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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보도사 나가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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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나이다
작품등록일 :
2023.12.01 13:52
최근연재일 :
2024.05.14 2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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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4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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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8,638

작성
24.03.22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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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073. BW, 비상사태! 1

DUMMY

1.


줄리의 집, 거실.


불편한 몸 때문에 테이블의 넓은 상석을 차지하고 앉은 철산은 운천으로부터 그간의 자초지종을 들었다.


그의 첫 반응은 긴 한숨이었다.


자신들의 모습이 이렇게 노출된 것도 그렇지만, 나찰의 대응이 예상외로 노련했기 때문이었다.


철산은 한동안 입을 다문 채 목석처럼 미동도 없었다.


그러다 건우와 눈을 마주치자 마침내 입을 뗐다.


“건우가 제법이구나. 회복술까지 쓸 줄 알고···.”


기약 없이 이어지던 적막을 깨뜨린 건 철산의 칭찬이었다.


“고맙구나!”


감사의 말까지 이어졌다.


뜻밖이었다.


그런데 사실, 건우의 회복술이 조금만 늦었더라면 큰일이 날 뻔한 상황이었다.


뭔가 자신이 인정받았다는 생각에 더해, 이제는 정말 도사가 된 것 같은 기분이어서일까.


건우의 어깨에 슬쩍 힘이 실린다.


건우를 보고 빙그레 웃는 철산.


뭔가를 더 생각하는 듯하더니 다시 운천을 돌아보았다.


“놈이··· 부적을 가지고 달아난 것 같습니다.”


이제 좀 기운을 차린 건지 철산의 안색은 밝았지만, 그의 말은 끔찍했다.


건우는 물론이고, 테이블의 오른편에 앉은 줄리의 식구들도 급 침울해졌다.


운천은 그 맞은 편에서 초점 없는 눈으로 찻잔을 들었다 놓기만을 반복했다.


뭐라 한마디 하고도 남을 만한 상황인데 운천은 의외로 차분했다.


철산은 눈치를 보다가 이미 한 소리 들은 사람처럼 사과의 말을 먼저 뱉는다.


“죄송합니다.”


철산의 시선이 땅으로 푹 떨어졌다.


찻잔에 더운물을 다시 채운 운천은 고개를 젓는다.


“아니다. 내 잘못도 크다. 정철의 말대로 초반에 더욱 적극적으로 대응했어야 했나보다.”


철산은 다시 머리를 들어 올렸지만, 안색은 어두웠다.


“이미 엎어진 물인데 어쩌겠느냐? 다시 찾아올 방도나 생각해 보자꾸나.”


건우는 두 사람의 대화를 듣다가 눈앞이 아득해졌다.


부적을 가지고 달아났다.


자신이 청운당에서 가지고 나왔던 바로 그 부적을.


나찰, 그놈이···.


보통 일이 아니었다.


평범한 이의 손에 들어갔어도 노심초사 머릿속이 어지러울 판인데.


온 세상을 엉망으로 뒤집어놓은 전력이 있는 나찰.


바로 그놈의 수중에 들어가다니.


세상의 질서를 허물지 않는 수준에서, 가볍게 장난을 치는 정도로 부적을 사용하던 건우 자신의 모습.


그것과는 상반되게 작정하고 악의를 품고서 사술을 펼칠 나찰의 모습을 그려보았다.


그 어떤 공포 영화나 디스토피아 영화보다도 끔찍한 상상이 핏빛으로 펼쳐졌다.


이마가 뜨거워지면서 숨이 차올랐다.


건우는 미안함과 더불어 두려움에 마음이 요동쳤다.


이게 다 자기 때문이라는 자책감!


그 무거운 감정이 건우의 가슴을 아프게 눌렀다.


옆에서 가만히 눈치만 보고 있던 줄리와 앙드레도 안절부절못하는 분위기다.


뭐라도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데 딱히 그럴 만한 게 떠오르지 않는지 손가락만 꼼지락거리고 있다.


“이젠 되찾는 게 그리 쉽지 않을 듯합니다. 놈이 우리 몸에 붙여놓은 거미줄 때문에 움직임이 다 노출되지 않습니까?”


철산의 눈빛에서 절망이 보였다.


하지만 운천은 의미심장한 분위기로 수염을 쓰다듬었다.


“방법이 아예 없어 보이진 않구나.”


기운 없는 철산의 눈이 운천을 응시했다.


“무슨 뾰족한 수라도 있으신지요?”


철산은 그새 빈 운천의 찻잔에 더운물을 부어드렸다.


“이 거미줄 말이다··· 우리가 역으로 이용하면 어떨까 싶다. 다른 곳에 옮겨 붙여 관심을 돌린 후에 기습하는 거 말이다.”


운천의 말에 철산의 고개가 비스듬히 기울었다.


“놈이 사술을 걸어놨을 겁니다. 떼려 하면 바로 알아챌 겁니다.”


머리를 좌우로 흔드는 게 안타까운 표정이었다.


“모르게 하면 되는 거지.”

“어떻게 말입니까?”


운천은 빙그레 웃더니 건우를 돌아보았다.


“우리 쪽에 법사가 한 명 더 있지 않으냐?”


철산은 운천과 건우의 얼굴을 번갈아 보면서 눈을 찡그렸다.


“설마··· 건우를 이용하실 겁니까?”


처음 이 집에 들어서기 전 운천은 신신당부했었다.


건우는 절대 다치게 하면 안 된다고.


나찰을 잡는 게 늦어지다 못해 이렇게 엉망이 되어버린 것도 바로 그 때문이 아니던가.


그런데 이젠 생각을 180도로 바꿔 건우를 오히려 위험 속에 내던지려 하다니.


대체 이게 무슨 조화인가.


“봐라! 지금 남아있는 성한 법사가 누가 있느냐? 너나 정철, 그리고 나까지 이 꼴이다. 게다가 유정과 만봉은 소식조차 없다.”


운천은 담담한 얼굴로 다시 찻잔을 들어 올렸다.



2.


심각한 분위기가 이어지자 줄리의 식구들은 자리를 피해주었다.


바로 앞에서 자기 얘기를 듣는 게 부담스러웠던 건우도 눈치를 보다가 슬쩍 몸을 피했다.


운천과 단둘이 된 상황.


철산은 사람들의 눈이 사라지자 음성에 힘이 실린다.


“갑자기 이러시는 게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운천은 철산의 근심을 이해한다는 듯 빙그레 웃었다.


“제대로 배운 것도 아니고 어깨너머로 훔쳐보면서 익힌 아이입니다. 자칫 사고라도 나면···.”

“건우의 실력은 이미 확인했다. 우리가 좀 도와주면 놈을 찾아내는 것 정도는 할 수 있을 것이다.”


철산은 여전히 난감한 얼굴이었다.


“도술이야 그렇다 쳐도···. 항상 하시던 말씀이 있지 않습니까?”


운천은 철산의 시선을 피한 채로 거실 창문 밖 먼 곳을 응시하고만 있다.


“청운당에서 한동안 함께 살았다 해도, 아직 저 아이의 심성이 어떤지도, 무슨 생각을 품고 있는지도, 제대로 파악이 안 되어있습니다.”


철산의 애타는 말투에 운천은 전혀 감정의 동요를 보이지 않았다.


그저 묵묵히 듣고만 있는다는 것.


그건 상대가 무슨 말을 하려는 지 다 안다는 뜻인지.


상대가 무슨 말을 해도 내 대답은 이미 정해져 있다는 뜻인지.


아니면··· 상대의 말에 아무 관심이 없다는 뜻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렇게 석상 같던 운천도 철산의 다음 말이 이어지자 꿈틀하며 반응하기 시작한다.


“그러다 또 하나의 일성이 나오면 그땐 어쩌시려고 그럽니까?”


마침내 운천이 몸을 틀더니 철산을 마주 봤다.


“저 여배우가 건우 얘기를 해주었다. 우연히 이 집에 오게 되면서부터 시작된 여러 사건들···.”


차분히 늘어놓는 운천의 말에 철산은 귀를 기울였다.


운천의 얘기는 반 시간가량 이어졌다.


숨을 죽인 채 스승의 말을 듣던 철산은 얘기가 끝나자 거실 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열린 문틈 새로 건우가 보였다.


건우는 궁금증에 거실 안을 몰래 들여다보고 있다가 철산과 눈이 마주쳤다.


눈길은 얼른 다시 다른 곳으로 돌아갔다.


“그런 일이 있었군요.”


건우에게서 시선을 거둔 철산이 다시 운천의 찻잔에 더운물을 채워드렸다.


“사고나 치고 다니고 있을 줄 알았는데, 제법 사리 분별은 할 줄 알더구나.”

“하지만 오래 지켜보지 않은 게 마음에 걸립니다.”

“저 아이는 괜찮을 거다.”

“어찌 그리 장담하십니까?”

“욕심은 좀 있다만··· 맑은 눈이다.”


철산은 잠시 눈을 지그시 감았다.


여러 생각이 이어지다 기억 속의 한 장면이 흐릿하게 살아났다.


어린 일성의 모습···.


일성이 스승 운천의 손에 이끌려 청운당 마당에 처음 들어서던 날이었다.


스승은 그날, 법사들 앞에서 평소 같지 않게 파안대소까지 보였다.


“내가 재능있는 아이를 거둔 것 같다. 오늘 아주 기쁘구나!”


차를 마시면서도, 밥을 먹으면서도, 하루 종일 어깨춤을 덩실대던 스승.


그때 철산은 헛간 뒤에 숨어 이 모습을 지켜보면서 마음이 불안했다.


역시 어린 나이였던 철산이 다른 이들보다 천라지망에 두각을 보이기 시작하던 때였다.


그래서 그런지, 그의 눈에는 삼라만상의 모든 실체가 또렷하고 선명하게만 보였다.


멀리 있는 것은 가까이.


흐릿한 것은 밝게.


탁한 것은 맑게.


가려진 것은 그 장막을 걷어내고서.


철산의 마음이 불안했던 건 처음 온 아이의 눈 속에서 뿜어져 나오는 어떤 말로 표현 못 할 기운 때문이었다.


충동인지, 욕심인지, 열정인지 알 수 없는 뜨거운 에너지.


거칠긴 해도 아직 영글지는 않았기에, 그게 선으로 향할지 아니면 악으로 굽어들지는 파악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철산은 왠지 모를 불편한 감정에 자꾸만 새로 온 아이가 꺼려졌다.


일성이라는 이름의 아이.


그날도 법사 중 하나가 운천에게 같은 질문을 했었다.


“저 아이가 재능이 있다는 걸 어찌 그리 장담하십니까?”


그리고 스승은 같은 대답을 했고.


“욕심은 좀 있다만··· 맑은 눈이다.”


철산이 다시 눈을 떴다.


운천을 보며 그때 일성도 맑은 눈을 가진 아이가 아니었냐고 막 물으려던 찰나였다.


정수리에서부터 발끝까지 기운이 통하며 찌릿한 느낌이 들었다.


이제 몸이 완전히 회복되었다는 신호였다.


철산은 얼른 천라지망을 펼쳐 정철을 찾았다.


곧 그의 모습이 눈앞에서 어른거렸다.


무언가와 싸우고 있는 모습.


힘에 부쳐 보였다.


여기서 그리 멀지 않은 곳이었다.



3.


법사들이 건우를 대신 보내 정철을 데려온다고 하자 다들 놀라는 얼굴이었다.


“너··· 너무 위험하지 않나요?”


앙드레가 먼저 거친 반응을 보였다.


하지만 운천은 여유가 넘치는 얼굴로 모두를 안심시킨다.


“큰일은 나지 않을 테니 너무 걱정은 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우리가 다 지켜보고 있을 겁니다.”


줄리는 운천의 말이 미덥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 처한 상황이 그리 녹록지 않으니 허락할 수밖에 없었다.


도술이니 악귀니··· 이런 것들은 아직 와닿지 않는 얘기지만.


건우를 통해 직접 봤던 그 신비한 현상이 우리 일상생활에 무차별적으로 퍼지는 상상은 끔찍하기만 했다.


“건우야! 못 하겠다 싶으면 언제라도 말해야 해, 응?”


줄리는 초등학교에 갓 입학한 아이 손을 쥔 학부모처럼 신신당부한다.


“헤헷! 걱정 마세요. 제 실력을 보셨으면서요.”


철딱서니 없는 철부지 아이 같은 표정의 건우가 줄리를 보고 웃었다.


그때 갑자기 회사에서 걸려 온 급한 전화를 받은 줄리가 거실 밖으로 뛰쳐나갔다.


운천과 철산은 다시 한번 건우에게 신신당부한다.


“절대 악귀와 혼자 맞서지 마라. 넌 정철을 도와주러 가는 거지 구하러 가는 게 아니다. 알겠느냐?”


건우는 짧게 네, 라고 답하고는 또 헤헤거리고 웃어댔다.


운천과는 달리 건우가 여전히 미덥지 못한 철산은 자꾸만 헛기침을 내뱉는다.


“거듭 말하지만, 부적은 함부로 쓰지 말고 반드시 위급한 상황에서만 써야 한다.”


벌써 현관문을 벗어나는 건우를 보며 운천은 자꾸만 잔소리가 늘어진다.


“아까 가르쳐준 장풍은 제대로 익혔지? 도술을 쓸 때는 사람들이 많은 곳은 피해야 하···.”


잔소리가 쉽게 끊어지지 않을 것 같았는지 건우는 후다닥 집을 뛰쳐나간다.


마치 소풍이라도 가는 초등학생 같은 건우의 뒷모습을 보면서 운천은 가는 한숨을 내뱉었다.


철산은 다시 천라지망을 펼치면서 정철의 상태를 확인한다.


“기력은 많이 쇠했는데, 악귀에게 제압당할 정도는 아닙니다. 건우가 가면 바로 해결될 것 같습니다.”


운천은 철산의 말을 들으며 거미줄을 옮겨 붙일 대상을 곰곰이 헤아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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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 111. 식신 vs 식신 2 24.05.11 2 0 11쪽
110 110. 식신 vs 식신 1 24.05.10 3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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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8 108. 보이지 않는 반격 1 24.05.08 3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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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6 106. 교란작전 1 24.05.06 4 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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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4 104. 히트 앤드 런 1 24.05.04 6 0 12쪽
103 103. 화살은 정의원에게로 3 24.05.03 7 0 11쪽
102 102. 화살은 정의원에게로 2 24.05.02 7 0 12쪽
101 101. 화살은 정의원에게로 1 24.05.01 5 0 12쪽
100 100. 트레이닝 데이 2 24.04.30 6 0 11쪽
99 099. 트레이닝 데이 1 24.04.29 6 0 11쪽
98 098. 연결고리 3 24.04.28 7 0 12쪽
97 097. 연결고리 2 24.04.27 6 0 11쪽
96 096. 연결고리 1 24.04.26 6 0 12쪽
95 095. 건우가 필요해 2 24.04.25 7 0 11쪽
94 094. 건우가 필요해 1 24.04.24 9 0 11쪽
93 093. 마주선 두 사람 2 24.04.23 9 0 11쪽
92 092. 마주선 두 사람 1 24.04.22 9 0 11쪽
91 091. 나무아미타불 3 24.04.21 10 0 11쪽
90 090. 나무아미타불 2 24.04.20 10 0 12쪽
89 089. 나무아미타불 1 24.04.19 12 0 11쪽
88 088. 패스워드 2 24.04.18 12 0 12쪽
87 087. 패스워드 1 24.04.17 14 0 11쪽
86 086. 설경에 갇힌 나찰 2 24.04.16 10 0 11쪽
85 085. 설경에 갇힌 나찰 1 24.04.15 9 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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