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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천자 님의 서재입니다.

축구공 궤적을 손으로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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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천자
작품등록일 :
2024.07.24 2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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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6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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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06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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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이탈리아 스포츠 신문의 영향력

DUMMY

프레스룸으로 돌아온 엘레나는 멍하니 앉아있을 뿐이었다.

얼굴을 아는 기자들이 인사를 건네는데도 반응이 없었다.

몸은 프레스룸에 있지만-.

의식은 여전히 경기장에 있었기에.


‘아빠를 보는 것 같았어.’


물론, 엘레나는 아버지의 현역 시절을 직접 보지 못했다.

그때는 태어나기도 전이었으니, 추후에 TV와 비디오로 접했던 것.


- 우와! 멋져! 한번 더 볼래!


그것이 계기였다.

축구를 사랑하게 된 계기.

AC밀란의 팬이 되는 걸 넘어서, 스포츠 신문 기자가 됐던 이유.


‘아빠의 플레이는 정말 대단했으니까.’


마리니는 매혹적인 선수였다.

한번 보면 잊지 못하는 플레이.

남녀노소, 열광할 수밖에 없는 매력.

판타지스타를 논하자면 빠지지 않는 이름.


‘실제로 볼 수 없다는 게 한이었는데.’


만약 마리니가 부상으로 은퇴하지 않았다면.

엘레나가 태어난 뒤에도 여전히 축구 선수로 살아갔을 터.

뿐만 아니라 축구계 전설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었겠지.

그로 인해 아쉬운 사람은 마리니 뿐만이 아니었다.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보던 가족의 마음도 같았다는 뜻.

진우를 마주하고 비슷한 감정을 느꼈던 이유도 어쩌면-.


‘처음이었어. 그때랑 똑같은 두근거림은.’


오버헤드킥 뿐만이 아니었다.

두 번째 골은 물론이고.

10번이 공을 터치할 때마다 심장이 시큰해졌다.

몇 번이고 돌려보았던-.

심지어 지금도 재생해놓은 마리니의 번뜩임과 비슷했기에.


‘한국 리그에서 뛰는 영상도 봤었지만. 오늘 그 모습은 영락 없이···.’


엘레나가 고개를 끄덕였다.

몇 번을 회상해봐도 비슷한 설렘이 느껴졌기 때문.

심장이 간질간질하고 숨이 약간 차오르는 것이.


‘한번 더 보고 싶어. 제대로 보고 싶다.’


엘레나가 간절히 바란 덕분일까.

때마침 마리니 감독과 함께 이진우가 회견장에 입장했다.

단정하게 정리된 단상 위에 서서는.

다 마르지 않은 머리로 주변을 두리번거리다가.

자리에 앉아 침을 꿀꺽 삼키는 모습.


피식─


‘경기장에 있을 때와는 정반대네. 아까는 그렇게 멋있게 뛰더니.’


생각 이상으로 평범한 외모에 프레스룸이 술렁거렸다.

긴장감을 숨기지 못해 굳어버린 표정까지─.

도발적인 헤드라인을 노리고 있던 기자들에게는 딱 좋은 먹잇감이었으니.


“선수님에게 질문 드리겠습니다.”

【네!】

“이번 이적을 두고 논란이 많은 상황입니다. 특히 등번호 10번을 부여해서 화제인데요. 10번의 의미를 알고 계신지 궁금하고, 구단에 그것을 요구한 이유는 무엇인지 묻고 싶습니다.”


엘레나가 눈을 약간 찡그렸다.

같은 기자로서 의도가 뻔히 보였기 때문.


‘감정적인 반응을 원하는구나.’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제 아빠가 아끼는 선수여서 그렇기도 하지만.

연습 경기를 보고 나서 생각이 바뀌었기 때문에.


‘아빠!’


안 그래도 마리니는 이미 마이크를 쥐고 있었다.

잔뜩 불쾌한 표정을 하고서.


【등번호는 제가 부여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선수를 곤란하게 하는 질문은 되도록이면-.】


그런데 그때.

진우가 마리니 감독에게 발언권을 요청하는 게 아닌가?


【제가 답할게요. 저한테 물어본 거니까요.】

“괘, 괜찮겠나?”


끄덕─


엘레나는 문득 놀랐다.

이탈리아어는커녕 영어도 어색한 외국인 선수로 판단했고.

경기장에서는 날아다녀도 밖에서는 수줍음이 많은 사람인 것 같았는데.

이런 상황에서 감독의 보호를 물리고 마이크를 잡다니.

노장 선수들도 웬만하면 하지 않는 행동일 터.


‘실수하면 안 되는데?’


엘레나가 불안해하는 사이.

진우는 어설픈 발음으로 의견을 표하기 시작했다.


【10번은 에이스의 등번호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AC밀란에서는 더욱 특별한 의미라고 듣기도 했고요.】


긴장해서 말을 버벅거리긴 했어도.

하고자 하는 말을 분명하게 전하는 화법.


【사실 저는 10번이 아니어도 상관없어요. 제가 그렇게 잘한다고 생각하지도 않고요.】


?!?!


도발적인 발언에 타자 소리가 일순간 커졌다.


두다다다─!


기자들만 놀란 게 아니라 마리니 감독도 놀란 모양새.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우는 여전히 눈알을 굴리고 있을 뿐이었다.

아마도 영단어를 이리저리 조합하고 있는 거겠지.


【하지만 감독님 의견도 존중해요. 감독님은 제가 10번이길 바라거든요.】

【흠흠. 그러면 나 때문에 억지로 한다는 소리야?】

【에이, 그건 아니죠~.】


하하하하─


딱딱했던 분위기가 순식간에 풀어졌다.

진우의 영어 발음이 귀엽기도 했지만.

말하는 내용이 지나치게 솔직하고 엉뚱한 나머지, 형식적인 대화에 지쳤던 기자들을 즐겁게 만든 것.

다소 이기적인 마음을 품었던 기자들이 난감한 미소를 지을 정도로.


【이건 어떨까요? 경기를 뛰고 나서 평가를 받는 거예요. 제가 10번에 어울리는지 아닌지.】

【무, 뭐라고?】

【보고도 마음에 안 들면 바꾸자는 거예요. 그러면 되지 않을까요?】

【이게 무슨, 팬들이랑 내기하는 것도 아니고···.】


푸하하핳!


【감독님은 자신이 있다고 했잖아요. 다들 보고 나면 생각이 바뀔 거라고.】

【그, 그렇긴 하지.】

【그럼 된 거 아닌가요?】

【······생각해보니 일리가 있군. 똑똑한데?】


하하하핳!


원래 웃음이란 건 해소의 낙차만큼 커지는 법이다.

진우가 실수할까 봐 걱정했던 엘레나였기에.

눈물이 맺힐 만큼 커다란 웃음을 참아야 했던 것.


훌쩍!


‘성격도 엉뚱하구나. 플레이 스타일이랑 언행이 비슷한 것 같아.’


아까 목격했던 ‘오버헤드 드롭킥’이 연상되는 언행이었다.

엉뚱한 타이밍과 모순되는, 판타스틱한 슈팅 궤적.

결국에는, 엉뚱함마저 매력으로 설득해버리는 골 임팩트.

본디 ‘판타지스타’란 인간적인 매력까지도 함축하는 명사였기에.


“제가 먼저 손 들었는데.”

“아, 죄송합니다.”


기자회견의 분위기를 단번에 바꿀 수도 있는 것이다.

마치 사람들을 매료시키는 ‘슈퍼 플레이’처럼.


“밀라노에서의 생활은 어떠신가요?”

“언어가 통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어려움은 없었나요?”

“평소 이탈리아 축구는 즐겨 보셨어요?”

“마리니 감독과의 관계는 어떠세요?”


엘레나는 부드럽게 변한 현장을 둘러보며 피식, 웃어 보였다.


‘내일부터 헤드라인이 바뀌기 시작하겠어.’



············.












이탈리아에서는 ‘스포츠 신문’의 영향력이 상당하다.

물론 인터넷과 스마트폰의 영향으로 온라인 뉴스가 강세인 세상이지만.

이탈리아 신문의 전통과 역사가 워낙 유구한 탓에, 여전히 정기 간행물이 다양하게 생산되는 상황.

그중에서도 밀라노의 스포츠 신문은 판매량이 어마어마했고.

특히, 아침 출근길에 스포츠 신문을 읽는 사람을 자주 볼 수 있었다.

공원에 모여서, 커피 한잔과 함께 축구 이야기를 하는 노인들이 언제나 있을 정도로.


촤락─!



[AC밀란으로 이적한 LEE, “언제든지 10번을 포기할 준비가 되어있다.”]

[엘레나 마리니 기자]



로쏘네리 라면 지나칠 수 없는 제목이었다.

애초에 1면에 대문짝만하게 걸려있기도 했고.


“무슨 소린가 했더니, 자신감이 넘치는 모양이군.”

“로쏘네리가 납득하지 못하면 등번호를 포기하겠다는 말이야?”

“그런 것 같은데.”


하하하하!


“대놓고 선전포고를 하고 있네.”

“이래놓고 못하면 큰일 날 거 같은데.”

“얼마나 잘하길래 그래?”

“유튜브로 찾아보니까 잘하긴 하더만.”

“한국의 리그라면서. 그게 무슨 소용이야.”

“아무튼. 못하기만 해봐, 아주.”


이는 엘레나가 기대한 바였다.

마침, 기사 내용도 읽는 이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흐름이었으니.



[‘AC몬차’와의 친선 경기가 다가오고 있다. ‘리’도 출전 명단에 포함되었으므로, 그의 실력을 점검할 수 있는 기회가······]



진우와 밀란을 향한 반발심을 호기심으로 전환하는 동시에.

친선 경기 티켓 판매량을 늘리고자 하는 의도가 반영된 것이었다.


“오랜만에 친선 경기 좀 보러 갈까.”

“AC몬차라면 작년에 세리에A로 올라온 클럽이잖아?”

“돌풍의 주인공이지. 세리에D에서 시작해서 단기간에 올라왔으니.”

“지난 성적도 준수하지 않았나?”

“만만치 않은 상대야.”

“괜찮은 구경거리가 될 것 같은데.”

“같이 보러 갈까? 시간 낼 수 있겠어?”


끄덕─


혹하는 사람은 노인들 뿐만이 아니었다.

‘라 가제타 델로 스포르트’의 신문은 연령과 성별을 가리지 않는 데다가.

신문과 동일한 내용의 기사가 인터넷에서도 실리기 때문.

이번 친선 경기의 관중 수가 이례적으로 많은 이유도 거기에 있겠지.


웅성웅성──


“우와, 이렇게 많이 올 줄이야. 로쏘네리만 해도 만 명이 넘는 것 같은데요?”


리그 내 친선 경기의 관중은 보통 수천 명 수준이다.

그에 비해 오늘은 두 세배에 버금가는 인원이었으므로, 기사를 쓴 장본인으로서 뿌듯하지 않을 수 없었다.

물론, 옆에 앉은 팀장(에디터)은 생각이 달라 보였지만.


“누가 보면 기사 쓴 사람이 엘레나 한 명인 줄 알겠어요.”

“솔직히 이번에는 우리 기사가 제일 좋았잖아요. 판매량으로도 증명하지 않았나요?!”


척!


엘레나는 멋진 자세를 취하며 웃었다.

팀장은 마주 웃으면서도 관자놀이를 지긋이 눌렀고.


“이번 기사는 여론의 흐름에 반하는 방향이에요. 만약 이번 경기에서 LEE가 못한다면···. 그로 인한 반작용은 우리 신문사로 향할 겁니다.”

“그래서 팀장님이랑 같이 온 거잖아요! 직접 보고 판단하시라고! 직접 보시면 앞으로의 방향성을 정할 수 있을 테니까요.”

“엘레나는 어떻게 확신하는 겁니까? 가족 특혜로 훈련을 보기라도 했나요?”

“윽.”


죄책감에 멈칫하던 엘레나가 애써 웃었다.


“그건 말씀드릴 수 없지만, 최근에 경기하는 걸 봤어요. 그래서 그래요.”

“흐음. 일단 지켜보기로 하죠.”


아쉽게도 진우는 선발 명단에 없었다.

교체 시점은 후반 11분이었고.

진우가 터치라인에 서자마자 웅성거림이 커졌다.


“드디어 나오시는군.”

“평가의 시간이네.”

“키가 작네.”

“으, 떨리겠다.”

“보니까 국가대표도 아니던데.”

“그는 시험대에 오른 거야.”

“과연.”

“아무리 봐도 평범한데.”

“보나 마나 뻔해.”


엘레나는 주위의 목소리를 들으며 두 손을 간절히 모았다.

그녀의 표정은 의외로 어둡지 않았다.

오히려, 눈을 초롱초롱 빛내며 웃고 있을 뿐.


“또 보여줘···! 또 두근거리게 해줘···!”


팀장은 그런 엘레나를 흘겨보며 고개를 갸웃했다.


‘대체 뭘 봤길래 이러는 건지.’



············.












역시 피는 못 속이는 걸까.

마리니 감독은 진우를 내보내면서 웃음을 참지 못하고 있었다.


씰룩씰룩─


‘드디어 때가 왔군.’


얼마나 고대했는지 모른다.

밀란의 유니폼을 입고 경기장을 휘젓는 이진우의 모습을.


“리. 기억나지? ‘발 뒤꿈치’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거다.”

“네, 알겠어요.”


지시를 듣던 진우가 교체되어 경기장으로 뛰어들어 갔다.

마리니는 그런 진우를 바라보며 지난 며칠 간의 훈련을 회상했다.



- 뒤꿈치로 패스를 하면 변칙적인 찬스를 만들어낼 수 있어. 상대 입장에서는 자세를 읽을 수 없으니 크게 당황하게 되지.

- 감독님이 현역 때 많이 하시던 패스죠?


피식─


- 맞아. 쉽게 찬스를 만들 수 있어서 자주 썼지.

- 사실 저도 한국에서 뛸 때 시도한 적이 있었어요.

- 알고 있어.

- !

- 그 밖에도 기이한 패스를 많이 시도했지. 때로는 엉덩이로 패스를 시도하더군. 멀리서 지켜보면서 얼마나 웃기던지.

- 정말 다 챙겨보셨군요. 그건 하이라이트에 나오지도 않는 플레이인데.

- 당연하지. 나는 너에게 진심이라고.



마리니는 미소를 머금은 채 밀란 선수들을 둘러보았다.

마리니 입장에서 답답한 면이 있을 뿐이지, 다들 명문팀에 속할 정도로 수준 높은 선수이기에.



- 한국에서 뛸 때와는 많이 다를 거다. 여기에서는 변칙적인 패스를 마음껏 해봐도 돼. 다들 순발력이 좋아서 잘 알아채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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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 내가 누군가의 뮤즈라니 +10 24.09.09 5,174 151 14쪽
33 힐 패스를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17 24.09.07 5,509 159 14쪽
» 이탈리아 스포츠 신문의 영향력 +13 24.09.06 5,400 155 12쪽
31 축구왕 슛돌이에 버금가는 +11 24.09.04 5,840 159 14쪽
30 저는 오버헤드킥 못하는데요 +13 24.09.03 5,680 159 13쪽
29 AC밀란의 검은 머리 10번 +10 24.09.02 5,904 156 15쪽
28 이 정도면 이적해도 괜찮겠지? +13 24.08.31 5,870 140 14쪽
27 백스핀 어뢰슛 +9 24.08.30 5,731 140 13쪽
26 슈팅과 패스에 가려졌던 재능 +9 24.08.28 5,807 132 14쪽
25 '그 선수'의 부모님이 하시는 호프집 +8 24.08.27 5,765 130 14쪽
24 페널티킥을 찰 때 바람이 불면 +5 24.08.26 5,798 137 14쪽
23 정말로 식사가 목적이었을 줄은 +9 24.08.24 5,933 132 14쪽
22 패널티 박스 안에서 할 수 있는 일 +11 24.08.23 6,082 133 14쪽
21 프리킥은 막을 수 있을 줄 알았는데 +6 24.08.21 6,229 130 12쪽
20 내 인기가 이 정도였다고? +6 24.08.20 6,284 132 14쪽
19 귀가 잘 들린다고 말할 수밖에 +4 24.08.19 6,287 144 13쪽
18 나한테 가르쳐 달라고 해봤자 +7 24.08.17 6,430 140 13쪽
17 별 거 아닌데 다들 고장나네? +6 24.08.16 6,502 137 14쪽
16 페인팅 모션을 하나만 익혀도 +9 24.08.14 6,577 138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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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무자비한 중거리 폭격 +7 24.08.12 6,716 145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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