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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팀 님의 서재입니다.

얼음산의 주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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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팀
작품등록일 :
2022.05.11 22:48
최근연재일 :
2022.08.21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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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8.15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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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음산의 주인 71화 (2부 19화)

DUMMY

쏴아아아-.


크리스는 숲속을 헤매고 또 헤맸다. 하늘에 구멍 하나 없이 구름으로 뒤덮인 듯 쏟아져 내리는 비가 걸어온 흔적을 지워버려 길을 알 수 없었다.


땅은 질어져 발걸음을 더욱 무겁게 했다. 더군다나 어깨 한쪽에 짊어진 소남작이 자꾸 흘러내리는 바람에 여러 번 자세를 고쳐 잡아야 했다. 마음은 급한데 그만큼 속도가 나지 않았다. 그는 길눈이 어두운 자신을 처음으로 원망했다.


드디어 크리스는 그가 찾던 사람을 발견하고 걸음을 멈추었다. 커다란 바위 위에 바라멜이 앉아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쏴아아아-.


철퍽.


질퍽질퍽해진 땅바닥에 소남작이 떨어지며 난 소리에 바라멜이 이쪽을 돌아 보았다. 그 또한 크리스처럼 흠뻑 젖은 채였다.


쏴아아아-.


“여, 왔나? 소남작은 구했나 보··· 윽!”


바라멜은 말하다 말고 순식간에 뛰어오른 크리스에 의해 멱살이 잡혔다. 푸른얼음 알갱이들이 크리스가 지나간 자리에 어지럽게 남았다가, 비에 맞아 스르르 녹아내렸다.


서로의 검은 머리카락을 타고 방울방울 떨어지는 빗방울이 하나하나 자세히 보일 정도로 그들은 가까워졌다.


쏴아아아-.


바라멜은 수십 개가 넘는 문장을 목구멍에서 고르고 또 고르다가 겨우 한 마디를 밖으로 끄집어냈다.


“뭐.”


말해놓고도 너무 초라한가를 고민했다. 그러나 그의 고민은 잡힌 부분에서 전해져 오는 떨림 때문에 오래가지 않았다. 바라멜은 그것이 멱살을 잡고 있는 이놈에게서 나오는 것인지, 본인에게서 나오는 것인지, 둘 다인지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크리스는 바라멜을 스르르 놓아주었다.


“야!”


크리스가 이대로 가버리려고 하길래 바라멜이 재빨리 그의 손목을 낚아챘다. 아니, 낚아채려고 했지만, 크리스가 바로 뿌리쳤다. 그래서 바라멜의 손아귀에는 얼얼함만이 남았다.


바라멜은 크리스가 꼭 그에게 화가 난 사람처럼 행동하는 것이 어이없었다.


‘화내야 할 사람은 나야!’


“너 뭔데! 왜 항상 말을 하다 마는데? 할 말 있으면 그냥 해!”


“괜···.”


크리스는 상대의 격양에 옮아 무언가를 토해낼 듯 입을 열었다가 진정하고 길게 숨을 들이마셨다.


“··· 다시는 내 앞에 나타나지 마.”


바라멜은 순간 머릿속이 멍해졌다. 그 사이 크리스는 몸을 돌려 떠날 준비를 마쳤다. 이번에는 잡을 엄두가 나지 않아서 바라멜은 사라지는 뒷모습을 멍하니 보고만 있어야 했다.


“젠장!”


혼자 남은 그는 속에서 끓어오르는 무언가를 주체하지 못하고 바위를 맨손으로 내리쳤다.


“대체 뭐냐고 저 녀석!”


가까이서 볼 때는 몰랐는데 멀리서 보니 크리스의 머리카락뿐만 아니라 그 창백한 얼굴에서도 빗물이 줄줄 흐르고 있었다. 바라멜은 어째서인지 그 모습을 뇌리에서 지워낼 수 없었다.





크리스는 다시 정처 없이 걸었다.


그 아이가 무사한 것을 봤으니 되었다.


‘하지만 괜찮은 걸까?’


크리스가 고개를 들자 시간이 멈춘 것처럼 그의 주변으로 떨어지던 빗방울들도 함께 멈춰 허공에서 반짝였다.


그동안 얼음만 다룰 수 있다는 게 불편하면서도 한편으로 안심이 되었던 그다. 그 불완전함이 어디선가 그의 친구를 지켜주고 있을 것 같아서 그랬다.


그래서 이젠 물을 다룰 수 있다는 것을 알았을 때, 크리스의 심장도 같이 무겁게 떨어져 내렸다. 불안해진 그는 허겁지겁 바라멜을 찾아 헤맸다.


태평한 얼굴이 안심되었고, 그다음은··· 미웠다.


“형.”


멈춰 있던 시간이 다시 흐르기 시작했다.


쏴아아아-.


“루제.”


크리스는 루제르트가 이곳에 있는 게 어떤 의미인지 알고 있었다.


“제논을 만났구나.”


루제르트는 그가 말하려 했던 것을 크리스가 먼저 말하자 놀라서 우뚝 섰다.


“어? 어떻게 알았어? 설마 형도 제논을 만난 거야?”


“아니. 제논을 그곳에 보낸 게 나니까.”


크리스는 이해하지 못하고 눈을 깜빡거리는 루제르트를 일단 나무 밑으로 끌어당겼다. 비를 너무 많이 맞아서 감기라도 걸리면 큰일이니.


‘이미 충분히 맞은 것 같기는 하지만.’


겉옷을 벗어주고 싶어도 그의 수중에 있는 옷들도 다 젖어서 줄 수 있는 게 없었다. 대신 크리스는 루제르트의 옷을 한 움큼 움켜쥐고 쭉 쥐어짰다.


“사실 오늘 아침에 이것저것 말해줄 생각이었는데 바라멜이 갑작스럽게 나타나는 바람에 그러지 못했어. 네가 바라멜을 만나던 날은 사실 함께 제논을 보러 가자고 할 생각이었지. 네가 자리에 없어서 혼자 갔지만. 그리고···”


크리스는 그의 피를 주는 대신, 제논에게는 루제르트가 사람을 죽이려고 할 경우 막아달라고 부탁했다.


루제르트는 그의 설명을 듣고 고개를 푹 숙였다.


“형은··· 내가 그럴 거라는 걸 이미 알고 있었구나.”


“익숙해서.”


“응?”


“아마 내가 그동안 그런 얼굴을 하고 있었을 거야. 나 때문에 네가 살심을 배우게 된 것 같아서. 미안해.”


루제르트는 숨이 턱 막혔다. 미안하다니. 절대, 그가 헬버튼 남작을 해치려고 했던 건 절대로 크리스의 영향이 아니었다.


“아니야, 형! 이건 절대로 그런 게···.”


크리스는 어쩔 줄 몰라 하는 루제르트의 어깨에 손을 올려 그를 진정시켰다.


“루제. 사람을 죽이지 말라고 하는 건 이런 기분이구나.”


크리스는 반대 입장이 되고 나서야 드디어 루제르트를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과거에는 단지 루제르트가 싫어하니까 하지 말아야지 정도로 생각했지만, 지금은 달랐다.


“그따위 것보다 네가 몇만 배는 더 소중하다는 뜻이었어. 네가 너무 소중하니까 이런 표정을 짓게 하고 싶지 않다는 말이었던 거야.”


크리스는 막연했던 것이 말을 통해 오히려 더 정리되는 느낌을 받았다.


“걱정의 본질은 간섭이 아닌 소중히 여기는 마음이었구나.”


그리고 그동안 자신이 얼마나 고집이 세고 부정적인 사람이었는지도.


“너는 나를 소중하게 생각해 주었던 거구나. 고마워, 루제.”


“···윽-.”


루제르트는 급하게 입술을 짓이겼다. 다시금 형의 앞에서 눈물이 터질 것 같아서 싫었다. 뒤늦게 후회가 물밀듯 밀려들었다.


‘더 참았어야 했는데.’


루제르트는 부끄러워 차마 고개를 들 수 없었다. 크리스와 달리 그 뜻을 정확히 알고 있었던 그가 그래서는 안 되는 거였다. 소중하다는 말로 상대의 행동을 강제했으면 본인은 더욱 그러지 말았어야 한다는 걸 뒤늦게 깨달은 마음이 고통스러웠다.


‘내가 무슨 짓을 하려고 했던 거지?’


“형, 미안해.”


“괜찮아. 이제는 다르게 말할 수 있겠다. 루제, 우리 사람을 죽이지 말자.”


루제르트는 크리스가 그에게 소중하다고 말하는 중임을 알아들었다. 결국 그는 울컥거림을 참을 수 없었다.


“···응.”


“왜 울어~.”


훌쩍거리는 루제르트가 귀여웠던 크리스는 참지 못하고 낄낄거리며 그를 놀렸다. 그랬다가 결국 정강이를 걷어차이고 후회했지만. 크리스는 욱신거리는 정강이를 부여잡고도 환하게 웃었다.


“루제, 나 머리를 기르려고!”


“어? 갑자기?”


“응.”


크리스는 곧바로 말을 행동에 옮겼다. 그는 자꾸만 얼굴에 들러붙는 축축한 앞머리를 잡아 뒤로 넘겼다.


“이게 더 정확하게 보이거든.”





이미 한풀 꺾여버린 사건은 빠르게 정리되었다. 크리스와 루제르트가 저택에 도착했을 땐 이미 황제가 보낸 병사들이 도착해서 대장 병사의 지시에 따라 신속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바라멜은 상금을 수령한 뒤 사냥단원들을 데리고 떠났다. 그 와중에 또 다른 마법사를 봤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나왔으나, 루제르트가 잘못 본 것 아니냐고 잡아뗀 데다가 묘하게 의욕 없어 하는 바라멜 덕분에 유야무야 넘어갔다. (“휴.” 크리스와 루제르트는 동시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화가 난 크리스가 눈에 뵈는 것 없이 떠나버리는 바람에 데리고 오는 걸 깜빡한 소남작은 바라멜이 챙겨왔다. (크리스는 굉장히 머쓱해져서 바라멜을 똑바로 바라보지도 못했다) 소남작은 난동을 피울 여지가 있다고 판단되어 다시 얼음 속에 갇혔다. 그는 남작 부인과 함께 벨라블에 수송 되어 치료(?)를 받을 계획이다. 곧 자렌에게도 자세한 사정을 담은 서신이 갈 예정이라고.


헬버튼 남작은 병사들에 의해 곧바로 황실 감옥으로 이송되었다. 힐 제국의 중요한 사건이니만큼 크세르트 황제가 친히 재판에 참석해 처벌 수위를 가리기로 했다.


헬버튼 가의 모든 재산을 떠맡게 된 남작 부인은 자신의 오라버니인 첼로 남작의 요구를 단호하게 뿌리쳤다. (남작 부인이 고함을 지르며 첼로 남작을 내쫓는 장면은 희대의 명장면으로 저택에서 두고두고 회자되었다) 그녀는 이번 사건의 피해자이기도 한 대역 아이의 후견인이 되어 상처 치료와 그 이후의 보상까지 끝까지 책임질 것을 선언했다.


그리고 크리스 일행은···


“으아아-! 드디어 돌아간다.”


롬이 몸을 길게 늘여 기지개를 켜자 옆에 앉은 브랜든이 짜증을 냈다.


“야, 안 그래도 비좁은 마차인데 가만히 좀 있어!”


“싫은데.”


“아, 좀!”


“얘들아, 시끄러워!”


참다 참다 셰비가 폭발했다. 그녀의 잔소리가 무서웠던 롬과 브랜든은 재빨리 자세를 바로 했다.


롬은 이 흔들리는 마차 안에서 책을 보고 있는 셰비에게 한마디 했다.


“흔들려서 뭐가 보이냐?”


“어쩔 수 없잖아. 이번 일로 시간을 많이 썼으니까. 그 사이에 유행이 바뀌었는지 확인해야지.”


“크···. 역시 상인은 다르구나.”


웃고 떠드는 동료들을 보고 있자니 새삼 그들이 수도로 다시 돌아간다는 사실이 실감 난 브랜든이 말했다.


“나 사실 황제 폐하의 임무는 처음 받아보는 거라 좀 떨었는데 잘 마무리되어서 천만다행이다.”


“조금? 넌 많이 떨었지.”


“셰비! 롬이 자꾸 시비 걸어.”


“치사하게 이걸 일러?”


정작 셰비는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대신에 그녀는 옆 마차에 타고 있는 크리스에 대해 화두를 던졌다.


“얘들아, 그런데 크리스 좀 똑똑하지 않아?”


“아, 그거?”


헬버튼 사건의 뒷수습을 하던 크리스 일행은 그 과정에서 헬버튼 남작의 편지가 황궁에 도착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셰비는 이를 말하고 있는 거였다.


롬이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크리스가 혹시 모르니 따로 편지를 더 보내놓자고 하지 않았으면 여기서 며칠 더 허비할 뻔했어.”


“내가 어떻게 알았냐고 물어보니 뭐라 대답했는지 알아? ‘나는 사람을 안 믿는 게 습관처럼 되어 버려서···.’래. 진짜 의외지!”


“그, 그래. 크리스가 좀 순진하고 얌전할 것처럼 보이기는 해.”


브랜든은 어느새 읽던 책도 덮고 눈을 빛내며 말하는 셰비를 보고 떨떠름하게 반응했다.


“근데 나는 가끔 조금 무섭던데?”


“그거 앞머리 때문에 그런 거 아니야? 이번에 앞머리 넘긴 거 봤어? 잘 어울리지?”


“응. 훨씬 낫더라. 앞으로도 그렇게 하고 다니라고 해.”


“이미 말해봤어. 그럴 거래.”


롬과 브랜든은 흥분해서 말이 빨라진 친구를 보며 생각했다.


‘쟤 신났네···.’


그렇게 고단한 일행을 태운 마차가 황궁을 향해 내달렸다.


작가의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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