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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 님의 서재입니다.

망자여, 왕이 되어라!

웹소설 > 일반연재 > 대체역사, 전쟁·밀리터리

완결

bok2705
작품등록일 :
2019.04.01 11:28
최근연재일 :
2021.01.04 19:00
연재수 :
210 회
조회수 :
821,509
추천수 :
13,730
글자수 :
1,133,243

작성
20.12.23 18:00
조회
1,578
추천
36
글자
12쪽

201화: 최후통첩 (4)

*본작은 역사적 고증보다는 상상의 비중이 더 큰 작품입니다. 참고해주시기 바랍니다. 이미 지난 시대를 배경으로 나올 수 있는 수많은 픽션 중 하나라고 생각해주시면 될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DUMMY

<망자여, 왕이 되어라!>

201화: 최후통첩 (4)


조선 해방군은 탈출 권유 방송을 조선어와 일본어로 나눠서 내보냈다.


두 방송 간 차이는 거의 없었다. 어떤 언어로 하든 간에 해방군이 전하고자 하는 내용은 하나였다.


총독부가 어떤 명령을 내리든 듣지 말고 일단 빠져나와서 살 길부터 도모하라는 것이었다.


출신과 관계없이 말이다.


간단히 말해 일본인 주민들과 병사들도 탈출 행렬에 동참하기만 하면 기꺼이 받아들이겠다는 뜻이었다.


사실상 말이 권유였지, 거절할 수 없는 제안이나 다름없었다.


지옥문 앞에 다다른 일본인 주민들과 병사들에게 해방군의 방송은 한 줄기 빛이요, 동아줄이었다.


주어졌을 때 반드시 붙잡아야 하는, 두 번째 따위는 없을 일생일대의 기회였다.


조국의 패배를 확신한 일본인들은 새로운 터전에서 이루고자 했던 모든 것을 버리고 앞다투어 탈출 행렬에 가담했다.


주민들과 병사들은 비밀리에 접선한 해방군 특전대원을 따라 탈출 경로로 발걸음을 옮겼다. 특전대원은 주민들과 병사들에게 신분을 증명할 작은 표를 나눠주며 여러 주의사항을 알려주었다.


[이 통로를 쭉 따라가시면 우리 측 병사들과 만나게 될 겁니다. 일본어를 할 줄 아는 병사가 있으니 의사소통은 어렵지 않을 거예요.]

[알겠습니다.]

[한동안 통제가 조금 있을 겁니다. 조사도 이루어질 것이고요. 그러니 협조 부탁 바랍니다.]

[네.]

[그거까지 다 끝나고 나면 안전하게 고향으로 돌아가실 수 있을 겁니다. 뭐, 상황상 금방 돌아가기는 힘들겠지만. 어쨌든 돌아갈 기회는 확실히 보장한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럼 조심해서 가십시오.]


마지막 한 사람까지 저항하겠다는 조선 총독부의 호언장담이 무색하게 탈출 행렬은 끝을 보이지 않고 이어졌다.


어찌나 빈번하게 일어났는지 꼬리가 길면 밟힌다는 말을 꺼낼 필요도 없었다.


경성에 거주하는 주민들, 특히 일본인 주민들은 어떻게든 기회를 놓치려고 하지 않았다. 천황을 위해 목숨을 바칠 생각이 없었던 병사들도 마찬가지였다.


주민들과 병사들의 탈출 소식은 세상과 소통하기를 거부했던 지하 방공호에도 알음알음 전해졌다. 총독부 관계자들은 즉각 비상 회의를 소집하고 대책을 논의했다.


한 명 한 명이 아쉬운 상황에서 전력 이탈은 심각한 문제가 될 수밖에 없었다. 총독부 관계자들은 허겁지겁 대책을 마련했다. 그리고는 효용성을 따질 새도 없이 곧바로 실행에 옮겼다.


[당장 감시 인원 증원하고 방송 내보내. 전단도 돌리고. 뭔가 수상쩍다 싶으면 바로 구속해서 전장에 집어넣어.]


총독부는 복무 기간이 길고 세뇌가 잘 이루어진 자들만 골라 경성 곳곳에 배치하고 직위와 계급을 넘어선 권한을 부여했다.


더불어 경성 시내 전역에 전단을 뿌리고 선전 방송을 시간 단위로 틀며 항전을 촉구했다.


[조선 해방군은 살인에 미친 폭도 집단이다! 폭도들은 만주에서 벌였던 학살극을 조선 반도에 경성에서도 벌일 셈이다! 이 땅을 피로 물 들이려 한단 뜻이다!]


[폭도들이 경성에 들어오는 순간 다 끝이다! 폭도들이 휩쓸고 간 자리에는 아무것도 남지 않을 것이다. 살아남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모두 비참하게 죽을 테니 말이다!]


[폭도들은 그런 존재다! 오직 학살을 위해, 누군가를 죽임으로써 얻는 희열을 위해 총을 들 놈들이다! 죽기 싫으면 지금 당장 죽창을 들고 놈들과 맞서라! 황국신민으로서 절개와 의지를 보여주자!]


총독부의 선전 방송은 사람들의 귀에 못이 박일 만큼 끝을 모르고 이어졌다.


***


그러나 주민들은 총독부의 부름에 응하지 않았다.


주민들은 개죽음당할 게 분명한 전장에 나갈 마음이 없었다. 죽창 하나 들고 적군 전차와 맞서라는 총독부의 항전 촉구는 말이 촉구였지, 사실상 자살 강요나 마찬가지였다.


세상 물정 모르는 순진무구한 사람도 계란으로 바위를 깰 수 없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다.


천황의 안위와 국가의 안녕을 위해 희생해야 한다는 말은 헛소리가 된 지 오래였다. 주민들이 천황과 국가에 제 한 몸 다 바치고 얻은 대가는 지독한 굶주림과 소중한 사람들의 죽음이었다.


이는 그들이 원했던 것이 아니었다. 주민들이 원했던 것은 힘들었던 어제보다 더 나은 내일이었지, 두려움과 절망만이 가득한 무간지옥이 아니었다.


주민들은 총독부의 항전 촉구 방송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렸다. 헌병대가 발부한 징집 영장은 받는 즉시 불쏘시개로 쓰거나 쓰레기통에 버렸다.


그다음 주저 없이 해방군의 방송이 흘러나오는 경성 근교로 몸을 돌렸다.


총독부는 주민들과 병사들의 이탈을 막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경성 근교에 배치된 헌병대와 일본군 정예 부대는 성곽 근처에서 서성이는 주민들을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잡아들였다.


[탈출이라니요? 전 그저 풀뿌리를 캐려고 올라왔을 뿐입니다. 집안에 먹을 게 없어서요. 정말입니다···!]

[풀뿌리 같은 소리 하고 자빠졌네. 이 근처에서 폭도 놈과 접선하려던 수작 아니야? 밤에 몰래 기어 나와서 도시를 빠져나가려고 말이야.]

[아닙니다! 맹세코 그런 적 없습니다.]

[애당초 식량은 총독부에서 나오는 배급으로 해결하면 될걸. 게다가 지금 밖에 나와서 풀뿌리나 캐고 다닐 때야? 폭도들이 들어오나 안 들어오나 감시는 못 할망정 딴짓이나 하고 있다니.]

[죄송합니다···!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당연하지. 천황 폐하께 누를 끼쳤는데. 죽을죄를 지었으면 죽어야지. 따라와.]


헌병대는 사람들을 잡아들이는 데 출신을 가리지 않았다. 일본에서 태어난 사람이라도 성곽 근처에서 얼쩡거리면 이유 불문하고 반역자가 되었다.


반역자가 된 주민들은 별다른 조사도 거치지 않고 곧장 최전선으로 끌려나갔다. 오랜 세월 당한 세뇌로 인해 광신도로 전락한 군인들은 주민들에게 아무런 설명도 하지 않고 죽창부터 건넸다.


[아무리 쳐 죽일 반역죄를 저지른 구제불능이라고 해도 말이야. 만회할 기회는 받아야 하는 법이야. 최소한 한 번은.]

[······]

[보다시피 너희가 받은 죽창 끝에는 폭탄이 달려있다. 작은 충격에도 바로 터질 수 있도록 특별개조를 거친 좋은 무기지. 너희가 받은 옷에 달린 것들도 마찬가지고. 질문 있나?]

[······]

[거두절미하고 적이 가까이 접근한다 싶으면 바로 뛰어나가라. 우리가 준 약이 고통을 최대한 줄여줄 테니 너무 걱정하지 말고. 알아들었나?]


주민 모두의 목숨을 건 총독부의 광기 어린 행보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총독부는 이탈 행위를 아예 사전에 차단한다는 명분 아래 불시검문까지 벌였다. 헌병대는 몇 가지 수정안이 적용된 새로운 불시검문 절차에 따라 집에 있는 게 확인된 주민을 그대로 전장까지 데려갔다.


[아니, 최전선은 왜요? 저는 이미 경계 근무를 서고 있단 말입니다. 딴짓 한 번 하지 않았다고요!]

[군인이 한 근무지에서만 평생 근무하는 거 봤나? 근무하다 보면 근무지도 자연스럽게 바뀌기 마련이야. 통상적인 발령이라고 생각하라고. 잔말 말고 따라와.]

[잠깐만요! 저는 한 가정의 가장입니다! 처자식이 있다고요!]

[너만 있는 줄 알아? 가까운 근무지에 재배치해줄 테니 걱정하지 마.]


경성 시내는 천지를 울리는 포성과 졸지에 부모를 잃고 고아가 된 아이들의 울음소리, 그런 아이들마저 인간 미끼로 쓰려는 헌병대의 고함으로 뒤덮였다. 한 마디로 지옥이 따로 없었다.


***


결국, 주민들은 남아있던 망설임마저 버릴 수밖에 없었다. 살아남기 위해서는 누군가 도와주든 스스로 길을 찾든 탈출을 감행해야 했다.


주민들은 험하기 그지없는 산을 타는 것도 마다치 않았다. 달빛도 새어 들어오지 않는 빽빽한 숲에서 주민들은 이리저리 구르고 치였다. 발 한 번 잘못 디뎌서 낭떠러지 밑으로 떨어지는 사람도 여럿 있었다.


하지만 주민들은 포기하지 않았다. 산을 넘다 굴러떨어져 죽으나, 죽창 하나 들고 돌진하다가 전차에 깔려 죽거나 죽기는 매한가지였으니 말이다.


총독부의 광기는 결과적으로 주민들의 이탈을 더 부추기기만 했다.


사실 이 지경까지 이르렀으면 나름대로 정신 차리고 백기를 드는 게 정상이었다.


그러나 총독부 관계자들은 몸에 살인귀라도 깃든 것인지 광기 어린 행보를 멈추지 않았다. 총독부가 주민들의 탈출 행렬에 대응하여 꺼낸 최후의 수단은 미래와는 전혀 거리가 먼 것이었다.


[헌병대만으로는 주민들의 이탈을 막을 수 없다. 주민들의 이탈 업무만 담당하는 새로운 부대가 필요해. 정신 똑바로 박힌 놈들만 골라서 새로운 부대를 편성하도록.]

[어떤 부대 말입니까?]

[반역자만 전문적으로 처단하는 부대 말이야. 명칭은 뭘 해도 상관없으니까 일단 편성부터 해.]

[알겠습니다···]


총독부가 별다른 이유도 없이 경성 주민들을 집단 학살한다는 소식은 해방군에도 전해졌다. 신분 노출을 각오하고 학살을 막은 일부 특전대원들은 마지막으로 전한 통신에서 더 이상 시간을 끌어선 안 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헌병들이 탈출 경로를 모두 막은 바람에 산으로 올려보낼 수밖에 없었습니다. 얼마나 살아남을지는 모르겠습니다. 죄송합니다.]


[최고 사령부에 긴급하게 전합니다. 총독부는 항복에 응할 생각이 전혀 없는 것 같습니다. 총독부는 지금 병사들을 동원하여 조직적으로 주민들을 학살하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전합니다. 이제는 결단할 때가 온 것 같습니다. 희생은 피할 수 없습니다. 최대한 빨리 끝내서 희생자 수를 줄이는 수밖에 없어요. 저는 이만 여기서 통신을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가능하다면 살아서 가족과 다시 만나고 싶지만, 힘들 것 같네요. 잘 챙겨주십시오.]


경성 주민들에 대한 해방군의 탈출 유도와 지원은 궁극적으로 총독부의 항복을 전제하고 벌인 작전이었다. 세상 어떤 나라도 모든 민중을 죽이면서까지 싸우려고 하진 않을 테니 말이다.


하지만 일본 제국은 상식을 뛰어넘는 국가였다. 해방군 지휘부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본 제국 지도층의 광기에 충격을 감추지 못했다.


대성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정말 폭탄 두 방이 유일한 해답이었단 말인가?


해방군 지휘부는 학살극을 벌이는 총독부를 강하게 비판하며 분노를 드러냈다. 소식이 끊긴 특전대원들의 의견에 동의하지 않는 자는 아무도 없었다.


[사령관님. 아무래도 협상은 물 건너간 것 같습니다. 미친놈들··· 설마 본토에서도 이러고 있을까요?]

[그게 아니었다면 우리한테 홋카이도에 상륙해달라는 말도 꺼내지 않았겠지.]

[그럼 본토 사정도 별반 다르지 않겠군요. 거기에도 동포가 많이 살고 있을 텐데. 이제 어떡하실 겁니까? 놈들이 항복할 것 같지는 않고. 그렇다고 인제 와서 조건부 협상을 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어떡하기는. 밀고 들어가야지. 대원들 말이 맞아. 기회는 충분히 줬어. 모두 준비해.]

[알겠습니다.]


그날부로 해방군은 항복 권유 방송을 더 이상 내보내지 않았다. 경성 주민들을 대상으로 한 탈출 권유 방송도 마찬가지였다.


대신 해방군은 다른 방송을 틀었다.


새로운 원고를 받아 든 해방군 장교는 무거운 목소리로 원고를 읽어내려갔다.


해방군 장교가 주민들에게 전한 원고의 제목은 주민 대피령이었다.




잘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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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 202화: 결전 (1) +1 20.12.24 1,523 33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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