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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천자 님의 서재입니다.

축구공 궤적을 손으로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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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천자
작품등록일 :
2024.07.24 2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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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14 2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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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인팅 모션을 하나만 익혀도

DUMMY

인천 유타이티드의 클럽 하우스.

마침 훈련장에서는 ‘인터벌 러닝’이 한창이었다.

고강도 스프린트와 저강도 조깅을 번갈아가며 실시하여 심폐 지구력을 향상하는 훈련.

축구 선수에게는 일상 같은 훈련 중 하나였기에 모두들 담담하게 뛰어다녔다.

유일하게, 한 명만 앓는 소리를 내고 있을 뿐.


“허어억, 허억, 하아, 후─.”


기록을 체크하고 있던 수석코치는 소리 없이 감탄했다.


“한계점을 이미 한참 전에 넘었습니다. 진우가 오늘 마음을 단단히 먹었나 본데요.”


옆에 있던 윤정수 감독이 입꼬리를 올렸다.


“아마 재계약 때문일 거야. 나한테 그랬거든. 믿음에 보답하겠다고.”

“동료들이 신경 쓰이기도 하겠죠. 신입인데도 연봉이 순위권에 드니까요.”


끄덕─


“상황 판단이 빠르고 행동력도 좋아. 저런 친구들이 전술 이해력도 좋지.”

“한번 설명하면 바로 알아듣더라고요. 축구 게임을 많이 해서 그런가.”


하하!


“내가 괜히 계약 때 무리한 게 아니야. 진우는 기본적으로 머리가 좋아. 하나하나 단계 별로 가르치면 실력이 금방 늘 거야.”


수석코치는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걱정스러운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경기를 치를수록 진우에 대한 견제가 심해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데뷔 경기에 비하면 활용도가 떨어지고 있어서 걱정입니다.”

“그건 나도 그래. 장점이 엄청나서 그렇지, 그보다 단점이 많은 선수니까. 상대 입장에서는 공략할 구석이 많겠지.”

“누구보다 열심히 하고 있긴 하지만, 신체 능력이 좋아지려면 시간이 걸릴 겁니다. 언제까지 후반 조커로만 쓸 수도 없는 법이고. 그러다 잔 부상이라도 당하면-.”

“하하하하!”


폭소하던 윤정수 감독이 수석코치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계약 조건에 반대할 땐 언제고, 아주 엄마가 따로 없네?”

“그, 그거야. 감독님이 너무 무리하셔서 그렇죠. 돈 끌어오시느라 힘든 약속을 하셨잖아요. 이러다 운영진이랑 틀어지면 어쩌시려고.”


피식─


“세상에 그냥 얻어지는 게 어디 있냐? 죽기 살기로 덤벼야 올라설 수 있는 거야. 지금 1등하는 애들은 처음부터 1등이었니?”

“그건 아니지만-.”

“나는 언제나 위험을 감수해왔어. 그렇지 않았다면 여기까지 오지도 못했겠지.”

“그러면 감독님은, 진우만 있으면 정말로 우승컵을 들 수 있다고 보시는 겁니까?”


윤정수의 눈에 이진우가 담겼다.

땀을 뻘뻘 흘리며, 숨이 턱 끝까지 차서는, 한 발이라도 더 나아가려 하는.


“성장이 느려도 괜찮아. 왜냐하면-.”


설명을 들은 수석코치는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정말이지, 한 치의 의심도 없으시구나.’


어쩌면 그것이 차이일지도 모른다.

감독과, 코치 사이의 차이.



············.













오전 훈련을 마치고 나니까 현기증이 났다.


비틀─


숨이 턱까지 차오를 정도로 뛰었기 때문에 당연한 결과였다.

그랬는데도 집에 가고 싶다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다.

오히려, 밥이 너무 맛있어서 눈물이 날 것 같더라.


와구와구와구──


그러다 문득 고개를 들고 창밖을 바라봤다.

유리에 흐릿하게 비친 내 얼굴이 너무 밝아 보여서.


‘내가 이렇게 긍정적인 성격이었나?’


아무리 생각해봐도 큰 변화였다.

군대에 있을 때만 해도 맨날 죽상으로 돌아다니지 않았나.

이렇게, 탈진할 정도로 고생해놓고 웃었던 적이 없다.

살면서 처음이라고 해도 될 정도로.


‘적성에 맞는 거겠지? 힘들어도 재밌다는 거니까.’


그저 궁금할 뿐이었다.

오전에 했던 운동으로 인해 나는 얼마나 나아졌을까.

혹시, 이전에는 못했던 플레이를 시도해볼 수 있지 않을까.

그리고 무엇보다-.


‘오후 훈련은 따로 진행한다고 하셨지.’


감독님의 1대 1 맞춤 교육이 어떤 내용일지 궁금해서 다리가 떨렸다.


덜덜덜덜──


점심을 먹은 뒤에 쉬면서도 그 생각 뿐이었다.

마치 게임에 중독된 사람처럼.

레벨업 말고 다른 것은 안중에 없는 듯이.


“열심히 하겠습니다!!”

“당연히 그래야지, 이리 와.”


감독님은 나를 데리고 구석탱이 골대로 향했다.

그곳에는 코치 한 분이 대기하고 있었다.

내가 골대 정면에 서고, 감독님이 골대를 등지는 1대 1 구도.


“오늘 너한테 가르쳐 줄 기술은 ‘페인팅’이야. 게임을 많이 해봤다고 했으니 모르진 않겠지?”

“슛 페인팅이요?”

“슛일 수도 있지만, 패스일 수도 있지. 또 상체일 수도 있고. 손을 쓸 수도 있어. 상대를 속일 수만 있다면 전부 페인팅이야.”

“예.”

“야, 겁먹지 마. 처음부터 대단한 걸 바라는 게 아니니까.”


감독님은 코치님을 앞에 두고 공을 다루기 시작했다.

공보다는 몸을 더 많이 움직이면서.


휙휙─


“자, 봐봐. 요란스럽지?”

“네.”

“요란스럽다고? 내가?”

“아, 아니요.”

“장난이야, 인마.”


하하하!


“수비수는 축구공이 아니라 공격수를 보면서 판단해. 발의 방향, 무릎의 각도, 어깨의 움직임. 하물며 바다 너머에서 뛰는 월드클래스 선수들은 눈동자만 봐도 안다고 하더라.”

“우와.”

“네 슈팅이나 패스가 종종 막히는 이유도 그것 때문이야. 차는 자세를 보면 어느 정도 예측되는 부분이 있으니까. 게다가 너는 모든 공을 원터치로 처리하잖아. 수비수가 보기에 예상을 할 수 있겠어, 없겠어?”

“있겠어요.”

“그래, 그런데 말이다.”


감독님이 슈팅 자세를 잡고 발을 후리다가 탁! 하고 멈췄다.

그러니까 코치님의 균형이 일순간 무너졌다.


파바박!


“네가 만약에, 상대를 한번이라도 속일 수 있다면 어떻게 될 것 같니?”

“상대를 속일 수 있다면···.”


깊이 생각할 필요도 없었다.

핑거풋볼에 포함되어 있던 상황이니까.


“궤적을 그릴 수 있는-. 아, 아니. 그게 아니고.”

“?”

“공을 보낼 수 있는 공간이 넓어질 것 같습니다.”

“왜 그럴 것 같아?”

“상대가 망설이면서 물러서기 때문입니다.”

“망설이는 이유는?”

“찰지 안 찰지 몰라서?”


씨익─


“맞았어.”


감독님이 코치님을 바로 세우며 설명을 이어갔다.


“모든 구단이 네 스타일을 알게 됐잖아. 다음에 만날 울산도 마찬가지야. 공을 잡자마자 후려 갈길 거라고 생각하겠지?”

“넵.”

“이런 상황에서는 네가 페인팅 모션을 하나만 할 수 있어도 엄청난 효과가 있을 거야. 왜 그럴까?”

“속임수인지 아닌지 생각해야 하니까요.”


절레절레─


“아니야. 네 슈팅과 패스 하나하나가 너무 치명적이기 때문이지.”

“으음.”

“쉽게 말해줘? 한 마디로, 속으면 좆된다고 느끼는 거야. 하나라도 허용하면 찬스로 이어진다는 걸 아니까, 작은 페인팅 하나에도 예민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어. 다른 공격수가 하는 페인팅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네, 이해했습니다.”

“진우야.”


감독님이 내게 다가와 축구공을 품에 넘겨줬다.


텁─


그리고는 내 양 어깨를 붙잡고 목소리를 깔았다.


“네 재능은 말하자면 ‘총’ 같은 거야. 다들 칼 들고 설치는 와중에, 오직 너 혼자만 총을 들고 있는 거라고.”

“읍!”


감독님이 내 뱃살을 움켜잡았다.

열심히 운동을 하고 있긴 하지만 몸이 크게 변한 것은 아니었기에.

감독님의 손이 닿는 곳마다 말캉한 살집이 잡힐 수밖에 없었다.


“복근이 없으면 어떻니. 팔이 말랑하면 어때? 등이 약하면 어떻고, 다리가 얇으면 뭐 어떠냐고.”


감독님이 다시 한번 어깨에 손을 올렸다.


“너한테는, 총이 있는데.”

“!”


내가 봤던 감독님의 표정 중에 가장 강렬했다.

오죽하면, 내가 아니라 핑거풋볼을 보고 있는 줄 알았을까.

마침 핑거풋볼 화면이 감독님 얼굴 앞에서 깜빡거리고 있었어서.


“쏘는 척하는 법을 배우자는 거야. 그리고 쫄아서 웅크렸을 때 진짜로 쏘자는 거지. 그렇게 되면 빗나갈 위험도 없잖아.”

“네! 무슨 뜻인지 알겠습니다!”

“좋아. 해보자. 딱 하나만. 다음 경기까지 딱 하나만 익히자고.”

“넵!!!”


다시 한번 속으로 되뇌었다.

인천이랑 계약하길 잘했다고.



············.












그로부터 4일 후.

울산과의 컵 경기가 있기까지 이틀 전.

‘헐크’ 조강현은 골키핑 훈련을 앞두고 고릴라처럼 가슴을 두드렸다.


팡팡팡!


뭐가 터지는 소리가 날 정도로 강렬한 기합.

이는 조강현이 정신을 가다듬고 자신감을 유지하기 위해 취하는 제스쳐였다.

웬만큼 피곤한 상황에서도 가슴을 크게 두드려주면 다시 심장이 뛰곤 했는데.

나이 서른이 되고 나서야 유일한 반례를 찾게 된 조강현이었다.


“왜, 왜 진우가 이쪽 세션에 옵니까? 진우는 키핑 훈련 필요 없잖아요?”


윤정수 감독이 입꼬리를 씰룩거렸다.


“코치들이 차는 것보다 진우가 차는 게 더 효과적이지 않겠냐?”

“아니, 그, 그래도.”

“얼씨구? 헐크는 어디 갔어? 이진우만 보면 약골이 되어버리네?”

“윽!”


감독의 도발에 정곡을 찔린 조강현이 다시 한번 가슴을 두드렸다.

공을 발아래 둔 이진우를 날카로이 노려보며.


“들어와, 이 자식아!”


마냥 허세는 아니었다.

이진우와 훈련을 함께 하면서 나름 분석하고 공부했던 바가 있었으니까.

이제는 10번 차면 3번 정도는 막을 수 있게 된 실정이었다.


“뻔하지, 뭐! 이번에도 구석으로 찰 거잖아?!”


진우는 뒷머리를 긁적거리며 웃을 뿐이었다.

조강현이 의아함을 느끼기에 충분한 리액션이었지.


‘왜 저렇게 여유로워? 요 며칠 감독님이랑 따로 훈련했다고 저러는 건가?’


동료들도 모두 알고 있었다.

이진우가 특별 훈련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다만, 그 훈련이 정확히 어떤 내용인지 몰랐을 뿐이다.


“어?”


과연 미리 알았다면, 결과가 조금은 달라졌을까.


“으윽?”


뻐어엉───철썩!


조강현은 골라인에 누운 채로 멍하니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애석하게도, 골망을 늘어뜨렸던 공이 굴러와 그의 머리를 가격했다.


통─!


“아오, 씨.”


직후, 이진우의 움직임이 머릿속에서 영상처럼 플레이되었다.


“슛 페인팅.”


때릴 듯 말듯.

멈출 듯 말듯.

가속과 정지를 반복하며 슈팅 타이밍을 뺏는 속임수였다.

프로 골키퍼로서는 밥 먹듯이 상대하는 기술 중 하나이기도 했다.

동작이나 자세만 놓고 보면, 프로 공격수에 비해서 상당히 어설픈 수준.

그런데 왜.

대체 왜.

등줄기에서 진땀이 흘러내릴 정도로 아찔했던 것일까?

네 다섯 번 상대하고 나서야 그 답을 내릴 수 있었다.


‘젠장, 상대가 이진우여서 그런 거구나.’


정말 사소한 기술일 뿐인데.

아마추어 수준에서도 자유롭게 구사할 수 있는, 별 것 아닌 테크닉인데.

그것을 이진우가 갖추니까 위기감이 차원이 달랐다.


‘필요 이상으로 움찔거리게 돼. 내 페이스와 타이밍을 완전히 뺏겨버렸어.’


콰득─!


조강현은 애꿎은 잔디를 뜯으며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가슴 속에서 피어오르는 감정 하나와 정면으로 마주했기에.


‘두려워하고 있는 거야. 진우의 슈팅을.’


강현이 원망스러운 얼굴로 진우를 바라봤다.

마침 진우는 윤정수 감독과 하이파이브를 하고 있었다.

그 둘의 모습은 마치 아빠와 아들 같아서-.

같은 팀 선수가 보기에도 일종의 박탈감을 느낄 정도였다.

수석코치가 그의 표정을 알아차린 것이 다행이라면 다행이겠지.


토닥토닥─


“네가 이해해라. 감독님이 요즘 많이 신나셨어.”

“그럴 수밖에 없긴 하죠. ‘진짜 괴물’이 들어왔는데.”

“괴물 포지션은 원래 너였는데 어떡하냐.”

“저는 그냥 다행이라는 생각밖에 안 들어요.”

“왜?”


조강현은 진우를 보면서 어깨를 으쓱였다.


“쟤랑 실전에서 만났다고 생각하면 너무 아찔하거든요.”

“하긴. 경기 때는 지켜보는 눈이 많으니.”

“동준이(울산 골키퍼)한테 트라우마 생기겠어요. 분명 슛 페인팅은 생각도 못하고 있을 텐데.”


수석코치가 흐뭇하게 웃었다.


“아마 ‘원터치’에 집착하고 있을 거야. 당연히 그럴 수밖에 없을 거고.”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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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저는 오버헤드킥 못하는데요 +13 24.09.03 5,682 159 13쪽
29 AC밀란의 검은 머리 10번 +10 24.09.02 5,906 156 15쪽
28 이 정도면 이적해도 괜찮겠지? +13 24.08.31 5,871 140 14쪽
27 백스핀 어뢰슛 +9 24.08.30 5,732 140 13쪽
26 슈팅과 패스에 가려졌던 재능 +9 24.08.28 5,808 132 14쪽
25 '그 선수'의 부모님이 하시는 호프집 +8 24.08.27 5,767 130 14쪽
24 페널티킥을 찰 때 바람이 불면 +5 24.08.26 5,801 137 14쪽
23 정말로 식사가 목적이었을 줄은 +9 24.08.24 5,935 132 14쪽
22 패널티 박스 안에서 할 수 있는 일 +11 24.08.23 6,086 133 14쪽
21 프리킥은 막을 수 있을 줄 알았는데 +6 24.08.21 6,230 130 12쪽
20 내 인기가 이 정도였다고? +6 24.08.20 6,287 132 14쪽
19 귀가 잘 들린다고 말할 수밖에 +4 24.08.19 6,289 144 13쪽
18 나한테 가르쳐 달라고 해봤자 +7 24.08.17 6,433 140 13쪽
17 별 거 아닌데 다들 고장나네? +6 24.08.16 6,507 137 14쪽
» 페인팅 모션을 하나만 익혀도 +9 24.08.14 6,581 138 12쪽
15 몸값을 높이는 방법 +7 24.08.13 6,706 133 13쪽
14 무자비한 중거리 폭격 +7 24.08.12 6,718 145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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