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아팀 님의 서재입니다.

얼음산의 주인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아팀
작품등록일 :
2022.05.11 22:48
최근연재일 :
2022.08.21 22:00
연재수 :
75 회
조회수 :
2,204
추천수 :
122
글자수 :
371,246

작성
22.08.16 22:00
조회
42
추천
0
글자
11쪽

얼음산의 주인 72화 (2부 20화)

DUMMY

또각. 또각.


구두를 신은 발이 어두컴컴한 동굴 속을 거닐었다. 눈앞에 자욱하게 깔린 어둠이 그녀는 집어삼킬 듯 도사리고 있었지만, 그녀는 망설임 없이 그 속에 몸을 바쳤다. 어차피 자신도 어둠의 일부나 다름없다는 것을 알고 있으니 두려움 또한 없었다.


“로테. 왔어?”


어스름하게 보이는 작은 인영이 로테의 치맛자락을 잡아 왔다. 로테는 갑작스러운 접근에도 놀라지 않고 허리를 숙여 소녀의 등을 토닥였다.


“다녀왔어.”


따뜻한 온기가 닿았다 떨어지자 소녀가 물었다.


“그분에게 가는 거야?”


“그래. 왔으니 보고를 드려야지. 오래 걸릴 테니 기다리지 말고 밖에 나가 있어.”


그러나 소녀는 인형을 꽉 껴안은 채 절레절레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야. 난 여기가 더 좋아.”


“···그래.”


로테는 소녀를 지나쳐 쭉 걸었다. 어두컴컴한 동굴을 빠져나오자 시야에 빛이 들어왔다. 어렸을 적부터 수없이 드나든 이 낯익은 장소를 눈에 담은 그녀는 차라리 어두운 것이 더 나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똑똑.


“들어와라.”


아니다. 어차피 저자가 다 먹어 치울 것을.


문을 열자마자 보이는 새카만 덩어리를 보고 로테는 눈을 깜빡였다. 그건 그저 그녀의 심연이 만들어낸 환영일 뿐이었다. 눈을 다시 뜨자 자상한 인상의 노인이 그녀를 반겼다.


“다녀왔습니다.”


“어서 오렴. 그래. 어땠지?”


그는 늘 그랬듯 그녀를 보자마자 용건부터 꺼냈다.


[나를 보고 싶어 한다고 감히!]


로테는 목이 터져라 울부짖던 그 목소리를 떠올리며 말을 골랐다.


“바라멜, 그 아이가 맞더냐?”


로테는 혹시나 하는 노인의 얼굴 뒤에 숨었지만 몸집이 커 차마 다 가려지지 않는 기대감을 보며 담담하게 대답했다.


“아니요. 동명이인인 것 같습니다. 말씀하신 것과는 전혀 다른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왜 빈손이지?”


그렇게 말하는 노인의 얼굴은 웃고 있었다. 로테는 이것이 자상한 사람이고자 하는 그의 일말의 노력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럼 뭐해. 본성은 감춘다고 감춰지는 것이 아닌걸.’


“내가 분명 다른 사람일 경우 시체라도 가지고 오라 하지 않았느냐! 얼굴을 내가 직접 봐야 겠다고! 너, 제대로 보기는 한 거야?”


우드드득.


로테는 바닥의 타월이 깨져나가는 것을 보고도 눈 깜짝하지 않았다. 이 정도 분노쯤이야 그를 소싯적부터 보아온 그녀에게는 이미 익숙한 일이었다.


“네. 머리색과 눈동자색이 완전히 달랐습니다. 그리고 제가 그를 잡아 오지 못한 데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예전에 플레임이 말한 자를 기억하십니까? 새로운 물의 수호자. 제가 그를 만나고 왔습니다.”


균열은 그녀의 발에 닿기 직전에 멈추었다.


“뭐라고 했느냐···?”


“물의 수호자를 만나고 왔다고요.”


“으···. 헉!”


로테는 노인이 심장을 부여잡고 헐떡이는 모습을 무감동하게 보았다. 그녀는 그가 필사적으로 기어서라도 가려고 하는 곳이 어디인지 짐작하고 있었다.


“안심하십시오. 그녀의 상태는 이미 제가 확인하고 왔습니다. 플레임이 처음으로 그의 등장을 알렸을 때도 별 이상 없지 않았습니까? 결정적으로, 제가 만나봤을 때 새로운 물의 수호자는 아직 불완전한 것 같았습니다.”


“불완전하다고?”


로테는 당장이라도 방문을 박차고 나갈 듯이 굴었던 그를 진정시키는 데 성공했다.


“네. 그는 저에게 슈나의 위치를 요구했습니다. 그가 완벽해지기 위해서는 슈나가 필요한 것이 분명합니다.”


“그래? 그렇단 말이지···. 그 아이는 절대 내줄 수 없어. 절대로!”


피를 토할 것처럼 길길이 날뛰는 노인을 가만히 보고 서 있던 로테는 그가 어딘가 변했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고개를 갸웃했다. 그녀는 노인이 말을 멈추기를 기다렸다가 넌지시 질문했다.


“눈동자색이··· 조금 변한 것 같습니다?”


그동안 물의 힘을 갖기 위해 수없이 많은 시도와 그만큼의 실패를 겪은 그였다.


마법사가 되는 것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다름 아닌 운이다. 수호자에게서 뽑은 피를 주입했을 때 마법사가 되어 그 힘을 안정적으로 다루는 부류가 있는가 하면, 몸에 맞지 않아 금방 폭주하고 신체가 변형되어버리는 부류가 있다.


불행히도 노인은 후자였다. 마법의 창시자인 그가 정작 운이 없다는 점은 굉장히 모순적이었지만 그의 덕분에 억지로라도 힘을 몸 안에 붙들고 있을 수 있었다. 대신 그가 조금이라도 흥분할라치면 자꾸만 밖으로 터져 나오려 했다.


“아! 그렇지. 너는 잠시 자리를 비워서 모르겠구나! 제대로 봤다.”


노인이 희열에 찬 웃음을 지었다.


“문 박사가 드디어 방법을 찾아냈다! 로테, 내가 진짜 물의 수호자가 될 날이 머지않았어!”


‘문 박사.’


그는 얼마 전에 마법사들의 근거지에 합류한 자로, 불의 수호자 자렌 벨라블의 오빠이다.


‘호칭까지 붙인 거 보면 어지간히 마음에 든 모양이지.’


저 번뜩이는 눈동자가 완전히 물빛으로 차오르고 나면 그다음은 머리카락일 테다.


“하지만 효율이 너무 떨어진단 말이야···. 속도가 영 성에 차질 않아. 로테!”


혼자 중얼거리던 그는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며 그녀의 이름을 부르짖었다.


“새로운 수호자를 잡아 와! 그 녀석도 내가 가져야겠다!”


욕망 덩어리를 보며 로테가 부드럽게 미소 지었다.


“안 그래도 그럴 생각이었답니다. 조금만 기다려 주세요.”





쾅!


“흑!”


밖에서 순서를 기다리며 벽에 기대고 서 있던 문은 방문이 거칠게 열려 큰소리가 나자 흠칫 놀라며 자세를 바로 했다.


문 대신에 옆에 서 있던 에일린은 붉은 머리카락을 휘날리며 로테에게 항의했다.


“뭐야! 너 때문에 문 님이 놀라셨잖아!”


“아닙니다, 에일린. 저는 괜찮습니다.”


로테의 차가운 눈이 그들을 스윽 훑었다.


“윽···!”


본능적인 두려움을 느낀 에일린은 어쩔 수 없이 움츠러들었다. 문은 그녀를 가리기 위해 살짝 앞으로 나섰다.


“로테, 화가 난 겁니까?”


문도 그녀가 무서웠다. 그녀가 그를 싫어한다는 건 저 눈빛만 봐도 알았다.


‘싫어한 다기보단 혐오에 더 가깝겠군.’


문이 처음 이곳에 온 날도 로테는 저런 눈을 하고 그녀를 보았다. 그러나 처형당할 뻔한 그를 살린 것도 바로 로테였다.


“문. 네가 새로운 방법을 개발했다지. 그분께서 너를 많이 칭찬하셨다.”


“아, 네. 그 누구나 부작용 없이 약물을 주입할 수 있는 방법입니다. 효율이 기존의 십분의 일도 되지 않아 아직 연구가 많이 필요하지만요.”


문이 오기 전 마법사는 두 세대로 나뉘었다. 일 세대 마법사는 어린아이들로만 구성되어 있는 것이 특징이며, 많은 부작용 대신 강력한 파괴력을 지닌 자들로, 로테가 이 일 세대 마법사의 시초이다. 이 세대 마법사는 일 세대 이후 마법에 동조하는 사람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구성된 자들로, 에일린이 이에 해당한다.


마법사는 아무나 되는 것이 아니다. 수호자의 피를 주입하고 폭주하지 않으면 마법사가 된다. 폭주하고 죽어버리면 그것으로 끝이다. 또한, 한꺼번에 너무 많은 양을 주입해서는 안 되며, 조금씩 여러번 나눠야 했다.


‘처음에는 이렇게 무식한 방법일 줄 상상도 못했지.’


그러니 결국 학습을 통해 마법사가 될 수 있다는 신문 기사는 거짓이었던 것이다. 수호자의 피가 재료라는 것도 그에게는 큰 충격이자, 절망이었다.


“하하하! 약물이라···. 그렇게 부르면 피가 아니게 되나? 정말 웃기는군!”


로테는 어떻게든 자신의 행동에 정당성을 부여하기 위해 발버둥 치는 문이 너무 가소로웠다.


“누가 누굴 비웃는 겁니까? 당신도 마법사인 주제에.”


“네가 만든 방법으로 탄생한 마법사를 삼 세대라 부른다지?”


“그렇다고 하더군요.”


솔직히 그도 그동안의 투병 생활로 인해 쌓여온 의학 지식들이 이곳에 도움이 될 거라곤 상상하지도 못했다.


“배알도 없는 자식.”


문은 뜬금없이 그를 향해 날아온 욕설에 놀랐다. 얼어있는 그 대신에 에일린이 로테에게 화를 내었다.


“너! 당장 문 님에게 사과해!”


“그새 저놈의 개가 다 되었군. 에일린.”


현재 에일린은 문의 부하를 자청하고 있었다. 마법사의 본거지로 돌아온 에일린을 반긴 것은 새로운 실험이었다. 이곳에는 문 말고도 다른 박사들이 있는데, 그들 모두 그분의 총애를 받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벌인다. 그중 한 사람이 임무에서 실패하고 돌아온 에일린을 요구했고, 문이 이를 막아주면서 두 사람은 친해졌다.


“두 분 다 그만하십시오.”


싸우기 일보 직전의 두 여자를 말린 문은 노려보는 로테를 피하지 않고 나섰다.


“당신이 뭘 말하는지 압니다. 하지만 저는 제 여동생을 지키기 위해 여기에 동참하는 겁니다.”


“글쎄, 네 선택이 어떤 결과를 불러올지는 아무도 모르지. 그 끝이 좋을 것 같은가?”


로테는 눈앞의 낙관주의자를 비웃었다.


“설사 그렇다 해도 내가 가만 보고 있을 거라 생각하지 마라.”


문은 울컥해서 입을 열었다. 그로서는 로테가 왜 그를 이렇게까지 싫어하는지 알 수 없었다.


“본인이나 처신 똑바로 하십시오. 당신이 가끔 몰래 사라지는 걸 알고 수군거리는 자들이 한둘이 아닙니다. 설마 다른 마음을 품고 계신 것은 아니지요?”


“훗. 궁금하면 따라와 보던지. 용기도 없는 놈들이 뒤에서 수군거리는 걸 내가 무서워할 것 같나?”


“문?”


싸우던 세 사람은 입을 딱 다물었다. 모퉁이 뒤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는 그들을 긴장시키기에 충분했다.


“여길 어떻게? 피, 피해요!”


문은 로테와 에일린에게 속삭였다. 로테는 이미 사라지고 없었고, 에일린이 도망치는 사이 문은 목소리의 주인공을 맞이하러 모퉁이 쪽으로 뛰었다.


“윽, 저런. 죄송합니다.”


“문!”


문의 가슴에 머리를 부딪힌 그녀는 씩씩하게 머리를 두어 번 문지르더니 밝은 목소리로 그를 맞이했다.


“문이 맞았네. 목소리가 들리길래. 그런데 여긴 어디야? 이런 곳이 있었어?”


“여긴 어떻게 오신 겁니까? 병사들이 지키고서 있었을 텐데···.”


“후훗-. 병사들 따돌리는 건 이제 식은 죽 먹기지!”


그를 향해 장난스럽게 웃어 보이는 여인, 흙의 수호자 리체 뮤아레트의 얼굴은 정말 아름다웠다. 곱슬거리는 긴 머리카락은 황금으로 된 강을 보는 듯했으며, 맑고 투명한 금빛 눈동자는 보석처럼 각도에 따라 오색찬란하게 반짝였다.


그러나 문은 그 아름다운 얼굴을 보고도 황홀해할 틈도 없이 리체를 반대편으로 끌어당기기 급급했다.


“이곳은 하인들만 오는 곳이에요. 황녀님께서 막 들어오시면 그들이 놀랍니다.”


“헉! 몰랐어! 내가 괜히 사람들을 불편하게 만들었구나. 나는 그냥 베카를 찾아 나왔을 뿐인데···. 어제 산딸기를 따러 가자고 했단 말이야.”


“그러셨군요. 베카는 제가 찾아드리겠습니다. 자, 나가요.”


문은 리체의 어깨를 잡고 지긋이 밀어 신속하게 그곳을 빠져나갔다.


스윽.


기둥 뒤에 숨어 그 모습을 보고 있던 로테는 그들이 사라지자 한참을 그대로 서 있다가, 다시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작가의말

여러분, 항상 밥 잘 챙겨드시고 건강하세요. 감사합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얼음산의 주인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장기 휴재 공지입니다. 22.08.21 28 0 -
공지 연재 주기 공지 22.06.10 27 0 -
75 얼음산의 주인 75화 (2부 23화) 22.08.21 25 0 11쪽
74 얼음산의 주인 74화 (2부 22화) 22.08.19 26 0 12쪽
73 얼음산의 주인 73화 (2부 21화) 22.08.18 27 0 11쪽
» 얼음산의 주인 72화 (2부 20화) 22.08.16 43 0 11쪽
71 얼음산의 주인 71화 (2부 19화) 22.08.15 24 0 11쪽
70 얼음산의 주인 70화 (2부 18화) 22.08.14 31 0 11쪽
69 얼음산의 주인 69화 (2부 17화) 22.08.12 32 0 11쪽
68 얼음산의 주인 68화 (2부 16화) 22.08.11 21 0 11쪽
67 얼음산의 주인 67화 (2부 15화) 22.08.07 25 0 12쪽
66 얼음산의 주인 66화 (2부 14화) 22.08.05 26 0 11쪽
65 얼음산의 주인 65화 (2부 13화) 22.08.04 23 0 11쪽
64 얼음산의 주인 64화 (2부 12화) 22.08.02 29 0 11쪽
63 얼음산의 주인 63화 (2부 11화) 22.08.01 26 0 11쪽
62 얼음산의 주인 62화 (2부 10화) 22.07.31 23 0 11쪽
61 얼음산의 주인 61화 (2부 9화) 22.07.29 16 0 12쪽
60 얼음산의 주인 60화 (2부 8화) 22.07.28 15 0 11쪽
59 얼음산의 주인 59화 (2부 7화) 22.07.26 16 0 11쪽
58 얼음산의 주인 58화 (2부 6화) 22.07.25 35 0 11쪽
57 얼음산의 주인 57화 (2부 5화) 22.07.24 22 0 11쪽
56 얼음산의 주인 56화 (2부 4화) 22.07.22 19 0 12쪽
55 얼음산의 주인 55화 (2부 3화) 22.07.21 21 0 11쪽
54 얼음산의 주인 54화 (2부 2화) 22.07.19 20 0 12쪽
53 얼음산의 주인 53화 (2부 1화) 22.07.18 23 0 12쪽
52 얼음산의 주인 52화 22.07.05 24 0 11쪽
51 얼음산의 주인 51화 22.07.04 28 0 12쪽
50 얼음산의 주인 50화 22.07.03 20 0 11쪽
49 얼음산의 주인 49화 22.07.01 19 1 11쪽
48 얼음산의 주인 48화 22.06.30 18 0 11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