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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팀 님의 서재입니다.

얼음산의 주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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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팀
작품등록일 :
2022.05.11 22:48
최근연재일 :
2022.08.21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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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8.12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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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음산의 주인 69화 (2부 17화)

DUMMY

깨진 창문에 얇은 커튼만이 쓸쓸하게 흔들리고, 먹구름이 지나간 자리는 태양이 내리쬐어 눈부셨다. 바라멜은 루제르트와 제논이 사라지고 남은 자리에 우두커니 서 창밖으로 들어오는 밝은 빛을 막기 위해 손을 들었다.


“나, 나를 이제 어떻게 할 셈이냐?”


바라멜은 뒤에서 미약하게 들려오는 목소리에 그늘진 얼굴 그대로 뒤돌았다. 그제서야 대기하고 있던 부하들과 그 아래 결박된 헬버튼 남작이 눈에 들어왔다. 모두 숨을 죽이고 그의 행보를 주목하고 있었다.


“아-. 그렇군. 아직 끝나지 않았지?”


바라멜은 빙긋 웃었다. 그를 오래 보아온 사냥단원들은 저 표정이 바라멜의 심기가 꼬였을 경우에 나오는 것임을 알고 있었다.


“너희들. 저택 곳곳에 기름을 뿌려라. 이곳을 통째로 불태워 버리겠다.”


“뭐라고?”


헬버튼 남작의 입이 충격으로 떡 벌어졌다. 바라멜은 확인 사살하듯 다시 한번 단원들을 독촉했다.


“뭣들 하는 거지? 내 명령이 들리지 않나?”


그는 요지부동인 부하들을 보고 얼굴을 찌푸렸다가, 그들이 움직이기 시작하자 표정을 풀었다. 부하들이 머뭇거리는 것처럼 보였던 것은 아마 그의 착각일 것이다.


‘내가 조금 예민해진 모양이군.’


사냥단이 진짜 저택에 불을 지를 것처럼 본격적으로 움직이자 헬버튼 남작이 필사적으로 기어 다니며 사람이 방 밖으로 나가는 것을 막았다.


“안돼! 이 저택이 얼마짜리인지 알고 그러는 거냐? 네 이놈들, 거기 서!”


그러나 그 혼자서는 방만큼이나 커다란 문을 전부 막을 수 없었다. 그는 사냥단이 계단을 내려가는 모습을 황망하게 보고 있다가 남은 바라멜에게 매달렸다.


“바라멜! 대체 내가 뭘 잘못했다고 이러는 것이냐?”


바라멜은 바닥을 구르느라 옷도 구겨지고 먼지가 묻어 볼품 없어진 남작을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뭘 잘못했냐고? 헬버튼 남작. 슈나를 기억하는가?”


“뭐, 뭐···?”


대답을 잘해야 한다는 건 본능적으로 알았다. 그러나 차가운 바닥에 꿇어앉아 열심히 머리를 굴려봐도 그가 아는 슈나는 전제국민이 아는 그 딱 한 사람뿐이었다.


“슈나라면 물의 수호자님 아니신가?”


“네가 기억하는 건 그게 다인가?”


“아, 아니야? 그럼 얼마 전에 만난 남작 영애인가? 아니면 보석상?”


바라멜은 계속해서 헛다리만 짚는 남작을 보며 실소를 흘렸다. 그는 정말로 기억하지 못하는지 얼굴에 식은땀을 줄줄 흘리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니 허무하고, 허탈하고···.


“정작 이놈은 자기가 한 짓을 다 잊은 채 멀쩡히 잘 살고 있는데 나만···. 정말 바보 같아. 하하하···.”


“자, 잠깐, 귀띔이라도 줘! 분명 기억날 거다!”


“물의 수호자 슈나가 맞다. 그리고 그녀는 예전에 이곳에서 일하던 하인이지.”


헬버튼 남작은 생각지도 못한 사실에 일순 머리가 정지했다.


“그 슈나가 내 저택의 하인이었다고? 아니야, 그럴 리가···!”


“괴롭혔던 사람이 한둘이 아니라 기억나지 않는 모양이지? 슈나는 모진 매질을 견디다 못해 도망쳐 나왔다. 네 자식은 그렇게 끔찍하게 아끼면서 남의 자식 소중한 건 몰랐나 보군.”


“가족이었던 건가? 사과하겠다. 이렇게 빌 테니 제발 용서해 줘!”


헬버튼 남작은 울며 매달렸다. 바라멜은 그의 다리를 끌어안는 헬버튼 남작을 거칠게 차버렸다.


“힉···! 히끅!”


구석에 굴러간 남작은 그의 몸 위에 낙인처럼 떨어지는 사신의 눈동자를 보고 벌벌 떨었다.


“사과? 그런 건 애초에 원하지도 않았다. 네놈을 이 세상에서 지워버리겠어. 그게 내 용서다!”


쨍그랑!


기름통이 벽에 부딪혀 산산이 부서지며 누런 액체가 사방으로 튀었다.


“으아악!”


고작 기름에 맞고 숨넘어갈 듯 비명 지르는 남작을 바라멜이 차가운 눈으로 응시했다.


“이봐, 남작. 얼마 전에 여기서 10년 넘게 일한 집사가 실종되어 새로 뽑은 일이 있었지. 그 사람이 어떻게 되었는지 알겠나?”


바라멜의 손에는 어느새 불붙은 성냥이 쥐어져 있었다.


“끝이다.”


그는 눈물 콧물 다 빼며 우는 헬버튼 남작을 향해 성냥을 떨어뜨렸다.


‘이대로 다 타버리겠지. 이놈도, 불쾌한 기억들도.’


···


그러나.


짝!


떨어지는 성냥을 보며 멍하니 감상에 젖어 있던 바라멜의 시야에 갑자기 시야에 커다란 손이 불쑥 나타났다.


“앗 뜨거!”


그 손의 주인은 겁도 없이 맨손으로 불꽃을 잡아 비볐다.


바라멜은 일순 자신이 헛것을 보는 줄 알았다. 그가 고대하던 순간을 방해한 사람이 다름 아닌 그의 부하 세르갈이었던 것이다. 세르갈은 손에 그을린 자국을 열심히 입으로 불고 있었다.


“후! 후!”


“뭐야. 세르갈?”


“하하···. 단장.”


의심스러운 눈초리에 세르갈이 어색하게 웃었다.


“지금 이게 무슨 짓이지! 너 설마 이놈과 한패였던 거냐!”


세르갈은 얼토당토않는 의혹을 부인하기 위해 재빨리 손사래를 쳤다.


“아니요! 절대 아닙니다! 제가 왜 헬버튼 남작 같은 거랑 한패를 합니까? 단장도 알잖습니까, 제가 저놈한테 당하고 산 거.”


“그런데 왜!”


“단장.”


세르갈은 바라멜이 무서웠다. 그리고 그의 행동이 어떤 파장을 불러올지가 두려웠다.


“저희는 헬버튼 남작을 죽이고 싶지 않습니다.”


“뭐라고? 농담이지?”


바라멜은 믿을 수 없다는 듯 눈을 크게 뜨고 되물었다. 그러나 세르갈의 말이 농담이 아니라는 건 그의 올곧은 눈을 마주 보고 있는 스스로가 가장 잘 알았다.


“어째서?”


“억울하게 감옥에 갇혀 있는 사람들도 전부 구해냈고, 마법사도 없잖아요. 저희 목적은 다 이룬 셈입니다. 그리고,”


세르갈은 바라멜이 뭐라 하기 전에 황급히 뒷말을 꺼냈다.


“황제 폐하께서 보낸 사람들에게 헬버튼 남작의 민낯이 다 까발려졌으니 곧 응당한 처벌이 내려질 겁니다. 그거면 되지 않을까요? 저희는 이놈이 그동안 남을 괴롭힌 만큼 벌을 받았으면 했던 거지 일가족이 죽고, 집이 불타고, 많은 사람이 다치는 걸 원한 게 아닙니다.”


“단장님!”


“죄송합니다. 죽이지는 마시죠!”


어느새 다른 사냥단원들도 우르르 들어와 바라멜의 주위를 에워싸고 애원했다. 바라멜은 크게 당황하며 그들을 둘러보았다.


“뭐야, 너희들! 비켜라, 비켜!”


바라멜은 그를 둘러싸고 있는 부하들을 뚫고 헬버튼 남작에게 다가가려 했지만 사냥단원들이 하나같이 건장하고 튼튼한 사람들이라 쉽지 않았다. 그들은 바라멜이 아무리 뒤로 내던져져도 끈질기게 다시 그에게 들러붙었다.


오랜 실랑이 끝에 사냥단원들은 바라멜을 헬버튼 남작과 멀리 떨어뜨리는 데 성공했다. 그 와중에 잭은 바라멜의 바지춤에서 성냥까지 빼 창밖으로 멀리 던져버렸다.


몸싸움하느라 지친 바라멜이 씩씩거리며 그의 부하들을 노려보았다.


“헉, 헉. 너희들!”


“헉, 단장.”


“모두 험악하기 그지없는 놈들이라 해서 뽑아놨더니만, 헉, 나를 돕지 못할망정 감히 이런 짓을 해?”


“정말, 헉, 죄송합니다! 저희 사실은, 헉, 험악한 척했던 거였어요!”


“뭐?”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것처럼 바라멜의 머리가 띵 하고 울렸다.


“헬버튼 이놈한테 복수는 하고 싶고, 단장이 험악한 놈들 아니면 안 뽑는다고 해서 일부러 그런 척했습니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우렁찬 함성에 정통으로 맞은 바라멜은 얼굴이 벌게졌다. 믿었던 부하들에게 속았다는 배신감 때문에 온몸이 부들부들 떨렸다.


바라멜이 부하들에게 버럭 화를 내려는 그때, 밖에서 무언가 이질적인 기운이 감지되었다.


사냥단원들은 화내던 중에 단장이 갑자기 벽을 뚫어져라 쳐다보자 뭐가 있나 싶어서 덩달아 텅 빈 벽을 힐끔거렸다.


“드디어 왔나···!”


바라멜은 기운이 느껴지는 쪽을 바라보며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 그는 흥분해서 그대로 창문을 뛰어 넘으려다가 부하들이 생각나 뒤돌아 경고했다.


“너희는 나중에 보자. 그냥 넘어가지 않을 줄 알아!”


그 말을 마지막으로 바라멜은 창문을 훌쩍 넘어 그대로 사라졌다.


“···.”


태풍이 지나간 것처럼 잠시간 남겨진 사람들 속에 정적이 흘렀다. 이윽고, 멀찍이 서서 눈만 굴리고 있던 사냥단원들이 슬금슬금 창가로 다가갔다.


“야, 세르갈. 한번 봐봐.”


“뭐. 인마 니가 봐.”


“갔어?”


“어, 갔어, 갔어!”


“흐어어어~!”


바라멜이 완전히 사라진 것을 확인한 그들은 긴장이 풀려 너도나도 할 것 없이 바닥에 드러누웠다.


“죽는 줄 알았다!”


“서, 성공했다.”


“우리 잘한 거겠지?”


“당연하지. 단장이 저 쓰레기를 죽이는데 손을 더럽히게 할 수는 없잖아.”


“그건 그래.”


긴장을 너무 많이 해서 그런가 몸에 더 이상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야, 세르갈. 미안하다.”


“아 맞다. 나 뒤에서 민 자식 누구냐?”


“어쩔 수 없잖아! 성냥이 떨어지는데.”


사냥단원들은 일단 바라멜의 지시에 따르는 척 밖으로 나갔지만 사실, 문 뒤에 숨어 두 사람을 지켜보고 있었다. 언제쯤 말려야 할지 고민하다가 성냥 떨어지는 걸 보고 놀라서 세르갈을 밀어버리기는 했지만, 그만큼 말을 꺼내기가 너무 어려웠었다.


“우리가 어쩌다 이렇게 되었냐···.”


각자 흩어져 떠돌 당시만 해도 그들은 누구보다 헬버튼 남작을 증오하는 사람들이었다. 애초에 그들이 바라멜의 부하가 된 것도 그가 헬버튼 남작에게 복수하고 싶어 하고, 그만한 힘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들의 생각은 점차 바뀌었다.


겉보기로는 완벽해 보이지만 무조건 험악한 사람을 뽑는다더니 검증도 하지 않고 덜커덕 믿어버리는 어딘가 허술한 사람.


누구보다 차가운 얼굴을 하고 있으면서 분홍 머리를 두건으로 가리고 다니는 잭에게 겉모습으로 판단하는 건 못 배운 사람이나 하는 짓이니 답답하면 쓰지 말라고 말해준 웃긴 사람.


입으로 떠들고만 다니는 사람들보다 훨씬 공명정대하며 여태껏 만나본 대장 중 제일 괜찮은 사람.


그들은 바라멜과 함께 다니는 동안 그를 진심으로 아끼게 되어 버렸다.


그래서 그가 헬버튼 남작을 죽이게 둘 수는 없었다. 그들 중 일부는 살생이 생각보다 훨씬 찝찝한 일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바라멜은 사라진 집사가 죽은 줄 알고 있었지만, 이것도 사실은 그들이 대신 처리한다고 끌고 가서는 적당히 손봐주고 끝냈다.


축 늘어져 천장을 보고 있던 세르갈이 고개를 휙 돌려 롬에게 말했다.


“이봐, 당신. 헬버튼 남작을 처벌해 준다는 말 꼭 지켜야 해.”


“그래. 나랑 같이 온 사람들이 생각보다 꽤 대단한 분들이라 걱정하지 않아도 될 거다.”


“이래 놓고 아무 소식도 없으면 그땐 진짜 쳐들어간다!”


“아, 알았다고!”


롬은 머리를 벅벅 긁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이미 한참 전부터 의식이 깨어있었다. 밖에서 어쩔 줄 몰라 하는 사냥단을 진정시키고 대안을 제시한 것도 그다.


“브랜든. 괜찮냐? 정신 차려봐.”


그는 한 손으로 기절해 있는 브랜든의 뺨을 찰싹찰싹 때려 깨웠다. 그러나 그에게서는 깨어날 기미가 조금도 보이지 않았다.


저쪽은 어찌어찌 해결된 것 같은데 오히려 롬 일행이 문제였다.


‘루제르트가 따라간 그놈은 또 뭐고 크리스는 어디 갔어? 셰비는 무사하겠지? 대체 뭐가 뭔지···.’


작가의말

날이 서서히 시원해지는 것 같습니다. 항상 건강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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