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bo***** 님의 서재입니다.

망자여, 왕이 되어라!

웹소설 > 일반연재 > 대체역사, 전쟁·밀리터리

완결

bok2705
작품등록일 :
2019.04.01 11:28
최근연재일 :
2021.01.04 19:00
연재수 :
210 회
조회수 :
821,473
추천수 :
13,730
글자수 :
1,133,243

작성
19.08.13 12:00
조회
5,017
추천
85
글자
12쪽

44화: 진의[眞意] (2)

*본작은 역사적 고증보다는 상상의 비중이 더 큰 작품입니다. 참고해주시기 바랍니다. 이미 지난 시대를 배경으로 나올 수 있는 수많은 픽션 중 하나라고 생각해주시면 될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DUMMY

<망자여, 왕이 되어라!>

44화: 진의[眞意] (2)


회담장에는 뜨거운 햇볕이 무색할 정도로 싸늘한 기운만이 맴돌았다.


이웃의 원수를 갚겠다는 각오를 품고 회담장으로 모여들었던 마을 주민들은 일본 헌병과 마주친 것마냥 반사적으로 뒷걸음질 쳤다. 그러더니 불안함이 가득 묻어나오는 목소리로 대화를 주고받기 시작했다.


-혀, 형님··· 이, 인쟈··· 어, 어찌 되는겨···? 우리 다 죽는 것이여···?-


-주, 주, 죽기는 왜 죽어···! 저, 저기 봐라···! 저놈들 무, 무기도 안 갖고 있잖냐.-


-마, 맞아··· 누가 아까 저놈들 무기 없다고 했었지라··· 우, 우리가 먼저 쏴버리면 되겠네···!-


-야 이놈들아 조용히 하지 못해···? 저 중에 조선 사람 있다는 얘기 못 들었어···?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고 가만히 있어···!-


어쩌면 대수롭지 않게 넘어갔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특히 대성이 마주쳤던 자들은 그러고도 남을 재목들이었다. 당시 마적과 군벌들의 행태를 보았을 때, 군수물자 분실은 누군가 저지른 사소한 실수로 끝나거나 아예 사건의 존재 자체가 드러나지 않을 수 있었다.


그러나 동료들과 생각이 달랐던 또 다른 누군가는 분실 사고를 가볍게 여기지 않았다. 그는 자신만의 생각을 따라 자체 조사를 시작했고, 아무도 알아주지 않았을 자그마한 조사 작업은 이윽고 광범위한 정보수집으로 이어졌다.


그렇게 시작된 정보 수집은 적에게 진실을 알려주었고 명분도 가져다주었다.


더불어 무한한 힘까지 실어주었다.


‘한때 후계자로 불렸던 놈의 시체조각’과 ‘모든 것이 산산조각난 가운데 홀로 증발하듯이 사라진 기관총’, 그리고 ‘상인들의 귀로 흘러들어온 조선인들의 무용담’.


진실이 담긴 적군 수장의 발언은 마을 하나를 일거에 초토화할 수 있는 포병 부대의 위력을 아득히 넘어서는 것이었다. 적의 허를 찌름으로써 승리를 쟁취하겠다던 마을 주민들의 각오는 진실을 앞세운 ‘한세걸’의 말 한마디에 와르르 무너져 내려버렸다.


-임자··· 임자···!-


-어, 어? 왜···?-


-저놈들은 뭐하러 쳐다보고 있어···? 쳐다보지 말어··· 괜히 그 후계자인지 뭐시기인지 죽인 놈으로 오해받을라···-


-아니 보이는 걸 어떡하라고··· 에이씨, 진작에 진지나 방공호로 들어갔어야 했는데··· 적들이 우리 다 봤을 텐데 이제 어쩐다냐···-


천리군 수뇌부를 정면으로 겨눴던 주민들의 분노는 어느새 두려움으로 바뀌어 있었다. 주민들은 죄인이라도 된 것마냥 고개를 땅으로 떨구며 적들의 시선을 피하려 했다.


물론 잘못을 저지른 주민은 아무도 없었다. 도리어 죄책감을 느껴야 할 사람은 하루하루 고된 삶을 살던 조선인 주민이 아닌, 그들을 잔혹하게 학살했던 천리군이었다.


하지만 주민들은 아무 말도 꺼내지 못했다. 전쟁을 먼저 시작한 게 천리군이라는 사실도 말하지 못했고, 그들이 불타 죽은 이웃의 시신을 나무 막대기에 매달아 놓았다는 사실에 대해서도 제대로 항의하지 못했다.


주민들은 두려움에 사로잡혀 있었다. 나라를 빼앗긴 이래 계속 느껴왔던 두려움. 불의에 저항하면 반드시 배로 보복당한다는 잔혹하고 부당한 규칙에 구속된 것이었다. 근 20여 년간 끊어지지 않았던 이 끔찍한 족쇄는 주민들을 불행한 삶의 연속으로 몰아갔고, 정당한 권리조차 요구하지 못하는 존재로 만들어 버렸다.


그러나 대성은 달랐다.


[그래서 뭘 어쩌겠다는 거야? 네가 모시던 옛 주군의 원한을 풀어주겠다고? 고작 그거 말하려고 여기까지 들어온 거야?]


[뭐?]


[한세걸이라고 했던가. 잘 들어. 애당초 싸움을 시작한 건 우리가 아니고 너희야. 다짜고짜 쳐들어와서 동포를 학살하고, 납치해서 시장에 내다 팔려고 했던 건 너희 천리군이라고.]


[······]


[그다음에 기관총 앞세워서 침공한 것도 네놈들이었고. 우린 그저 너희가 저지른 행동에 맞게 대응했을 뿐이야. 알겠어?]


[흠··· 그렇게 된 일이었구먼.]


한세걸의 반응은 대성이 예상한 것과 다르게 뜨뜻미지근했다. 옆에 앉은 참모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그저 지금까지 몰랐던 사실을 알게 되었다는 식으로 고개만 살짝 끄덕였을 뿐, 여타 매체에서 익히 봐왔던 전형적인 충복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대성은 여전히 마음을 놓을 수 없었다. 현실과 픽션은 엄연히 다른 법이었으니까. 특히 많은 사람의 목숨이 걸린 일일 경우에는 영화처럼 하지 않는 게 원칙이었다. 그리고 대성과 마주앉은 적 수뇌부는 이 원칙을 매우 잘 지키고 있었다.


대성은 자신이 한 말에 쐐기를 박아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


[미리 말해 두는데, 네가 모시던 옛 주군의 후계자가 죽은 일에 대해서 우리가 잘못을 빈다거나 사죄할 거라는 생각은 하지마.]


상황이 어찌 되었든 간에, 현재 적 수뇌부의 목숨은 대성과 조선인들에게 달려 있었다.


[그 후계자는 애초에 전장에서 죽었어. 너도 나름대로 군인이라 하고 다닐 테니까 대충 알 거 아니야, 전쟁에서 패배한 군인들은 제 목숨 부지하기도 힘들다는 걸.]


준비는 거의 다 끝난 상태였다. 진지에 배치되었던 주민들은 삼삼오오 짝을 이룬 뒤, 기습 작전을 위해 지정된 집결지로 조용히 이동했다. 회담장에 모였던 주민들 역시 작전 실무를 맡은 책임자들의 지시를 따라 조금씩 자리를 벗어났다.


[오히려 사과를 받아야 할 사람들은 우리야. 너희 천리군은 무고한 조선인들을 불로 태워 죽이고, 나무에 매달아 죽였어. 그들은 모두 무장하지 않은 민간인이었어. 뭔 말인지 알아?]


[······]


[사과해야 하는 사람들은 바로 너희 천리군이라는 뜻이야.]


대성이 말했다.


한세걸은 참모들과 함께 조선인들을 가만히 응시했다. 대성을 포함한 조선인 공동체 수뇌부는 곧 협상 결렬과 함께 총성 없는 전쟁이 총알이 빗발치는 전쟁으로 이어지리라 생각하고 있었다.


그때였다.


[학살이라··· 그래, ‘천리군(天理軍)’란 이름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짓이긴 했지.]


회담장에 있는 모든 사람은 일제히 한세걸을 주목했다. 실로 많은 사람의 운명을 좌우하게 될 한 마디가 젊은 중국인 남성의 목소리를 따라 밖으로 나오길 기다리고 있었다.


[나도 그런 현장을 많이 봐왔고. 좋아, 천리군이 벌인 조선인 학살에 대해서는 내 사과하도록 하지. 자네가 한 말이 사실이라는 전제하에 말이야.]


[못 믿겠으면 내 옆에 앉은 사람한테 물어봐. 그날 일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으니까.]


[구태여 좋지 않은 기억을 다시 떠올리게 하고 싶진 않아. 조만간 대표단을 파견해서 정식으로 사과하도록 하지.]


[뭐?]


[부관, 내가 방금 한 말 들었지? 지금 바로 통역해서 이곳 주민들에게 전달하도록.]


조선인 부관은 별다른 이견 없이 상관의 명령에 따랐다. 그는 회담장 주변에 모인 주민 모두가 제대로 들을 수 있도록 전보다 더 큰 목소리에 명확한 발음으로 상관의 뜻을 전했다.


한동안 조용하기만 했던 회담장은 이내 주민들의 한 맺힌 고성과 입에 담기도 힘든 험한 말들로 가득 채워졌다. 굳이 통역을 거치지 않아도 얼추 의미를 파악할 수 있을 정도였다.


그러나 한세걸은 눈살 한 번 찌푸리지 않았다. 그는 참모들과 함께 조선인 주민들의 증오 어린 시선과 욕설을 군말 없이 받아들였다.


회담은 대성을 위시한 조선인 공동체 지도부가 주민들을 간신히 진정시키고 난 다음에야 재개될 수 있었다.


물론 분위기가 완전히 진정된 것은 아니었다. 그리고 대성 역시 표정관리를 제대로 할 수 없었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반응이었던 까닭이었다.


잠시 후, 대성이 믿기지 않는다는 듯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너··· 지금 무슨 짓을···?]


[왜, 이것마저 거짓부렁으로 보이나? 앞으로 이런 식으로 서로 원한 쌓고 그럴 일은 없을 거야. 절대로.]


[그, 그 말을-]


[그 말을 어떻게 믿느냐고? 내가 지향하는 바와 다르니까. 그리고 내 지향점을 따르는 자들만 군에 남겼으니까.]


[그 말은 곧 천리군 내에 너와 노선을 달리하는 세력도 있다는 뜻 아닌가?]


[한때나마 남아 있었지.]


[그럼 군을 완전히 장악한 게 아닌 모양이네.]


[하지만 지금은 없어. 내가 모조리 잡아 죽였으니까. 자네가 아까부터 지겹도록 언급했던 옛 주군까지 포함해서 말이야.]


한세걸은 말을 마치기 무섭게 품속에서 천 조각 하나를 꺼내어 나무 탁자 위에 올려놓았다. 어디선가 많이 본 인명이 쓰인 노란색 천 조각에는 새하얗게 센 머리카락이 한 묶음 매달려 있었다.


대성은 처음으로 마적단 토벌에 나섰던 순간을 떠올리며 천 조각에 쓰인 이름을 마음속으로 되뇌었다.


‘강석···? 강석이라면···’


[마음 같아서는 이 늙은이 머리를 들고 다니고 싶은데 늙은이 얼굴을 모르면 말짱 도루묵이니까. 뭐 알아서 믿든지 말든지 해.]


[나도 천리군 총사령 이름이 뭔지는 알아.]


[알고 있다니 다행이군. 뭐, 집안 자체가 멸문당했으니 더는 알 필요 없지만. 여하간, 이제 대충 잡설은 끝난 것 같으니 본론에 들어가자고. 혹시 더 할 말 있나?]


한세걸의 물음에 대성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와 마주앉은 젊은 중국인 남성은 정면대결로 승리를 거두기 힘든 군대를 보유한 인물이었다.


그런 그가 일개 조선인 정착촌까지 찾아와 무기까지 버려가며 대화하길 간청했다. 심지어 지난날의 치부까지 인정하며 사과까지한 형국이다.


이렇게까지 공을 들이는 데에는 분명 이유가 있었다.


곧 천리군 기습 및 섬멸을 목표로 하는 비밀 작전을 두고 무기한 중지 명령이 내려졌다. 명령권자는 작전 수립 지시를 내렸던 대성 본인이었다.


[뭐, 따로 할 말 없으면 바로 시작하자고. 정태준이라고 했나? 자네 아까 처음에 나한테 물어봤던 질문이 뭐였었지?]


[우리한테 정확히 원하는 게 무엇이냐고 물어봤었지.]


[그래 맞아, 자네와 자네를 따르는 자들에게 원하는 것. 자, 내가 요구하고자, 아니, 요청하고 싶은 건 딱 하나야.]


[그 하나가 뭔데?]


[불가침.]


[불가침?]


[그래 불가침. 각자 담당하는 구역에 침범하지 말자고. 어떤 군사적인 형태로든 간에 말이야.]


한세걸이 말했다. 그리고 대성이 대답할 틈을 주지 않고 계속해서 발언을 이어갔다.


[앞으로 이 지역, 그러니까 민위군이 통제했던 지역 말이지. 자네가 여기서 무슨 짓을 하든 난 앞으로 신경 쓰지 않을 거야. 대신 자네도 내 구역으로 넘어오지 않았으면 해. 무슨 말인지 알겠나?]


[뭐 대충 각자 구역에서 제 할 일 하며 잘 먹고 잘살자는 뜻 아닌가? 서로 소 닭 보듯 하면서?]


[그렇지.]


[그런데 왜 하필 우리한테 요구하는 거지? 상식적으로 생각했을 때, 우리보다는 민위군이 더 설칠 것 같은데? 그렇지 않아?]


[자네 말이 맞아.]


[그럼 그놈들하고 먼저 협상하는 게 낫지 않았을까? 약간 순서가 틀린 듯한데?]


대성 옆에 앉아있던 조선인 공동체 지도부도 동감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한세걸은 자신의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잠시 후, 그는 대성과 지도부에게 충격을 가져다줄 만한 소식을 전해주었다.




잘 부탁드립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1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망자여, 왕이 되어라!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연재공지: 69화는 4월 9일 오후 12시(정오)에 연재됩니다. +1 20.04.08 273 0 -
공지 연재공지: 60화는 1월 28일 오후 6시에 연재됩니다. 20.01.28 203 0 -
공지 연재공지: 59화는 1월 18일 오후 8시에 연재됩니다. 20.01.18 200 0 -
공지 연재공지: 55화는 12월 15일 오후 7시에 연재됩니다. 19.12.15 196 0 -
공지 5월 둘째 주 주말(5/11~5/12) 연재 공지 +2 19.05.11 358 0 -
공지 4월 8일 본문 수정 공지 - 가독성 개선 작업 (프롤로그~3화) / 작업 완료 19.04.08 563 0 -
공지 연재시간은 미정입니다. +1 19.04.03 10,650 0 -
210 후기 +24 21.01.04 1,560 46 2쪽
209 208화: 에필로그 - 그리고 지금 (완결) +2 21.01.04 1,822 43 12쪽
208 207화: 해방 (2) +5 21.01.01 1,932 53 13쪽
207 206화: 해방 (1) +3 20.12.31 1,543 50 12쪽
206 205화: 결전 (4) +3 20.12.30 1,468 42 12쪽
205 204화: 결전 (3) +1 20.12.29 1,400 38 12쪽
204 203화: 결전 (2) +1 20.12.25 1,559 41 12쪽
203 202화: 결전 (1) +1 20.12.24 1,522 33 12쪽
202 201화: 최후통첩 (4) +4 20.12.23 1,578 36 12쪽
201 200화: 최후통첩 (3) +3 20.12.18 1,660 39 13쪽
200 199화: 최후통첩 (2) +3 20.12.17 1,591 41 12쪽
199 198화: 최후통첩 (1) +3 20.12.16 1,672 43 12쪽
198 197화: 서울 진격 (4) +3 20.12.11 1,850 44 12쪽
197 196화: 서울 진격 (3) +2 20.12.10 1,687 43 12쪽
196 195화: 서울 진격 (2) +1 20.12.09 1,708 49 13쪽
195 194화: 서울 진격 (1) +3 20.12.05 1,870 54 12쪽
194 193화: 인천 상륙 작전 (3) +1 20.12.03 1,816 45 12쪽
193 192화: 인천 상륙 작전 (2) +1 20.12.02 1,780 45 13쪽
192 191화: 인천 상륙 작전 (1) +2 20.11.27 1,882 44 13쪽
191 190화: 부산에서 낙동강까지 (4) +3 20.11.26 1,823 49 13쪽
190 189화: 부산에서 낙동강까지 (3) +1 20.11.25 1,816 47 12쪽
189 188화: 부산에서 낙동강까지 (2) +2 20.11.20 1,934 44 12쪽
188 187화: 부산에서 낙동강까지 (1) +3 20.11.19 1,983 47 12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