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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천자 님의 서재입니다.

축구공 궤적을 손으로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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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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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7.24 2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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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21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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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프리킥은 막을 수 있을 줄 알았는데

DUMMY

인천 유나이티드와 대전 하나 시티즌의 경기.

전반 23분.

34m 지점에서 프리킥을 얻은 인천이 대열을 정비했다.

프리키커는 인천의 10번, 하피냐.

평소 하피냐의 실력에 기반한다면 위험할 수도 있는 상황.

대전의 김한범 키퍼는 상황에 어울리지 않는 여유를 보였다.


‘하피냐는 나를 상대로 프리킥을 성공한 적이 없어.’


근거 없는 자신감이 아니었다.

대전에 오기 전에도 하피냐를 상대했던 적은 많았으니까.

이미 파악이 끝났다고 판단한 셈.


‘하피냐의 슛은 내 동체시력을 벗어나지 못해.’


동체시력.

김한범이 프리킥 수비 장인으로 불리는 근거였다.

다른 능력은 평범한 수준이더라도 하나가 특출하면 실력자로 인정받는 법.

움직임을 읽어내는 실력이 K리그1 골키퍼 중에서도 최상급이니 붙박이 주전이 된 것이다.

하물며, 죄다 멈춰있고 키커와 공만 움직이는 프리킥 상황이라면 김한범의 동체시력이 더욱 빛을 발할 수밖에.

설령, 키커의 슈팅이 예상과 다른 구질로 날아온다 할지라도.


뻐엉─!


‘무회전?!’


타악─!

오우우우──!


놀람과 안도의 목소리가 한데 모인 가운데.

어려운 공을 시원하게 쳐낸 김한범이 목청을 키웠다.


“자신감 있게 해! 세트피스는 걱정하지 마!”


근거 있는 기합은 경기장의 분위기를 움직이는 법이다.

인천의 코너킥이 볼품없이 마무리되었다는 점에서 증명되는 사실이었다.


【역시 김한범! 프리킥 선방에 이어 공을 안전하게 처리합니다.】

【막기 쉬운 공은 아니었거든요?】

【프리킥 선방률 1위 골키퍼의 면모를 보여줬다고 해야겠습니다.】

【이번 시즌도 압도적 1위를 지키고 있죠.】


인천의 윤정수 감독은 눈을 가늘게 뜨며 고개를 끄덕였다.


‘찬스를 줄 바에는 프리킥을 내주겠다는 거구나.’


대전이 가장 많이 쓰는 전술 중에 하나였다.

김한범 골키퍼의 능력을 적극 활용하는 전술.

수가 뻔히 보일 정도로 간단한 전술이지만-.

압도적으로 빼어난 선수가 있다면 어쩔 도리가 없다고 해야겠다.


‘물론 이번에는 다를 거지만.’


피식─


터치라인에 서 있던 윤정수가 뒤를 돌아 벤치를 바라봤다.

마침 이진우가 손톱을 물어뜯으며 김한범 골키퍼를 노려보고 있었다.

윤정수는 진우가 왜 그러는지 대강 짐작하고 있었기에.


“아까 김한범이 너한테 뭐라고 한 거니?”

“예?”

“경기 시작 전에 둘이 얘기하는 거 봤어. 그 뒤로 씩씩거리고 있잖아.”

“아.”

“한범이가 뭐라고 했길래 그래?”


진우가 볼을 긁적이며 시선을 깔았다.


“생각했던 것보다 더 작다고···. 다치지 않게 조심하라고 했습니다.”

“하하핳! 그랬구만.”


윤정수는 다시금 터치라인에 섰다.

그리고는 김한범을 바라보며.


“뒷감당 어떻게 하려고 그러냐.”



············.











오늘은 처음으로 감독님한테 의견을 표출해봤다.

용기를 냈다기보다는 분노로 인한 급발진에 가까웠다.


“평소보다 조금 더 일찍 들어가고 싶습니다.”

“?!”


하하하핳!


굳이 이유를 댈 필요는 없었다.

감독님도 아까 김한범이 나한테 어깨동무를 하는 모습을 봤으니까.


- 진우 씨는 언제 나와요? 하피냐가 차는 프리킥은 살짝 아쉬운데~.


어깨를 짓누르던 손.

무시하듯 미소 짓던 입꼬리.

기분이 나쁜데도 제대로 받아치지 못한 내 자신까지.


으득─


“프리킥이라면 자신 있습니다.”

“당연히 그렇겠지. 강현이가 너 때문에 노이로제에 걸렸는데.”

“훈련 때보다 더 잘 차보겠습니다.”

“그것보다 더 잘 찰 수가 있어?”

“네.”


하하하!


“좋아. 대신에 오늘은 후방에서 놀아. 그러다가 프리킥이 선언되면 그때 올라와. 대전은 태클이 심해서 함부로 올라가면 안 돼.”

“알겠습니다.”

“저쪽에서 놀렸다고 과하게 힘주지 말고.”

“예!”


후반전에 교체된 이후로 롱패스를 뿌려주는 역할에 집중했다.

대전은 후반전에도 태클 강도를 강하게 가져갔고, 덕분에 금방 프리킥 기회를 얻을 수 있었다.


삐이익!


하피냐가 습관적으로 공을 놓고 섰다.

막상 내가 뛰어오니까 옆으로 슬며시 비켜줬지만.


“지누. 저 키퍼 약 올라.”

“응, 나도 그래.”

“네가 찰 거지?”

“응, 내가 찰게.”

“나는 차는 척한다. 연습처럼.”

“오케이.”


교체되기 전에 감독님이 그랬다.

잘 차던 선수도 감정이 흔들리면 집중력이 약해지기 마련이라고.

김한범도 그 부분을 노리는 거니까 멍청하게 당해주지 말고 침착하게 차라고.


‘보통은 그게 맞긴 하지.’


하지만 내 경우는 다르다.

화가 나든 눈물이 나든 공에 발을 맞추기만 하면 되는 거니까.

궤적을 그리는데 기분이 무슨 상관이냐는 거지.


파박──틱!


있는 힘껏 공을 때린 직후에 아공간에 들어왔다.

몸에 힘이 탁! 풀리면서 순식간에 나른해졌다.


휴─


“여기만 한데가 없다, 진짜.”


핑거풋볼 화면이 선명히 반겨주고 있었다.

동시에, 화면에 담긴 상황 자체도 너무나 반가웠다.

내가 공을 차는 순간의 변화가 그대로 담겨있었기 때문이다.


“이래서 프리킥이 편하다니까.”


원래 프리킥을 찰 때는 어디로 어떻게 찰지 정해놓고 차는 경우가 대다수다.

수비벽이 얼마나 점프할지, 키퍼가 어느 쪽으로 다이빙할지, 또 우리 선수들은 어떻게 움직일지.

그 모든 요소를 예상해야 하기 때문에 프리킥이 어렵다고 하는 건데.

유일하게, 핑거풋볼에서는 차고나서 결정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다양한 변수를 편하게 구경하면서 궤적을 그릴 수 있기 때문이다.


“수비벽이 조금 빨리 뛰었네?”


수비벽 발 아래 공간이 유난히 눈에 들어왔다.

물론 그 밖에도 그릴 수 있는 궤적이 3종류 정도 있었지만.

김한범에게 무력감을 느끼게 해주고 싶다는 생각이 강해서 그랬던 것 같다.

감히, 반응조차 하지 못하도록.


“최단 거리로 간다. 막아 보시던가.”


쭈욱─


평소보다 화면을 크게 당겼다.

더 확실하고, 더 정밀한 프리킥을 만들어내기 위해서.


“동체시력이 좋다고 했지?”


동체시력은 ‘동체’가 있어야 성립되는 능력이라고 생각한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데 시력으로 뭐 어쩔 수가 있겠냐고.

그냥, 골이나 먹히는 거지.

안 그래?


뻐어엉──


현실로 돌아오자마자 잔디에 눕다시피 몸을 낮췄다.


“흡!”


수비벽 아래를 지나서.

수비수와 수비수 사이의 아주 좁은 틈을 통과하여.

골대 구석에 가서 박히는지, 두 눈으로 똑똑히 보고 싶었거든.


츠즈즈즛──철썩!


“그렇지!!!!”


삐이이이익──!

우오어어어어────!!


다른 골에 비해서 성취감이 남달랐다.


“으아아아!”


전반전 내내 무시당했다는 생각에 찝찝했기 때문일까?

응, 그게 맞는 것 같다.

아직도 상황을 이해하지 못한 채 동공에 지진이 나버린 키퍼를 보니까 확실히 알겠거든.

나는, 저 녀석한테 크게 한방 먹여주고 싶었던 거라고.


‘이제 시작이야. 작은 놈한테 한번 제대로 당해 봐라.’



············.












경기가 재개됐음에도 김한범은 여전히 어리둥절한 상태였다.

눈으로는 경기장을 살피고 있긴 한데, 정작 심상은 아까 전 프리킥에 머물렀으니.


‘대체 뭐지?’


패배감이나 수치심 때문은 아니었다.

오히려, 순수한 의구심에 가깝다고 해야겠다.


‘이해가 안 돼. 어떻게 거기서 깔아 찰 수가 있어?’


다시 그려보아도 빈틈이 없었다.

대전의 수비수가 빽빽하게 지키고 있는 구역이었단 말이다.


‘수비벽 아래로 깔아 찰 수는 있어. 그치만, 수비수 사이를 노리는 건 불가능한 일이야.’


틈이라고 해봐야 1m 미만이었다.

수비수 두 명 중 하나만 발을 뻗어도 막히는 구역이었지.


‘설마, 그 사이가 벌어진다는 걸 예상했다는 거야? 수비벽 너머로? 벽 아래를 노리는 동시에 그것까지 본다고?’


바로 뒤에서 지켜보던 김한범도 예측하지 못한 부분이었다.

수비벽을 앞에 놓은 상태에서 확인할 수 없는 변수였음은 당연하고.

만에 하나 예측했다고 하더라도 그 사이를 정확하게 통과시키기란 하늘의 별 따기일 터.

가능성으로 따진다면 필히 1퍼센트 미만이겠지.

김한범이 반응도 하지 못한 이유가 다른 데 있는 것이 아니다.

가볍게 배제했던, 불가능의 영역이었기에.


절레절레─


“운이 좋았던 거야.”


꿀꺽!


김한범이 ‘확실히’ 무너진 시점은 후반 21분 경이었다.

다시 한번 찾아온 인천의 프리킥.


뻐엉!


이진우의 킥이 터무니없이 위로 떴다고 확신한 순간-.

말도 안 되는 각도로 뚝 떨어지는 공을 마주하고 몸이 굳어버린 것.


“읍?!”


심지어, 크로스바를 맞은 공이 골라인을 넘어갔다가 다시 한번 크로스바를 맞고 튕겨져 나갔다.


깡──통──까앙!


경쾌한 소리였다.

그에 반해, 김한범은-.


“아, 안 들어갔어! 안 들어갔다고!”


골이 아니라고 주장했다가 골 선언을 받는 기분이란.

뒤늦게 밀려오는 치욕 비슷한 것들을 더욱 선명하게 해줄 뿐이었으니.


“······운이 아니야.”


처음이었다.

두 눈으로 똑똑히 보고도 반응조차 하지 못했던 슈팅은.


‘차라리 첫 번째 골이 나아. 그건 못 보기라도 했지. 이게 뭐냐고.’


압도적인 장점은 자신감의 근거가 된다.

하지만.

유일한 강점이 무너졌을 때에는 오히려 반작용으로 돌아오는 법.

어쩌면 김한범은 두려워했던 걸지도 모른다.

단 하나의 특색이 지워지는 날이 올까 봐.

그래서, 필요 이상으로 과시했을지도.


【김한범 키퍼가 다급하게 외칩니다.】

【제스쳐로 봐서는 프리킥을 내주지 말라고 하는 것 같은데요.】

【합리적인 판단이죠. 프리킥으로 두 골을 먹혔으니까요.】

【다만 걱정되는 것은, 이번 경기가 김한범 선수에게 안 좋게 작용할 수 있다는 거거든요?】

【프리킥으로 멀티골을 먹혔으니, 자신감에 스크래치가 나고도 남을 상황이죠.】

【지금도 딱히 상태가 좋아 보이진 않습니다.】


해설진의 예상은 적중했다.

곧바로 이어지는 대륙 간 대회에서, 김한범이 전보다 소극적인 모습을 보인 것이다.

인천에 패배한 직후였으므로 원인을 알 만하다는 평이 주를 이뤘다.

경기 후에 기자들이 그 부분을 콕 집어 질문할 정도로.


“이진우 선수를 상대했던 프리킥 상황이 큰 영향을 끼쳤다고 볼 수 있나요?”

“······죄송하지만 여기까지만 하겠습니다.”

“자, 잠시만요! 한범 선수!”


질문했던 여기자는 난처한 얼굴로 머리를 긁적였다.


‘김한범 선수한테는 미안하지만, 재미있는 타이틀이 생각나버렸어.’


여기자의 수첩에 적힌 글귀는 이러했다.


[‘슬럼프 메이커’ 이진우, 또 하나의 슬럼프를 안겨주며 인천의 대승을 이끌어]



············.












가벼운 미니 게임이 한창인 인천.

경기를 지켜보던 윤정수 감독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


“방금 진우 봤어?”


수석코치가 고개를 끄덕였다.


“저도 봤습니다. 놀랍네요.”

“처음 아니야? 뒤에서 밀치는데 버텨낸 건.”

“거의 처음인 것 같습니다.”

“진우 훈련 성과표 좀 줘볼래?”

“여기 있습니다.”


촤락─촤락─


자료를 확인하던 윤정수의 입꼬리가 슬며시 올라갔다.


“슬슬 박스 안에 넣어봐도 되겠는데?”


반면에 수석코치는 걱정 가득한 눈빛이었다.


“버틸 수 있을까요?”

“오히려 좋을지도 몰라. 박스 안에서는 수비 방식이 한정적이니까.”

“그래도, 진우는 잡기술에 약할 텐데요.”


윤정수 감독이 손가락으로 선수 하나를 가리켰다.


“쟤한테 붙여주면 되지 않을까?”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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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백스핀 어뢰슛 +9 24.08.30 5,731 140 13쪽
26 슈팅과 패스에 가려졌던 재능 +9 24.08.28 5,807 132 14쪽
25 '그 선수'의 부모님이 하시는 호프집 +8 24.08.27 5,765 130 14쪽
24 페널티킥을 찰 때 바람이 불면 +5 24.08.26 5,798 137 14쪽
23 정말로 식사가 목적이었을 줄은 +9 24.08.24 5,933 132 14쪽
22 패널티 박스 안에서 할 수 있는 일 +11 24.08.23 6,082 133 14쪽
» 프리킥은 막을 수 있을 줄 알았는데 +6 24.08.21 6,229 130 12쪽
20 내 인기가 이 정도였다고? +6 24.08.20 6,284 132 14쪽
19 귀가 잘 들린다고 말할 수밖에 +4 24.08.19 6,287 144 13쪽
18 나한테 가르쳐 달라고 해봤자 +7 24.08.17 6,430 140 13쪽
17 별 거 아닌데 다들 고장나네? +6 24.08.16 6,502 137 14쪽
16 페인팅 모션을 하나만 익혀도 +9 24.08.14 6,577 138 12쪽
15 몸값을 높이는 방법 +7 24.08.13 6,704 133 13쪽
14 무자비한 중거리 폭격 +7 24.08.12 6,716 145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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