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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팀 님의 서재입니다.

얼음산의 주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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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팀
작품등록일 :
2022.05.11 22:48
최근연재일 :
2022.08.21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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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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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
글자수 :
371,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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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5.11 2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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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얼음산의 주인 2화

DUMMY

크리스의 제안에 두 사람이 크게 동요하는 것이 느껴졌다. 남자가 소년을 뒤로 숨기곤 나섰다.

“저 산을 올라 살아 돌아온 사람이 하나도 없다고 들었다. 너는, 목숨을 잃어도 괜찮은 건가?”

잔뜩 경계가 선 남자를 안심시키기 위해 크리스가 입가의 미소를 유지하며 손을 내밀었다.

“우선 통성명부터 하죠. 저는 크리스입니다.”

남자는 크리스의 손을 흘끗 보더니 무시했다.

“율켄이다. 내 질문에 대답해.”

“사실 저는 방금 제 전 재산이나 다름없는 월급 주머니를 도둑맞았습니다. 저 산을 오르다 죽나 굶어 죽나 매한가지지요. 그래서 큰돈을 빨리 벌 방법을 선택한 겁니다.”

거짓말은 아니지만 급조한 사유였다.

사실 그에게도 힐 산을 올라야 하는 이유가 있었다. 그가 열심히 일해온 것은 생활비를 벌기 위함도 있지만, 겸사겸사 힐 산을 오를 자금을 모으기 위해서였다. 그러던 중 우연히 용병소에 갔다가 두 사람을 만나게 된 것이다. 어차피 언젠가는 오를 산이니 같이 오르려는 사람이 있을 때 시도할 생각이었다. 율켄과 같이 강해 보이는 동행을 구하기란 쉽지 않은 일일 테니 좋은 기회일지도 모른다.

거기다 크리스는 비공식적으로 힐 산에서 살아 돌아온 유일한 사람이었다. 그는 나름대로 자신이 있었다.

“사기꾼을 의심하는 거라면 정말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저는 누군가의 뒤통수를 칠 정도로 강하지도 않거든요. 제 몸을 보세요. 이런 팔로 검을 휘두르기나 할 수 있을까요?”

율켄이 대답에 뜸을 들이자 크리스가 일부러 자신의 마른 몸을 요리조리 보여주었다.

“됐다. 그런 건 그냥 척 봐도 알겠군.”

사실 율켄도 이미 크리스의 존재를 알고 있었다. 긴 검은 머리에 앞머리로 얼굴을 다 가려놓은 것이 특이하기도 했지만, 도둑을 찾겠다고 온 용병소를 헤집고 다니던 통에 잠깐이나마 시선이 갔던 것이다.

어느 정도 율켄이 허락할 기미가 보이자 긴장이 풀렸다.

“그런데 옆의 아이는?”

“안녕하세요. 루제르트에요.”

옆에서 둘의 대화를 듣고 있던 루제르트가 크리스의 말에 기다렸다는 듯이 냉큼 대답했다. 복슬복슬한 주황색 머리에 녹안이 초롱초롱 빛나는 귀여운 아이였다.

“안녕. 아가.”

순간 루제르트가 미간을 찌푸려서 크리스가 흠칫했다.

‘아가라는 말이 별로인가?’

다음부터는 조심해야겠다고 생각하며 서둘러 율켄에게 말을 돌렸다.

“루제르트가 머물 곳은 정해졌습니까?”

“같이 간다.”

“네?”

순간 크리스가 잘못 들었나 싶어 되물었다.

“루제르트는 겉보기와는 다른 아이다. 신경 쓸 필요 없어. 길 안내나 잘하도록.”

됐다∙∙∙ 가 아니라 그래도 아이는 아이였다. 아무래도 저 위험한 산에 루제르트를 데려가는 것은 정신 나간 짓처럼 보였다. 크리스가 뭐라 말하려 하는데 루제르트가 그의 옷자락을 잡아끌었다.

“형, 저 진짜 강해요.”

말을 마친 루제르트가 그를 향해 빙긋 웃어 보이길래 머리를 두어 번 긁적이다 그만두었다.

“그럼··· 오늘은 출발하기 늦었으니 내일 다시 모이는 거로 하죠.”

“그러지.”

그들은 그 뒤로도 여행 준비로 한참을 얘기하다 마지막으로 숙소 위치를 교환하고 헤어졌다.

크리스는 헤어진 장소를 등지고 걸으면서 생각했다. 그가 볼 때 두 사람은 신분을 숨긴 귀한 도련님과 수행 기사였다. 옷차림이며 소지품이 이런 변두리 마을에서 쉽게 볼 수 없는 고급품이었다. 그렇다면 적어도 그가 걱정할 대상은 아니라는 뜻이었다.

귀한 분들은 얽히면 더 위험하다는 문제가 있기 때문에 그는 의뢰를 마치는 대로 뒤도 돌아보지 않고 떠나기로 했다.


“크리스 형!”

멀리서 루제르트가 밝게 크리스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루제, 다 준비되었지?”

“네! 모험할 생각에 신나요!”

“루제르트. 뛰면 안 된다.”

“풉!”

뜬금없이 크리스에게서 웃음이 터졌다. 율켄과 루제르트가 이상하게 쳐다보자 크리스가 재빨리 변명했다.

“큼∙∙∙ 아, 죄송합니다. 사레가 들려서.”

사실 크리스는 두 사람의 정체를 짐작한 상태라 자세히 보니 어색한 연기가 보여서 웃은 거지만 다행히도 두 사람이 별생각 없이 넘어가 주었다. 과하게 천진난만한 척하는 루제르트는 귀엽기라도 하지, 율켄의 뚝딱거리는 목석 연기는 정말 최고였다. 그는 자꾸 터져 나오려는 웃음을 참고 말했다.

“루제, 우리가 지금부터 가려는 산은 정말 위험한 산이야. 어제 말한 대로 조금이라도 위험하다 판단되면 바로 돌아갈 거니까 삼촌 곁에서 절대 떨어지면 안 돼.”

“네~.”

그렇게 거짓으로 가득한 세 사람의 파티가 힐 산으로 출발하게 되었다. 산의 입구는 사람이 끊긴 지 오래되어 잡초가 울타리처럼 자리 잡고 있었다. 풀이 우거진 곳에는 독사가 숨어있을 수도 있기 때문에 세 사람은 긴 막대로 바닥을 쿵쿵 치며 걸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들의 앞에 새하얀 눈밭이 모습을 드러냈다. 드디어 산의 초입에 든 것이다.

“우아∙∙∙.”

루제르트가 순수하게 감탄했다. 새하얀 백지를 보는 것만 같았다.

물의 수호자가 사라진 뒤로 이 산에 끈임없이 내리는 흰 눈은 생동감 넘치던 이전의 모습을 다 지워버리고 무의 상태로 되돌렸다.

“가다 보면 슬슬 눈이 내릴 겁니다.”

크리스는 두 사람이 산의 풍경에 속아 방심할까 봐 경고차 말했다. 초반인데도 발이 눈 속에 푹푹 빠져 걷기가 힘들었다. 이 눈밭은 위로 갈수록 더 두꺼워져 모험가들의 체력을 금방 뺏어갈 것이 뻔했다.

“이상하네요.”

앞장서 걷던 크리스가 한순간 자리에 우뚝 멈추어 섰다. 그러자 율켄과 루제르트도 덩달아 서서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네? 뭐가요?”

“여기까지 오는 길이 너무 쉽지 않았나요?”

‘아···’

그제야 그들도 이상함을 깨달았다. 힐 산에서는 눈보라가 앞이 안 보일 정도로 휘몰아치고 매서운 칼바람이 모험가들을 밀어낸다고 했는데, 그 소문에 비하면 여태껏 아무 일도 없는 것이 수상했다. 처음에는 초반이라 그러려니 했는데 그것이 장기간 지속되다 보니 그들도 모르게 경계를 풀어버린 것이다.

갑자기 두려워진 루제르트가 그들이 지나온 길을 뒤 돌아보았다.

한없이 하얗고 넓기만 해서 그 위에 찍힌 그들의 발자국이 아니었다면 꿈결이라 해도 믿을 것 같았다.

“산이 꼭 조금만 위험해지면 도망가려는 우리의 속내를 읽고 깊숙이 꾀어내는 느낌입니다만···”

“어차피 가야 하는 곳이었다. 이럴 때 조금이라도 더 많이 가지.”

율켄이 머뭇거리는 크리스의 어깨를 밀자 루제르트가 흘깃 크리스의 얼굴을 살폈다. 그 얼굴이 기분 나쁘거나 겁에 질린 표정이 아니라서 안심했다.

“맞는 말입니다··· 가시죠.”

그들의 목적지는 힐 산꼭대기에 있는 분화구, 정확히 말하면 이전엔 물이 가득 차 호수였던 곳이다.

힐 산이 제국의 상징물이라면, 분화구 호수는 힐 산의 심장이었다. 이 호수로부터 모든 강줄기와 생명이 시작되었으며, 태초의 물의 수호자가 태어난 곳이라는 전설이 있었다.

‘산꼭대기 호수를 칼데라호라고 부르던가?’

크리스는 뜬금없이 옛날에 배웠던 것이 생각나 머리를 긁적였다.

‘아마도 이 두 사람은 물의 수호자님을 찾는 거겠지.’

이 산을 오르고자 했던 모험가들의 목표는 똑같았다. 물의 수호자에 대한 단서를 찾는 것. 율켄과루제르트에게는 미안하지만, 크리스는 너무 허황되다고 생각했다. 그동안 물의 수호자를 찾아 헤맨 사람들은 많았지만, 물의 수호자는 머리카락도 보이지 않았다. 제국의 황제까지 나서서 병사를 풀었지만 실패했다. 사람들도 슬슬 힐 제국에 수호자의 계보가 끊긴 것을 인정하고 있었다. 하지만 쉽게 포기하는 사람이 있다면 이 둘처럼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는 법이다.

그렇게 그들은 한참을 걸어 분화구에 도달했다.

“와··· 도착했다.”

“도착했네요.”

몇 년 전 물이 가득 차 생동감이 넘치던 호수는 어두컴컴한 구멍만 남아 쩍 벌어진 괴물의 아가리처럼 보였다.

‘너무 불안한데···’

재빨리 분화구 낭떠러지 입구의 주변을 살피기 시작한 율켄과 루제르트의 뒤에 선 크리스는 홀로 생각에 빠졌다. 아무래도 이 산이 일부러 그들을 유인한 것만 같은 예감이 계속 들었던 것이다. 그동안 모험가들을 전부 삼키고 돌려보내 주지 않은 이 산이 그들에게만 관대할 리가 없었다. 지금은 상냥한 척 봐주고 있지만 그들이 등을 보이면 어떻게 돌변할지 모른다. 이럴 때일수록 빠르게 행동해야 한다. 크리스는 짐을 풀고 무언가를 하고 있는 율켄에게 다가갔다.

“율켄씨. 서둘러 밑을 내려가 보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언제 눈보라가 닥칠지 몰라요.”

“아아, 안 그래도 그럴 생각이었다.”

과연, 그도 같은 생각이었는지 이미 튼튼한 나무에 줄을 매어 둔 것이 보였다.

“이걸 타고 내려갈 건가요∙∙∙?”

말을 다 마치지도 못했는데 크리스의 몸이 크게 기울었다.

“엥?”

그를 부르는 루제르트의 외침이 멍하게 들렸다. 그렇게 크리스는 율켄에 의해 밑으로 추락했다.


“크리스 형! 율켄!”

율켄이 크리스를 발로 차는 모습을 발견하고 급하게 뛰어왔지만, 크리스는 이미 저 아래로 추락한 뒤였다. 무방비로 떨어졌으니 크게 다치거나 심하면 죽었을 수도 있다.

화가 난 루제르트가 율켄에게 항의했다.

“율켄경! 이게 무슨 짓입니까?”

어쭙잖은 연기를 때려치운 것으로 보아 많이 화가 난 모양이다. 율켄은 그런 조카가 가소롭기만 했다.

“어차피 안으로 들어갈 것이 아닙니까? 저 길잡이가 혼자 도망가 버리면 저희 둘 다 이곳에서 죽는 것은 분명한 일입니다. 제가 죽는 것은 상관없지만, 힐 제국의 왕자이신 루제르트님 마저 그렇게 둘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루제르트는 율켄의 가증스러운 속내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조소를 지은 루제르트가 말했다.

“하지만 내가 먼저 타인을 신뢰하지 않는다면 그 누가 나를 위해 일해주겠습니까?”

“제국의 왕자이신 루제르트님께 저 보잘것없는 용병의 신뢰가 필요하다는 말씀이십니까? 왕족의 신뢰란 이런 곳에서 낭비하는 것이 아니지요.”

율켄은 항상 이런 문제로 루제르트와 마찰이 있었고, 이번 여행도 예외는 아니었다. 루제르트는 이럴 때마다 자신이 힘없고 어린 왕자라는 사실을 뼈저리게 느껴야 했다.

“아무튼 경으로 인해 우리는 크리스가 정말 배신해도 화낼 수 없는 입장이 되었다는 것을 기억하시오.”

지금은 참아야 했다.

크리스가 떨어진 상황에 계속 싸울 수는 없는 노릇이라 말을 마친 루제르트가 나무에 묶어 놓은 밧줄을 잡고 구덩이 속으로 뛰어들었다.


작가의말

좋은 하루 되세요.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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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1

  • 작성자
    Lv.26 룰루랄라7
    작성일
    22.06.25 16:31
    No. 1

    뭔가 문장과 문장 사이, 대화와 대화 사이를 한 칸씩만 띄어준다면 보기가 편할 거 같아요~ 잘 보고 갑니다, 작가님~

    찬성: 1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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