202화: 결전 (1) +1 20.12.24 1,523 33 12쪽
202 201화: 최후통첩 (4) +4 20.12.23 1,579 36 12쪽
201 200화: 최후통첩 (3) +3 20.12.18 1,661 39 13쪽
200 199화: 최후통첩 (2) +3 20.12.17 1,592 41 12쪽
199 198화: 최후통첩 (1) +3 20.12.16 1,673 43 12쪽
198 197화: 서울 진격 (4) +3 20.12.11 1,851 44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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