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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천자 님의 서재입니다.

축구공 궤적을 손으로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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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천자
작품등록일 :
2024.07.24 2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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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6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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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03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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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저는 오버헤드킥 못하는데요

DUMMY

차를 타고 밀라넬로에 들어가는 길에 소수의 무리를 보았다.

커다란 카메라를 들고서 차량을 촬영하는 사람들(아마도 스포츠 기자)과

밀란 유니폼을 입은 채로 차량을 향해 인사하는 사람들.

내 앞에 있던 차가 잠깐 멈추는 걸 보면, 창문을 내려서 아는 척을 해주는 것 같은데.

반면에 나는 창문을 내릴 수가 없었다.


콩닥콩닥콩닥──


“후우.”


나를 아는 사람이 없을 것 같아서 그런 것도 있었지만.

외국인들이 왠지 모르게 무섭기도 했다.

오지 말아야 할 곳에 온 것 같기도 하고, 혼자만 다른 세상에 떨어진 것 같아서.

마침 하피냐가 해줬던 말이 기억난다.


- 외로워. 가족도 없고 친구도 없다. 음식도 달라. 공기도 달라.


하피냐도 한국에서 힘든 시기를 보낸 적이 있다고 했지.


- 브라질이랑 유럽도 다르지만. 한국이 차이가 심하다.


이제 그게 무슨 말인지 알겠다.

흔히 동양과 서양으로 구분하는 그 기준이 얼마나 커다란 벽을 형성하고 있었는지.

인식하면 할수록 더 큰 떨림이 되어서는.

어떻게 인사해야 할지도 모르는 채, 유니폼만 멍하니 바라보는 신세였다.



[LEE]

[10]



여전히 흐릿한 현실감.

인천 유니폼을 마주했을 때보다 아득한 프린팅이었다.

게임에서나 볼 수 있었던 유니폼.

혼자만 친숙했던 이름들이 심상에 스쳐 간다.


루드 굴리트.

안드리 셰브첸코.

클라렌스 세이도르프.

필리포 인자기.

안드레아 피를로.

리카르도 카카.

······.


그보다는 다소 가볍지만.

지금의 밀란을 채워주고 있는 이름들까지.


“쟤야?”

“그런 듯.”


유튜브 영상에서 봤던 얼굴들이 나를 가리키며 얘기한다.

이탈리아어인지 스페인어인지 모르겠지만.

그마저도 잠깐이었고.

대부분의 반응은 ‘무관심’에 가까웠다.

물론, ‘의도적인 무관심’인 것 같긴 하지만.


‘숨 막히네.’


시선 하나하나가 부담스러웠다.

내가 딱히 외향적인 성격도 아니라서.

뭔가 해야겠다는 생각보다는 조용히 숨죽이고 있었던 것 같다.

마리니 감독이 오기 전까지는 말이다.


뚜벅뚜벅뚜벅─


“내가 이럴 줄 알았지. 이 답답한 놈들.”

“““!”””


마리니는 내가 아는 모습과 많이 달랐다.

눈빛부터 목소리까지.

나를 대할 때와는 정반대인 모습.

선수 하나를 콕 집어 거친 말을 내뱉을 정도로.


“새로운 선수가 합류했으면 네가 먼저 인사하고 소개도 해줘야 할 것 아니냐. 주장 완장은 패션이야?”

“축구화만 신고 바로 하려고 했습니다만.”

“변명은 잘해요.”


그래.

오히려 지금 모습이 선수 때와 비슷한 것 같다.

악마의 재능.

오만하지만 미워할 수 없었던, 밀란의 간판 스타.


파삭─!


“신문의 헤드라인이 가관이더군. 뭐? 내가 치매에 걸려?”


꿀꺽!


무서웠던 선수들이 마리니의 눈치를 보고 있었다.

그 광경이 묘하게 위로가 되더라.

다들, 나랑 다른 존재가 아닌 것 같아서.


“나만큼 10번을 중시하는 감독이 또 있는지 나와보라 그래. 내가 리를 영입하기 위해 무려 1년을 고대하고 고민했는데. 그간의 노력은 알지도 못하면서, 나를 깎아내리지 못해 안달이 났더군.”


촤앗─!


마리니가 공중에 신문을 던졌다.

선수들 앞에 떨어진 신문에는 내 얼굴이 걸려있었고.



[마리니 감독은 대체 무슨 생각으로······]

[10번은 로쏘네리의 정체성이자 자부심으로서······]

[수비력 보강이 필요하다는 평가에 어긋나는 결정이라는······]

[판단력 저하가 의심되는 가운데······]

[감독을 교체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세리아는 바로 이게 문제다. 팬들이 과거의 영광에 사로잡혀, 쓸데없이 자존심만 세다는 거야. 낭만 가득했던 문화는 어디 가고, 고집과 아집만 남아 축구를 병들게 만들어.”

“““······.”””

“뭐? 재능 있는 선수가 없어? 능력 좋은 감독이 없다고? 외국인 선수에게만 의존해? 다 좆까라 그래.”

“““!”””

“세리에가 이 꼴이 된 이유는 간단해. 보는 재미가 없기 때문이지. 수비에만 집착하는 축구가 축구냐? 안 그래?”


말이 너무 빨라서 알아듣기가 어려웠다.

다만, 내가 확실히 알 수 있었던 건.

선수들이 마리니의 말을 주의 깊게 들으며 고개를 끄덕이고 있다는 사실.


“애초에 카테나치오(빗장 수비)가 탄생한 이유도 공격수들 때문이었어. 타고난 천재들을 막기 위해 노력한 결과가 수비력이었단 말이다. 선후 관계가 뒤바뀌었다는 생각이 들지 않나?”


말하는 와중에 나를 가리켰기에.

나랑 무관한 얘기가 아닐 거라고 추측할 뿐이었다.


“그래, 매력적인 공격수가 우선이자 본질이다. 수비에 집착하는 축구로는 차세대 판타지스타를 절대로 배출할 수 없어. 내가 상대하려는 건 인테르가 아니야. 유벤투스도 아니고, 토리노도 아니지.”


그래도 마지막 이야기는 들려서 다행이었다.

나를 의식한 결과인지 모르겠지만.

말이 느리고 무거워졌거든.


“내가 상대하고자 하는 건 이탈리아 축구 그 자체다. 고리타분한 관례를 깨부수고 새로운 답을 제시할 것이며. 그 계획에 있어 꼭 필요한 존재가 바로 저 녀석이야.”


모두의 시선이 나에게 모였다.

뜨겁기도 하고 차갑기도 한 눈빛들.


“미리 말해두겠다. 너희는 내 뜻에 반발하지 마라. 리를 배척한다면 내게 반항하는 것으로 간주하겠어. 알겠나?”

“““네!”””


그 순간에 직감으로 깨달았다.

인천에 있을 때와는 차원이 다른 경쟁이-.

이미 시작되었다는 사실을.



············.











의외로 훈련 스케줄은 크게 다를 게 없었다.

인천에서 했던 걸 비슷하게 하는 느낌.

하긴, 윤 감독님이 그랬었지.


- 결국 답습이야. 우리가 연구하고 공부하는 게 유럽 축구니까. 시스템 자체는 비슷할 수밖에 없어.


형식은 비슷한데 디테일만 다르다고 해야 하나.

윤 감독님이 가르치던 것보다 조금 더 복잡하고, 조금 더 상세한.

그만큼 매뉴얼이 늘어나는 구조였기에 집중하기에도 벅찼다.

선수들과 대화를 나누기는커녕 훈련에 온 힘을 다 쏟아야 했고.

기껏 길러온 체력이 이곳에서는 초심자 수준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고개를 떨궜을 때.

마리니 감독이 비장한 표정으로 다가왔다.


“슬슬 시작해볼까?”

“예?”

“저번에 말했잖니. 내가 직접 가르칠 거라고.”

“아, 네!”


또 내 앞에서만 부드러운 미소를 짓는구나.

나는 둘 중에 어느 장단에 맞춰야 하는 걸까.


“가장 먼저 ‘오버헤드킥’을 연습했으면 하는데.”

“오버헤드킥이요?”


끄덕─


“슈팅 감각이 너무 좋으면 굳이 골대 근처까지 갈 필요가 없어. 멀리에서도 슈팅 각만 만들 수 있다면 얼마든지 골을 넣을 수 있으니까.”

“네.”

“다만, 커다란 수비수를 상대하긴 어려울 거야. 특히 세리아의 수비수는 슈팅 각을 쉽게 내어주지 않지.”

“그럴 것 같아요.”

“하지만. 슈팅 각이 없는 상태에서도 슈팅을 할 수 있다면?”

“그게 오버헤드킥인가요?”

“그중 하나라고 할 수 있어. 수비수를 등지고 있는 상태에서, 기습적으로 슈팅을 날리는 방법이지.”

“오호.”


물론 해봤던 생각이다.

핑거풋볼에서도 ‘오버헤드킥’이나 ‘바이시클킥’이 나오는 스테이지가 있었거든.

다만, 윤정수 감독님은 거추장스러운 걸 좋아하지 않았었고.

지시에 맞춰 뛰다 보니까 그럴만한 기회가 없었던 것 같다.

그런 점에서는, 마리니 감독님이랑 정반대인 것 같단 말이지.


“골대를 등진 상태에서, 높이 뛰어올라, 거꾸로 슈팅을 한다는 건 사실 말도 안 되는 일이지. 그렇기에 자주 나오지 않는 장면이고.”

“그렇죠.”

“하지만 너 정도의 슈팅 감각이라면 충분히 가능해. 자, 내 움직임을 잘 봐봐.”


마리니 감독이 골대를 등지고 섰다.

그 상태로 공을 가볍게 차 올리더니.


토옹─


가슴으로 공을 튕겨낸 후에.


통─


머리 위로 떠오른 공을 향해 뛰어 올라서는.


타앗!


엄청 멋있는 동작으로 공을-.


쉬익──뻐어엉!!!!


“우와.”


물론 공은 골대 밖으로 나갔다.

잔디에 철푸덕 넘어진 감독님은 저번처럼 곡소리를 냈고.


“으윽···.”

“괘, 괜찮으세요?”

“아니···.”

“컥.”


옆에 있던 코치가 웃음을 터뜨릴 만한 장면이었으나.


하하핳!


나한테는 일련의 동작이 너무 멋있어서 잊혀지지 않고 있었다.

순간, 시공간이 멈춘 것 같은 느낌이었거든.


“제, 제가 할 수 있을까요?”


끙차─


“나랑 똑같이 하라는 게 아니야. 너만의 방식대로 하면 돼. 한번 보여주지 않겠나?”

“······네, 해보겠습니다.”


감독님이랑 똑같이 골대랑 등을 졌다.

이어서 감독님이 공을 띄워줬고.


파앙!


감독님이 했던 것처럼 가슴으로 띄워 올리기까지는 성공했지만.


토옹──


오버헤드킥을 차본 적이 없는지라 어떻게 뛰어야 할지 순간 막막했다.

괜히 오버하다가 허리가 다칠 것 같기도 했고···. 그런 마음이 자세에도 고스란히 반영되더라.

한 손으로 땅을 짚고 나서야 겨우 발을 휘두를 수 있었으니까.


텁!

부우웅──틱!


결국 아공간에 와서 웃음을 터뜨렸다.

무슨, 비보이 같은 자세를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푸하하핰!


“장난하나, 진짜.”


그나마 잘했으면 차라리 괜찮지.

균형이 다 무너진 터라 우스꽝스럽기만 했다.

앙증맞은 배꼽을 드러낸 채로.

갓 태어난 동물이 허우적거리는 듯한 모습.


“개그맨이네, 그냥.”


창피한 나머지 궤적을 뒤늦게 그렸을 정도였다.


스으──윽

뻐엉──철썩!


부끄러워서 얼굴에 열이 올랐다.

아까 봤던 감독님의 오버헤드킥은 이런 게 아니었는데.

멋지게 차려면 한참 연습해야겠다고 생각하며 감독님을 바라봤는데.

이게 웬걸?


“우하하하하!!!”


예상과 달리 감독님이 좋아하고 있는 게 아닌가?


“하하하핰! 넌 최고야! 최고다, 리!”


코치 분도 얼굴을 가린 채 웃고 있었다.

역시, 비웃기보다는 좋아하는 쪽에 가까워 보였다.


“태어나서 처음 보는 오버헤드킥이야! 재밌고 엉뚱한 게, 너와 딱 어울리는구나!”

“이, 이게요?”

“그런 자세로 찼는데 어떻게 정확할 수 있지? 바로 앞에서 봤는데도 이해할 수가 없군!”

“음, 골키퍼가 없어서 그런 것 같습니다.”


절레절레─


“있어도 못 막았을 걸? 방금 궤적은 상당히 과격했거든.”

“흠흠.”

“그래도 대비해서 나쁠 건 없지. 실전이라 생각하고 다시 해볼까.”


감독님은 내게 붙어서 다양한 노하우를 전수해줬다.

오버헤드킥 기회를 만들기 위해 취해야 하는 움직임과.

수비수를 등지고 있을 때 필요한 기본기들까지.


‘와, 다르긴 다르네.’


전술 같은 게 아니었다.

오히려, ‘플레이 스타일’에 가까운 지침들.


────.

─────.

───.


가르침을 받으며 다시 한번 느꼈다.

감독의 성향에 따라 내가 하는 축구도 천차만별이 된다는 사실을.


“실전에 적용할 수 있으면 엄청 좋을 것 같습니다.”


씨익─


“곧 그렇게 될 거야.”


감독님은 훈련장을 크게 둘러보며 콧김을 내뿜었다.



············.













그로부터 4일 후.

AC밀란의 성인팀과 유소년팀(프리마베라)의 친선 경기가 준비 중인 가운데.

몸을 풀면서도 마리니 감독을 노려보는 선수가 있었으니.

나이가 22세임에도 불구하고 유소년팀에서 뛰게 된, ‘마르코 비탈리’였다.


“씨발.”


나이가 충분한데도 프리마베라 측에서 뛴다는 것은.

안타깝게도, 감독의 눈 밖에 났다는 뜻.

납득하지 못하는 입장에서는 감독이 미울 수밖에.

오죽하면 유소년 선수들이 비탈리의 눈치를 보고 있을까.


“너희들, 내가 수비해 주는데도 골 먹히면 알지? 그야말로 구제 불능인 거라고. 눈밖에 나고 싶으면 그렇게 해.”

“““······.”””


비탈리의 시선은 마리니에게서 ‘10’으로 옮겨갔다.



[LEE]

[10]



구석에서 조용히 몸을 풀고 있는 동양인.

체구도 작고, 근육도 적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등번호 10번을 달고 있는 이적생.


“저런 것도 1군인 마당에, 내가?”


하!


코웃음을 치던 비탈리가 잔디에 침을 찍 뱉었다.


‘아무것도 못하게 틀어막아 주지. 10번을 조지면 나를 다시 볼 수밖에 없을 거야.’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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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이탈리아 스포츠 신문의 영향력 +13 24.09.06 5,398 155 12쪽
31 축구왕 슛돌이에 버금가는 +11 24.09.04 5,839 159 14쪽
» 저는 오버헤드킥 못하는데요 +13 24.09.03 5,680 159 13쪽
29 AC밀란의 검은 머리 10번 +10 24.09.02 5,903 156 15쪽
28 이 정도면 이적해도 괜찮겠지? +13 24.08.31 5,870 140 14쪽
27 백스핀 어뢰슛 +9 24.08.30 5,729 140 13쪽
26 슈팅과 패스에 가려졌던 재능 +9 24.08.28 5,806 132 14쪽
25 '그 선수'의 부모님이 하시는 호프집 +8 24.08.27 5,765 130 14쪽
24 페널티킥을 찰 때 바람이 불면 +5 24.08.26 5,797 137 14쪽
23 정말로 식사가 목적이었을 줄은 +9 24.08.24 5,931 132 14쪽
22 패널티 박스 안에서 할 수 있는 일 +11 24.08.23 6,081 133 14쪽
21 프리킥은 막을 수 있을 줄 알았는데 +6 24.08.21 6,226 130 12쪽
20 내 인기가 이 정도였다고? +6 24.08.20 6,283 132 14쪽
19 귀가 잘 들린다고 말할 수밖에 +4 24.08.19 6,285 144 13쪽
18 나한테 가르쳐 달라고 해봤자 +7 24.08.17 6,428 140 13쪽
17 별 거 아닌데 다들 고장나네? +6 24.08.16 6,501 137 14쪽
16 페인팅 모션을 하나만 익혀도 +9 24.08.14 6,577 138 12쪽
15 몸값을 높이는 방법 +7 24.08.13 6,704 133 13쪽
14 무자비한 중거리 폭격 +7 24.08.12 6,715 145 13쪽
13 사실상 술래잡기 +6 24.08.10 6,627 144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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