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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팀 님의 서재입니다.

얼음산의 주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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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팀
작품등록일 :
2022.05.11 22:48
최근연재일 :
2022.08.21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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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8.18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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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음산의 주인 73화 (2부 21화)

DUMMY

그는 계속해서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병사들이 훈련을 위해 떠난 지금, 돌아다니는 개미 새끼 하나 없었지만 그에게는 그 적막함조차 수상하게 느껴졌다.


끼이익-.


드디어 목표하던 방에 들어가는 데 성공했다. 한숨 돌린 그는 미리 봐두었던 자리를 향해 살금살금 이동했다.


온통 은빛으로 화려하게 장식된 방에서 갈색 통을 찾기란 식은 죽 먹기였다. 통을 집어 든 그는 망설임 없이 안에 든 내용물을 쏟아 버렸다. 대신, 자신이 챙겨온 것을 꺼내 빈 통에 채워 넣었다.


여러 번 해본 것인지 굉장히 능숙한 모양새로 일을 마친 그가 자리를 뜨려 할 때였다.


“역시 그랬군.”


바로 뒤에서 들려오는 음울한 목소리에 깜짝 놀란 남자는 곧바로 억센 손에 의해 입이 틀어막혔다.


“읍···! 읍!


그는 발버둥을 쳐 보았으나 결국 천천히 의식을 잃어갔다.


풀썩.


습격자는 남자가 손댄 갈색 통을 품 안에 갈무리하고 똑같은 것을 꺼내 올려놓았다. 어차피 이 방의 주인은 둔해서 통이 바뀌었는지 어쨌는지 알아차리지도 못할 것이다. 그는 기절해 있는 남자를 끌고 사라졌다.


질질 바닥 끌리는 소리가 점점 희미해졌다.





부글부글.


기포가 떠오르는 역동적인 소용돌이 앞에서 긴장한 기색이 역력한 크리스가 서 있었다. 그는 결의에 찬 표정으로 오른발을 떼어 소용돌이 안으로 집어넣었다.


“후···. 제발!”


크리스는 나머지 신체도 소용돌이 속으로 밀어 넣었다.


그러나 눈을 떴을 때, 그는 여전히 수호자궁에 속, 그의 방에 있었다.


실망한 크리스는 머리를 쥐어뜯었다.


“아-. 왜 안 되지?”


크리스의 방 안은 이미 오전 내내 만들어낸 실패작들로 가득했다. 방 곳곳에서 같은 모양의 푸른 소용돌이가 뱅글뱅글 회전했다. 이는 모두 그가 이세계에 올 때 봤던 슈나의 포탈을 흉내 낸 것이다. 그러나 겉모습만 그럴듯할 뿐이지 실제로 통과해 봤을 때 다른 장소로 이동이 된다거나 하는 것은 일절 없었다.


황궁에 돌아온 뒤 방안에만 틀어박혀 물의 힘 연구에 전념한 지 일주일째, 크리스는 아무런 소득도 얻지 못했다.


“차원이동 같은 거창한 건 안 바라니까 공간 이동 정도만 할 수 있으면 좋겠는데 말이지.”


그는 공간이동을 시도하는 중이었다. 이는 일찍이 크리스가 물의 힘을 다룰 수 있게 된다면 시도해 보려고 생각해 두었던 것이다.


“슈나는 하는데 왜 나는 안 되지? 역시 물님을 찾아야 하는 건가.”


공간 이동만 할 수 있다면 슈나의 몸을 쉽게 가지고 올지도 모르는데.


문제는 하나 더 있었다. 그건 바로 여전히 물님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 눈을 크게 떠도 보이지 않고 공간을 물로 가득 채워도 보이지 않고 심지어는 물웅덩이를 만들어 놓고 그 속에 얼굴을 들이밀어도 보이지 않았다.


혹여 누가 볼까 봐 문을 걸어 잠근 지는 오래였다. 그가 물님을 만나겠다고 생쇼 하는 모습을 갑작스럽게 들어온 궁의 하인이나 황제의 시종장이 보게 되면 미친 사람으로 오해받을 것 같아서였다.


“형, 뭐해?”


“윽! 깜짝아. 루제!”


도둑이 제 발 저리다고. 안 그래도 현타와서 혼자 민망해하고 있던 크리스는 창문 쪽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깜짝 놀랐다. 그곳에는 머리만 빼꼼 내민 루제르트가 그를 똘망똘망하게 쳐다보고 있었다.


‘창문을 깜빡했군.’


사실 저곳은 일부러 닫지 않았다. 루제르트가 크세르트의 혹독한 교육을 피해 도망쳐올 땐 하인들에게 들키지 않으려고 꼭 창문을 타고 왔기 때문이다.


“오늘도?”


“응···.”


훌쩍 뛰어 들어온 루제르트는 한숨을 푹 쉬며 침대 위에 풀썩 엎어졌다.


“살려줘. 진짜 죽을 것 같아.”


“하하···. 그건 나도 못 할 것 같은데.”


크세르트는 고집 빼면 시체니까 말이다.


“그래도 그냥 앉아만 있는 것이 아니라 전보단 낫지 않아?”


크리스의 말처럼 루제르트는 요즘 밖을 나가는 일이 잦아졌다. 예전에는 이론 중심의 수업 위주였다면, 이제는 실전 훈련이 생긴 까닭이다.


“그건 조금··· 좋아. 그런데 그것도 그다지 맘 편한 일은 아니라서.”


“하긴. 옛날 제도들의 피해 사례를 조사하는 거니까.”


의외로 황제는 이번 헬버튼 사건을 겪으며 취약계층 의무 고용 제도에 주목했다. 이 제도는 부황이 만든 제도인데, 부황이 죽고 나서 사실상 방치되었다가 이번에 그의 눈에 띈 모양이었다.


[어설프게 만들어진 제도가 어떤 결과를 낳는지 너도 알아야겠지. 이 제도의 단점과 피해 사례를 조사하고 개선 방안을 찾아서 가져와라.]


루제르트는 저렇게 말하고 사라졌던 크세르트를 떠올렸다.


“으으···. 크세르트 형은 절대 봐주지 않을 거야. 요즘 이거 생각하느라 너무 머리 아파. 하나를 생각하면 다른 사람이 피해를 보고 그 사람 챙겨주자고 다른 걸 추가하면 또 다른 데서 불만이고. 어려워.”


얼굴을 이불 속에 파묻은 채 괴로워 몸부림치는 루제르트를 보며 크리스가 작게 웃었다. 그가 보기에는 이번 임무가 정의롭고 사소한 것도 그냥 넘기지 않는 루제르트에게 딱이었다. 게다가 루제는 다양한 사람들의 입장을 고루 살필 줄 알았다.


“그래도 너라면 아마 잘 해낼 거야.”


‘어라. 설마 황제도 그래서 루제한테 시키는 건가?’


짐작 가는 것이 하나 있었지만, 크리스는 루제르트에게 말하지 않기로 했다. 대신에 그는 붉은 차가 담긴 유리병을 들어 보였다.


“루제, 차 한잔 줄까? 수호자 궁 사람들이 준 건데, 머리를 맑게 해줘서 집중력 향상에 도움이 되는 차래.”


“오, 고마워.”


그들이 하도 밖에 나오지 않는 그를 걱정하길래 연구 중이라 했더니 뜻밖에 이런 선물을 받게 되었다.


‘정말 친절한 사람들이야.’


크리스는 아름다운 물빛 찻잔을 들어 차의 향기를 음미했다. 차향이 코끝에 스며들 듯이 크리스도 슬슬 이곳에 정이 들어가고 있었다.


“아, 맞다. 형. 바라멜이 이곳에 올 거래. 이 얘기를 하러 왔···”


“푸!”


크리스는 차를 도로 뱉었다.


“뭐, 뭐야! 괜찮아?”


“콜록, 콜록!”


루제르트가 벌떡 일어나서 크리스의 등을 두드렸다.


“켁, 아파!”


오히려 등짝이 더 아파진 크리스는 몸을 비틀어 빼냈다. 이럴 때마다 새삼 느끼는 거지만 루제르트는 힘이 꽤 세다.


“아니, 바라멜이 오는 게 이렇게까지 놀랄 일이야?”


크리스에게는 놀랄 일이 맞았다.


“아···. 그게. 나 사실 걔랑 절교했거든.”


“에에엥?”


크리스는 일단 차가 질질 흐르는 루제르트의 찻잔을 바로 해주었다.


“아니, 얄미워서. 같이 가자더니 나만 떨렁 그 눈밭에 두고 사라진 것도 괘씸하고, 내가 얼마나 찾고 있었는지도 다 보고 있었으면서 나타나지 않은 것도 밉고···. 그래 놓고 또 끝까지 모르는 척한 것도 다 화가 나.”


크리스가 이렇게까지 섭섭해하는 모습은 처음 본 루제르트는 조금 놀랐다.


“더 이상 안 보고 싶어. 얘가 뭘 예쁘다고 나는 지금도···.”


크리스는 그의 방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는 노력의 흔적들을 보며 힘없이 어깨를 늘어뜨렸다.


“형은 바라멜이 슈나 님의 분신이라고 확신하고 있구나.”


“응. 제논이 바라멜에게서 물 냄새가 난대.”


“그래도 바라멜은 물빛이 없잖아.”


“힘을 사용하지 않으면 나도 그런 걸 뭐. 지금으로서는 그냥 그 애도 나처럼 완전하지 않은가 보다고 생각하고 있어.”


“흐음···. 그럼 괜히 부른 건가.”


크리스는 루제르트의 혼잣말에 놀라 물었다.


“네가 부른 거였어?”


“응. 내가 마차에서 바라멜이 마법사를 감지할 수 있다고 말했잖아. 앞으로 마법사를 상대하는 데 도움이 될 것 같길래 내가 형님께 부탁했어.”


“그래?”


그러고 보니 제논도 물 냄새가 난다고 하는 걸 보면 마법사를 감지할 수 있는 것 같았다. 정작 수호자인 자신은 아무것도 느낄 수 없는데도.


‘타고난 체질이라는 게 있는 건가?’


“아무튼. 나는 안 만날 거야. 내 앞에 나타나지 말라고 했으니 그 애도 굳이 나를 만나러 오진 않겠지.”





이튿날 오후.


“···.”


크리스는 황제의 부름을 받아 회의에 착석했다. 그리고 회의실에는 그가 다신 보지 말자고 했던 바라멜도 함께였다.


“안녕.”


크리스는 망부석처럼 뻣뻣하게 굳었다. 그런 그를 측은하게 보던 루제르트가 대신 바라멜의 인사를 받아주었다.


“멀리까지 오시느라 고생 많으셨습니다.”


“안녕하십니까. 황자님이셨군요. 어쩐지 처음 뵈었을 때부터 귀한 분이실 것 같았습니다.”


“어, 아. 감사합니다.”


루제르트에게는 슈나의 분신이 그에게 입발린 소리를 하는 지금 상황이 어색하게만 느껴졌다.


‘이런 성격이셨던가?’


옛날에 본 슈나를 지금의 바라멜에 대입해 보려 해도 너무 오랜 시간이 지난 터라 잘되지 않았다. 그저 부드럽게 웃는 슈나의 미소 한 조각만이 단편처럼 떠오를 뿐이었다.


때마침 도착한 황제가 좌중을 둘러보며 말했다.


“다들 오셨습니까. 소개는 필요치 않은 것으로 알고 있으니 바로 회의를 시작하죠.”


요즘 많이 바쁜 모양인지 황제의 눈 밑에는 다크서클이 선명하게 자리 잡고 있었다.


“오늘 오전에 휘셀에서 답신이 왔습니다. 물의 수호자와 그 사절단의 방문을 적극 환영한다고 하더군요.”


크리스에게는 좋은 소식이었다. 안 그래도 물님 건으로 빨리 휘셀에 가고 싶어 했던 그다.


“그럼 준비되는 대로 바로 떠나겠습니다.”


“편한 대로 하십시오. 제가 바라멜을 부른 이유는 그 또한 휘셀로 떠나는 사절단에 포함했으면 하기 때문입니다.”


끄덕이고 있던 고개가 딱 멈추었다.


“저는 영광입니다.”


“굳이 그럴 이유가 있을까요?”


두 말이 동시에 튀어나왔다. 바라멜이 무슨 생각으로 이 계획에 찬성하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크리스는 절대 그와 함께 할 생각이 없었다.


“저는 이제 물을 다룰 수 있고 따라서 정체를 굳이 숨길 필요도 없으니 위험에 처할 일도 없거니와, 만약 그렇다 해도 충분히 대처할 수 있습니다. 사절단은 저와 루제르트 황자님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루제르트 황자는 이곳에 남을 예정입니다.”


“네?”


루제르트 본인도 처음 듣는 소리였는지 그가 당황해서 물었다.


“저, 저는 왜···?”


“내가 시킨 것들은 다 했느냐?”


“남겠다고 말씀드리려는 거였습니다.”


“자, 잠깐? 루제, 르트 황자님이 가지 않으신다고요? 그럼···!”


저 바라멜과 단둘이 가게 될 수도 있다는 얘긴데.


“아무리 수호자님이라 해도 혼자서 움직이시는 것은 추천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혹시 모를 위험에 대비하려는 것도 있지만, 힐 제국의 위신 문제이기도 합니다. 그러니 마법사를 감지할 수 있는 데다, 뛰어난 실력으로 소문이 자자한 그를 일행으로 데려가십시오.”


바라멜이 싱긋 웃으며 말했다.


“다시 말하지만, 저는 영광입니다.”


그 얼굴을 본 크리스의 혈압이 급격하게 솟아올랐다. 그러나 황제의 말이 틀린 것도 아니었고 여기서 두 사람 간에 뭔가가 있다는 것을 티 내고 싶지도 않았다.


벌컥!


황제가 있는 회의실 문을 열고 뛰어들어올 수 있는 이는 역시나 시종장뿐이었다. 긴급한 상황임을 알아차린 황제가 굳은 얼굴로 시종장에게 물었다.


“무슨 일인가?”


“폐하! 뮤아레트에서, 뮤아레트에서 답신이 도착했습니다!”


작가의말

편안한 밤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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