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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팀 님의 서재입니다.

얼음산의 주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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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팀
작품등록일 :
2022.05.11 22:48
최근연재일 :
2022.08.21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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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1,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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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8.01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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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얼음산의 주인 63화 (2부 11화)

DUMMY

“어. 루제르트. 저기 네 형 온다.”


“진짜?”


루제르트는 롬의 말을 듣고 잔디밭에서 벌떡 일어났다.


‘헉, 아직은 얼굴 볼 자신 없는데!’


“루제! 롬도 있네.”


어쩔 줄 몰라 도망가고자 했던 마음이 저 목소리 하나에 씻은 듯 사라진다. 큰 저택을 배경으로 크리스가 손을 흔들며 다가오고 있었다.


“둘이서 대련 중이었어?”


결국 루제르트는 크리스와 마주 보게 되었다.


“응. 형은 남작 부인과 대화해봤어? 좀 어떠셔?”


크리스는 흐음··· 하고 고개를 저었다. 창백한 표정은 그 안에서 무언가 일이 있었음을 짐작하게 했다. 루제르트는 조용히 입을 틀어막는 크리스의 어깨를 다급하게 붙잡았다.


“왜 그래! 또 토할 것 같아?”


“아냐. 괜찮아. 그냥 좀 울렁거리네.”


크리스는 방금 전 남작 부인의 방에서 있었던 일을 회상했다.


남작 부인은 방문이 열리자마자 보이는 큰 침대 위에 바른 자세로 누워 눈을 감고 있었다. 크리스는 집사에게 눈짓으로 남작 부인이 주무시고 계시는 게 아니냐 물었고, 집사는 괜찮다며 불러보라고 고갯짓했다.


[안녕하십니까, 남작 부인. 저는 황제 폐하께서 보낸 심리상담가 크릿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한참을 기다려도 그녀에게서 들려오는 대답은 없었다. 크리스는 머뭇거리다 한 번 더 불렀다.


[부인···?]


드디어 남작 부인이 천천히 눈을 떴다.


바스락-.


남작 부인이 고개를 돌리자 침대 시트에서 말린 꽃이 바스러지는 소리가 났다. 남작 부인과 눈을 마주하게 된 크리스는 그녀가 무슨 반응이라도 할 줄 알고 기다렸으나, 그녀는 그냥 크리스의 얼굴을 빤히 쳐다볼 뿐이었다.


크리스는 그 눈이 부담스러워졌다.


[···부인. 지금부터 상담을 진행하고자 합니다. 상담 전 몇 가지 사전 질문을 하려고 하는데 편히 대답해 주십시오.]


[···.]


사실 크리스라 해도 심리 상담을 알 턱이 없었다. 그도 책에서 이런 직업이 있다고 본 것이 전부였기 때문이다. 애초에 이 직업은 비전투원으로서 임무에 참가하기 위해 급조된 것으로, 원래 그는 그저 남작 부인의 말을 조금 들어주다 갈 생각이었다.


듣는 것은 자신 있으나, 말은 어려웠다. 크리스는 등 뒤에서 식은땀이 흐르는 것을 느끼며 입을 열었다.


[지금 증상이 정확히 어떻습니까?]


[···.]


[말을 하고 싶지 않으신 건가요, 아니면 말씀하시기에 불편한 점이 있으신 건가요?]


[···.]


그 흔한 끄덕임 조차 없었다. 크리스는 이 상황에서 더 이상 할 수 있는 게 없어 난감해졌다. 다만, 힌트가 하나 있다면 바로 저 눈동자일 것이다. 남작 부인의 눈은 분명 무언가를 말하고 있었다.


‘그게 뭘까.’


집사에게 물어봐도 [남작 부인께서는 말하는 것에 전혀 이상이 없으십니다]라는 기계적인 대답이 돌아올 뿐이었다.


결국 크리스는 한 시간 내내 남작 부인과 눈을 맞대기만 하다가 도로 나와야 했다.


“그게 다야?”


크리스의 회상이 끝난 뒤 루제르트는 황당하다는 반응이었다. 그건 크리스도 마찬가지였다.


“응. 심지어 내일 또 오래. 그건 왜지?”


남작 부인이 정말로 크리스와 대화를 하기 싫은 거라면 매일 오라고 먼저 제안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냥 형 괴롭히는 거 아니야?”


루제르트는 남작 부인이 크리스를 괴롭힌다고 생각했는지 언성이 높아졌다.


“내가 봐도 그런 거 같은데.”


옆에서 롬도 동의했다. 그러나 크리스의 생각은 달랐다.


“아니야. 그건 아닌 거 같아. 남작 부인 눈이···”


무슨 뜻이었을까? 그 비장한 눈동자는. 그의 속을 울렁거리게 하는 이건 또 어떤 감정의 노크인가.


“아무튼. 내일 또 가볼 생각이야. 뭐든 되겠지. 너무 걱정하지 마.”


크리스는 그를 위해 화내고 있는 루제르트의 머리를 쓰다듬으려 손을 뻗었다가 루제르트가 별로 좋아하지 않는 행동이란 사실을 상기하고 거두었다.


“루제, 시간 괜찮으면 같이 저녁 먹으러 나갈래? 이번엔 다른 식당을 가볼 생각인데.”


제논 찾기 2탄이다.


“미안. 나는 롬이랑 먹기로 해서.”


“앗, 그렇구나.”


크리스는 사실 루제르트가 거절할 거라 생각 못하고 예의상 물어본 거라 조금 놀랐다. 그러나 곧 ‘그럴 수 있지’ 하고 납득했다.


“아. 맞아. 같이 먹기로 했어.”


롬은 루제르트가 옆구리를 계속 찔러대자 하는 수 없이 뚱한 표정으로 맞장구쳤다.


“그럼 어쩔 수 없지. 다녀올게. 두 사람도 밥 맛있게 먹어.”


“응, 형도.”





“이봐, 센. 오늘은 네가 마차를 지켜라. 그리고 다른 사람들은 식재료를 주방으로 옮긴다. 자, 자! 빨리빨리들 움직여!”


마차에서 내린 짐꾼들이 저마다 상자를 짊어지고 신속하게 움직였다.


혼자 남겨진 센은 우두커니 서 짐꾼들의 사라지는 뒷모습을 보고 있다가 슬금슬금 마차에 올라탔다. 그는 안에 가득 쌓여있는 야채들 틈바구니에 아무렇게나 앉았다.


“안녕하십니까.”


머리 위로 그림자가 내려앉는다 싶더니 곧바로 사람의 말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쓱 든 그는 후드를 뒤집어쓴 사람을 발견했다.


크리스는 모자를 벗으며 그가 찾던 사람에게 반갑게 인사했다.


“센. 아니, 제논.”


쾅-!


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마차 한쪽 면이 박살 났다. 맨주먹으로 마차를 부숴버린 제논은 가공할 속도로 뛰쳐나갔다.


“쳇. 저 무식한 힘은 여전하네.”


크리스는 제논을 쫓아 달렸다. 제논은 도주로로 인도가 아닌 마차가 주차된 길의 바로 옆에 있던 숲을 택했다.


크리스의 눈 한쪽이 파랗게 빛나자 그의 발밑에서부터 제논이 뛰어가는 방향을 따라 긴 얼음 도로가 생겼다. 크리스는 그 얼음을 타고 빠르게 이동했다. 이렇게 하지 않으면 평범한 사람의 속도로 제논을 따라가지 못할 것이 뻔했다.


“저는 당신을 해치려는 게 아닙니다! 대화를 하고 싶습니다!”


크리스가 뒤에서 아무리 소리를 지른다 한들 제논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달렸다.


“젠장.”


빠른 속도 때문에 풍경이 빠르게 바뀌어 정신이 없었다. 옆을 지나가는 나무들이 훙- 훙- 하고 살벌한 소리를 내는 바람에 압박감마저 느껴졌다.


크리스는 다시금 정신을 집중해 힘을 발산했다. 이번엔 그의 오른쪽 눈도 파랗게 물들었다.


콰드득-!


얼음 도로의 생성 속도가 빨라졌다.


‘조금만 더···!’


얼음이 제논의 두 다리에 닿기 일보 직전이었다. 그러자 갑자기 제논이 옆에 있던 나무를 뽑아 크리스에게 던졌다.


휙-.


나무는 아슬아슬하게 크리스의 머리끝을 스치고 지나갔다.


쾅!


‘와, 큰일 날 뻔?’


크리스는 속으로 휘파람을 불었다. 그러나 공격은 이게 끝이 아니었다. 제논은 계속해서 그에게 나무를 날렸다.


‘아니, 쟤는 무슨 나무를 무 뽑듯 뽑아 던지네!’


한꺼번에 날아오는 나무들을 피할 길이 없었던 크리스는 전방에 가시가 튀어나온 구체를 소환했다.


나무가 날아와 가시에 박힐 때마다 그 충격으로 얼음벽이 진동했다. 그 뒤에 있던 크리스에게까지 충격이 전해지지는 않았지만, 대신 나무 때문에 시야가 막혀 버렸다. 그는 손짓으로 구체를 터트렸다.


파앙-!


막혔던 시야가 뚫리긴 했으나 문제는 제논 또한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는 것이다. 크리스는 여기저기 날아가 박혀있는 얼음 파편을 살펴보았지만, 어디에서도 찢어진 옷가지나 혈흔 같은 것은 보이지 않았다.


영리한 녀석이 나무를 던진 순간부터 크리스의 다음 공격을 예측하고 미리 숨었던 모양이다.


“하아···. 이래선 도망간 방향도 알 수 없겠는걸? 놓쳤네.”


크리스는 한숨을 푹 쉬며 뒤돌았다. 그러나 풀 죽은 뒷모습과는 달리 그의 숨은 입가에는 미소가 슬슬 번지고 있었다.


눈 깜짝할 사이, 무방비한 크리스의 뒤쪽으로 얼음 기둥이 솟구쳤다.


쾅!


크리스는 얼음 기둥에 주먹을 박은 채 멈춰 서 있는 제논의 얼굴을 보며 씩 웃었다.


“이럴 줄 알았지.”


드디어 잡았다.


함정에 빠졌다는 걸 깨달은 제논이 벽에 박힌 주먹을 빼내려 했지만, 이미 얼음이 그의 팔을 타고 몸집을 불리고 있었다.


얼음이 커질수록 크리스의 머리카락이 한줄기씩 서서히 물빛으로 물들었다.


“당신이 왜 굳이 숲속으로 도망쳤을까요? 지금은 저녁때라 거리에 사람이 많아서 그곳으로 도망쳤다면 저도 힘의 사용에 제약이 걸려 쉽게 빠져나갈 수 있었을 텐데.”


크리스는 낑낑거리는 제논을 보며 정답을 말했다.


“나를 사냥하기 위해서. 맞죠? 쫓기는 척 사실은 나를 잡을 기회를 노리고 있었던 거야.”


제논은 안 되겠는지 반대쪽 팔로 얼음을 내리치기 시작했다.


쩡- 쩡!


그러나 소용없었다. 얼음은 깨져도 곧바로 재생되었다. 제논은 몸의 절반이 얼어붙고 나서야 겨우 포기하고 몸을 축 늘어뜨렸다.


“대화.”


“말할 줄 아셨군요. 좋습니다. 대화하죠.”


크리스는 제논을 놓아주었다. 그 대신 혹시 모르니 그의 주변엔 방어벽을 쳐 놓았다.


“어떻게.”


“식당 주인에게 식당을 열고 싶으니 상단을 알려달라고 부탁했더니 친절하게 어디로 가라고 알려주던데요. 거기 갔더니 벽면에 마차 이동 경로랑 시간이 다 적혀있길래 그거 보고 제논 씨가 혼자 남을 때까지 기다렸죠.”


솔직히 그도 이렇게까지 쉽게 일이 풀릴 줄은 몰랐다.


“자, 저는 제논 씨에게 거래를 제안하려고 합니다. 제 피를 드릴 테니 슈나가 있는 곳을 알려주세요.”


크리스는 그의 긴팔을 걷어붙여 손목에 난 핏줄을 드러냈다.


“이걸 노린 게 맞죠?”


끄덕.


“슈나.”


“전대 물의 수호자요. 푸른 머리의 소녀인데, 당신이 마법사가 되었을 당시에 본 적 없습니까?”


“몰라.”


크리스는 턱을 쓰다듬었다. 모른다라. 저건 정말 모른다는 제논 나름 최선의 표현일 것이다.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 절망적이었다. 크리스는 아쉬운 마음에 한 번 더 물었다.


“사소한 거라도 좋습니다. 조금이라도 기억나는 것 없습니까? 장소라던가.”


“아니. 거래. 끝?”


크리스는 거래가 무산된 줄 알고 사납게 부글거리기 시작하는 제논을 진정시켰다.


“아뇨. 그럼 다른 걸 부탁드리겠습니다. 그건 -”



잠시 후, 제논의 손에는 붉은 액체가 든 주사기가 쥐어져 있었다.


“더.”


“안 됩니다. 하루에 그 이상 주입하면 폭주하게 되어 있어요. 내일 다시 오겠습니다.”


제논은 주사기를 물끄러미 쳐다보다 그대로 팔에 푹 꽂았다.


잠시 후, 주사한 자리가 터질 것처럼 부풀더니 제논이 꺽꺽거리며 등을 꺾었다.


크리스는 제논에게 물었다.


“왜 그런 고통을 감수하면서까지 마법사들에게 돌아가려 하는 겁니까? 가봤자 당신은 연구 대상이 되거나 이용당하지나 않으면 다행일 텐데.”


“아니!”


제논의 외침이 숲을 울렸다. 어두컴컴한 숲속에서 날카로운 이를 드러내며 으르렁거리는 그는 꼭 한 마리의 야수 같았다.


“마법사에게 돌아가려고 하는 게 아니었습니까?”


“―.”


제논이 단말마처럼 토해낸 그 단어에 크리스는 눈을 크게 떴다.


“··· 그렇군요.”


그의 입가에 쓸쓸한 미소가 걸렸다.



『모든 금빛새들은 은빛새를 두려워해야 할 것이다. 두 팔이 잘린 그들이 두 눈 부릅뜨고 너희를 노리고 있을 테니.』


작가의말

모두 행복한 8월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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