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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팀 님의 서재입니다.

얼음산의 주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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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팀
작품등록일 :
2022.05.11 22:48
최근연재일 :
2022.08.21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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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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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수 :
122
글자수 :
371,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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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7.01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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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얼음산의 주인 49화

DUMMY

“마법사님!”


사람들은 밤하늘의 혜성처럼 짠하고 등장한 구원자에게 몰려들었다. 이미 다 타버리고 난 도시에 남은 것이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그들은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이 되어 플레임에게 애원했다.


“저희를 도와주세요! 집도, 재산도 전부 불타 버렸습니다.”


“제발 불을 멈춰주세요!”


플레임은 그에게 매달려 비는 사람들의 일그러진 얼굴을 즐겁게 구경했다.


“자자, 진정하게. 그대들의 사정이 급한 것은 알겠으나, 이러면 내가 움직일 수 없지 않은가?”


사람들은 플레임이 곤란한 얼굴을 하자 아차 싶어 서둘러 물러났다.


“제발∙∙∙.”


플레임은 사람들 사이로 난 길을 지나 그들을 등지고 섰다. 그의 얼굴을 볼 수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어지자 참았던 웃음이 자유롭게 피어났다.


‘순조롭군.’


불을 끄는 것쯤이야 그에게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중요한 건 상황을 만들고, 그 안에서 어떤 스토리를 써나가느냐 하는 것이다.


수많은 도시 중 플레임이 굳이 이곳을 선택한 데에는 다 이유가 있었다. 이 도시는 교통의 요충지로, 상인들이나 모험가들이 수도에 들리기 전 마지막으로 정비하느라 들리는 곳이다.


‘그만큼 소문이 퍼져나가기 좋은 곳이지.’


그의 속내도 모르고 사람들은 오로지 플레임의 손짓과 그에 따라 사라지는 불꽃을 보며 탄성을 질렀다. 탄성이 들리자 신난 플레임의 손짓이 더욱 경쾌해졌다.


이 어리석은 제국이 악의적인 소문에 얼마나 약한지는 이미 검증을 끝냈다. 플레임이 수호자에 대한 말을 조금만 흘려주면 그의 의도대로 사람들이 알아서 부풀리고 깎아내리고 욕했던 것이다. 자렌에게 불의 망나니라는 별명이 붙었을 때, 그는 웃겨서 눈물까지 흘렸다.


소화 작업을 마친 플레임은 악의 씨앗을 심기 위해 그가 찜해 둔 아이를 찾았다. 아이는 나무 밑에서 그의 어미를 돌보고 있었다. 플레임은 소년에게 다가가 말을 걸었다.


“이봐, 꼬마야. 어머니는 좀 어떠시냐?”


아이는 그에게 씩씩하게 대답했다.


“아까 의원님이 봐주셨는데 잠시 정신을 잃은 것뿐이지 이상 없으시대요!”


“그거 다행이구만. 넌 괜찮으냐?”


“전 괜찮아요! 플레임 님은요?”


‘이거 봐라?’


플레임의 눈에 이채가 돌았다.


‘써먹기 좋겠는걸.’


플레임은 군침을 흘렸다. 그는 이런 강직하고 정의로운 아이야말로 최고의 먹잇감임을 알고 있었다.


“하하, 네가 이 몸을 걱정하느냐? 나는 마법이 있어서 괜찮다.”


그는 몸 손바닥 위에 붉은 구체를 만들어 아이에게 보여주었다.


“어때, 너도 마법사가 되고 싶지 않으냐?”


신비한 현상에 마음을 빼앗긴 아이는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네! 되고 싶어요!”


소년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어느새 모여 플레임과 그의 마법을 구경하고 있었다. 플레임은 구경꾼 모두가 들을 수 있게 일부러 목소리를 높여 말했다.


“그러면 곧 수도에 세워질 마법 학교로 와라! 그곳에서는 신분에 상관없이 재능과 노력만 있다면 누구든지 마법사가 될 수 있다.”


“우와아아아!”


플레임은 사람들의 반응을 보고 그의 연기가 잘 통했음을 직감했다.


“나는 이만 가야겠군. 불에 타고 있는 건 이 도시뿐이 아니니까 말이야.”


“네? 다른 도시도 이렇다는 말씀이십니까?”


플레임은 속으로 웃었다. 사람들은 그가 내민 미끼를 참으로 잘 물었다.


“그래. 지금 전국적으로 상황이 좋지 않아.”


“어째서 저희 불의 제국에 이런 일이 발생하는 건가요?”


사람들은 저마다 이유를 추측하며 수군거렸다. 플레임은 불안감이 사람들의 눈에 안대를 완전히 씌울 때까지 잠자코 기다렸다.


“혹시, 불의 수호자님께 무슨 일이라도 생긴 게 아닐까요?”


“흠∙∙∙.”


크지도 않은 침음성이 순식간에 웅성거림을 잠재웠다. 플레임은 사람들의 집중된 시선을 느끼며 입을 열었다.


“유감이지만∙∙∙. 그렇네. 불의 수호자께서 폭주하셨네.”


플레임의 말은 충격적이었으나, 지금의 상황을 설명하기에 가장 적합한 이유이기도 했다. 자렌에 대해 좋지 않은 소문을 많이 접해 본 사람들은 금방 납득하고 플레임의 말을 믿어 버렸다.


“세상에∙∙∙! 대체 이 제국이 어찌 되려고 이런 일이 벌어 진단 말인가!”


플레임은 사람들의 반응을 흥미롭게 지켜보았다.


“이럴 줄 알았어. 이번 수호자님 느낌이 안 좋다니까? 얼마나 사나우면 폭주까지 할까.”


“수호자 최초로군! 이 정도면 제국의 수치 아니야?”


사람들은 저마다 자렌을 욕하고 나섰다. 플레임은 그들에게 손뼉이라도 쳐주고 싶었지만, 다음 계획을 실행하려면 바삐 움직여야 했다.


“그럼 나는 이만 가지. 여기는 수도에서 가까운 곳이니 수호자를 만나지 않게 조심하게.”


플레임은 마지막으로 걱정하는 말과 함께 선한 미소를 보냈다.


도시 사람들은 이제 그의 말이라면 껌뻑 죽을 기세였다.


“감사합니다! 플레임 님, 부디 다른 도시도 구해주세요!”


플레임은 그를 응원하는 사람들을 향해 손을 한번 흔들어 주고 뒤를 돌았다.


그렇게 보게 된 것이다. 불이 꺼져 어둠이 내려앉은 숲속에 모습을 감추고 잠자코 그를 노려보고 있던 한 쌍의 붉은 눈동자를. 그것은 점차 그와 사람들에게 다가왔다. 처음엔 알아차리지 못했던 시민들도 자신들을 향해 걸어오는 희끄무레한 사람을 발견하고 주춤했다. 처음에는 경계였으나, 그 모습이 드러날수록 경계는 경악으로 바뀌었다.


반쯤 녹아내린 몸, 살점들 사이로 희끗희끗하게 보이는 뼈, 그리고 흉흉하게 빛나는 눈이 모두에게 공포를 불러일으켰다.


“헉∙∙∙! 저게 뭐야?”


“괴, 괴물이야!”


사람들이 비명을 지르며 플레임의 뒤로 숨었다.


플레임은 사람들이 뒤에서 미는 게 불쾌했지만, 그보다 놀라움이 더 컸다.


“자렌∙∙∙?”


저 산송장은 분명 자렌이 맞았다.


‘지금쯤 죽어있어야 했는데? 에일린은 어떻게 된 거지? 설마 무슨 실수라도 한 것인가?’


그의 마법이 수호자에게 졌을 리가 없다. 이는 이미 해적의 동굴에서 실험을 통해 확인한 것이다. 일단, 자렌이 에일린과 전투를 치른 것은 확실해 보인다. 그녀의 온몸을 뒤덮고 있는 상처는 마법의 흔적이 맞았다.


‘에일린과 싸우다가 그냥 운 좋게 도망친 것인가? 무슨 수를 쓴 거지.’


플레임이 열심히 머리를 굴리는 사이, 사람들도 그들의 수호자를 알아보고 하나둘 고개를 내밀었다.


“으악, 자렌 님이다.”


“하지만∙∙∙ 저 모습은 뭐지? 저게 폭주인가? 얼굴이∙∙∙.”


자렌의 한쪽 뺨은 녹아내려 하얀 이를 드러내고 있었다.


“욱∙∙∙!”


마을 청년은 말을 하다 말고 치밀어 오르는 구토기를 참지 못해 고개를 숙였다. 그를 시작으로 비위가 좋지 않은 사람들이 너도나도 입을 틀어막고 후다닥 어디론가 뛰어갔다.


‘쯧, 정말 가지가지 하는군.’


플레임은 속으로 혀를 찼다. 뭐가 어떻게 되고 있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상대가 먼저 말을 하기 전에 그가 선수를 쳐 주도권을 가져올 생각이었다.


“자렌 님∙∙∙”


그러나 자렌은 플레임이 말할 틈을 주지 않았다.


“플레임. 너를 황제 시해범으로 체포한다. 변명은 가서 듣겠다. 저항은 허용하지 않아. 순순히 따라와라.”


도시 전체가 순식간에 찬물을 끼얹은 듯 조용해졌다. 그들은 서로를 두리번거리며 방금 그들이 들은 게 맞는지 확인했다. 그만큼 자렌의 말이 가져온 파장은 컸다.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제가 황제 폐하의 시해범이라고요? 그렇다면 황제 폐하께서 돌아가셨다는 말씀이십니까?”


“네가 가장 잘 알지 않나? 참고로 에일린이라는 마법사는 황태자를 죽이려 했다가 현장에서 나에게 들켜 죽었다. 플레임, 너의 계획은 실패했어. 아 참, 죄목이 하나 더 있군. 벨라블 제국에 방화를 일으켜 무고한 생명을 짓밟은 범인으로도 체포한다.”


“그게 무슨∙∙∙!”


여기저기서 헉 소리가 나자, 플레임의 입가가 푸들 경련했다. 군중의 심리가 어지럽게 움직이는 것이 느껴진다.


‘에일린이 죽었다고? 저건 허세다. 하지만 여기서 수호자가 입을 더 여는 건 좋지 않겠군.’


그렇게 판단한 플레임은 자렌에게 다가갔다. 잠자코 말 듣는 척하다가 단둘이 남게 되면 죽일 생각이었다. 어차피 다 죽어가는 꼴을 하고 있으니 힘들일 것도 없어 보였다.


“안 돼요!”


그러나 플레임이 자렌의 앞에 도달하기도 전에 꼬마가 그의 앞을 가로막았다.


“플레임 님은 저희 어머니를 구해주신 분이에요! 이런 분이 황제 폐하를 죽이고 도시에 불을 질렀을 리가 없어요! 말도 안 돼!”


소년은 악을 써가며 플레임을 변호했다. 소년을 보고 용기를 얻은 사람들이 함께 나섰다.


“맞, 맞아! 플레임 님이 그러셨을 리가 없어!”


“플레임 님은 저희 도시를 구해준 은인이십니다! 방화범이 왜 다시 불을 끄겠습니까? 앞뒤가 맞지 않아요!”


그들은 오히려 이상한 모습으로 나타난 자렌을 수상하게 생각했다.


“사실은 이 모든 일의 범인이 자렌 님인 거 아닙니까?”


“그래 놓고 마법사님께 뒤집어씌우는 거 아니야?”


사람들은 하나로 뭉쳐 자렌에게 맞섰다.


“증거를 보여주십시오. 그렇지 않다면 저희는 이 도시의 은인을 보내드릴 수 없습니다.”


그들의 말을 묵묵히 듣고 있던 자렌이 드디어 입을 열었다.


“내가 우습지?”


그것은 생각지도 못한 것이어서, 결의에 차 있던 사람들의 얼굴이 순식간에 무너졌다.


“그렇겠지. 거의 다 죽어가는 데다 같은 편 하나 없는 수호자는 매우 우스워 보일 테니까. 하지만 괜찮다. 나는 무시당하는 것에 익숙하니까. 새삼 충격받지 않겠다. 하지만 너희가 낄 자리가 아니야. 물러서라. 가까이 있다간 너희들이 다칠지도 몰라.”


플레임이 간과한 것이 바로 이런 것이다. 자렌은 이미 말에 맞아 죽어본 적이 많은 사람이라는 것. 돌에 수없이 맞아떨어졌음에도 끝까지 기어올라 부활한 독개구리라는 것을 그는 몰랐던 것이다.


그 많은 비난과 욕설도 자렌을 흔들 수 없었다. 그에 반해 사람들은 정곡을 찌르는 말 한마디에 바로 동공이 흔들렸다.


“하, 하지만∙∙∙ 플레임 님은!”


“안 돼요! 플레임 님을 데려가게 둘 수 없어!”


사람들은 물러서지 않았다. 그 모습을 보고 자렌은 고민 끝에 강행돌파를 결심했다.


‘이러면 또 과격하다고 욕하겠지?’


하지만 이대로 플레임을 놓치게 되면 벨라블 제국은 더 큰 위험에 빠지게 될 것이다. 자렌이 굳게 마음먹고 행동을 개시하려는 찰나, 멀리서 말발굽 소리가 들려왔다.


‘이건 또 뭐야?’


플레임은 슬슬 성질이 났다. 그는 단지 불의 수호자 뒷담화나 하자고 여기 있는 게 아니었다. 그에게는 더 중요한 일이 있는데 여기서 자꾸 발이 묶이고 있었다.


빠른 속도로 수풀을 뚫고 등장한 것은 한 무리의 병사들이었다. 말을 타고 정신없이 달려온 그들은 모여있는 사람들을 보고 눈을 날카롭게 빛냈다.


“저기 있다!”


마을 사람들은 제국군을 보고 얼굴이 환해졌다가, 그들이 자렌의 뒤에 서자 어리둥절해했다.


말에서 뛰어내린 대장 병사가 자렌에게 인사하고 황제의 인장이 찍힌 두루마리를 그녀에게 내밀었다.


“수호자님, 저희는 수호자님을 도와 마법사와 그 잔당을 잡아들이라는 비네리온 황제 폐하의 명을 받고 도착하였습니다! 명하여 주십시오!”


작가의말

감사합니다. 좋은 주말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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